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이선의 계절 (10/11)

- 외전 1. 이선의 계절

요즘은 별다른 일 없이도 눈물이 나곤 했다. 내게 주어진 이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분하다 생각하는 탓이다. 다시 말해 이 행복이 사라질까 겁이 나는 것이고, 감당하기 어렵게 행복한 매일이었다.

눈물의 원료가 슬픔과 서러움에서 행복으로 바뀐 것은 대단한 변화지만 그 모든 감정의 주인이 윤오인 것은 같았다. 내게 윤오와 행복은 결이 같은 진리이자 어느 하나를 분리해 낼 수 없는 사랑이었다.

“중령님, 무슨 문제라도……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몸이 불편하시면…….”

“소위.”

“예, 소위 한타!”

반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잠깐 훈련을 봐주던 차에 딴생각을 했더니 금세 그것이 윤오의 생각으로 옮았다. 여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행복한 것도, 또 불안한 것도.

“검을 쓰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총기를 더 다루는 걸 추천하지.”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소위의 이능이라면 굳이 근접전을 할 일도 없을 텐데.”

“……그래도 익히고 싶습니다.”

뭐든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나쁘지 않다. 내가 그에게 도검술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떠나서.

이능 장교 신임 소위들에게는 여름부터 합동 훈련이 필수가 되었다. 지난달 중앙군이 개편되고 에스퍼 사단이 따로 떨어져 나오면서부터다.

에스퍼로 발현하면 우선 연구소에서 각자의 이능에 대해 분석하게 되는데, 오히려 임관 후에는 이능력을 활용할 만한 훈련이 없어 개개인에게 맞는 전투법을 개발하는 게 난항이었다.

새로 취임한 사단장 데이가 가장 먼저 보완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한 세월 바꾸지 못한 군의 행태에 이만큼의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던 데에는 유령 행세를 관둔 바차스의 영향이 아주 컸다. 놈이 탈탈 털어 낸 각종 군 비리를 가지고 데이는 모종의 거래를 했다. 반발이 물밀듯 밀려들었지만 제대로 앞에 나서는 자는 없었다.

입법에 관여할 수 있게 되자 데이는 그 즉시 연합군의 에스퍼 사단 분리를 상정했고, 이능 장교의 지휘권을 공식적으로 얻어 냈다.

준장 데이의 총괄 아래, 새롭게 출범한 에스퍼 사단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전투와 지원 등 세부 병과로 나뉘고 또 특수전에 특화된 소규모 임무 대대를 하나 편성했다.

“뭐 하냐.”

“준준.”

“안녕하십니까! 준장님!”

그 특임대의 대대장이 준준이다.

준준은 딱히 야망이 있거나 직무에 성실한 타입은 아니지만, 듣자 하니 동성 반려인을 법적 배우자로 등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조건으로 데이와 연대한 것 같았다. 아직도 주노와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은 걸까.

“이선. 공격해 봐.”

“공격? 왜?”

“왜긴 왜야, 대대장님 명령이다. 십팔.”

편성이 바뀌며 나는 지원병과의 지휘관으로 보직이 옮겨졌다. 공식 취임은 하지 않았지만, 공석인 부대장 또는 병과장급의 임무를 했다.

사단장 데이는 내 연차가 18년이 되는 후년에 대령 승진과 더불어 부대장 자리를 맡기겠다며 취임식에서 나를 빼놓았다. 아직 못 미더워서 그런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속내는 내게 1년여의 말미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올해와 내년. 아직 윤오와 사라질 마음이 있다면, 그 전에 가라고. 주목받지 않고 선택할 시간을 그만큼 주겠다고.

소속이 세분화되며 내 상관이라기엔 애매해진 준준을 잠시 흘기다가, 이쪽으로 모인 신임 소위들의 시선을 훑었다. 아직 병과가 확실하지 않은 녀석들에게 노련한 에스퍼의 전투를 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한숨을 쉬고 버클을 닫은 중검을 검집째 한 손에 들었다. 검 끝을 내리고 자세를 낮췄다.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놈과 나의 상성이 나빠 오래가진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간다.”

“꼴에 예고는.”

준준의 염동력에 연병장의 흙바닥이 잘게 진동했다. 어린애들 앞에서 멋이라도 부리려는 건가. 놈 역시 보여 주기식으로 구는 게 우스웠다.

즉시 제어를 끌어 올려 염동력을 봉인했다. 투두둑, 흙모래가 쏟아지고 이능에 의한 소규모 지진이 씻은 듯 사라졌다.

파동의 흐름을 찔러 빈틈을 만들었다. 성큼 달려들어 굳건한 왼 다리에 검집을 휘두르자 즉시 공격 방향을 예측한 준준이 다리를 빼는 대신 팔을 내밀어 방어했다. 상체에 더 치중한 놈다운 선택이다.

기본 근력이 무시무시한 탓에 방어를 위한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남달리 위협적이었다. 방어에서 그치지 않고 휘둘러 공격까지 이어 가는 전투 감각은 더더욱.

단순히 휘두른 팔뚝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단 칼자루로 밀어 흘리고 한 걸음 뒤로 빠지며 회전력을 실어 세로로 크게 베어 냈다.

준준은 최소한으로 몸을 비틀어 빠른 검격을 피한 다음 내가 검을 수거하는 타이밍에 맞춰 손을 뻗었다. 검 끝이 한순간 압축된 염동력에 이끌려 글러브 같은 손아귀에 말려들었다.

저건 반칙 아닌가. 검집이 아니라 날이었어도 똑같이 잡았을 건가? 잠시 인상을 썼지만 대련이라도 전투 중에 왜 잡았냐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검집과 함께 몸이 딸려 가기 전에 놈의 어깨 앞쪽으로 파고들었다. 칼자루를 놓고 짧게 도약하여 준준의 얼굴 높이로 뛰어올랐다.

무릎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상단을 막는 팔뚝이 보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앞차기가 아니라 목덜미를 노린 킥이다. 궤도를 높인 다음 휘둘러 내리꽂은 발차기가 제대로 놈의 어깨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효타.

그러나 타격감이 느껴지기 전에 뻗어진 넓적한 손이 내 오른쪽 발목을 잡아채 그대로 휘둘러 던졌다. 여력 없이 공중을 나르며 가까스로 몸을 틀어 착지해 냈다. 군화가 뒤로 밀려나며 길게 흙바닥을 그었다.

근-원거리에 약점이 없는 놈답게 나를 날려 버리자마자 준준은 염동력을 돋웠다. 다시 한번 연병장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아직 계속하자는 건가? 나는 거리를 가늠한 다음 멀어진 만큼 견제 수준을 높였다. 범위는 전방. 정도는 0.

“아, 씨팔.”

본격적으로 내린 제어에 놈이 곧장 욕을 씹었다. 본래도 험악한 얼굴이 한층 사납게 구겨졌다. 내 제어를 충분히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워낙 파동이 강해 신체의 일부 같은 놈이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간격을 줄이며 낮게 접근했다. 하단을 노리고 상체를 밀어 넘어뜨릴 작정이었다.

“중, 준장님! 중령님!”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신참들 중 반수가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방금 외친 소위 옆의 한 녀석은 아예 축 늘어졌고. 서둘러 제어를 헤치고 다가갔다.

“뭐야. 고작 그거 가지고 기절했냐?”

“아닙니, 다. 어지, 어지러워서…….”

“소위. 정신 차려. 파동을 쓸 수 없을 뿐이지 몸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다.”

모순이 강한 이능을 가졌든, 이능에 의존하는 편이든 파동 제어에 민감하게 반응한 모양이었다. 준준의 원거리 염동력을 견제하기 위해 제어를 넓혔을 때 휘말렸나.

잠깐이고 낮은 수준이었으나, 파동을 건드리는 이능이 드문 축이니 처음 겪었으면 그럴 수 있다.

비틀거리던 이름 모를 소위가 자세를 가다듬고 일어나며 꾸벅, 내게 고개를 숙였다. 뭐가 감사한지 이해하지 못한 내게,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 다른 소위들도 따라 인사했다. 갓 스물 몇 살인 군인들의 부담스럽게 반들거리는 시선이 준준과 나를 향했다.

