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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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에 지어진 그림 같은 건물이 줄지어 선 아름다운 소도시에 종소리가 울렸다. 시계탑 근처에 자리를 잡은 작은 교회에 하객이 들끓고 작은 주차장 안은 크고 작은 차로 가득했다. 프란츠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바쁜 일을 제치고 온 것이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프란츠를 축하해 주었고, 곧 새로운 가정의 가장이 될 그에게 축복이 함께하길 염원했다.

축복의 주인공인 프란츠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 소도시의 부호였고 심성이 착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였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읜 탓에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된 그는 부지런했고 영리한 머리로 재산을 수호했고 어린 동생을 살뜰히 챙겼다. 그런 프란츠를 사람들은 대견스럽게 여겼다.

바쁘게 사느라 연애를 해 보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던 프란츠가 어느 날 피앙세를 데려왔다. 먼 동양에서 왔다는 신비로운 요정 같은 오메가는 금방 시골 청년인 프란츠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피앙세와 사랑에 빠진 프란츠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누구에게나 걱정을 사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이 더 염려하는 건 둘의 만남이 국제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프란츠와 가깝게 왕래하는 친척이 결혼을 반대했으나 동양에서 온 오메가는 서툰 말씨와 다정함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6개월간의 교제 끝에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작은 교회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피앙세의 소박한 부탁을 받들어 이 작은 교회에서 식을 올리게 되었다.

입구에서 손님을 혼자 맞이하던 프란츠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그의 반려가 될 오메가가 단장을 위해 머무르는 대기실이었다.

하객을 피해 대기실을 찾은 프란츠가 문을 두드렸다. 손목을 구부렸다가 펴며 문을 두드렸다. 노크에 안쪽이 소란스럽더니 문이 열렸다.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틈으로 동그란 코와 유순한 눈이 나타났다. 그의 피앙세인 연이다. 유순한 남자의 눈에 미묘한 열기가 떠다녔고 코 아래에 자리 잡은 입술이 유난히 붉어 프란츠의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연, 뭐 하고 있었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거든요.”

상대를 확인한 연은 문을 닫았다. 얌전히 문 앞에서 얼마간 기다리자 다시 문이 열렸다.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한 연이 프란츠를 안고 양 볼에 키스했다. 스킨십에 면역력이 약한 프란츠는 뺨이 붉어진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피앙세는 겉보기와 달리 애정 표현에 있어선 불의 신도 울고 갈 정도로 뜨겁고 정열적이었다.

“빨리 낮이 지났으면 좋겠어요, 허니. 얼른 손님맞이하고 있어요. 저도 곧 나갈게요. 저는 단장할 게 남았어요.”

숫기 없는 프란츠의 볼이 붉게 물들자, 연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짙은 미소에 정신을 잃은 프란츠를 동양인 남자가 돌려세웠다.

“밖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겠어요. 얼른 가 봐요.”

박연의 손에 떠밀려 입구로 간 프란츠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허파에 바람이 찼다. 행복한 결혼, 예쁜 아이,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오메가를 떠올렸다.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흔들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꿈꾸었다.

“약혼자는 어쩌고 혼자 나와 있어요?”

백발의 귀부인이 연의 행방을 물었다.

“곧 나올 겁니다.”

입이 귀에 걸린 프란츠가 웃으며 대기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밀려드는 하객에 정신이 팔렸다. 한창 악수를 하던 프란츠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부부가 될 사람들이 하객을 맞이하는데 지금까지 연이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를 쓸어 올린 그는 자신의 오메가를 챙기려고 대기실로 걸어갔다. 주먹으로 화려한 나무문을 두드렸다.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나와야 할 연이 나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응답을 기다리던 프란츠의 뺨이 붉어졌다. 얼마나 예쁜 모습으로 자신을 놀라게 할지 기침을 하며 기다렸다.

“콜록콜록, 허니, 빨리 나와요.”

부끄러운 호칭을 부르며 안에 있을 연을 불렀다. 그러나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부끄러워서 나오지 못하는 거면 내가 들어갈게요.”

정중한 말과 함께 문고리를 잡아 오른쪽으로 내렸다. 대기실로 들어간 프란츠의 얼굴이 굳어 갔다. 텅 빈 대기실과 어지러이 흩어진 옷가지만이 그를 반겼기 때문이다. 얼떨떨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프란츠는 대기실로 들어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도 하얀 커튼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 박연은 없었다.

프란츠는 약혼자를 찾으려고 교회 주변을 수색했지만, 동양에서 왔다는 박연이란 남자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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