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불꽃의 에스퍼 (5/11)

- 불꽃의 에스퍼

 에스퍼로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간단하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이 모두 그 지점으로부터 비롯했다.

어쩌면 모든 탄생이 그만큼 괴로워서 모두가 태어나던 시절을 잊은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잊고 싶을 만큼의, 잊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고통이라서.

 성난 불길 속에서 한타는 타올랐다. 온 살갗이 익고 타는 공기를 들이마신 호흡기까지 타들어 갔다. 마구간 구석 흙벽을 파고드느라 손끝부터 살이 닳았지만 녹아내리는 살이 더욱 아파 신경 쓰지 않았다.

짚단이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고 매어 둔 말과 소도 익어 시커먼 연기를 내다 숯이 되어 푸석푸석 뭉크러졌다.

 한타는 죽지 못했다. 죽어 충분할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기절조차 할 수 없었다. 몸은 녹고 정신은 뜨거운 가시밭에 굴렀다. 아픔이 아픔을 일깨워 벗어날 수 없는 통증에서 도망치지도 못하게 했다.

 분명 죽을 것인데 이 고통스런 업화가 끊이질 않았다. 의식이 넘어가다가 잡아 채여 다시 괴롭게 불타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아파하다가 나중에는 원망을 했다. 다음에는 빌었다. 무언가 잘못이 있어 벌을 받는다면 이 고통에도 끝이 있을 것 같아서 무언지도 모르고 잘못했다 빌었다.

신이 있다면 연민하여 이 삶을 끝내게 해 줄 만큼 애타게 빌고, 끓어올라 수증기가 되는 눈물을 끝도 없이 흘렸다.

 그러나 한타를 도울 신은 없었고 흙벽에 처박고 웅그린 몸은 쉽게 타지 않았다. 화염에 휩싸인 뒷머리부터 등허리가 죄 녹아내려도 뼈를 녹일 때쯤이면 살이 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녹았다.

반복하다 피부가 물처럼 출렁거릴 즘에는 제 몸에서도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단지 아파하다 열기가 줄었다 여겼는데, 무슨 저주인지 한타는 불이 되었다.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눈을 뜨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고통스러웠으나 바라지 않는 생존이 고통스럽게도 이어졌다. 마구간 한구석을 파고 기어들어 간 한타의 익은 몸에서 불이 꺼진 건 연합군의 등장 후였다.

그들은 소산한 마구간의 잔해에서 한타를 발견했다. 벌겋게 드러난 살에 흙모래를 끼얹고 물을 부었다. 거멓게 그은 몸에서 처음에는 연기가 나다가 나중에는 흰 증기가 피었다. 아프고 아팠다. 살이 부르트고 찢어지는데, 그보다 계속해서 녹아내리는 피부가 가장 끔찍했다.

 몇 마디 알지 못하는 욕설을 핑핑 도는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외쳤다. 허옇다가 검어지는 정신이 고통으로 다시 끄집어 올려지면 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잿더미가 되어 버린 서국 동부의 작은 마을. 단 하나의 생존자.

오그라든 생존자의 검붉은 몸은 짐칸에 실려 한참을 남으로 이동했다. 비탈과 구렁은 물론이고 고르지 않은 흙바닥을 지나는 것을 짓이겨진 몸으로 모조리 느껴야 했다. 아파, 아파.

그사이 희뿌옇던 시야가 부분 부분 개이기 시작해 제가 짐짝처럼 실려 있는 곳이 군용차인 걸 알았다. 반란군 다음은 연합군.

 이번에는 그냥 죽기로 했다. 아무리 폭력이 아프고 무서워도 지금의 통증보다는 가소로웠다. 그까짓 폭력에 굴해 반군의 강제 노역을 한 것이 억울했다.

한심했다. 그간 당한 그 어떤 매질도 지금처럼 아프지 않았다. 엄마를 죽이겠다는 협박이나 연합군에 넘기겠다는 협박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겨우겨우 노역장이 겹쳐 만날 때마다 일 바지에 숨겨 두었던 먹거리를 몰래 쥐어 주던 엄마는 이미 죽었다. 반군은 강제 노역으로 지은 진지를 태우고 도망쳤다.

연합군의 기습 때문인 것은 2년을 노역해 지은 반군의 진지에서 타오르며 깨달았다. 일하지 않으면 연합군에게 죽임 당하게 둘 것이라더니 뼈를 깎아 일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어떡하건 반군이 저희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을. 단지 하루를 더 살아 보려고 온 마을이 바닥에 납작하게 붙었다. 친지와 가족을 때리지 말라고 외지인들이 저희를 부리게 두었다. 워낙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 반항할 줄도 몰랐다.