“이능을 활용하면 이따위 체격 조건을 가진 중령도 나와 맞붙을 수 있다. 중령의 이능이 특수해서 체술로 싸운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아니야. 처음엔 둔감하더라도 파동의 흐름에 꾸준히 신경 쓰도록. 파동에 민감해지면 곧 자신의 조절 능력도 상승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근접전을 할 거면 무엇보다 체중을 늘려. 한 방, 한 방에 무게감을 실어 주는 데 기술은 한계가 있다. 체력도 당연해. 중령같이 가벼우면 장기전에서 무조건 밀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내 체중을 지적하는 건 못마땅했다. 나라고 그 고민을 안 한 것도 아닌데.

그나마 요즘은 잘 먹어서 살이 많이 찐 거라든가, 체력은 크게 연관 없다거나, 그런 불평불만들을 꾹 넘겼다. 방금 종잇장처럼 집어 던져지는 걸 목격한 신참들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 때문에.

“주어진 이능을 얼마나 다루느냐가 파동의 절대량보다도 치명적인 결과를 만든다.”

최고 수준의 염동력자에 근, 원거리 전투력까지 고루 겸비한 ‘괴물 준준’이 내리는 충고에 어린 에스퍼들이 숨죽여 집중했다.

파동을 조절해 이능을 폭발시키는 법, 자기에게 맞는 훈련법 찾기 등, 모처럼 욕설 없이 조언하던 준준은 끝내 마무리 멘트로 ‘잘 처먹어’하고 무게라곤 없는 소리를 했다.

격투에 체급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능을 활용하는 훈련에서 저렇게까지 강조할 일인가. 어쩌면 괜한 자격지심에 그 말이 더 거슬렸는지도 모르겠다.

연구소를 나선 지 3년이 되지 않은 소위들은 보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이어진 훈련에 임했다. 연구소에서는 워낙 억제하는 방향으로 조절을 가르치다 보니, 다들 갑작스레 고삐를 벗어난 망아지 같은 파동을 다루는 데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소위.”

“예! 소위 이메리다!”

“소위는 훈련에서 빠져. 가이딩 보급을 신청해서 받도록.”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이메리다가 지시에 저항했다. 아직 저런 사소한 것도 명령 불복종에 걸릴 수 있다는 인식이 없는 모양이다. 바로 지적하기보다는 조금 더 찬찬히 상태를 살폈다.

진공과 염력이 섞인 이능 자체는 수준이 높지만 쉽게 거칠어지는 파동이 불안하다. 부작용도 제법 심한지 새로 나는 머리카락이 희게 센 것도 보였다.

“소위 이메리다.”

“예! 소위, 이메리다!”

“지금부터 파동을 안정화하는 쪽으로 훈련을 선회해. 그리고 훈련이 끝나면 의무대로 가. 명령이다.”

“예! 알겠습니다.”

한층 싸늘한 어투에 ‘명령’을 운운하자, 더 언질을 주지 않아도 제 잘못을 눈치챈 낌새였다. 소위의 절절매는 모습을 오래 보지 않고 돌아섰다.

“울렸냐?”

“아니.”

“우네.”

반대쪽을 돌며 훈련을 봐주던 준준이 내 뒤를 턱짓했다. 돌아보니 눈을 감고 집중한 이메리다의 빨간 코끝이 보였다. 우는 것까지는 아닌 듯한데.

“하여간에 인기 많은 놈.”

“무슨 소리야?”

“있어, 새끼야.”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하지. 괜히 얄미워서 준준의 능글거리는 낯짝을 노려보았다. 요즘 들어 허술해진 저놈의 말버릇을 주노에게 일러 버릴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너무 유치한 복수 같아 관뒀다.

“어!”

“위험해!”

한참 다른 이들을 돌아보던 중, 당황한 웅성거림과 동시에 피모가 비쭉 솟았다. 급작스레 치솟은 파동의 방향으로 몸을 돌림과 동시에 달려 나갔다. 좀 전에 지나쳐 온 방향, 소위 이메리다의 방향이고 그녀의 파동이었다.

“비켜 새끼들아!”

“전원 물러나!”

눈짓을 교환하지 않고도 각자 주변을 물리고 폭주를 시작한 소위 옆에 섰다. 제어를 끌어올려 파동의 마루를 다독이자 날카로운 기세는 금세 잡혔지만, 의식이 혼미한 상태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파동이 형태를 달리하며 반항했다.

“되겠냐?”

“돼.”

준준이 대피를 마무리하고 지원을 부르는 사이, 소위를 제압하고 제멋대로 치솟는 파동을 어루만졌다. 간간이 그녀의 이능이 튀어나와 예리한 날 같은 압축된 바람에 옷이 베였다.

“아예 기절시킬까?”

“준준!”

아, 이런.

성큼성큼 다가선 준준에게 느닷없이 이능이 쏘아졌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파동이었다. 씹팔, 욕을 뱉은 준준이 뒤늦게 몸을 물렸지만, 무의식 수준에서 제 몸을 지키려 내보인 이능은 그 주인의 원실력보다 강하고 난폭했다.

제어, 그리고 치환.

준준을 밀어 내며 이능을 쓴 건 다분히 반사적인 일이고 오랜 습관이었다. 목을 향한 그 공격이 살갗을 잘라냄과 동시에 제어를 펼치고 치환을 적용했다. 그렇게 하면 이능력에 의한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순간적인 판단이 내린 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좌절했다. 욱신, 반작용으로 왈칵 피를 쏟는 내 목이나, 멍청한 짓을 했다고 비난하는 준준 때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지나친 제어에 의식을 잃은 소위 때문도 아니다.

“나, 어떡하지?”

“뭘 이 새끼야. 씹팔, 야! 해산해, 이 씨발놈들아!”

“윤오가, 화, 낼 텐데.”

“지랄, 염병을 해라.”

내 목을 조르듯 틀어잡은 준준의 목에서도 똑같이 피가 흘렀다. 피는 꽤 나지만 그다지 깊지 않은 상처에 내 시도가 성공적이었음을 알았다.

“나, 다치면, 안 되는데…….”

“그럼, 십팔, 저지르기 전에 생각을 하던가!”

마침 오는 중이던 구급차가 나와 준준, 그리고 기절한 소위를 싣고 의무대로 달렸다. 내 몸은 갑작스러운 출혈과 급격히 다량을 사용한 이능으로 잘게 오한을 느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걱정으로 떨렸다. 상처 치환은 이제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준준에 비해 턱없이 얕은 상처임에도 그 출혈이 머리와 가까운 탓에 금세 눈앞이 검어졌다. 멀쩡히 선 놈보다 먼저 침상에 눕혀졌고, 먼저 처치에 들어갔다.

보통 때였으면 거절했을 회복계 이능도 거부하지 않고 받았으며, 회복 이능을 내 몸에 쉽게 적용하기 위한 수면 마취에도 응했다.

인위적인 수면에 빠져들기 전까지, 내게 화내고 당부했던 윤오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장 난 냄비 손잡이 하나로 평온한 오후가 단숨에 어그러졌다. 뜨거운 물을 따라 내던 윤오의 손이 화상으로 벌겋게 익었고, 부엌을 기웃거리다 찬물에 손을 식히는 윤오를 본 순간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기다 내 손을 가져다 댄 것은 본능 같은 일이었다.

화한 열기와 따끔거리는 빨간 손. 치환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윤오는 단단히 화가 났다.

콸콸 쏟아지는 찬물에 내 손을 밀어 넣은 윤오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이름을 불러 보아도, 사과부터 내밀어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대로 두 번 다시 말을 걸어 주지 않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내게, 분노가 남아 성긴 목소리가 명령을 내렸다.

‘두 번 다시, 내 상처를 가져가지 말아요.’

‘하지만…….’

‘그게 누구 상처든.’

하지만 윤오가 아플 바에는 내가 다치는 게 나은데. 내 몸은 빨리 낫고, 나는 고통에 익숙하니까.

‘생각도 하지 마. 아예 그 이능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 그게 아니면 군이건 뭐건 내 옆에서 안 내보내니까.’

‘…….’

‘약속해.’

그런데 윤오가 화를 냈다. 내 팔에 멍이 들 만큼 세게 쥐었고, 윤오의 화상을 가져온 내 손바닥을 무섭게 노려보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내가 연달아 몇 번이나 약속하고, 맹세할 때까지 다그쳤다.

저절로 눈물이 솟아 펑펑 울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화상은 별것 아니었지만, 윤오가 화내는 건 싫었다. 내게 무섭게 굴지 말았으면 했다. 다시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했다.

