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홍다환이지만 나를 ‘다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그 이름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홍다환이라는 이름은 생부가 지어 줬다.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이 싫었다.
정작 생부는 내 이름을 부른 적이 거의 없다. ‘태어나서는 안 될 놈’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썼다. 그게 내 두 번째 이름이 되었다.
생부는 본래 이모부였다. 엄마는 자신의 형부에게 강간당해서 나를 임신한 것이었다. 이모는 지역구 재선 의원이 되고 나서야 이혼했다. 그전에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적어도 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열일곱 살이 되고부터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일을 멈추었다. 그 여자, 이모네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게 조건이었다.
그러나 열여덟 살 겨울 방학을 앞두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같은 반 녀석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서였다.
그 여자는 내게 이유를 물어보지도, 혼을 내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원래 그런 새끼인 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릴 때부터 생부한테 맞고 자랐고 아픈 엄마는 일찍 죽어서,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놈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연옥동에 집을 얻고 나서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았다. 열심히 살아도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공부도, 다른 무엇도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가져 봤자 다시 사라질 게 뻔했다. 엄마도, 친구도 모두 내게는 일회성이었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일은 그랬다. 물건 하나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다.
연옥동에서 나를 따르는 녀석들도 다 똑같았다. 내가 먹을 것을 사 주고, 괴롭히는 놈들을 같이 털어 주니 나를 따라다니는 것일 뿐이었다. 내가 연옥동을 떠나면 이 녀석들도 금세 나를 떠날 것을 알았다.
나한테 고백하는 여자애들도 없지 않았다. 아니, 내가 좋다는 애는 주기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연애를 하지 않는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어린 시절에 잠깐 만날 인연에 신경을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
일도 하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멋대로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그 여자에게 보이기 위함이 제일 컸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돈을 펑펑 쓰고 보란 듯이 조폭들과 어울렸다. 그 여자가 준 돈을 최대한 쓸모없는 곳에 낭비했다.
애초에 그 여자가 내게 준 것 중에 진짜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준 것들은 모두 내게 주는 게 아니라 그녀 자신의 죄책감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내 엄마에게 주는 것이었다.
‘왜 나를 방치했어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정치 인생에 사생아인 내가 결함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그래도 그 여자는 내게 끝없이 돈을 줬다. 그것이 제가 할 유일한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그 여자가 참회하길 바랐다. 내게 의미 없는 돈을 쏟아붓는 일로나마 더 죄책감을 느끼고, 죽은 엄마에게 사죄하길 바랐다.
그 어떤 것도 내 소유가 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채 조폭들 일이나 돕고 동네 양아치 짓이나 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애는 내가 가진 내 첫 소유물이었다.
“너, 내가 살려 줄까?”
더러운 옷과 몸 곳곳에 난 상처. 어른이 때려서 생긴 게 분명한 흔적과 비쩍 마른 손목을 어떻게 못 알아볼 수 있을까.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지옥을 알아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손규인을 알아보았다.
“나랑 가면 살 수 있어.”
그 한 마디에 흔들리는 눈빛이란 얼마나 여리고 하찮은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에 곳곳에 얻어맞은 흔적이 역력하고 움츠러든 몸이 꼭 버려진 개새끼 같았다. 나는 동갑내기인 그를 키우고 싶었다.
존나 꼴리게 생긴 새끼.
손규인의 외모에 대한 내 첫 감상은 그거였다. 사내 새끼가 입술은 피라도 묻은 것처럼 새빨갛고 도톰한데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희었다. 목은 선이 가늘어서 이를 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그를 데려와 씻게 하고 밥을 먹였다. 며칠 동안 굶었는지 그는 게걸스럽게 그릇을 비웠다.
옷 꼴도 말이 아니라 내 옷을 입혔더니 헐렁해서 바지는 질질 흐르고 티셔츠는 쇄골이 보일 정도로 품이 남았다. 그의 상처를 다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 내가 밥도 주고, 옷도 사 줄 테니까.”
손규인은 내 말에 밥을 먹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가뜩이나 끝이 올라간데다 엄청나게 큰 눈매가 야하게 생겼는데, 그 눈으로 순진무구한 눈빛을 보내니 묘한 가학심이 들었다.
