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다환의 이야기 (16/22)

“그만 자. 잠탱아.”

위에 올라타서 온몸을 꾹꾹 짓누르자 손규인은 오만상을 쓰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도 잠깐 동작을 멈추자 또 잠들려 하기에 이번에는 목덜미와 귓가, 코를 가리지 않고 온통 입맞춤을 퍼부었다.

“윽, 아, 간지러…!”

“응, 간지러우라고 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

알몸의 손규인을 입맞춤으로 깨우는 일은 요즘 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잠에서 금방 깬 손규인은 갓 구운 빵처럼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했다. 요즘 들어 살이 좀 붙어서 더 만족스러웠다. 물론 한참 더 쪄야 하지만.

오늘은 내가 수업이 없고 손규인이 수업이 있는 날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교실에 같이 들어가고 싶은데 기어코 그건 안 된다니 학원 로비에서 기다릴 셈이었다. 그에게는 바깥 카페에 있겠다고 거짓말할 테지만.

손규인이 눈을 비비다가 돌연 내 품을 파고들었다. 잠투정이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평소엔 잘 부리지 않는 애교가 반가워 기꺼이 그의 등을 토닥이며 투정을 받아 주었다.

“섹스하고 갈까? 십 분 정도 여유 되는 것 같은데.”

“십 분으로 끝낼 수 있어?”

내 가슴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빼꼼 들고 묻는 말에 능청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안 되지만 너는 가게 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아, 아니거든?”

빨리 싸게 해 줄 수 있단 말인데, 제가 조루라도 된다는 양 지레 찔려서 뾰족하게 대답하는 걸 보니 귀여웠다. 너무 귀여워서 더 오기가 생겼다.

“내기할래? 십 분 만에 너 몇 번이나 가는지.”

내가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손규인은 은근히 승부욕이 있다는 것이다. 대놓고 긁으면 넘어오지 않지만 살살 건드리면 쉽게 넘어오곤 했다.

“난 세 번은 가능할 것 같은데.”

손규인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은 채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고민했다. 조그마한 머리통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엉덩이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싫으면 어서 씻자.”

“어, 내기해.”

역시 도발하면 걸려 와야 손규인이지. 속으로만 웃으며 다시 상체를 숙였다.

“네가 하자고 했다.”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대자 그가 금세 움츠러들었다. 처음부터 긴장하면 그 긴장감이 금세 쾌감으로 바뀔 텐데.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말이다.

어젯밤에 그렇게 들쑤셨는데도 손규인의 구멍은 들어간 적이 없는 것처럼 꾹 닫혀 있었다. 고집스러운 아래쪽에 검지를 대고 살살 문질렀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읏….”

검지가 안으로 파고들자 벌써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내 손길에 익숙해진 탓에 이런 사소한 동작으로도 금세 반응하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안으로 들어간 손가락을 찬찬히 움직였다. 그가 좋아하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백 번도 더 넘게 몸을 섞어 봤으니.

“아…!”

좋아하는 곳을 꾹 누르니 예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 목소리도 내가 길들인 것이었다. 더 듣고 싶어서 연달아 꾹, 꾹, 여러 번을 눌렀다. 그러자 손규인은 자지러질 것처럼 헐떡거렸다.

“이, 이거, 반, 흑, 반칙…!”

“뭐가? 규칙 세울 거면 미리 말했어야지.”

억울함에 뾰로통해진 얼굴을 마주한 채 눈을 휘며 웃어 보였다. 그러자 금세 표정이 풀어졌다. 그가 내 웃는 얼굴을 좋아한단 사실이야 익히 알았다. 내가 웃으면 화가 쉽게 풀린단 사실도.

누르던 곳을 한두 번 더 누르자 손규인이 이불 속에서 사정했다. 신음을 참으며 온몸을 떠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당장 엎드리게 하고 박고 싶은 것을 참느라 힘들었다. 섹스하느라 학원을 안 보내면 또 하루 내내 토라져 있을 테니까.

“벌써 한 번 갔어?”