* * *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예정되었던 단기 파견에서 제외됐다고 보고받았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정량보다 적게 쓴 마취제에 꼬박 하루를 잠들 만큼 민감하게 반응한 탓이다.

파견이 취소된 걸 아직 윤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걸 듣고는 이게 잘된 일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요리하다 다친 화상을 옮겨 온 것만으로도 그렇게 화를 냈는데, 또다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환한 걸 알면 화를 내겠지.

덜컥, 겁이 났다. 내 매일을 행복하게 하는 윤오, 그런 윤오에게 다시 미움받을 수 있다는 상상에 숨이 막혔다. 불안으로 절로 눈가가 젖었다.

링거를 매단 손으로 얼굴을 닦다가 엄지손가락 아래 옅게 남은 화상 흉터가 눈에 들자 더욱더 서글퍼졌다. 이까짓 상처도 윤오에겐 도저히 둘 수가 없었는데…….

다정하고 무서운 윤오. 그가 내게 애정을 주고 다정을 줄수록 더한 불안에 시달리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내 문제였다. 그 역시 이런 나를 알아서 쉽게 우는 나를 지치지도 않고 안아 달랬다.

그런데 이렇게 맹세를 지키지 못했으니, 이번에야말로 내게 질려 버리면 어떡하지.

손이 축축해지면 거슬거슬한 모포에 닦아 가며 한참을 울었다. 나쁜 버릇이 든 눈물이 쉽게 그치지도 않았다. 안겨 달램 받지 않으면 이제 혼자 그치지도 못하게 되었나.

심적인 고난 때문에 전열 기기를 틀어도 오한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훌쩍거릴 무렵 의무관들이 쭈뼛쭈뼛 들어와 붕대를 풀고 거울을 보여 주었다. 잘 치료된 목은 며칠이면 겉 피부까지 다 아물 것 같았다.

“원하시면 바로 퇴원하셔도 됩니다만, 피부가 얇은 부위니 사나흘은 내원하셔서 처치하셔야 깔끔하게 낫습니다.”

“……고맙다.”

“아닙니다.”

내 얼굴이 못 봐 줄 꼴이었는지 제대로 눈을 마주치는 녀석이 없었다. 퇴원하기로 하고 가볍게 몸을 추스른 다음, 마무리 짓지 못한 고민을 이었다. 윤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이 잘못을 어떻게 빌고 다음엔 그러지 않겠다는 걸 어떻게 또 맹세해야 할지…….

그날, 윤오의 집이 아니라 오래 비워 둔 내 관사로 향하면서, 텅 빈 관사에 들어서면서, 그리고 새벽이 깊도록, 모바일을 붙잡고 서러웠다. 내 실수는 생각도 않고 내내 서러워서 울었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말해야 하겠지, 그러면 흉이라도 없어진 다음에 고해야겠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럴 테니 용서해 달라고.

파견 기간을 핑계로 이틀을 더 관사에서 출퇴근하는 동안, 점점 더 밤에 잠들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윤오가 안아 주지 않으면 어떻게 잠드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따뜻한 향을 맡으면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리고, 그 큰 손이 내 등을 두드리면 언제 잠을 설쳤냐는 듯 까무룩 졸았다. 내 평안. 내 윤오. 잃고 싶지 않은 온기. 잃고는 살 수 없는 여름.

훌쩍훌쩍,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코끝이 따가웠다. 근무고 접견이고 상관없이 윤오를 그리워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애먼 군인들의 괜찮으냐는 질문을 온종일 달고 살아야 했다.

“뭐야, 씹팔. 왜 너네 헤어졌다는 소문이 도냐?”

“……뭐라고?”

“존나 날 째려보면 어쩔 건데? 너 이 머저리 같은 놈, 진짜 그 가이드 새끼가 화낼까 봐 집 나왔냐?”

“……집 나온 거 아냐. 나도 내 관사가 있고…….”

“퍽이나.”

실은 관사에서 머무는 날이 길어질수록, 더욱 윤오에게 가기가 힘들어졌다. 진작 그에게 연락하고 달려가 사죄를 해야 했으나, 또다시 미적거리다 오늘도 관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애먼 분풀이 겸 놈을 노려보니, 며칠 새 준준은 멀쩡해져 보인다. 목의 붕대도 풀었고 재생 연고만 바른 듯 상처의 표면이 반들거렸다. 왼쪽 목이 아직 불그스레했지만 저놈은 주노가 보면 걱정해 준다며 제 몸에 남은 상흔을 기꺼워했다.

“어지간하면 들어가라, 미련한 놈아.”

“그럴 거야.”

가뜩이나 괴로운데 찬물을 끼얹는다.

준준과 헤어져 관사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우울감이 깊어져 다시 눈물이 났다. 윤오가 너무 보고 싶고 정말로 필요했다. 나를 받아 준 그에게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다던, 거스르지 않으려 무엇이든 하겠다던, 그 다짐을 그렇게 쉽게 깨어 버린 내가 한심했다.

기껏 구해 놓은 준준도 괜히 미웠다. 놈이라면 혼자 오롯이 감당하더라도 중상이 아니었을 텐데. 고작 그 정도의 상처를 가져오느라 윤오를 만나지도 못하는 게 억울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지날수록, 괴로움이 점점 더해졌다.

딩동-

눈앞이 흐려 제대로 사물을 분간조차 못 할 즈음에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시간에는 나를 찾을 사람이 없는데.

데리다나 준준인가 싶어 모바일을 확인하니 따로 연락은 없었다.

“누구십…….”

형식상의 질문이 미처 끝맺어지지 못했다. 현관에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빨라져 마침내 문고리를 잡았을 땐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한걸음 떨어진 곳에 윤오가 서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미간으로, 서늘한 검은 눈을 내게로 향한 채.

“윤오 씨.”

“……울었습니까?”

서둘러 얼굴을 문질렀다. 제복 소매에 눈가가 스칠 때마다 따끔거리며 하찮은 통증이 올라왔다. 윤오가 내 팔을 잡아채고 성큼성큼 관사 내로 들어왔다.

“오늘도 안 들어올 셈이었어요?”

“그게…….”

“잡으러 오길 잘했네.”

가볍게 나를 들어 식탁에 앉힌 윤오가 턱을 붙잡고 그 아래 붕대를 건드렸다. 풀어 봐도 되냐고 해서 긍정했더니 조심스러운 손길이 새로 감은 붕대를 살살 풀어냈다.

약을 발라 덮은 거즈까지 떼어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무섭게 일그러진 미간을 보고 등줄기가 옴짝 좁혀졌다.

“잘, 잘못 했습, 니다.”

“그래.”

“……죄송해요.”

“그래야지.”

금세 울상을 한 내 눈가와 비쭉 내민 입술이 윤오의 입맞춤을 받았다. 한창 억울하고 서럽고 죄송스럽다가 놀라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미 다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날 피하고 숨긴 건 더 혼나야 합니다.”

“아……? 네…….”

“그간 먹는 건 잘 챙겨 먹었어요? 살이 빠진 것 같은데.”

대답하려 벌어진 입술에 윤오가 키스했다. 혼자 우느라 텁텁한 입 안을 남김없이 핥아 흥분을 덧씌우고 혀뿌리에 아직 매달려 있던 설움까지 덜어 냈다. 힘이 풀린 등을 든든히 받쳐 주며 코끝을 스쳐 더욱 깊이 입 맞췄다. 그립고 반가워서 가슴이 크게 떨었다.

다시 붕대를 감아 준 윤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하건 아쉬운 키스를 마무리하며 소리 나는 입맞춤을 내 입가와 볼에 남겼다. 조금 더 하고 싶어 따라나선 입술이 그의 긴 손가락 끝에 문질러졌다.

“찬장 열어 봐도 됩니까? 냉장고도.”

“네? 네.”

내 대답을 듣고 냉장고를 열어 본 윤오는 답답한 숨을 길게 쉬었다. 그의 등 뒤로 슬쩍 보니 어제 사 와서 반을 먹고 남은 핫도그가 보였다.

아직 날씨가 따뜻한 탓에 바로 버리면 벌레가 꼬일까 봐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인데, 왜인지 엉망인 생활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것 말고는 물밖에 들지 않은 냉장고인데도 그랬다.

윤오는 다음으로 부엌 찬장을 하나씩 열었다. 레토르트 죽들이 칸 별로 채워져 있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것과 뚜껑을 따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것 두 종류로.

