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까지 20분.
스튜어트와 패트릭이 뒷좌석에, 키슬러가 조수석에 오르고 벤튼이 운전대를 잡았다. 키슬러가 안전벨트를 매며 패트릭을 돌아보았다.
“라일리는 어쩌려고 데려가는 건가, 패트릭?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게.”
“같이 타고 가는 것뿐입니다. 어차피 할 말이 있으니까요.”
패트릭이 기운 없이 대꾸했다. 벤튼이 시동을 걸었다. 딜버트의 4륜구동 아우디가 17번가와 H가의 교차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키슬러는 할 수 없다는 얼굴로 딜버트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빌리겠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벤튼이 백미러로 패트릭에게 말했다.
“H가를 타고 가다가 뉴욕 애비뉴 쪽으로 해서 가겠습니다. 신호만 잘 받쳐주면 5분도 안 걸릴 겁니다.”
“일단은 움직이지.”
바로 옆에서 이제 슬슬 입을 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얼굴로 쏘아보는 스튜어트 때문에 말이 침착하게 나오지 않았다. 벤튼은 패트릭의 표정을 한 번 보더니 알아서 운전하는 인형 시늉을 하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똑바로 앞만 바라보았다. 패트릭은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러니까, 키드.”
“얘기해.”
“내가, 음, 내 직업 관련으로 말이야, 너한테 솔직하게 말을 안 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래 보여.”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패트릭은 입술을 핥으면서 스튜어트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튜어트는 무섭도록 성실하게 그를 마주 보고 있었고 온 얼굴에 지금 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큰 글씨로 적혀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패트릭은 어렵게 심호흡을 했다.
“나 다니는 회사가 우리 아버지가 창립한 데라는 건 너한테도 얘기를 했었지?”
“그랬지. 그래서 이름이 제퍼슨 앤 서턴 트레이더스라며.”
“응, 그게 뭐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맞는 소리도 아닌 그런 거였어.”
“너 좀 내가 알아듣게 말해 주면 훨씬 예쁠 거 같다, 팻.”
스튜어트의 얼굴에 점차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말이 쉽지, 패트릭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렀다. 키슬러의 말이 들렸다.
“저 차 왜 저러나?”
“그러게 말입니다, 키슬러 씨. 시내 주행 속도가 아닌데요?”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조금만 잘 나가는 차를 뽑았다 하면 시내를 고속 도로로 알아. 저거 벤츠지?”
“패트릭 클라란스 서턴, 말 안 합니까?”
스튜어트의 목소리가 키슬러와 벤튼의 대화를 엿들으며 도망치려던 패트릭의 의식을 도로 원래 자리로 붙잡아 왔다. 패트릭은 한숨을 쉬며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어. 넌 내 공주님인걸.”
키슬러가 무심코 불편한 소리를 냈으나 스튜어트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의 헛소리 덕에 조금 용기가 났다. 패트릭은 스튜어트의 손을 꽉 잡으면서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우리 아버지, 잠깐 동안 갱에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돌아가실 때까지 아이리시 갱단의 수장이셨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내가 그 자릴 이어받았고. 우리 회사는 출발은 갱단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깨끗해. 나쁜 짓은 하고 있지 않아, 믿어 줘. 하지만 아버지가 그 이전부터 형성해 왔던 다른 워싱턴 마피아나 갱단들과의 관계까지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라서 지금 그런 관계 중에 하나가 악화되었어. 그래서 네가 납치당했던 거야. 미안해, 키드. 너를… 속일 생각이었어. 할 수 있다면 끝까지.”
단번에 밸어 내자니 의외로 쉽게 모든 게 터져 나왔다. 스튜어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는 게 적절할까, 패트릭은 미소를 지으려다 그만두었다. 스튜어트가 멍청하게 눈을 깜빡였다.
“네가….”
“미안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스튜어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를 알고 지낸 이후로 그렇게 넋이 나간 모습을 보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패트릭은 어쩔 줄을 몰라 망설이다가 스튜어트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키드. 너무 엄청난 걸 너무 오랫동안 숨기고 있어서 미안해. 너한테 다 얘기했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네가 나를 부끄럽게 여길까 봐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었어. 키드, 듣고 있어?”
“네가… 제퍼슨 그룹 수장이라고? 말도 안 돼.”
목소리가 충격으로 흐려졌음에도 스튜어트는 거의 본능적으로 패트릭을 마주 안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 몸짓에 최악의 사태만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악몽은 악몽이었을 뿐 현실이 아니었다. 패트릭은 스튜어트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고 얼굴을 파묻으려다가 불현듯 굳어버렸다.
“잠깐만. 네가 제퍼슨 그룹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아?”
“…응?”
스튜어트의 어깨가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놓아주지를 않아 얼굴을 마주 볼 수는 없었어도 스튜어트가 드물게 당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패트릭은 그를 밀어내려고 하면서 재차 물었다.
“너 형법 관련이었어? 우리 그룹 알아?”
“벤튼, 지금 저 차…?”
두 사람 중 누구도 서로를 더 추궁할 겨를이 없었다. 키슬러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차의 뒤축이 쾅 하고 요동쳤다. 스튜어트가 반사적으로 패트릭의 머리를 홱 감싸 안으면서 뒤 유리 너머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키슬러 씨?”
“저 차가 우리를 쳤어!”
키슬러가 외쳤다. 벤튼이 이를 악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가 속도를 높이면서 경적을 마구 울리는 사이 패트릭이 스튜어트의 팔 안에서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뒤에 흰색 벤츠가 있었다. 키슬러와 벤튼이 조금 전에 불평을 늘어놓은 그 차 같았다. 어찌나 속도를 내고 있는지 그 서슬에 한 번 더 들이받히지 않으려거든 이쪽도 마찬가지로 속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H가는 통행량이 많은 길은 아니었지만 드문드문 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버스도 눈에 띄었다. 벤튼이 간신히 핸들을 꺾어 앞을 막고 있던 승합차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사이드미러가 승합차의 차체를 스치면서 귀에 거슬리는 금속성의 소리가 울렸다. 키슬러가 조수석 위쪽의 손잡이를 붙들고서 사이드미러를 내다보며 소리쳤다.