내가 묻자 그가 얼굴을 붉혔다. 확인할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손을 앞으로 뻗어 축축한 그의 페니스를 확인했다. 아직 정액이 맺힌 귀두 끝을 싹싹 문지르자 또 자지러졌다. 이렇게 잘 느끼면서 왜 객기를 부렸대.

“이건 뭐… 다섯 번도 보낼 수 있겠는데.”

다시 같은 지점을 꾹, 누르면서 허리를 한껏 숙여 그의 유두를 입에 물었다. 자그마하게 튀어나온 유두를 앞니로 잘근잘근 씹자 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 흑.”

“너, 젖꼭지 커졌다.”

“흐, 으?”

입술을 떼고 혀끝으로 그의 유두 끝을 살짝 핥았다가 힘줘서 눌렀다.

“흣!”

“진짜야. 전보다 커졌어. 내가 하도 물고 빨아서.”

실제로 손규인의 유두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보다 더 커지긴 했다. 예전에는 딱딱해져도 혀끝으로 굴리기에 작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제법 커져서 입술에 스치는 감촉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곳도 내가 계속 물고 빨아 대면 달라질까, 생각하니 욕심이 생겼다.

“너 가슴도 빈약한데, 젖꼭지만 엄청 커지겠다.”

“으, 읏, 싫어….”

“싫긴. 야하기만 하겠는데.”

늘 그랬지만 여름에는 특히 검정 셔츠만 입혀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셔츠 겉으로 튀어나온 유두를 다른 놈들한테 보이게 할 수는 없으니.

입으로 가슴을 괴롭히며 손으로는 구멍과 옆구리를 동시에 만져 댔다. 손규인은 섹스 중에 옆구리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이전에는 하도 말라서 갈비뼈가 다 만져졌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살이 그나마 붙어서 곡선이 원만해졌다.

손규인은 입이 짧은데다 살도 잘 안 찌는 체질이었다. 연옥동에 있을 때에도 일부러 매일 기름진 걸 먹여도 탈만 나고 살은 붙지 않아 갑갑했었다. 요즘 연기 학원을 다니며 스트레칭이니 뭐니 몸 움직이는 걸 바지런히 한다 싶더니 나름대로 근육도 좀 붙어 다행이었다.

이전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규인이 어떤 모습이든 내 곁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망가지든 부서지든 녹아내려서 형체가 사라지든 그게 손규인이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으리라 믿었다.

그게 나의 가장 큰 오만이자 오산이었다. 그를 잃을 뻔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생각을 하느라 잠깐 힘을 풀었더니 그가 허리를 슬쩍 꼬았다. 내 손가락을 물고 있는 내벽도 슬쩍 조였다. 안달을 내는 것이었다.

“왜? 모자라?”

“아, 아니….”

“아니긴. 빨리 자지 받고 싶어서 구멍 조인 거잖아.”

티가 다 나는데 구태여 아니라고 꼬박꼬박 말하는 것도 손규인의 매력 중 하나라면 하나일 터다.

대놓고 구멍 안쪽의 그가 좋아하는 부분을 힘줘서 꽈악, 누르니 이번에는 곧바로 정액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두 번째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는 눈도 귀여웠다. 똑같이 눌러 주면 또 질질 쌀 거면서.

물론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으니 이번에는 그가 좋아하는 곳의 근처만 살살 문질러 보았다. 역시 안달이 나는지 손규인은 눈을 꾹 감고 버티려 들었다. 어차피 얼마 가지도 못할 거면서 버티려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귤아.”

“으, 훗.”

“너, 좀 헐거워진 것 같다?”

구멍을 일부러 쫙쫙 늘리며 말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손규인의 안쪽은 내 손가락 두 개로도 꽉 찬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부러 그의 구멍을 양손으로 쫙쫙 늘리며 심각한 척 고개까지 갸웃 기울였다.

“너무 많이 박아 대서 그런가….”

“흣, 지, 진짜야?”

“응. 이거 봐. 완전 헐겁잖아.”

대답하며 손가락 하나를 안에 쑥, 쑥, 넣었다 뺐다.