“…왜… 나한테 잘해 줘?”
그가 물었다. 익히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비라는 놈은 저를 두들겨 패고, 도움 청할 곳은 없었을 테고, 그 시간에 집에 그렇게 웅크리고 있던 걸 보면 친구도 하나 없었겠지. 내 손길은 그가 받아 보는 생애 첫 번째 호의일 거다.
“내가 너 주웠잖아.”
사실을 되새겨 주자 동그랗게 뜬 눈이 시선을 한 바퀴 데굴, 굴렸다.
“그러니까 밥도 주고, 옷도 주는 거지. 내가 주웠으니까.”
손규인은 납득하는 눈치였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 주었다. 손이 닿자 흠칫 놀라는 게 역시나 버려진 개새끼와 똑같았다.
“내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으면 내가 잘해 줄게.”
최대한 다정하게 말하자 경계심이 풀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조금 아깝기도 했다.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내 손에 들어온 내 것이라니.
“너,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앞으로.”
명령하니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역시 영락없는 개새끼였다. 묘한 호기심과 소유욕이 동시에 들었다. 이건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겠구나.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것만 해. 다른 새끼들한테 눈깔 돌리지 말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것. 처음으로 가진 내 것.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니까.”
내 첫 소유물이 된 손규인은 지독히도 예뻤다.
그는 정말로 내 말에 죽는 시늉이라도 할 정도로 나를 따랐다. 시선은 언제나 내게 붙박여 있었고, 명령이 없으면 결코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했다.
“앞으로 네 이름은 귤이로 하자. 규인이란 이름은 너무 밋밋하잖아.”
심지어 이름마저 내가 정해 준 대로 바꾸었다. 게다가 ‘귤’이라는 호칭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예쁘고 작은 내 것은 얼마나 더 나를 따를 수 있을까. 내가 시키는 것은, 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게 닿는 그의 시선을 알았다. 항상 나만 쳐다보는 진득한 눈길. 눈이 마주치면 그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곤 했다. 얼굴을 붉히면서.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모를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손규인은 바보였다. 그렇게 적나라한 시선을 내가 모를 줄 안 모양이었다.
‘손규인은 나를 좋아한다.’
그것이 첫 번째 명제였다.
‘손규인은 나를 숭배한다.’
그리고 그것이 두 번째 명제였다. 진흙 구렁텅이에서 손을 내밀어 구해 준 내가 그에게는 구세주인 모양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오롯이 내 손에 들어온 내 것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그날은 비가 몹시 쏟아졌고, 날이 제법 추웠다. 손규인은 비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품이 큰 내 티셔츠를 입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전면창을 보는 그에게 다가갔다.
“비 많이 오네.”
옆에 풀썩 앉자 그가 내 눈치를 봤다. 이런 작은 행동에도 눈치를 보는 그가 귀여웠다.
“비 오는 거 싫어?”
“아니. 밖에 못 나가고 습한 게 싫어.”
손규인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는 투로, 마치 비가 오는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이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나는 녀석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무리 봐도 꼴리게 생겼다. 빨고 싶은 입술과 눈에 넣어 삼키고 싶은 눈동자, 그리고 자국을 내고 싶은 뺨까지. 가느다란 목은 손에 움켜쥐고 싶었다.
“귤아.”
“어?”
갈 곳 없이 헤매던 눈이 나를 올곧게 마주했다.
“너, 내가 좋아?”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개는 표정을 감추는 법도 몰랐다. 그것부터 가르쳐야 할까. 하지만 감정이 곧이곧대로 드러나는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부끄러워하는 손규인의 얼굴은 특히나 더 꼴리게 생기기도 했다.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나를 멍하니 보기만 했다. 문득 나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로 내 멋대로 할 수 있겠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겠구나.
턱을 쥐고 나를 마주 보게 했다.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이 눈알부터 빨아먹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이 귀여운 게 놀라 도망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너, 키스해 본 적 있어?”
이번에는 물음을 바꾸어 보았다. 손규인이 고개를 조심스레 저었다. 제 대답이 나를 만족시켰는지 아닌지 확인하느라 또 예쁜 눈알이 데굴, 한 바퀴를 굴렀다.