“계속 쫓아오고 있어! 뭐 하는 놈들인가, 크레모사야?”
“지금 회담을 하러 가고 있는데 공격을 한다는 말입니까?”
패트릭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키슬러가 이를 갈았다.
“자네더러 20분 내로 오라고 했지? 라일리, 자네가 빠져나온 걸 상대의 윗사람이 알고 있나?”
“아뇨, 연락 불가 상태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의 대답에 키슬러가 입가를 비틀었다.
“패트릭, 20분 내로 회담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자네는 회담을 거절하는 게 돼. 그러면 크레모사에게는 전쟁의 명분이 서. 자네가 크레모사 패밀리를 무시했다는 소리가 되니까! 그런 다음에, 라일리 변호사를 지금까지 잡아 둘 수 있었더라면 그랬을 거란 얘기지만, 라일리에게는 자네가 그를 구할 마음이 없었다고 했겠지.”
“그 자식들이…!”
“상대가 크레모사 패밀리, 맞습니까?”
뜻밖에도 스튜어트가 날카로운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할 겨를이 없었다. 벤튼이 뒤차와 간격을 할 수 있는 한 벌리면서 차선을 이리저리 빠져나가 뉴욕 애비뉴 쪽으로 접어들려는 찰나, 14번가와의 교차로에서 마치 길가에 주차를 해 놓은 듯 서 있던 흰 차가 정면으로 돌진해 왔다.
벤튼이 차 옆을 정통으로 들이박히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아우디는 거의 옆으로 쓰러질 지경으로 뒤뚱거리며 90도로 회전했다. 졸지에 우회전을 하게 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번에는 왼쪽 차선에서 다른 차가 아우디를 사정없이 몰아붙여 억지로 중앙 차선을 타게 했다. 벤튼이 당황해서 외쳤다.
“서턴 씨, 여기서 차이나타운으로 가려면 왼쪽 차선을 타야 하는데 이놈들 때문에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망할 자식들, 몇 대를 심어 놓은 거야! G가로 꺾어, 벤튼! 버라이존 센터 방향으로 가!”
“좌회전을 하려면 이놈을 제쳐야 하는데…!”
벤튼이 당황해서 왼쪽을 힐끔 보며 말했다. 패트릭도 반사적으로 왼쪽을 돌아보았다. 아우디의 왼쪽을 철벽으로 막고 있는 건 흰 차였다. 선팅을 어찌나 진하게 했는지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키슬러가 코웃음을 쳤다.
“크레모사 놈, 흰 벤츠에 원수라도 졌나? 전부 다 새하얀 벤츠로구먼!”
“워싱턴 3대 패밀리 중에서 크레모사, 맞습니까?”
스튜어트가 재차 물었다. 키슬러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그래, 그 놈들이네. 지금 차이나타운에서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갈 수가 없게 만들고 있지 않나! 조셉은 지금쯤 아주 신이 났겠구먼!”
“조셉 형님이?”
“…내가 말실수를 했네. 라일리 자네는 모르고 있는 게 낫겠어.”
키슬러가 무안한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와중에도 벤튼은 어떻게든 벤츠의 가드를 뚫고 좌회전을 할 타이밍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왼쪽을 막고 있는 벤츠는 얄밉도록 정확하게 아우디의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면서 그리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고,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두 대의 다른 벤츠들이 속도를 줄이지도 못하게 밀어붙이기를 계속했다. 대낮에 시내에서 벌어지는 정신 나간 질주에 치일 뻔한 다른 차들이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려 댔다. 스튜어트가 매처럼 날카롭게 패트릭을 돌아보았다.
“형님이 관계가 있어?”
이제는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패트릭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젠장, 아니라면 네가 어떻게 납치를 당했겠어? 형이 크레모사한테 네가 내 신랑이라고 불었겠지! 그러는 너는 뭘 이렇게 잘 알아, 너 형법 전문이었어? 너희 로펌 민사라고 하지 않았어?”
“서턴 씨, 지나쳐 버렸습니다!”
벤튼이 기괴한 고함을 질렀다. 분하고 억울해서 못 견디겠는 심정과 죄책감이 뒤섞여서 목소리가 엉망이었다. 하긴, 그렇게 몰리고 있던 상황에서 한 블록 치고도 짧은 뉴욕 애비뉴와 G가 사이에 차선을 바꾸는 건 타고난 카레이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는 빨간불이 켜지자 본능적으로 차를 멈추려고 했지만 속도가 처지자마자 뒤에서 벤츠가 꽁무니를 들이받았다. 차체가 또다시 거칠게 흔들렸다. 벤튼은 횡단보도를 보더니 게일어로 욕설을 퍼부으며 액셀을 밟았다. 막 개를 끌고 길을 건너려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겨우 인도로 몸을 피했다.
“어디까지 몰고 갈 셈이지?”
“어디든 상관없겠지, 자네가 20분 내로 나타나지 않으면 되니까! 지금 몇 분 남았나?”
스튜어트가 반사적으로 손목을 내려다보았지만 시계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계를 받아 지금껏 갖고 있었다. 패트릭은 주머니에서 손목시계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며 시계의 문자판을 들여다보았다. 회담 16분 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E가까지 지나쳐 버렸다. 왼쪽으로 로널드 레이건 빌딩이 보였다. 아직은 차이나타운으로 되돌아갈 여유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흰 벤츠 부대에 밀린다면 아예 버지니아까지 내려가 버릴 위험이 있었다. 벤튼이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비장한 투로 말했다.
