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면서 집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자주 사먹었다. 두 잔씩 사서 집에 들어가 다스와 나란히 마시고 있으면 굉장히 맛있었다. 덕분에 가방에 매일 텀블러 두 개를 갖고 다녀야 했지만 별로 무겁지는 않았다.
카페에서는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쿠폰에 도장을 찍어줬다. 열다섯 개를 모으면 무료로 음료를 준다고 했다. 거의 매일 두 잔씩 사다 보니 금방 모여서 이제 세 개만 더 찍으면 쿠폰이 꽉 찼다.
‘다 모아서 다른 커피도 마셔 봐야지.’
쿠폰으로 아무 음료나 된다고 했으니 비싼 걸 먹으려고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식탁에 두었던 쿠폰이 사라져 있었다. 혹시 가방이나 코트 주머니에 두었나 싶어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다스야, 혹시 카페 쿠폰 못 봤어?”
“쿠폰? 종이?”
“어.”
“식탁에 있던 거면 청소하면서 버렸는데.”
…마음이 쿵 무너졌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데. 내 표정이 바뀌는 걸 보고 다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중요한 거였어? 뭔데?”
“아니야…. 나 학원 갔다올게….”
괜히 바보같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것을 꾹 참고 다스를 뿌리쳤다. 집을 나오는 동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커피 한 잔 아끼겠다고 쿠폰을 열심히 모은 내가 바보 같기도 했다. 민우가 소개시켜 준 타이핑 알바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월급도 못 받았고, 용돈은 여전히 다스가 주는 대로 쓰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었는데….
속이 상해서 그날은 라떼를 사지 않고 빈손으로 집에 왔다. 다스한테 내색 않으려 했는데 그는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꽉 껴안았다.
“우리 귤이, 오늘은 커피 안 사왔네? 맨날 양손에 텀블러 꼬옥 쥐고 오더니.”
“그냥….”
그가 안은 팔을 풀더니 무언가를 꺼내 내 이마에 척, 붙였다. 조금 두꺼운 재질의 종이가 이마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을 손으로 붙잡아 확인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쿠폰이었다. 도장 열두 개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속상해하냐. 바보 귤아.”
다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곤 거실로 걸어갔다. 입술을 비죽거리면서도 괜히 웃음이 났다. 그러게, 쿠폰이 뭐라고.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모으던 거라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버린 줄 알았는데….”
“응, 버렸던 거 맞아.”
다스가 거실 책상에 놓인 노트북 앞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럼 휴지통이라도 뒤진 건가? 하지만 홍다스가 휴지통을 뒤지는 모습은 절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가방을 놓고 주방 쪽을 보는데 문득 식탁 위에 뭔가 가득 쌓인 게 보였다. 뭔지 알아보자마자 경악했다. 식탁을 빼곡하게 채운 것은 커피 열두 잔이었다.
“…너, 이거 쿠폰 새로 받으려고… 저걸 다 샀어?”
“응.”
노트북으로 흘러나오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다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식탁 위를 채운 커피잔들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앞으로 다스한테 뭐 잃어버렸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도 기분이 괜히 좋아서 비실비실 웃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인터넷 강의를 보는 그를 방해하면 안 된단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달려가서 어깨에 매달렸다.
“무겁다, 귤아.”
다스는 투정하면서도 나를 뿌리치진 않았다. 그의 어깨에 코를 묻고 한껏 체취를 들이마셨다. 그제야 온 집을 채운 커피향이 느껴졌다.
***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학원에 가던 어느 날, 나는 길가에서 다스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새빨간 목도리를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딱 좋을 것 같아서 포장해 달라고 했다.
학원에서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우리가 준비한 연극을 보여 주는 발표회를 가졌다. 발표회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소극장을 대여해서 연극을 했는데, 학원 애들은 각자 부모님이나 제일 친한 친구를 초대했고 나는 당연히 다스를 초대했다.
다스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평소보다 몇 배로 긴장되었다. 청심환이라도 먹고 올걸.
“자, 다들 준비됐지? 연습한 대로만 하자.”
둥그렇게 모여서 화이팅을 하고 각자 위치로 흩어졌다. 나는 맨 처음부터 등장하는 인물이라 곧바로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제목답게 하얗게 눈이 내리는 무대에 나가 대사를 읊었다. 나오기 전에는 잔뜩 긴장했는데, 막상 대사를 읊기 시작하니 괜찮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탄절에 우리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