“거기는……!”

“담배?”

싱크대 아래 장까지 열어볼 줄은 몰랐는데, 윤오는 거기서 보루로 쌓여 있는 담배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윤오가 피는 브랜드가 가득했다.

“담배 피워요?”

“아니요. 피우지 않습니다.”

“그럼?”

“그게…….”

“이 꽁초는 뭐지?”

저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코스터를 깔고 유리컵을 엎어서 나름 전시해 놓은 담배꽁초까지 들켜 버렸다. 가끔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면 괜히 기분이 좋았는데, 윤오가 알아채 버렸으니 나를 징그러워할지도 모른다. 큰일이었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앉혀진 식탁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유리컵을 열어 필터에 잇자국이 남은 꽁초를 건드리는 윤오를 보고는 아예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다시금 간질간질 눈물샘이 일하는 감각이 찾아들었다.

“내 건가.”

들켰다. 들켜 버렸다.

덜덜 떨리는 턱 끝에서 물기가 방울져 떨어졌다. 밭은 숨이 더운데 속은 그렇게 서늘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윤오가 돌아가 버리면, 더는 나를 안아 주지 않고 입 맞춰 주지 않으면…….

“왜 또 울지.”

쪽, 눈가에 내리는 젖은 소리에 반짝 눈이 떠졌다. 혼란한 눈동자가 재빨리 윤오의 검정을 번갈아 살폈다. 끝이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에 예상했던 불쾌감이 없었다.

“제가 징, 징그…… 않……으십니까?”

“왜.”

“제가, 훔, 쳐서…….”

“글쎄. 귀엽게 보이는데. 옆에 있던 테이프는 뭡니까? 의료용?”

입은 합 다물어지고 눈도 한참을 깜빡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눈물이 순서대로 툭툭 떨어져 무릎을 적시다가 윤오의 시선 아래 서서히 멎었다.

“내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네…….”

“그럼 이선 씨는 봐줄게요.”

훌쩍, 훌쩍, 윤오의 안전 불감증적인 말에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봐준다는 그 말이 기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대로 팔을 뻗어 윤오에게 안기며 웅얼웅얼 나머지 죄도 토로했다.

윤오가 병원에 찾아와 주었을 때, 그때를 기억하고 싶어서 의료용 테이프도 버리지 못했다고.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음침하게 챙겨 놓고 제멋대로 의미 부여한 내 못난 모습을 고백했다.

“그래.”

웃음기 머금은 따뜻한 목소리가 나를 달래고, 뺨과 귀, 목처럼 살갗이 드러난 자리에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살이 얕게 빨아들여졌다 놓이는 촉촉한 소리와 감촉에, 나는 괜히 더 눈물이 나고 가슴이 떨렸다.

“지금 안고 싶은데, 여기는 너무 딱딱할까?”

“네? 좋, 좋습니다.”

난데없이 들린 윤오의 목소리가 깊고 짙었다. 욕정이 묻은 소리가 귀로부터 척추를 타고 등줄기를 흘렀다. 갑자기 어디서 그럴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탁이 아니라 돌밭이라 해도 나는 좋았다.

윤오는 한쪽 식탁 의자를 빼고 찬장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섰다. 식탁 위에 앉은 내 바지를 벗기고 제복 셔츠는 배꼽이 드러날 만큼만 풀어냈다. 그의 어깨를 짚고 키스를 받는 동안 끝난 일이다.

나도 그의 셔츠를 벗기고 싶어 손을 놀리기는 했지만, 혀가 휘감길 때마다 힘이 풀려 겨우 목 단추 하나를 끌렀다.

“집에 가야 하니까 가볍게.”

“…….”

속이 술렁거렸다. 윤오의 ‘가볍게’ 하자는 말은 삽입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게 내심 섭섭한데, ‘집’에 가자는 말에는 견딜 수 없이 설렜다. 그가 정말로 나를 데리러 와 주었음을 느끼는 순간이라.

드러난 엉덩이가 그의 더운 손에 주물러졌다. 말랑한 살이 쥐어지고 당겨지며 사이에 자리 잡은 입구가 움찔거렸다. 혀를 휘감고 앞니 뒤쪽 민감한 입천장을 핥아질수록 더 애가 탔다. 짙은 숨소리와 달리 윤오의 동작은 담백했다. 나만 더 하고 싶어 매달리는 꼴이었다.

바르작거리는 허벅지와 맞붙고 싶어 달싹이는 내 배를 내려다본 윤오가 그의 바지 버클을 끄르고 지퍼를 내렸다. 속옷 너머 가로로 두둑이 부푼 윤오의 성기가 보였다. 방금까지 키스로 젖은 혀가 더욱 녹녹히 젖는 기분이 든다.

“만져 봐요.”

그의 허락에 냉큼 손을 뻗었다. 손가락등으로 단단한 기둥을 쓰다듬고 손끝으로 그 모양을 훑었다. 속옷 밴드에 손을 밀어 넣어 살살 당기자 발기한 커다란 성기가 금세 튀어나와 위로 치솟았다. 꼴깍, 침을 삼키는 귓가에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의 성기를 손아귀 안에 넣고 천천히 어루만지는 동안 윤오는 내 엉덩이나 허리, 허벅지를 쓰다듬고 내 목과 귓바퀴를 물었다. 감도가 올랐지만 너무 자극적이지는 않은 손길과 키스에 겨우겨우 넋을 지키고 그를 애무했다.

귓가에 그의 더운 숨이 쏟아지거나 그가 가볍게 허리를 추어올리면 심장이 그대로 갈라질 것처럼 저렸다. 두근거리다 못해 죽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커다랗고 뜨거운 성기. 그의 다른 피부보다 색이 짙고, 체취가 진하고, 완전히 발기하면 이렇게 일어난 핏줄이 몹시 야한 곳.

길게 이어진 핏줄을 따라 귀두 부분을 쓰다듬을 때는 그의 것이 내 속에 들어왔을 때를 상상하며 나도 몰래 허벅지를 움찔거렸다. 아, 역시 넣어 주면 좋겠는데…….

윤오는 내 안을 벌리고 성기를 밀어 넣는 대신 내 것과 그의 것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큰 손아귀에 쓸리기만 해도 허리가 바르르 흔들려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등을 굽혀 윤오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고 그의 목을 감아 버텼다.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아흑, 아! 아, 읏……!”

벌어진 무릎으로 그의 골반과 허리를 감싸고 조였다가 풀었다. 성감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뒤도 같이 힘이 들어갔다. 모자라고 아쉬워 들이미는 몸을 윤오가 살살 두드려 달래고 턱을 들어 올려 키스했다. 으응, 흐, 입이 틀어 막혀도 콧소리로 계속해서 신음이 흘렀다.

감추지 않은 신음을 윤오의 혀에 빼앗기며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좋고 행복하면 이렇게 눈물이 났다. 슬프고 서러운 눈물과 다르게 가슴이 아프지 않고 벅찼다. 윤오가 나를 원한다는 생각을 하면 예외 없이 그랬다. 이변 없이 떨리고 벗어나는 일 없이 행복해졌다.

“으응, 윽, 하아…….”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가 파득파득 튀었다. 근육이 단단하게 서고 골반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처럼, 아니면 더욱 괴롭혀지고 싶은 것처럼 몸을 비틀었다.

덜컹덜컹, 식탁 다리가 띄워졌다 다시 바닥을 짚으며 큰 소리를 냈다. 꽤 큰 소리였지만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기울어진 식탁에서 상판 한쪽에 쌓여 있던 서류와 노트가 팔랑팔랑 떨어져 내렸다.

“흐읏!”

다리 사이에 윤오를 놓고 바짝 조이며 사정했다. 팔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가는 내 뒤통수를 윤오가 잡아 식탁 위에 내려놓아 주었다.

정액을 쏟고 부드러워진 내 성기 위로 여전히 단단한 윤오의 것이 비벼졌다. 고환을 밀어 올리고 허벅지를 들어 올려 고간 틈으로 기둥을 문질렀다. 길고 더운 것이 아직 성감이 남은 자리를 스칠 때마다 속이 가렵고 감질났다.

“윤오, 앗, 좋아, 요. 흑, 넣어 주…….”

“안 돼.”