“뚫고 가겠습니다. 속도를 확 높여서 앞질러 버릴 겁니다.”
“안전을 우선으로 하게.”
키슬러가 불안한 투로 덧붙였다. 벤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깨에 힘을 주면서 앞을 노려보았다. 그가 액셀을 있는 힘껏 밟자 아우디가 엔진에서 멍멍한 진동음을 냈다. 그러나 아우디가 앞으로 튀어 나간 것도 잠시, 벤츠가 순식간에 옆으로 치고 들어왔다. 좌회전을 하려던 벤튼은 벤츠의 무게에 차체 옆면을 들이받히자 잠시 핸들의 제동권을 잃었다. 아우디는 의도와는 달리 크게 오른쪽으로 돌며 뒤뚱거렸다. 키슬러가 비명을 질렀다.
“벤튼, 앞에!”
과일 트럭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벤튼이 소리를 지르며 핸들을 억지로 마구 감았다. 간신히 트럭으로의 정면 돌진은 면했지만 그가 끼어들었던 차선의 흐름이 흐트러지면서 멀쩡하게 오고 있던 버스가 아우디와 트럭을 피하려다가 버스 정류장을 표시해 놓은 철제 표지판에 쾅 부딪쳤다. 패트릭이 고함을 쳤다.
“조심해, 벤튼!”
“저도 조심하려고…!”
버스를 그 꼴로 만든 데에 대고 한 말이 아니었다고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벤츠가 오른쪽 뒤 범퍼를 인정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스튜어트가 팔을 뻗어 패트릭을 꽉 껴안았다. 인간 에어백을 자처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러다가 스튜어트가 다칠까 봐 걱정이었다. 벤튼은 숨을 몰아쉬면서 핸들을 꺾어 왼쪽 차선으로 가려고 했지만 컨스티튜션 애비뉴로 빠지는 길마저 놓친 뒤였다.
“새벽에….”
스튜어트가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평소의 유쾌하고 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패트릭이 그가 괜찮은지를 보려고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오른쪽에 앉은 스튜어트의 어깨 너머로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 모양의 워싱턴 기념비가 보였다. 키슬러가 외쳤다.
“조금만 더 가면 포토맥 강을 건너 버려, 벤튼! 그러면 안 되네, 파크웨이로 들어가면 지금보다 배로 위험해져!”
“저도 안 그러고 싶습니다!”
벤튼이 악을 썼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인 벤튼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폭발해 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운전대를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움켜쥐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제 차도 아니고 딜버트 차라 어떻게 몰아야 빠른지를 모른단 말입니다! 저도 파크웨이로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늦는다는 건 저도 아는데 방법이 없는 걸 어쩝니까!”
“어떻게든 좀 해 보라니까!”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에 작은 호수 모양의 타이들 베이신이 순식간에 옆으로 나타났다. 키슬러가 신음을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일 났군, 다리를 건너겠어…. 395번 도로로 들어서면 꼴좋겠군.”
“새벽에 크레모사 패밀리가, 제퍼슨 그룹의 우두머리를 히트하려고 했다고…. 그 놈들이 감히 누구를….”
깊은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 스튜어트의 목소리는 무시무시했다. 그 소리에 키슬러도 한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을 정도였다. 패트릭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의 어깨를 슬쩍 흔들었다.
“키드?”
“나한테 운전대 넘겨!”
스튜어트가 난데없이 고개를 홱 쳐들더니 소리를 지르며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몸을 쑥 내밀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키슬러가 숨이 넘어가는 시늉을 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스튜어트는 두 눈동자를 초록색의 불꽃으로 활활 태우면서 아우디 안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넘기라고! 내가 운전할 테니 넘겨!”
“하지만 라일리 변호사님…!”
“운전은 내 전문이야, 어차피 감당 못 할 거면 나한테 넘겨! 저 놈들, 내가 가만두나 보라고!”
큰일 났다. 패트릭은 차가워지는 손끝을 꽉 쥐고서 불안하게 스튜어트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사람 좋고 가끔은 정말로 변호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다 못해 멍청한 구석까지 있는 스튜어트지만 간혹 드물게, 아주 드물게 상대방을 제 손으로 능지처참해버릴 기세로 덤비는 경우가 있었다.
패트릭은 지금까지 그 광기가 발동하는 경우를 몇 번 보았다. 모두 다 패트릭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했을 때였고 그럴 때마다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스튜어트가 모든 종류의 탈것 조종에 일가견이 있고 오토바이 추격전은 몸소 겪어 멋진 솜씨라는 건 알지만,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게 해도 되는 걸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 그래도 차체가 좁은 편인 아우디의 앞쪽 절반에서 체격이 큰 남자 셋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 사이 옆에서 벤츠가 다시 한 번 치고 들어왔다. 아우디가 뒤뚱 밀려 가드레일에 불꽃을 튀겼다. 이미 다리로 들어와 버린 상황이라 벤튼이 계속 운전을 하다가는 최악의 경우 다리의 난간을 뚫고 강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몰랐다. 패트릭이 외쳤다.
“키슬러 씨, 뒤로 오십시오!”
키슬러는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입술을 꾹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벤튼이 놀라서 백미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엎질러진 물, 패트릭은 할 수 있는 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운전은 키드에게 맡겨, 벤튼! 일단 키슬러 씨가 뒤로 오면 키드가 조수석으로 넘어갈 거니까 자리 바꿔. 알겠나?”
“알겠습니다, 서턴 씨.”