“그냥 들어가네. 그치?”

“아, 흑….”

손규인은 금세 풀이 죽어서 내 눈치를 봤다. 헐거워져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얼굴로 다 보였다. 더 놀리면 울겠다 싶어서 그의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괜찮아. 그래도 엄청 좁은 편이야. 들어갈 때마다 기분 좋아.”

“지, 진짜?”

“응.”

대답과 동시에 아까 그가 좋아하는 부분을 다시 꽉, 눌렀다.

“흣!”

짧은 신음과 함께 또 정액이 쏟아졌다.

“세 번째네.”

“흐으, 으….”

할딱거리는 그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바지 속에서 터질 듯이 발기한 페니스가 거북했다. 이대로 다리를 벌리고 박아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멈추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왜 손규인하고만 있으면 이렇게 짐승 새끼처럼 발정이 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그가 참기 힘들 정도로 꼴리게 생긴 건 사실이지만.

목에 코를 묻고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익숙한 체취에 금세 충만해졌다.

“귤아, 너한테서… 내 냄새 나는 거 너무 좋다.”

네 냄새가 없으면 좋겠어. 내 냄새만 나면 좋겠어, 너한테서. 어차피 너는 내 거잖아.

한 손으로 그의 페니스를, 다른 손으로는 그의 구멍을 자극하며 또 한 번 사정시켰다. 곧바로 다섯 번을 채울 수 있었지만 그랬다간 지쳐 널브러져 학원에 가지 못할 테니 그럴 수는 없었다.

“네 번. 내가 이겼다.”

“흑….”

잔뜩 지쳐서도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을 쪽쪽 빨아 먹어 버리고 싶었다. 정액으로 범벅이 된 그의 배와 아랫도리를 깨끗하게 닦아 주고 번쩍 안아 욕실로 데려갔다.

얼굴을 씻기고 칫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를 시키는 동안 손규인은 얌전히 있었다. 코도 흥, 풀게 하고 깨끗하게 얼굴을 헹궈 준 뒤 닦아 주기까지 했다. 말끔해진 손규인은 뿌듯한 얼굴로 헤헤, 웃었다.

“좋냐? 못난아.”

“어.”

아무래도 손규인은 내가 저더러 못생겼다고 하는 걸 좋아하는 듯했다. 또 헤헤, 하고 바보같이 웃는 걸 보니 앞으로 맨날 못생겼다고 해 줘야겠다 싶었다.

그가 옷을 입고 학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잠자리를 정리했다. 밤에 벗겨 던진 잠옷도 털어서 깨끗하게 개었다.

손규인의 잠옷은 나와 똑같은 체크무늬 디자인이지만 내 건 빨간색이고 그의 것은 연하늘색이었다. 사이즈도 더 작고 말이다. 잘 갠 옷을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그의 옷에서 희미하게 나는 체취가 좋았다.

“가자.”

손규인이 가방을 매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녀석의 모습을 아래위로 한 번 훑었다. 아래위로 모두 검은 옷에 회색 가방. 검은 셔츠 안에 내가 만들어 놓은 시뻘건 키스마크가 눈에 띄었다. 다 만족스럽지만 하나가 남아 있었다. 벽에 걸린 스냅백을 턱으로 가리켰다.

“모자. 써야지.”

“아.”

그제야 시커먼 스냅백을 가져와 머리에 눌러쓴다. 얼굴이 반쯤 가려지자 좀 나았다. 그래 봤자 예쁜 얼굴선은 가려지지 않지만. 그리고 그 빌어먹을 학원에 가면 모자를 벗고 사람들 앞에서 저 뒈지게 꼴리는 얼굴을 다 드러내야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불만스러웠지만 손규인이 좋아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손규인을 택시로 데려다주고 나는 학원 로비에 앉아 있었다. 원장이 자꾸 눈치를 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에 앉아 문제집을 꺼내 공부를 했다.

입시 학원은 다닐 만했다. 진도를 따라잡기 힘들지도 않고, 원래 뭘 외우거나 배우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걱정은 다른 데에 있었다. 나는 입시를 보고 대학에 갈 건데, 손규인은 곧바로 배우 쪽으로 빠지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다.