절절 끓는 목소리에 귀밑머리가 주뼛 섰다. 문득 찡해진 코끝을 훌쩍거리다 고개를 들어 올려 윤오와 시선을 맞췄다. 열 어린 검정이 곧장 나를 내려다보았다. 긴 성기가 내 정액으로 젖은 아랫배를 여러 번 긁고 그의 시선은 마치 발라 먹듯 나를 보았다.

젠장. 거친 중얼거림 후에 그가 그의 성기를 움켜쥐고 빠르게 훑었다. 윤오가 직접, 그의 것을. 그 외설스러운 장면에 침을 삼키다 덮쳐 온 입술에 그대로 입을 벌렸다. 목구멍까지 파고드는 혀에 고스란히 입 안을 내주고 저린 감각에 떨었다.

살갗을 타고 식어 가는 정액 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운 정액이 새로 뿌려졌다. 내가 느낀 절정과는 또 다른,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쾌감이 머리부터 몸을 타고 절절거렸다.

“안아, 주세요…….”

고작 며칠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모를 만큼 보고 싶었다. 내게 허락해 준 이 품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윤오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매일 잠 못 이루고 하루 종일 슬펐다. 그런 마음을 모두 꺼내 놓고 싶은데 자꾸 울먹거려서 고백이 끊어졌다.

윤오는 그 품에 나를 단단히 안고 기다려 주었다. 말을 하다 감정이 격해져 입을 다물면 힘이 들어간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고,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끝낼 때마다 칭찬처럼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겠는데.”

“죄…….”

“지금 기분 좋으니까 사과하지 말고.”

흐느낌을 겨우 멈춘 나를 꺼내 놓고, 윤오가 느릿느릿 셔츠를 벗었다. 앞섶이 정액으로 엉망이 된 셔츠의 벌어진 틈에서 탄탄한 상체가 드러났다.

또다시 일어난 내 성기가 윤오의 시선을 받아 흔들리고, 윤오가 그 끝을 건드리며 웃었다. 부끄럽지만 행복했다. 더 하고 싶은데, 그의 집에 가면 더 하게 해 줄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삽입을 조르고 싶었지만, 윤오는 내가 제대로 걷지 못할까 봐 끝까지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야한 눈.”

“네?”

속눈썹에 떨어지는 입맞춤마다 입술이 조바심을 냈다. 내 마음을 쉽게 눈치챈 윤오가 키스를 주며 벗어 낸 셔츠로 내 배까지 닦아 냈다.

가벼운 키스 끝에 허리를 숙인 그는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모으다 엎어진 노트를 뒤집고 다시 웃었다. 왜 그러는지 귀를 쫑긋 세우며 돌아보자, 아…….

“연습했습니까?”

“…….”

“이선.”

“네…….”

윤오(昀旿)와 이선(巸蟬)을 번갈아 휘갈겨 놓은, 공백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노트가 그의 손에 들어갔다. 윤오는 몇 페이지를 휘적휘적 넘겨 그의 이름이 훨씬 많은 노트를 샅샅이 살폈다.

보고 싶은 밤에 그저 써 본다는 게 그만, 금세 외운 그 글자를 더 예쁘게 써낼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 버렸다.

민망하게 숙인 이마에 윤오가 다정히 입을 맞췄다.

“화가 났는데, 화를 낼 수가 없네.”

“…….”

“그래도 집을 나가는 건 안 돼요.”

“……네.”

“또 이러면 가둬 버릴지도 몰라.”

“네?”

농담 아닙니다. 다정한 목소리가 내놓은 말에, ‘반대로 말한 건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그가 ‘그의 집’을 당연히 ‘내가 돌아갈 곳’처럼 말해 주는 것이 좋았다. 그의 곁에 내가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개인적인 부탁이라 미안하지만, 부관에게 입을 옷을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아……! 제 옷장에 윤오 씨 옷이.”

“내 옷이?”

“……일전에 병원에 두고 가신 게 있습니다.”

가느스름한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여태 돌려주지 않고 몰래 가지고 있었던 음흉함을 재차 들켜 머쓱하게 시선을 피했다. 이것도 용서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과 이것도 용서해 주리라는 간질간질한 오만이 엎치락뒤치락 속을 굴렀다.

윤오가 그대로 나를 들어 올려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나를 내려놓고 입을 맞춘 다음, 침실 벽장을 밀어 열었다. 빼곡하게 들어찬 제복 셔츠를 훑는 그에게 좀 더 깊은 왼쪽 끝이라고 알려 주자 금방 옷을 찾아냈다.

그리곤 그 옆에 걸린 준준의 셔츠를 꺼내 들었다.

“이건 누구 옷입니까?”

“준준입니다.”

“왜 여기 있습니까?”

“가끔 와서 옷을 갈아입고 갑니다. 부작용 때문에 옷을 버릴 때가 있어서요.”

“그래요.”

묘하게 딱딱한 대답에 초조해졌다.

준준은 이능을 과하게 쓰면 금방 등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셔츠가 소모품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집무실이나 관사나 군데군데 여벌의 셔츠가 있었는데, 관사를 나가 주노와 함께 살면서부터는 이따금 퇴근 후 내 관사에 들러 셔츠를 갈아입고 갔다.

낫고 나서 남은 상처는 보여 주더라도 부작용으로 골골거리는 모습은 보여 주고 싶지 않을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별말 없이 협조했다.

“얼마나 자주 옵니까?”

“어제도 왔습니다.”

“……그래.”

윤오는 준준의 셔츠를 다시 그 자리에 걸어 놓고 욕실에 들어갔다. 갑자기 조바심이 일어 그의 눈치를 보다가 욕실까지 쫓아갔다. 안을 들여다보아도 될지 고민하며 입구를 서성일 때 윤오가 나왔다. 그 손에는 유리장에 넣어 둔 보급용 윤활 젤이 들려 있었다.

“윤오 씨?”

의아한 부름에 윤오가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그대로 팔을 뻗어 내 허리를 감아올렸다. 그의 몸에 바짝 붙어 다시 침대로 옮겨지며 조마조마하게 말을 걸었다.

“화, 나셨습니까? 화를, 제가 화나게 해 드렸, 나요?”

“글쎄. 혼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혼이요?”

“못 걸으면 안고 갈 테니까 걱정 말고.”

나직한 협박에 속 깊은 곳부터 희열이 끓었다. 자리에 눕혀져 제복 상의가 마저 벗겨질 때에 이미 성기가 발기하고 뒤쪽 입구는 움찔거렸다. 서늘한 공기에 살이 노출되면서도 가슴팍이 쿵쿵 뛰어 더웠고, 아무런 자극 없이 유두가 일어나 간질거렸다. 벌써부터 숨이 헐떡거렸다.

그의 더운 손바닥이 붕대가 감긴 목 주변을 쓰다듬다 천천히 내 가슴팍과 배를 훑었다. 덜 닦인 정액이 엉긴 다리 사이까지 찬찬히 쓸어내리며 민감하게 떠는 피부를 가만 살핀다.

“하아, 읏, 흐…….”

이게 혼이라고? 그럴 리가. 윤오가 나를 만지는 게 혼이고 벌일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그에게 알리지 않고 감내하기로 했다. 너무 좋아서 힘들지언정 결코 내게 벌일 리 없다는 걸 윤오가 알면 이대로 그만둘지 모른다. 그건 싫다. 끝까지 하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만큼 나를 취했으면 했다. 거칠어도 좋고, 아파도 좋았다. 윤오이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참을 수 있었다. 그가 나로 인해 쾌감을 느끼고 절정에 이르는 건 행복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어쩌면 매시간 매분 보고 싶은 그 장면을 겨우겨우 참고 있는지도 몰랐다.

윤오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덥힌 윤활 젤을 내 성기 위로 흘렸다. 미끌거리는 큰 손으로 선단부터 고환까지 진득하게 감싸 내렸다.

복부가 픽픽 꺼지고 다시 솟아올랐다. 적나라하게 쏟아지는 일차적인 쾌감과 질척한 소리에 금방 얼굴이 달아올랐다. 빠듯한 그의 시선이 닿는 볼이 따끔거렸다.

“으응, 아, 좋아, 요. 넣어 주, 세요. 윤, 아……!”

애타게 흐느적거리며 보채 보았으나 윤오는 손아귀 힘을 더욱 키울 뿐, 흘러내린 젤로 젖은 입구를 만져 주지 않았다. 칭얼거리며 그의 손등을 쓰다듬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놓았다. 엉덩이를 달싹거리고 허리를 흔들어 보였다.