스튜어트가 우길 때에는 머뭇거리던 벤튼도 보스가 직접 내리는 명령에는 더 이상 군말을 달지 않았다. 키슬러는 안전벨트를 풀고 자세를 낮추며 앞쪽 좌석들 사이의 공간을 어렵게 빠져나와 뒤쪽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키슬러가 워낙에 키가 큰데다 차 안의 공간이 좁아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벤츠가 한 번 더 아우디를 치고 지나갔다. 차체가 요동을 치면서 키슬러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다. 상처가 벌어졌는지 붕대 위로 순식간에 빨갛게 얼룩이 피어났다. 키슬러가 인상을 확 찌푸리면서 그를 부축해 뒤로 넘어오게 돕는 스튜어트를 노려보았다.
“라일리, 자네 뭘 어쩌려고 그러나?”
“운전이라면 제게 맡기십시오. 이쪽으로!”
스튜어트가 키슬러의 팔을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뒷좌석으로 완전히 넘어온 키슬러가 스튜어트와 자리를 바꾸었다. 스튜어트는 잽싸게 앞좌석들 사이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고 조수석으로 넘어가면서 운전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가속 페달에서 발 떼지 말고, 그대로 몸만 뒤로 젖히시오! 내가 넘어가고 나면 조수석으로 빠지고!”
“아, 알겠습니다!”
벤튼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기운차게 대답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안에서 자리를 바꾸느라 차의 방향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틈을 타서 왼쪽의 벤츠가 그들을 점점 더 오른쪽 차선으로 몰아붙였다. 스튜어트가 입술을 깨물면서 벤튼 위쪽으로 몸을 옮겨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운전석 문의 손잡이 쪽에 발을 위태롭게 지탱하며 외쳤다.
“조수석으로 나가시오!”
벤튼이 힘겹게 상체를 옆쪽으로 빼냈다. 스튜어트가 앞 유리 너머와 백미러를 번갈아 보면서 그가 나가는 공간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는 거의 아크로바트를 하느라 죽는 상이 된 벤튼을 인정사정없이 밀어젖히며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됐어, 이제 옆으로!”
벤튼은 구르듯이 조수석으로 빠져나왔다. 스튜어트는 그새 액셀러레이터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곧바로 자리에 앉으면서 기어를 변속했다. 그러는 사이 아우디는 다리를 거의 다 건너 이제 395번 국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스튜어트가 운전대를 고쳐 잡으며 혀를 찼다.
“이 좋은 차로 겨우 이러고 있었단 말야?”
“그건…!”
뭐라고 항의하려던 벤튼도, 스튜어트에게 말을 걸려던 패트릭도 갑자기 엔진의 소리가 달라지면서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좌석 등받이에 몸을 부딪쳤다. 아우디가 느닷없이 앞으로 튀어 나가자 왼쪽을 막던 벤츠가 덩달아 속력을 높였다. 스튜어트가 사이드미러를 힐끗 보더니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패트릭이 조수석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벤튼, 나랑 자리 바꿔!”
“서턴 씨, 뒤가 안전합니다.”
“아니, 스튜어트가 운전할 때에는 내가 옆에 있어야 해. 뒤로 와!”
패트릭이 강경하게 말하자 벤튼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도 뒤쪽으로 몸을 뺐다. 패트릭은 벤튼이 뒤로 넘어오자마자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튜어트가 앞쪽을 달리는 차를 지그재그로 추월하고 있어서 방향이 계속 바뀌는 바람에 하마터면 자동차의 내부에 몇 번이나 얼굴을 박을 뻔했다. 키슬러가 뒷좌석에서도 위쪽에 달린 손잡이를 붙잡고 있다가 신음을 흘렸다.
“달리 파일럿이 아니군, 라일리….”
사이드미러를 보니 뒤쫓아 오던 벤츠와의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패트릭이 무심코 계기판을 보았다. 시속 120킬로미터, 조금 전에 벤튼이 내던 속도와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희한하게도 벤츠들은 쉽게 쫓아오지 못했다. 스튜어트가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몇 분 내로 가야 해?”
“10분!”
“맡겨 둬!”
스튜어트가 기어를 다시 한 번 만지작거리더니 액셀을 밟은 발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계기판의 바늘이 150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앞과 양 옆의 다른 차량들을 급히 관찰하다가 커다란 트레일러를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다른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듯이 차선을 바꾸어 가며 트레일러가 있는 차선 바로 옆까지 이동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사이를 겨우 남겨 두고 옆 차가 곁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소름이 쭉쭉 끼쳤다. 차체를 긁힐 뻔한 차의 운전사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창문을 열고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차선을 유지할 것처럼 굴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폴짝 옮겨가니 추적하는 벤츠들이 포위망을 형성하려야 형성할 수가 없었다.
스튜어트는 트레일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서 무슨 꿍꿍이인지 속도를 오히려 조금 줄이더니 트레일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흰색의 벤츠 한 대가 옳다구나 하고 거리를 좁혀왔다. 가장 바깥쪽 차선에 벤츠, 가운데에 아우디, 안쪽 차선에 트레일러가 나란히 달리는 셈이었다.
스튜어트는 흰 벤츠가 충분히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벤츠가 아우디의 옆구리를 스치려고 차선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아우디가 쌩하니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목표를 잃은 벤츠는 감속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트레일러의 궤도에 빨려 들어가 트레일러에 정통으로 부딪칠 위기에 처했다. 안에서 운전사가 야단법석을 피우는지 자동차가 이상한 각도로 핑글핑글 돌다가 보닛의 절반 정도를 트레일러에 찌그러뜨리고서야 겨우 멈추었다. 뒷자리에서 벤튼이 웅얼거렸다.
“과연 라일리 변호사님….”
하지만 추적자는 아직 둘이나 건재했다. 스튜어트가 후사경을 기웃거리며 다른 벤츠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는 뒤처진 채로도 열심히 쫓아오는 흰 벤츠 하나를 발견하고는 시계를 확인한 뒤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시내로 돌아갈 타이밍이군요. 뒷좌석에 안전벨트 매십시오, 곡예 좀 합니다!”