그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손규인 본인 말고 모두가 아는 듯했다. 원장과 대화를 해 봤는데 진심으로 프로 극단을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손규인은 자기가 그런 실력이 안 된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원장의 말은 달랐다.

‘이렇게 곧바로 캐릭터 흡수하듯이 해석하고, 표현하고, 대사도 단번에 외워 버리는 배우가 흔치 않아요.’

극단에 들어가면 분명히 손규인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이 웃고, 이야기하고, 심지어 살을 드러내야 하는 일도 생기겠지.

‘굳이 연극영화과 입학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내 생각엔 오히려 손규인 학생한테는 대학이 시간 낭비야. 바로 프로로 뛰어들어서 커리어 쌓을 생각 해야지.’

하지만 손규인이 그걸 원한다면. ‘내’ 규인이가 그걸 원한다면.

“저기….”

문제집을 한창 풀던 중 원장이 다가왔다. 문제집을 덮고 시선을 들었다.

“규인이랑 이야기해 봤어요?”

묻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일전에 원장이 내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규인이가 다환 학생 말은 들을 것 같아서요. 내가 말하는 건 자꾸 빈말인 줄 안다니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봐요. 극단은 내가 얼마든지 소개시켜 줄 수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원장이 안심한 듯 웃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온 손규인은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복도를 걸어오느라 내가 학원 로비에 있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좀 화가 났지만 밤에 갚아야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다스야!”

나를 발견하자마자 금세 몇 배로 환하게 밝아지는 얼굴을 보니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학원 근처의 돈가스집에 갔다. 더 비싼 걸 먹이고 싶었지만 손규인이 이 식당을 엄청 좋아했다.

“수업은 재미있어?”

그의 접시를 가져가 돈가스를 썰어 주며 물었다. 수프를 깨작거리며 손규인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다음 주에 나 주인공 맡아서 리딩한다?”

“오올, 대단한데? 그럼 이제 주연급 맡는 거야?”

“뭐, 돌아가면서 하는 거 같긴 한데 일단은.”

머쓱하게 하는 말이 귀여웠다. 잘하니까 주연 시키는 거지. 그걸 아직도 모른다, 손규인은.

작은 입에 맞춰 먹기 좋게 자른 돈가스를 그의 앞에 밀어주고 내 것을 잘랐다.

“귤아.”

“어?”

돈가스를 먹느라 볼이 볼록해진 그를 마주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는 이제 익숙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짐승처럼 동하는 성욕을 참는 것도 말이다.

“너, 극단 들어가서 진짜 연기 해 보고 싶어?”

입에 든 것을 오물오물 씹으며 그가 나를 마주 보았다.

“어. 처음에는 작은 극단으로 들어가는 게 좋대. 짧은 연극이라도 조연부터 해 보는 게 좋다고 그러더라고.”

“그럼 들어가, 극단.”

잘 이야기하던 손규인이 가뜩이나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학 안 가도 된대, 너. 대학 갈 필요 없이 극단 바로 들어가래.”

“그건… 그냥 원장님이 나 칭찬해 주려고….”

“너, 진짜 재능 있다더라. 썩히지 말고 극단 가고 싶으면 가.”

말했는데도 손규인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투로 눈을 깜박, 깜박 했다.

“…진짜?”

“그래, 바보야. 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 대학이야 나중에 부족하다 싶을 때 가도 되니까.”

아마 예술계라면 인맥 같은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내 손규인이라면 그런 건 필요 없을 터다.

볼록한 볼에 담긴 돈가스를 꼴깍 삼킨 그가 예쁘게 웃었다.

“그럼 나 극단 들어갈래!”

이전이라면 들어가도 되느냐고 나한테 제일 먼저 물었을 텐데, 그러지 않는 손규인이 밉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귤이 너 좋은 대로.”

나는 손규인이 영원히 내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길 바랐다. 팔다리가 잘리고 제 발로 걷지 못하게 되더라도 내 품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걷지 못하고 손이 없는 손규인도 어쨌거나 손규인이니까.