이렇게 보채면 내 허리를 잡아 누르기라도 했었는데, 지금의 윤오는 그저 나를 사정시키기 위한 사람처럼 굴었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열심히 윤오의 눈을 찾았다. 신음이 나는 입술을 꼭 다물고 두 무릎을 당겨 다리 사이를 벌렸다. 허벅지 뒤에 넣은 손을 양쪽으로 당겨서 그가 더 쉽게 나를 만질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많이 만져 줄 수 있도록 도왔다.

잠시 멈칫한 윤오의 손은 그대로 집요하게 내 성기만을 만졌다. 귀두 아래 가장 민감한 부분이 그의 손마디에 걸리거나 요도구로 손끝이 파고들면 그대로 골반이 허공에 들려 올랐다.

새된 신음이 가늘어지다 들숨으로 바뀌면 윤오는 잠시 손을 떼어 내 아랫배를 문지르고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나는 이 모든 게 혼이고 벌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독한 쾌감이 도무지 이어지질 않았다. 윤오는 그의 발기한 성기를 내게 넣어 주지 않을 것 같았고, 이대로 내 성기를 사정하지 못할 만큼만 만져 괴롭힐 셈인 듯했다.

그가 주는 벌이라면 달게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우는 소리가 났다. 흐느낌이 섞인 신음을 애타게 뱉었다.

“넣어 주, 아읏, 잘못했, 어요……. 잘못, 흑, 어요…….”

“뭘.”

“흐으, 아, 상처…… 치환해서…….”

“다른 건?”

“담배 꽁, 꽁초 훔, 치고……, 옷도 안, 돌려 드리 흑, 읏…….”

윤오의 한숨이 깊었다. 훌쩍이는 내 위로 윤오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물거리는 입에 가볍게 입술을 맞춰 준 다음 못마땅한 얼굴로 하나씩 지적해 줬다.

“상처 치환 잘못한 거 맞습니다. 이선 씨는 다치면 안 돼요. 이제 그 이능은 없는 겁니다. 알겠어요?”

“…….”

“대답해.”

“네, 흑……. 네.”

“그리고 다치고 나서 숨긴 것. 바로 내게 돌아오지 않은 것. 따로 변명 있습니까?”

“잘, 제가 잘못해서, 약속을 못 지켰, 화를, 화가 나시니까…….”

“후…….”

“아!”

아랫입술이 얼얼하게 깨물렸다. 물린 자리를 서둘러 입 속에 감추고 윤오의 눈치를 살폈다. 두렵지만, 그래도 더 듣고 싶었다. 윤오가 왜 화났는지 말해 주면, 그러면 앞으로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숨죽여 올려다보는 내 얼굴에 윤오가 띄엄띄엄 입을 맞추다가 광대 언저리를 다시 아프게 깨물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참아 내자 아픔 따윈 아무래도 좋을 입맞춤이 또 주어졌다.

“다 받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감출 생각하지 말고.”

“네…….”

“내가 화내는 게 싫어?”

“화, 내시다가 싫어, 지실까 봐……. 저를, 밉, 밉게…….”

“별걱정을.”

쿵, 쿵,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내 심장만 요동을 쳤다. 갈비뼈가 좁다고 허파를 밀치다 못해 흉곽을 뛰쳐나가 버릴 것 같았다. 어찔어찔 시야가 돌고 그 앞을 가득 차지한 윤오의 검정이 황홀했다. 살풋 휘어진 눈매가 말할 수 없이 탐스러웠다.

잠깐 사이 부어오른 내 아랫입술을 윤오가 지그시 핥았다. 그의 검정 속에 내가 들여다보였다. 잔뜩 울상이지만 행복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윤오가 내게 웃어 주는데.

“군인을 그만둘 생각은 아직 없고?”

다음 말은 유혹 같았다. 내가 그 나른한 말투에 함락당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도 같았고, 그의 손가락이 다물린 내 뒤를 파고들며 속삭인 말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하, 흣, 지만…….”

“그래요. 천천히 고민해요.”

“흐으……!”

“기다릴 테니까.”

흘러내린 진득한 윤활 젤이 좁은 입구 주변을 번들거리다가 속을 들락이는 손가락에 묻어 조금씩 안을 적셨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일부를 받아들인 시간이 무색하게, 손가락만으로 내부가 꽉 차는 기분이었다. 고작 며칠, 윤오를 걸렀을 뿐인데.

“하으……. 응, 읏!”

깊이 파고든 손이 내벽 언저리를 뭉근하게 짓눌렀다. 그의 손이 내 안을 만졌다. 이물감보다는 기대가 컸다. 그를 받아들일 쾌감을 떠올리며 온몸이 자리자리한 통증으로 일찌감치 전율했다.

“충분히 풀어 주고 싶은데, 이렇게 쉽게 느끼면 내가 더 나쁘게 굴어도 될 거 같고.”

“괜, 흑……. 좋아요, 좋아요, 윤, 오 씨. 좋아, 하아, 해요…….”

“사랑은?”

“사, 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허락만 해 주면 종일 외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내 고백이 그를 웃게 한다니 나는 이대로 심장이 멎어도 좋았다. 내 심장을 계속해서 뛰게 하는 것도 윤오일 따름이다.

마음이 벅차서 울며 사랑한다 웅얼거리는 내게 그가 입을 맞췄다. 나는 하릴없이 그 혓바닥에 고백을 올렸다. 제 이름을 외치는 풀벌레처럼, 내가 그에게 사랑이고 싶어 내리 울었다.

몸이 달아 후들후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받아들이고 싶었는데, 나쁘게 굴어도 될 거 같다던 윤오는 외려 자근히 내 밑을 길들였다. 젤이 녹아 미끌거리던 입구가 뜨겁고 꾸덕해질 때까지 손가락이 아래를 늘렸다.

몇 번이고 사정감이 치밀어 턱이 밀려 올라갔다가 멈췄다. 어쩌면 아직도 혼이 나고 있는 걸까?

“흑…….”

“힘들어요?”

“섹, 섹스……해 주세요…….”

“…….”

“아!”

콱, 질꺽이던 손이 입구를 망가뜨릴 것처럼 세게 쳐올렸다. 그러다 내벽을 채운 손가락들이 대번에 주르륵 빠져나갔다. 속이 비어 버린 허전함과 입구의 얼얼함에 기분이 묘했다.

“섹스가 좋아요?”

“네? 네에…….”

“가이딩보다?”

어려운 질문. 섹스와 가이딩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나로서는 분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윤오에게 받는 섹스와 가이딩은 실상 둘 중 어느 하나를 골라서 취할 수가 없는 단일한 개념이기 때문에.

그래서 비교를 시도하기보다, 어떤 말을 하면 그가 계속해 줄까, 그런 영악한 생각으로 대답을 고민했다. 꽤 길게 눈을 굴리다 섹스 쪽이라고 말하려 할 적에 윤오가 정답을 줬다.

“나는 섹스가 더 좋습니다.”

“저도…….”

“그럼 내가 가이드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아…….”

“네가 에스퍼가 아니어도 되고.”

윤오가 모처럼 넘겨준 구체적인 말이 마음 깊은 곳에 박혀 들었다. 어쩌면 영혼까지 꺼내 거기다 새겨 넣는 것 같았다.

‘내가 에스퍼가 아니어도.’

항상 나만 쫓던 뒷모습이, 어느샌가 뒤돌아 팔을 벌려 주었다는 게 새삼 다가왔다. 윤오가, 나를.

천천히 파고든 성기가 멈춤 없이 내 속을 밀어젖혔다. 귓가에 내쉬어지는 그의 숨만큼이나 깊고, 길었다. 마침내 그와 이어져 하나가 되는 순간. 속이 밀어 올려져 버겁고, 벌어진 만큼 아리고, 내어 준 만큼 빠듯한 그 순간.

마음이 넘쳐 눈가에서 눈물이 되고 입가에서 흐느낌이 되었다. 아이로 되돌아간 것처럼 엉엉 울음이 났다.

“저는, 저는……, 저가, 제가 에스퍼인 것도, 좋, 흑, 습니다. 윤오 씨, 만날 수, 흑……니까, 좋, 아요. 읏, 좋아요…….”

“……지금 그렇게 울면, 내가 아주 개새끼가 되는데.”

실은 전부 좋다. 당신이 내 가이드가 아니라는 상상은, 정말 그 상상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내 삶의 목적도, 앞으로 살아가는 이유도 모두 당신이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이선.”