“곡예라니, 라일리 자네!”
“갑니다!”
경고와 함께 스튜어트가 갑자기 기어를 후진으로 바꾸었다. 아우디의 타이어가 고속 도로의 매끈한 표면 위를 뜨겁게 긁으면서 귀를 찢는 노래를 불렀다. 타이어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뒤에서 오던 차들이 정신없이 경적을 울렸다. 스튜어트는 뒷좌석에 탄 사람들은 물론 패트릭도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입을 꾹 다물고서 차를 계속 후진시키다가 핸들을 홱 꺾으면서 기어를 주행으로 도로 밀어 올렸다. 아우디가 날카로운 고음을 길게 남기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스튜어트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피어오르는 타이어의 연기 너머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다가 고함을 지르며 액셀을 밟았다.
“이야아아아!”
“키드, 그만!”
패트릭의 비명도 소용없었다. 방금 전까지의 원심력을 고스란히 직선 에너지로 받은 아우디가 그들을 추격하던 벤츠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벤츠의 운전사가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줄일 겨를도 없었다. 스튜어트는 완전 정면충돌 직전에 핸들을 옆으로 살짝 틀어 벤츠의 앞 범퍼를 쾅 쳤다.
아우디도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면서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빚었지만, 스튜어트의 공격을 받은 벤츠는 가드레일과 아우디 사이에 끼였다가 튕겨 나가면서 순식간에 가드레일을 넘어 전복되어 건너편 차선으로 굴러 넘어갔다.
스튜어트는 안에 탄 사람들이 회복할 틈도 주지 않고 도로 후진을 해 차를 180도로 돌리더니 벤츠가 뭉개어 놓은 가드레일을 넘어서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차선 쪽으로 진입했다. 벤튼이 입을 쩍 벌리고 뒤집어진 벤츠를 바라보는 가운데 키슬러가 다 죽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벤튼, 패트릭, 둘 중 아무나… 비닐봉지 좀….”
“몇 분 남았지?”
스튜어트가 날카롭게 물었다. 패트릭은 울렁거리는 속을 억지로 누르면서 시계를 보았다.
“8분….”
“좋아, 그 정도라면 남은 하나도 처리할 시간은 충분해.”
“남은 하나도 처리…? 키드, 저 난장판은 어떻게 할 거야? 경찰에서 난리가 날 텐데 나는 어떻게 하라고?”
패트릭이 메슥거리는 걸 참고 물었다. 스튜어트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패트릭을 힐끔 쳐다보았다. 스튜어트의 표정을 읽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패트릭은 그 얼굴에 적힌 내용이 나는 그런 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당황임을 알아차리고 기가 막혀서 물었다.
“좀 전에는 차 보닛을 트레일러로 밀어 버리고, 지금은 저 차 전복된 거 안 보여? 보나마나 운전사 엄청 다쳤을걸?”
“크레모사는 널 죽이려고 했다면서? 현행으로 잡았으면 살인 미수야!”
“누가 말 돌리래, 키드! 그것만이 아냐, 아무리 고속 도로여도 규정 속도 넘었지, 가드레일 부수고, 다른 차들 사고 나게 만들고! 너 이거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런 난리를 친 거야? 난 네가 그냥 따돌리고 갈 거라고 생각해서 운전대를 넘기게 한 거야. 액션 영화를 찍을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고!”
“한 대 더 사고 나게 할 생각이니까 조금 이따가 혼나겠어!”
스튜어트가 겁도 없이 외치며 시내 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아직 추적자는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후사경을 보니 마지막 흰색 벤츠가 망가진 가드레일을 넘어 그들을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뒤를 신중하게 살피면서 다리의 가장 안쪽 차선으로 진입했다. 7분 내에 저 차를 따돌리고 차이나타운까지 갈 수 있을까. 벤츠는 다른 차들을 앞 범퍼로 쿵쿵 쳐서 밀어내가며 그들에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침착한 눈으로 벤츠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벤츠가 아우디 바로 뒤에 오자 팔을 쭉 뻗어 조수석의 머리 받침 패드를 잡았다.
“속 울렁거려도 참아.”
“어쩌려고…?”
물어보았을 때에는 이미 스튜어트가 행동을 개시한 뒤였다. 스튜어트는 시속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나아가고 있던 아우디의 기어를 후진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는 결의에 찬 얼굴로 뒤를 노려보며 벤츠를 향해 전속력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벤츠는 반사적으로 바깥쪽 차선으로 꺾어 나가 아우디의 공격을 피했다. 스튜어트가 씩 웃었다.
“잘 나가 주셨어, 선생!”
이제 아우디의 위치는 벤츠 앞이 아니라 뒤, 스튜어트의 손이 망설임 없이 기어를 쭉 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후진에서 다시 전진으로 진행 방향을 바꾼 아우디가 벤츠를 뒤에서 쾅 쳤다. 설마 사냥감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격으로 돌아설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었는지, 아니면 아우디의 갑작스러운 후진 때문에 받은 충격이 미처 가시지 않은 상태였는지 흰 벤츠는 속절없이 난간을 뚫고 나가 포토맥 강물로 첨벙 떨어졌다. 패트릭이 비명을 질렀다.
“키드! 맙소사, 망할,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방은 문자 그대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벤츠와 아우디가 그다지 넓지도 길지도 않은 다리 위에서 격한 몸싸움을 벌인 통에 다른 차들이 그들을 피하려다 추돌 사고를 내기도 했고, 지레 중앙 분리대를 받아 버린 차도 있었다. 스튜어트가 속도를 조금씩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꼴이 말이 아니네. 나 이런 건 항상 도로 통제를 받은 상황에서만 해 봐서 이렇게 후유증이 큰 짓인지 몰랐다.”