 엄마는 한타의 키가 계속 자라는 것을 경계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어리거나 늙지 않은 남자는 모조리 끌려갔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불순 종자가 되어 죽도록 매질을 당했다.

 분명 2년 전에는 어려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굶기를 일하듯 하며 먹은 거라곤 피죽과 대낮의 땡볕밖에 없는데. 깨끗한 물 한 모금 넉넉하게 마시지 못하고도 자꾸 키가 자랐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에도 엄마는 그것 때문에 울었다. 제 잘못이 아닌데 한타를 때리며 아이고, 아이고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었다.

 오랫동안 굽은 허리는 우습게도 가장 구부정한 때, 불에 타고 녹고 그대로 식어 굳었을 때 펴졌다. 어느 에스퍼가 나타나 제 몸을 만지자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한타는 피눈물을 흘렸다. 다 익은 목구멍으로 비명을 질렀다. 끔찍한 소리였다. 끔찍한 고통이었다.

굳은 관절이 모두 펼쳐지는데 그대로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눕혀 둔 대로 엎어져 있다 보면 그 에스퍼가 나타나 제 몸을 멋대로 펼치고 굽혔다. 그러면 불에 익은 시체나 다름없던 한타는 피거품을 물고 다 만들어지지 않은 신음을 그르륵 뱉었다.

제발 좀 가만두었으면 했다. 빨리 좀 죽었으면 했다. 왜 제가 살아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끝나지 않는 아픔과 계속되는 불길이었다.

시커먼 천막에서 병원 같은 곳으로 옮겨진 게 언제인지 모른다. 병원 같은 곳에서 한타는 엎드려 눕혀졌다. 등과 팔에 척척한 거즈를 올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는 주사를 맞았다. 고통이 한풀 꺾였다. 여전히 살이 끓고 녹았지만 상처의 재생 속도가 타들어 가는 속도를 이겼다.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여전히 아파 잠들지 못하는 머리통 속에서 눈알이 데룩데룩 굴렀다. 밝았다 검었다 번쩍번쩍하는 시야에 옆 침상이 보였다. 비었다가 누군가 옮겨졌고 얼마 뒤에 다시 비었다가 곧 또 사람이 채워졌다.

 그 날이 며칠 째였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다. 이미 너무도 오랜 날과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병실, 나중에 알기로 에스퍼 관리동의 집중 치료실이었던 그곳에 주황색 머리칼의 에스퍼 하나가 걸어 들어오던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좋은 향기가 났다. 고향의 꽃나무로 만든 향목에서 나는 단정한 냄새였다. 착각인지도 모른다. 제 몸에서 나는 탄내가 이미 지독했으니까.

 여러 사람과 함께 들어온 그 에스퍼는 옆자리의 새로 들어온 환자 옆에 서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그 자리에 누운 사람을 만지는 것 같았고, 곧바로 몸이 꺾어졌다.

휘청이는 마른 몸을 옆에 선 여자가 부축했다. 이번엔 피 냄새가 났다. 그것도 착각일지 모른다. 제 살이 내내 녹아 피를 흘렸으니까.

 중심을 잃은 몸은 오래지 않아 두 발로 다시 섰다. 등과 어깨가 굽어 있고 조금 떠는 것도 같았지만 언뜻 보인 그 허연 낯은 무표정했다. 심드렁한 것 같기도 했다. 한타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았다. 고통이 익숙한 표정이다.

 퍽 애처로웠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이 제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다시 스쳐 지나가면 제 길고 지루한 생존이 지긋지긋하게도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때에 그 에스퍼가 한타를 돌아보았고, 하얀 손이 눈앞으로 올라왔다. 그 동작이 어떤 의도를 담았건 피할 여력도 의지도 없는지라 그저 말끄러미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흰 손바닥에서 다시 향긋한 내음을 맡았다. 냉기가 돌 만큼 차가운 손이 절절 끓는 제 뺨을 만지고 이내 이마를 짚었다.

 온몸에서 쑥 하고 고통이 빠져나갔다. 기력이 빠져나갔다. 고통이 빠져나갔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그 느낌에, 비로소 제 넋을 빼놓던 고통이 온전히 육신의 통증이 아닌 것을 알았다. 피부가 녹아 따갑고 공기 중에 이는 바람이 저미게 쓰렸다. 그러나 머리를 꽝꽝 두드리고, 목구멍을 매캐하게 틀어막고, 등을 살라 녹이던 그 불은 사라졌다.

 몇 초나 지났을까.

 아프고 지친 몸이 까무룩 잠이 들었다.

 고통에 기절했다가 고통에 목을 죄어 깨어나길 한 달을 넘게 한 어느 날.

 에스퍼로 태어나고 받은 첫 잠.

 꿈도 없이 검은 잠에 빠져들며, 한타는 그 하얀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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