“……흐윽, 네…….”

“아프면 참지 말고 얘기해요.”

“괜, 흑……, 네…….”

“힘들면 조금만 참아.”

키스로 내 입이 틀어 막혔다. 내 안 깊은 곳에 성기를 묻고 가만히 달래던 윤오가 갑작스레 거칠게 속을 쳐올렸다. 성기가 아예 빠져나갈 것처럼 물러났다가 치받는 소리가 콱, 날만큼 맞붙었다. 새로 길이 나듯 입구와 내벽이 벌어졌다.

읏, 흑, 차오르는 신음을 누르다 하나씩 뱉으며 허벅지를 끌어 올렸다. 더욱 그를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팔을 그의 등 뒤에 둘러 내 가슴팍까지 닿아 달라고 매달렸다.

몸이 흔들리는 만큼 마음도 쾌감에 절여졌다. 끝이 없는 절정이 높아만 갔다. 윤오에게 닿은 살갗이 모조리 익어 버릴 것처럼 더웠다. 여름이 지나고서도 내게는 윤오가 있어 식지 않았다. 내 곁에서 내게 입 맞추고 나를 안아 달래는 윤오. 내 윤오.

“아윽!”

거칠게 들이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성기가 파정했다. 그러나 정액이 흘러내린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만큼 사정감이 없었다. 사정은 어찌되든 상관없을 만큼, 윤오가 내게 닿아 있으면 언제고 내내, 그 정도는 좋았다.

윤오를 안고서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정말로 쾌감만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전신이,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기뻤다. 머릿속은 생각을 잇기보단 다만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윤오의 혀에 매달려 정신없이 빨아 댔다. 그가 입 안에 웃음을 흘려주면 그것도 마셨다. 한숨을 불어 주면 들이쉬었고, 이를 세우면 어디건 물 수 있게 내어 주었다.

뜨거운 그의 몸과 마주 닿은 살들이 천천히 그의 온도로 익었다. 아예 변성되어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멍하니 윤오의 일부로 살고 싶다, 생각하다가 얼른 멈췄다. 지금보다 더 바라서는 안 돼. 이보다 행복하면 행복만으로 죽어 버릴 거야.

상처 많은 살결을 따라 윤오의 손길이 세심하게 훑었다. 흥분으로 가득한 내 몸이 연거푸 파들거리며 지펴졌다. 불이 꺼트려지지 않고 아래가 계속 일어났다. 윤오 없이는 아무 쓸모도 없던 몸인데, 지금은 볼품없는 이 몸마저 싫지가 않았다. 그가 만져 주었기 때문에.

윤오가 어루만지면 살집 없이 납작한 가슴팍도 성감대가 되어 조그만 돌기를 부풀렸고, 갈빗대 아래 메마른 복부나 배꼽 하나까지 성감을 느끼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내 발끝에 멋대로 힘이 들어가고 정수리가 침구를 파고들어 비볐다. 다만 윤오를 만지는 일에도 나는 흥분했다. 영영 이대로 사랑하고 싶었다.

좋은 건 똑같은데 신체의 반응이 갈수록 더 격해졌다. 떨지 않는 살이 없고 흐느낌을 만들지 않는 움직임이 없었다. 관절이 죄다 물러 윤오가 들이칠 때마다 허공에 하늘거렸다.

그의 등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져 시트 위에 떨어졌다. 비틀어진 목이 의미 없는 도리질을 계속하고, 심장에 휘둘린 것처럼 가슴팍이 들려 올랐다.

“으음, 흣……!”

갑작스레 쑥, 빠져나간 성기에 팔다리가 놀라 퍼뜩 흐트러졌다. 윤오는 그런 나를 뒤집어 엎드리게 한 다음 동그란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그가 빠져나간 공백이 발갛게 드러나 빠끔거리다 다시금 커다란 성기를 받아들였다.

“……아!”

힘없는 팔다리가 여러 번 꺾였다가 그에 의해서 일으켜졌다. 마른 체격과 체력은 상관없다 주장했었지만, 이런 관계를 버티는 체력은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었다.

너무 좋고 계속 좋고 싶은 마음과 달리, 누적된 쾌감이 멋대로 근육을 무력화했다. 몸에서 남은 거라곤 윤오를 받아들이는 구멍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내벽에 전해지는 자극에만 신경이 쏠렸다.

그가 짓쳐들어올 때는 입구를 조이고, 빠져나갈 때는 내벽을 조였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그를 붙잡았다. 내 속을 찾아든 그를 기쁘게 하려는 것처럼 몸이 속부터 떨고, 그래서 내가 더 좋았다.

묵직한 기둥이 뻑뻑한 입구를 벌리고 들어와 전립선부터 더욱 깊은 안을 드드득 긁으면 속절없이 무릎이 풀렸다. 상체를 세우려 해도 금방 흔들려 팔꿈치가 꺾였다.

엉덩이만 높이 쳐든 채 어깨와 볼을 침구에 문질렀다. 더운 숨으로 다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가 피부 곳곳에서 심장처럼 박동했다.

“아, 안……! 윤오, 힉!”

몇 번이나 사정하고도 다시 발기한 내 성기를 윤오가 감싸 잡았을 때는 몸의 중심을 관통하는 전류에 몸서리를 쳤다. 그대로 앞으로 무너져 침대에 엎어지고, 놀라 좁아진 속에서 그의 것이 쑥 빠져나왔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목을 긁었다.

엎어지고도 골반이 덜덜 흔들렸다. 나 혼자 미친 것처럼 이부자리에 허리 짓도 몇 번 했다. 눈앞이 검고 희었다. 지나친 자극에 앓으며 축축한 얼굴을 침구에 문질렀다. 얼마나 그 감각이 지독했던지, 모르는 사이 허벅지를 붙이고 슬금슬금 머리맡으로 기어 도망치고 있었다.

미처 한 뼘도 멀어지기 전에 엎드린 내 위를 윤오가 타고 앉았다. 옴찔대는 내 허벅지 사이와 엉덩이 사이에 그의 성기를 열없이 지나 보내며 내 척추를 뜨거운 손으로 더듬어 내렸다.

꼬리뼈를 뭉근하게 문지르고 살집이 있는 엉덩이를 주물러 내벽이 들여다보이는 주름을 손끝으로 긁었다. 늘어나 얇은 살점이 만져질 때와 그의 목 깊은숨이 공기 중에 터져 나올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 저몄다.

“아아, 안 돼, 요……. 흑, 윤오 씨……, 안, 아앗…….”

뭉툭한 끄트머리가 재차 뒤를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 윤오가 내 허리 아래에 손을 넣어 예민하게 달아오른 살덩이를 잡았다. 그리고 벌써 여러 번 토한 정액과 선액, 윤활 젤로 미끌거리는 귀두를 집요하게 문질렀다.

차오른 성감에다 끈질긴 자극이 더해지자 사정하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뻐근하다 못해 뻣뻣하고, 마치 요의를 느낄 때처럼 성기 끝이 부풀었다.

“안, 돼요, 윤오, 아, 제발……! 흑, 안, 윤……오.”

무릎을 밀어 빠져나가려는 내 위를 윤오의 묵직한 상체가 눌러 막았다. 그의 팔뚝에서 내 손목이 미끄러지고, 그 손을 피하려다가 홀로 들린 엉덩이 사이로 그의 성기가 깊숙이 침범했다.

“제발, 아, 나와요……. 안 돼……, 윤오 씨!”

“괜찮아.”

화가 누그러진 그의 목소리가 또 다른 열로 들끓었다. 내 어깨와 등에 입술을 내리고 내 성기를 괴롭히지 않는 다른 손이 허리와 가슴을 쓸었다. 그의 더위가 옮은 모든 부분에 관능이 차올라 찰박거렸다.

둑을 넘치고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전에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역치까지 쉬지 않고 감각이 넘실넘실 올랐다.

“아아……!”

긴장하여 수축한 모든 근육이 끊어지듯 힘을 잃은 순간, 그 짧은 동안은 모든 장기가 환희하고 전신이 남김없이 쾌락에 젖었다.

마침내 얻은 절정이 여태껏 겪은 그 모든 것 중 가장 폭발적이었다. 윤오의 품에 갇혀 멈추지 않는 몸서리에 떨며, 쾌감에 흐느꼈다. 입 밖으로 새는 신음을 참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안, 흑…….”