“그런 소리가 아냐! 제기랄, 내 핸드폰! 911, 911을 불러! 사람이 탄 차가 물에 빠졌다고!”
패트릭이 주머니를 마구 뒤지며 악다구니를 썼다. 마음만 급하니 핸드폰이 나오질 않았다. 뒤에서 벤튼이 자기가 하겠다며 핸드폰을 꺼내서 다이얼을 눌렀다.
“예, 911입니까? 지금 14번가 다리입니다. 방금 사람이 탄 흰색 벤츠가 강에 빠졌습니다. 예, 예….”
속이 울렁거렸다. 스튜어트가 위기 탈출을 자동차 외관의 안위나 동승자의 멀미 방지보다 우선으로 했기에 차 안에 탄 사람들은 운전사만 제외하고는 전부 다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패트릭의 울렁거림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착실하게 모범생 이미지를 쌓아 왔는데! 그가 기억하기로 이 정도 규모의 자동차 대추격전은 워싱턴에서는 아예 벌어졌던 적이 없었다. 동네에서 난장을 쳤으니 이를 어쩐다. 오늘 사고가 난 시민들이 전부 다 제퍼슨 앤 서턴 트레이더스에 소송을 걸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신랑이 미워지는 바람에 패트릭이 운전에만 집중하는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이 나쁜 놈아!”
“왜 그래, 대체? 어차피 모두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끝날 순 없었던 일이었어.”
“그래도 그렇지!”
“…제퍼슨 그룹이 합법화되었다더니 정말로 일반인처럼 되었구나. 보스가 추격전 하다가 상대 차가 강물에 빠졌다고 꾸중을 다 하고. 그런데 나는 왜 모두를 구했는데 야단을 맞아야 해?”
스튜어트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패트릭이 이를 악물었다.
“네 입으로 방금 말했잖아, 제퍼슨 그룹은 이제는 완전히 평범한 사업체 쪽으로 가고 있다고!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야, 대낮에 시내에서 이렇게 거창한 추격전을 펼치면 어떻게 해! 이건 교통경찰이 뜨는 정도가 아닐 텐데 앞으로 어떻게 수습을 하라고? 아니, 잠깐, 그 전에 이거 잊어버릴 뻔했네. 넌 우리 쪽 세계에 대해서 뭘 어떻게 왜 아는 거야, 키드?”
너무 많은 질문과 추궁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스튜어트의 얼굴이 조금 멍해졌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스튜어트가 대부분의 경우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질문이나 심부름을 던지면 둘 다 망쳐버린다는 걸 잊어버렸다. 패트릭이 광란의 드라이브 때문에 흥분해 버린 머리를 식히려고 심호흡을 하고 있자니 스튜어트가 조용히 말했다.
“일단 이 사태를 수습해 놓으라는 거지? 그거부터 할게. 내 핸드폰 좀 꺼내 줘.”
패트릭이 순순히 그의 재킷 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딜버트가 핸즈프리를 어디에 두었을까 차 안을 뒤져 보고 있다 보니 나중에 딜버트에게 그녀의 차가 넝마가 된 사연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사이 속을 좀 진정시킨 듯 목소리가 많이 차분해진 벤튼이 말했다.
“에밀리는 차와 연결해서 블루투스 쓰는 걸로 압니다, 서턴 씨.”
“그래? 이 버튼인가?”
블루투스 모양의 버튼이 운전대 근처에 있는 것을 눌러보며 패트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 유리 너머로 친숙한 오벨리스크가 다시 눈에 들어오고 다리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판이 곁을 지났다. 시간 내에 차이나타운에 도착하는 일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스튜어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워드에게 전화해 줘. 단축번호 5번.”
패트릭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이상하게 스튜어트의 목소리가 묵직한 것이 그도 뭔가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신호가 몇 번 가지도 않아서 난데없이 자동차의 스피커에서 하워드의 쨍쨍한 목소리가 터졌다.
- 어디야, 이 멍청이!
키슬러가 헉 하며 귀를 막았고 벤튼도 하마터면 허리춤의 권총을 뽑을 뻔했다. 패트릭이 얼른 미안하다는 시늉을 하며 볼륨을 줄였다. 아우디는 아무래도 블루투스로 통화 연결을 하면 아예 차체에 내장된 스피커들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도록 해 주는 기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안전하기는 한데 사생활은 없군. 패트릭이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가운데 스튜어트가 하워드의 잔소리를 가로막았다.
“14번가 다리에서 버지니아 방향으로 가는 395번 국도에서 차량 추격전 벌였고 한 대는 보닛 완파, 한 대 전복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포토맥 강으로 떨어졌어. 세 대 모두 백색 벤츠고 전복된 위치는 워싱턴 방향으로 올라오는 쪽인데 그게 교통량에 가장 지장 있을 거야. 가드레일도 부쉈어. 수습해 줘.”
- 제기랄, 뭐 하다가 차를 뒤집고 물에 빠뜨렸어? 거긴 또 왜 갔고? 패러것 쪽에 기동대 깔아 놨는데 어떻게 해?
“제퍼슨 그룹 쪽 일에 휘말렸어. 차이나타운으로 이동시키고 패러것에는 1/3만 남겨 놔. 차이나타운에서 제퍼슨 그룹과 크레모사 패밀리가 회동할 거야. 지금부터… 5분 후에.”
스튜어트가 차의 시계를 힐끔 보고 말했다. 그가 제퍼슨 그룹이라는 말을 하자 하워드의 목소리가 갑자기 짓궂어졌다.
- 아하, 아하. 잘 논다, 정말. 왜 갑자기 튀어 나가나 했더니 자기 넘버원이라고 또 끔찍이도 챙겨서 바로 기사 노릇 하러 가셨구만.
“…넘버원?”