하지만 그게 행복한 손규인은 아니겠지.

“우리 귤이 잘 먹네. 하나 더 시킬까? 치즈 돈가스로?”

“치돈 말고 쫄면….”

“그래, 그럼 쫄면 하나 더 시켜서 같이 먹자.”

내 욕심은 커지고 커져서 이제는 팔다리 없는 손규인이 아니라 행복까지 가진 손규인을 원했다.

볼이 미어터져라 돈가스를 먹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앞의 손규인은 내 욕심으로 만들어 낸 행복한 손규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기필코 지킬 것이었다.

***

그 여자는 내게 정치학과를 권했지만, 나는 정치 쪽으로 입문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신처럼 더러운 일에 손을 대고 싶지 않다고 구태여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눈치를 챈 듯 두 번은 권하지 않았다.

“따로 생각하고 있는 과라도 있니?”

“경영학과로 갈까 봐요.”

처음부터 대기업에 취직하긴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내 회사를 차릴 수도 있을 거다. 물론 시간이 꽤 걸릴 테지만 말이다.

“필요한 것 있음 말해라.”

담백하게 말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그대로였다.

“…이모.”

막 돌아서려던 여자가 내 부름에 돌아보았다. 그녀를 이모라고 부른 적은, 내 기억이 맞으면 아마 이번이 처음일 터다.

“감사합니다.”

진작 했어야 하는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스무 살 애새끼고, 이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손규인을 구해 내기 힘들었을 거다. 물론… 도움이 없어도 어떻게든 내 손규인은 내 힘으로 구해 냈겠지만. 좀 힘들었을 거란 거다.

여자의, 이모의 표정이 묘하게 굳은 듯하더니 이내 미소를 띠었다.

“잘 지내라.”

사고 치지 말라거나 얌전히 지내라는 말 대신 그렇게 말하는 이모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기분은 후련했다.

집에 돌아갔을 때 손규인은 혼자서 연극 영상을 보며 따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바로 멈추고 달려오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다스야!”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춰 추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다리던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그는 해사하게 웃었다. 꼬리가 등 뒤로 보이는 듯했다.

“너 좋아하는 떡볶이 사 왔어. 계란도 넣어 달라고 했다.”

“와, 진짜?”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건네자 손규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식탁으로 달려갔다. 그가 접시를 꺼내는 동안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었다.

“이모님은… 잘 만났어?”

“응. 안부 전해 달라고 하시더라.”

눈치를 보며 말했는데 내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손규인은 안도하는 듯했다. 표정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 녀석이라 이럴 때는 참 편하다.

“너는, 원장님한테 극단 이야기했어?”

“어. 몇 군데 추천해 주신다고 하더라. 다음 주부터 바로 면접 보러 가려고. 아, 진짜 떨려…!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면접 볼 때 분명히 연기 같은 것도 시키겠지?”

종알거리는 손규인의 뒤로 가서 허리를 껴안았다. 아랫배를 손끝으로 살살 문지르자 간지러운지 키득거렸다. 그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너는 잘할 거야. 한국에서 제일 좋은 극단에 들어가게 될 거야.”

체취를 들이마시며 팔에다 힘을 더 주었다. 손규인의 심장 소리가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내 손규인이니까 당연히 잘할 거야.”

그게 연기든, 뭐든 내 곁에 있는 한 그는 최고가 될 것이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떡볶이 먹고 대본 연습하는 거 도와줄까?”

“공부… 안 해도 돼?”

“응. 연습 같이 하고 그다음에 하면 돼.”

대답하자 안긴 그가 나를 돌아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나를 돌아보며 웃는 이 얼굴을 평생 곁에 둘 것이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행복한 손규인은 스무 살인 내가 가진 유일한 것임과 동시에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 모든 것이었다.

이제는 알았다. 그를 만난 처음부터 나는 행복까지 가진 이 온전한 손규인을 갖고 싶었던 거라고. 그걸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그 먼 길을 돌아온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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