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영화처럼 (19/22)

“아아, 그리하여 나는 이 입맞춤만을 남겨 두고 떠납니다. 부디 다시 볼 수 있기를.”

내 주변이 어둠으로 둘러싸인다. 마치 밤의 물 아래로 잠기는 듯이. 천천히, 천천히 어두워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예전이라면 이 어둠이 무서웠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차피 곧 불이 켜질 걸 아니까.

막이 내려가고 불이 켜진다.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연습이라서 많은 관객이 있는 건 아니고, 관계자와 극단의 스태프 형, 누나들뿐이지만 함성은 여느 때보다도 컸다.

막이 다시 올라가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스태프 형, 누나들이 내게 환호를 보냈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웃기만 하면 어떡해! 어서 인사해야지!”

배운 대로 무릎을 굽히며 오른팔을 오른쪽으로 펼쳤다가 아래쪽으로 반원을 그리듯이 가슴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형, 누나들이 휘파람까지 불며 더 큰 환호를 보냈다.

“우리 막내 최고다!”

“완전 멋있다, 손규인!”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프로니까 덤덤하게 웃어 보이려 애썼다. 다스가 이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분명히 이렇게 말할 테니까.

‘그 새끼들 다 웃지 말라고 하면 안 돼? 너 보면서 함부로 웃는 거 싫은데.’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관객들은 어떻게 견디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극단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한참 막내인 나를 다들 잘 대해 주고 챙겨 줬다. 막내라고 부려 먹거나 무시하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다.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는 내가 조연을 꿰차기까지 했다.

이번에 우리 극단이 공연하게 된 작품은 창작극이었다.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과 그 소년의 첫사랑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조연은 꽤 비중이 높은, 여자 주인공의 친구 역할이었다.

다스는 처음 대본을 읽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나라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아니,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이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거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다스가 칭찬을 해 주니 더 용기가 났다.

연습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물론 연기가 매번 내 마음대로 착착 잘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연극은 단발성이라는 게 배울수록 매력적이었다. 배우뿐만 아니라 디렉팅, 조명, 무대의 상태, 심지어 관객까지 영향을 끼치고 그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게 말이다.

연기는 할수록 욕심이 생기는 종류의 것이었다. 무기력함에 익숙하던 내게는 낯선 기분을 안겼다.

‘더 잘하고 싶어.’

이 욕심 때문에 극단 연습실에서 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을 하다가 다스에게 된통 혼이 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다스는 내가 연습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락도 받지 않고 연습하는 건 싫어했다. 나도 다스가 연락 없이 도서관에서 안 오는 걸 싫어하니까 이해했다.

다스는 예정대로 대학에 갔다. 무려 수석 입학이라고 했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다스의 곁에는 그를 자랑스러워해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연옥동에서 같이 놀던 애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의 이모는 딱히 조카를 대놓고 예뻐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내가 축하해 주면 되지.’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가 사는 오피스텔 앞에다가 커다랗게 현수막을 만들어 걸기로 말이다.

경 홍다환 XX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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