- 그래서, 지금 모시고 가다가 크레모사 패밀리랑 카레이싱 한 판 하셨나? 뭐, 제퍼슨 쪽 보호하러 간 건 맞으니까 아쉽지만 시말서는 안 쓰겠네. 고속 도로는 내가 치우라고 시킬 테니까 가서 바깥 단속하고….
“기다려, 웰링턴. 자네 알고 있었어?”
- 뭘?
하워드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스튜어트는 입을 조금 벌린 채로 눈을 깜빡이고 있다가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팻이… 우리 패트릭이 제퍼슨 그룹 소속인 거, 자넨 알고 있었어?”
- 우리 부서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하늘이 무너져도 스튜어트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패트릭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움찔거리면서 스튜어트의 표정만 살폈고 키슬러와 벤튼은 차마 끼어들지는 못해 각자 바깥만 바라보면서 딴청을 부렸다. 하워드도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멍청아, 잠깐만! 자네 지금 설마 나한테 자기 배우자가 제퍼슨 그룹 탑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 나는….”
- 진심이냐? 엉? 진심이야?
거의 심문 수준이었다. 스튜어트는 혼이 빠진 얼굴을 하고서도 인디펜던스 애비뉴에서 우회전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워드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 내가 알아봤다, 알아봤어. 자기 일 아닌 거는 자료 뚜껑 열어 보지도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 이봐, 시드니, 뭘 한 거야, 대체? 자네 진짜로 자네 업무 자료 말고는 아무것도 안 읽어? 그게 자랑이야?
“난 고위험군 매뉴얼밖에 안 본다고! 제퍼슨 그룹이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게 아닌 이상 내가 그 사람들에 대한 자료를 봐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
- 자랑이다, 이 멍청아!
하워드가 고함을 질렀다. 스튜어트와 마찬가지로 글리 클럽 출신이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량이 웬만한 오페라 가수 못지않았다. 하워드는 소리를 지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으르렁거리는 숨소리를 내다가 도로 빽 소리쳤다.
- 누가 몰라, 누가! 위에서도 다 아는데! 왜 자네가 몰라! 어떻게 사무실 안에 그렇게 굴러다니는 자료를 자기 담당 아니라고 표지도 안 열어볼 수가 있어, 시드니?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지! 방금 알아서 충격 받았나 본데, 자네가 매일 그렇게 점심시간이면 둘이서 전화한다고 핸드폰 붙들고 늘어지고 다섯 시 땡 하기가 무섭게 칼퇴근하던 날 중에 딱 하루만 날 잡아서 자기 전담 아닌 분야 자료까지 읽었으면 당연히 알았어! 와, 이거야말로 진짜 시말서 감이네!
“끄, 끊어!”
- 끊기는 뭘 끊…!
스튜어트가 마구 손을 내젓는 바람에 패트릭이 반사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버렸다. 스튜어트는 멍한 얼굴로 앞만 보다가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추면서 중얼거렸다.
“나만 몰랐어….”
“방금 전화한 거 하워드 아냐?”
“맞아.”
“너랑 같은 로펌이라며? 로펌 사람들끼리의 대화가 아니던데?”
넋이 나가 있던 스튜어트는 패트릭이 질문을 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7번가로 차를 돌리면서 콧등을 문질렀다.
“대화가 이상했지? 그러니까, 음….”
“너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었어, 키드?”
“…응.”
스튜어트가 기운 없이 대답했다. 오늘은 무슨 고해 성사 벌이는 날인가? 패트릭은 암담한 심정으로 그에게 계속 말해 보라는 손짓을 했다. 스튜어트는 계속 마른 침만 삼키다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나… 실은 공무원이야.”
“공무원?”
스튜어트가 백미러를 힐끔 보았다. 키슬러와 벤튼 때문에 쉽사리 말을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패트릭은 시선을 풀지 않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스튜어트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코드 네임 시드니. 소속은 NARC.”
“알아듣게 말해.”
스튜어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패트릭은 팔짱을 끼고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넝마가 된 아우디는 국립 조각원과 국립 기록 보관소를 지나 지하철 역 옆을 스쳤다. 스튜어트가 D가의 교차로에서 잠깐 차를 세우더니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가 내 직장이야.”
패트릭이 고개를 빼고 스튜어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D가와 9번가의 교차점에 멋없이 크고 아주 못생긴 건물이 서 있었다. 그 근처에 있는 스파이 뮤지엄을 스튜어트와 함께 몇 번 들락거렸던 패트릭은 에드가 후버 빌딩이라는 이름의 그 건물이 무슨 용도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웃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뭐야, 저건 FBI 본부잖… 아….”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스튜어트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액셀을 밟았다. 패트릭의 웃음이 천천히 가셨다. 그는 스튜어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 잠깐.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FBI야? 난 네 회사 모임에도 몇 번이나 갔었는데…!”
“넌 내 회사 모임에 온 적 없어.”
스튜어트가 조용히 말했다. 패트릭은 당황한 가운데에서도 허둥지둥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그래, 하나하나 모임의 타이틀을 떠올리자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하버드 동문회, 로스쿨 동창회, 퇴역 군인회, 사관 학교 해당 기수 졸업생 모임, 하사관 협회. 모두 과거의 사람들과의 모임이었으며 스튜어트가 현재 어울리고 있는 사람들과의 파티는 목록에 없었다. 기억이 한꺼번에 뭉뚱그려져서 회사 모임에도 갔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스튜어트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 있잖아…. 침대, 꿈, 이불, 베개, 이런 단어들 들려주고 나면 나중에 잠이라는 단어도 들었다고 착각하는 거. 트릭 썼어. 미안해.”
“아니, 괜찮… 잠깐만, 회사 모임에 안 데려가서 미안한 게 포인트가 아니잖아, 이 자식아!”