“괜찮아.”

조르륵, 요도를 통해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침대를 적셨다. 그 해방감이 너무나 억울해서, 참았어야 하는 실례를 범한 그 기분이 끔찍하게 좋아서 엉엉 눈물이 터져 나왔다. 괜찮다는 윤오의 위로로도 달래지 못할 실수가, 그 실수가 가져온 절절한 전율이 더욱더 충격이었다.

“흑, 흐윽……. 으윽…….”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었다. 한 번 방출하기 시작하자 성기에서 빠져나가는 물줄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윤오의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그의 손목을 밀었지만, 아무리 밀어 내도 쥔 것을 놓아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민감한 귀두가 짓눌리고 그때마다 힘없이 소변이 흘렀다. 너무너무 속상해서 아예 목 놓아 울었다.

“이선.”

“흐으, 윽, ……끅, 윽…….”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실수를 다 하고 나서야 윤오가 못난 성기를 놓아주었다. 안 된다고, 그건 안 된다고, 제발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은 윤오가 아주아주 조금 미웠다가, 결국은 참지 못한 내 잘못이라 생각하니 화까지 났다.

윤오는 푹 숙여 얼굴을 긁는 내 손을 떼어 내고, 상체를 들어 올려 무릎으로 그의 앞에 서게 만들었다.

“흑……, 악!”

확연히 좁아진 뒤에서 딱딱한 그의 것이 내벽을 짓눌렀다. 조르륵, 다시 내 성기가 물을 흘렸다.

안 돼, 안 돼요, 싸 버려, 흑, 윤오 씨, 제발……. 말을 더듬고 신음을 섞어 그를 만류했다. 그가 등 뒤에서 나를 안고 천천히 아래를 쳐올릴 때마다 성기에서 조르륵, 조륵, 물이 샜다.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펑펑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차마 싫다는 소리를 하지 못해서 잘못했다는 말을 꺼냈다. 이건 정말로 벌이다. 혼나는 것이다. 너무 느껴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다니,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다.

“나 봐. 자책하지 말고.”

“흐으……. 으윽, 흑.”

“차라리 내 탓을 해.”

그대로 내 고개를 감싼 윤오가 깊게 입을 맞춰 왔다. 나는 그의 혀와 그의 성기가 내 속을 휘저을 때마다 파들거리며 다만 느꼈다. 흥분과 쾌감이, 관능과 전율이 내 육신을 온전히 흔들었다. 휘둘리고 꺾어졌다.

더는 그의 성기를 무는 내벽에 내 의지가 섞이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럼에도 지근한 쾌감이 자르르 신경을 타고 뇌까지 울렸다. 엉엉 울며 윤오의 혀를 빨고 그의 팔에 매달려 몸을 세우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윤오가 내 손을 하나 가져다 배꼽 아래를 감싸게 하고 그의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리고 뒤를 파고드는 속도를 높였다. 거친 각도와 거센 동작에 이미 나는 내 무릎으로 서지 못했다.

퍽, 퍽, 폭력 같은 파열음이 났다. 온몸을 긴장으로 조이고, 쾌감으로 늘어뜨리며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푹 숙였다 천장으로 치켜들리는 턱에서 쉬지 않고 눈물이 흩날렸다. 그리고 손바닥 아래로 불쑥불쑥 뱃가죽을 밀어 올리는 윤오의 성기가 느껴졌다. 무섭고 황홀했다.

퍽, 퍽, 가장 깊은 곳까지 마구 헤집어지면 성기에서 다시 가느다란 물줄기가 조륵 흘렀다. 피어오른 수치에 그보다 더 많이 울면서 허벅지를 옴짝 붙였다. 가볍게 모은 것만으로 허벅지 근육에 힘이 빠져 진동했다.

그때, 배꼽 안쪽 깊은 곳에서 속이 익어 버릴 것 같이 뜨거운 열기가 퍼졌다. 그리고 아득, 붕대를 비껴 난 목이 물어 뜯겼다. 윤오의 거친 숨이 턱으로 쏟아졌다. 하으, 두서없는 호흡이 허파를 잔뜩 떨게 하고, 그의 열기를 받아 냈다는 사실이 단번에 뇌로 가 내 정신을 빼놓았다.

“아으, 흑…….”

조르륵, 더 이상 정액을 만들지 못해서 물이 나오는 걸까. 뺨부터 발끝까지 체표면이 죄 까끌거리고 가려웠다. 뜨겁고 벅찼다.

그대로 윤오에게 짓눌려 축축한 자리에 엎드리면서, 아직 남은 억울함과 서러움을 훌쩍거렸다. 내 뺨을 더듬는 그의 손가락을 홧김에 물었다가, 아팠을까 금방 놓고 살살 핥아 주었다. 귓바퀴가 저릿한 그의 웃음이 들렸다.

“고생했어요.”

내 뺨과 귀, 목덜미, 어깨에 여러 번 입 맞춘 윤오가 그의 커다란 성기를 내 뒤에서 뽑아냈다. 아직도 힘이 들어간 입구가 습관처럼 욕심부리며 귀두를 물어 당겼지만 얼얼한 입구의 감각을 끝으로 성기가 빠져나갔다.

아직 그대로 들어 있는 듯, 저릿저릿한 속이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을 줄 때마다 움칠 튀어 올랐다.

윤오는 나를 뒤집어 바로 누운 그의 몸 위에 얹었다. 그의 따뜻한 맨 가슴에 내 가슴을 마주 대게 해 주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얹어 주었다. 긴장하지 않은 부분이 없고 근육통을 느끼지 않는 부분이 없는 몸이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차근차근 그의 손길에 토닥임받았다.

조심스레 그 가슴팍에 턱을 대고 흐릿한 눈두덩이를 두 주먹으로 닦아 냈다. 그리고 적당히 갠 눈으로 윤오를 올려다보았다. 내 실수가 그를 언짢게 한 건 아닐까? 섹……스를 하다가, 그런 실수를, 했는데……?

그러나 그는 땀에 적셔진 내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겨 주고 귓바퀴를 주물러 주었다. 그 검은 두 눈동자가 무척 다정하고 그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 녹아 버릴 것 같았다. 기분 좋게 휘어진 눈매에 불쾌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제가, 아까…….”

“잘했어요.”

“…….”

모르겠다. 그냥 윤오가 기분이 좋으니까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부끄러움이나 수치는 그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조금 코끝이 따갑기는 했지만, 윤오의 가슴팍에 비벼 그의 향취를 들이마시면 금방 사라질 사소한 일이었다.

바깥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어두워질 무렵, 윤오가 나를 일으켜 욕실에 데려갔다. 그는 늘 기꺼이 나를 씻겨 주었다. 나도 한 번 그의 머리를 감겨 준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서툰 손인데도 윤오가 웃어 주어 심장이 말이 아니었던 기억이다.

마음 같으면 나서서 그의 가슴팍이라도 비누칠을 거들었을 텐데, 지금은 탈력감이 심해서 벽이나 그의 팔뚝을 잡고 내 두 발로 서는 게 한계였다. 졸음이 드문드문 치고 올라와 윤오의 품에 슬며시 안겼다.

그가 내 허리를 감아 편히 기대게 하고 내 뒤에 손가락을 넣어 그의 사정액을 긁어냈다. 윤오에게서 받은 온기를 더 품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 이 손길이 다시 섹스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아쉽지만, 빼앗는 것이 윤오라면 빼앗겨야 했다.

모두 주고 남김없이 강탈당하는 기분이 마냥 행복했다.

“차 안에서 좀 쉬어요.”

“네…….”

욕실을 나와 형편없이 젖은 침대를 보는 내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윤오가 피식거리며 입을 맞추어 내 집중을 빼놓고, 내가 보는 앞에서 감춰 두었던 그의 셔츠를 꺼내 입었다.

“아무래도 내 집이 돌아올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네?”

“집을 새로 구하고 있어요. 군부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군부, 근처요……?”

“우리 집. 관사는 빼고, 거기로 들어와요.”

이어진 ‘같이 살자’와 ‘다른 남자가 드나드는 곳에 둘 수는 없지’를 모두 따라잡지 못해 멍하니 그의 말을 따라 하다가, 입술이 다시 키스를 받았다. 이해보다 빠르게 젖은 눈가를 윤오가 살며시 쓸어 냈다.

“예쁘네.”

훌쩍훌쩍, 과도한 행복이 다시 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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