“우리 어차피 서로 거짓말했어. 더 추궁하지 말자.”
스튜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라 패트릭도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하긴, 서로 잘한 건 없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직업의 떳떳함이라는 면에 있어서 패트릭 쪽이 좀 더 불리한 입장이었다. 패트릭이 조개 시늉을 하기 시작하자 스튜어트가 한숨을 푹 내쉬며 운전대 위로 고개를 숙였다.
“로스쿨에 있을 때 결정했던 일이야. 난 얘기를 할 수가 없었어, 팻. 기본적으로 나는 마약 단속국의 현장 요원이라서 언더커버가 필수야.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말을 하면 안 돼. 물론… FBI에서 일한다는 정도까지는 말할 수도 있었는데, 난 네가 걱정을 할까 봐….”
“그럼 너 변호사 자격증은? 그건 진짜야?”
“당연하지! 로스쿨은 진짜로 다녔잖아. 변호사 시험도 쳤어.”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어? 어차피 위장 직업이었다면….”
스튜어트가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팻, 난 고급 인력이야. 너 내가 운전이나 하고 현장 뛰면서 범인 검거만 하는 뇌 없는 근육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NARC에서 매주 헤로인, 코카인, 크랙, 마리화나, 그리고 LSD의 현재 거래 동향을 파악하고 대처 매뉴얼을 작성하는 게 누구인지 알아?”
뻐기는 말투에 패트릭이 듣다못해 풉, 하고 웃어 버렸다. 패트릭이 웃자 스튜어트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렇게 간단하게 거짓말 한 걸 용서해 줄 의도는 아니었지만 직업을 숨긴 것을 추궁하자니 본인이 더 불리한 위치라 이렇게 촉박한 시간 동안 입씨름을 벌일 수는 없었다. 어느 틈에 차이나타운 입구의 버라이존 센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튜어트가 속도를 줄이며 물었다.
“어디로 가?”
“H가에서 좌회전. 웍 앤 롤로 가야 해.”
“음모 꾸미는 자리로군. 3분 남았어.”
스튜어트가 오른쪽 차선으로 붙으며 대꾸했다. 그제야 오는 길에 회담에서의 방향을 결정했어야 했는데 벤츠에 쫓기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패트릭이 고개를 숙이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제기랄, 논의 방향이라도 결정하고 올 것을….”
“논의를 우리와 결정할 게 뭐가 있나?”
뒷자리에서 속을 다스리고 있던 키슬러가 물었다. 그의 말에 패트릭이 고개를 들었다. 키슬러는 뒷좌석으로부터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붙잡더니 다부진 어조로 말했다.
“패트릭 서턴, 자네가 내 보스야. 자넨 아서 서턴의 아들이고 제퍼슨 그룹의 리더란 말일세. 방향 결정? 우리와? 왜 자네가 그래야 한단 말인가? 자네가 결정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를 거야. 그게 내 임무이고 자랑거리일세. 자네가 안에 들어가서 크레모사 패밀리와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결정하고 나온다면 나는 기꺼이 내 라이플을 꺼내 오겠어. 보스, 보스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 취미는 없으니 보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키슬러 씨.”
패트릭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던 벤튼이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더니 한숨을 쉬었다.
“말재주가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서턴 씨. 저도 키슬러 씨와 같은 생각입니다. 운전 실력은 실망하셨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실망하지 않았어, 벤튼. 이 녀석이 괴물이야.”
말과 함께 이마를 톡 튕기자 스튜어트의 볼이 부었다. 패트릭은 잠시 조수석에 앉아 숨을 골랐다. 웍 앤 롤의 입구가 차창 너머로 보였다. 바깥에서 보아서는 허름하고 평범한 차이나타운의 여느 음식점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지금부터 두 조직이 단독 정상 회담을 벌인다. 스튜어트가 기어를 주차 상태로 바꾸고 패트릭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1분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아슬아슬했네. 잘 하고 와.”
“그래. 이따가 집에 가서 두고 보자.”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는걸.”
두 사람이 잠깐 도전적인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진지하게 얼굴을 마주하자니 웃음이 터져 버리는 바람에 길게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스튜어트가 웃으면서 패트릭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내 탓이다. 내가 좀만 더 주의 깊었으면 미리 알고 좀 더 뒤를 봐 줄 수 있었을 텐데. 앞으로는 자료 좀 잘 읽어야겠네.”
“뒤를 봐 줘? 우리가 무슨 범죄자 집단인 줄 알아?”
패트릭이 장난스레 쏘아붙였다. 스튜어트가 픽 웃으며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아니지. 아니라서 자랑스러워. 제퍼슨 그룹이 얼마나 힘들게 그러고 있는지를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자랑스럽고 대견해.”
“…자료 안 봤다며?”
“그래도 부부끼린 다 알아.”
스튜어트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패트릭은 그의 손등을 토닥였다. 어느 틈에 야무지게 손목시계를 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패트릭이 미소와 함께 스튜어트의 뺨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뭐, 정의의 편인 건 좋아. 하지만 그렇게나 오랫동안 날 속인 건 아직 화가 덜 풀렸으니까 이따 집에서 당할 각오는 해 둬.”
“누가 할 소릴, 너야말로 오늘 야단 좀 맞자. 설마 네가 나 사실은 제퍼슨 그룹의 수장이야, 했을 때에 내가 창피해하거나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팻. 네 남자 그렇게 가벼운 인간 아니다.”
지지 않고 받아치는 모습마저도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 잠시 흐뭇하게 스튜어트를 바라보자니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정이었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렇게 해야 할 당위가 충분해 보였다. 패트릭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키슬러 씨,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결정을 믿어 주신다고 하셨죠?”
“물론이네. 뭘 어떻게 하려는 건가?”
패트릭은 뒷좌석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각자 한 사람만 대동하기로 약속했는데,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