“내가 가르쳐 줄까?”
“어, 어?”
뻣뻣하게 얼어붙은 그를 가까이 당겼다.
“나한테 키스 배우고 싶지 않아?”
어디 둘지 알 수 없다는 듯이 요리조리 움직이는 시선이 달아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진작 그의 눈을 뽑아다 삼켜서 내 배 속에 넣고 다녔을 텐데.
“그래서 내 입술 몰래 쳐다봤잖아. 맨날.”
지금도 그의 시선이 내 입술을 몰래 스치고 지나쳤다. 그런데도 대답을 망설이는 그가 귀여웠다. 지나치게 귀여워서, 몸 부위 하나하나 씹어 먹고 싶었다.
“네가 내 입술 자꾸 쳐다봤으니까, 내가 시작한 게 아니라 네가 시작한 거야.”
내가 듣기에도 웃긴 개소리인데, 손규인은 납득하는 눈치였다. 뭐라고 말하려고 달싹거리는 입술을 그대로 삼키듯이 물었다.
숨을 참는 게 느껴졌다. 상관하지 않고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숨이 뒤엉키고 혀가 엉켰다. 원하는 만큼 숨을 빼앗아 갔지만 성에 차지 않아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혀를 더 깊숙이 밀어 넣자 움찔, 하고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반응에 만족하며 입 속을 크게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또 한 번 크게 놀라는 기색과 함께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내 혀를 씹은 것이었다.
“흐읍…?”
손규인은 입술을 떼려 했지만 나는 외려 입술을 더 강하게 포개었다. 피 맛이 타액에 뒤섞였다. 이깟 피는 아무래도 좋았다.
손규인은 손규인답게도, 크게 놀란 눈치였다. 이제 아예 몸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고작 키스 한 번에 이렇게 겁을 내는 그가 귀엽고 가여웠다. 그리고 동시에 욕심이 들었다. 이보다 더한 짓은, 얼마나 더 겁을 낼까. 상상만으로도 찌릿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는 자꾸 뒤로 물러나려 했다. 감히 입술을 떼려고도 했다. 키스 자체보다는 자신이 나를 다치게 한 사실에 더 놀란 모양이었다.
입술을 떼고 싶지 않았다. 그가 더 힘들어했으면 싶었다. 그가 힘겨워하는 만큼 나는 즐거웠다. 그가 이 행위를 참는 만큼 나는 희열했다.
피 맛을 머금은 키스는 한참 더 이어졌다. 내가 그를 놔주지 않자 그는 허공에서 빈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딸리는 숨을 어떻게든 이어 가려 애썼다.
위험하겠다 싶을 때에야 입술을 떼었다. 파아, 하고 그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 잠깐 떨어지는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나를 마주 보게 했다.
“너, 키스 진짜 못하네. 아무리 처음이라도 그렇지.”
사실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입 속을 헤집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혀를 얽어내는 동작은 훌륭하기까지 했다.
“그, 그렇게 별로야?”
하지만 대번에 움츠러들며 내 눈치를 보는 손규인을 보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응. 진짜 별로더라.”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며 소리 내어 웃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대신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긴장감이 조금 풀어짐을 느꼈다.
“괜찮아. 내가 앞으로 가르쳐 주면 되지.”
뺨을 쓸던 손으로 그의 입술을 만졌다. 방금 전까지 내 입술이 닿은 손규인의 입술은 무척 뜨거웠다. 삼키고 싶을 만큼.
“다시 해 볼까?”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내 소유물이니까.
***
그렇게 나는 스킨십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입맞춤과 애무의 농도를 늘려 나가자 손규인은 착실하게 적응해 나갔다. 정말로 개를 길들이는 기분이었다.
“귤아.”
검지를 내밀자 손규인이 그것을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말캉한 혀 감촉과 점막이 그대로 느껴졌다. 입술을 오므리며 혀로 손가락을 감는 것은 내가 가르친 것이었다. 하지만 힘을 줘서 쪽, 쪽, 소리 나도록 강하게 빠는 것은 가르친 적이 없었다. 내게 안달이 나는 것을 그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몸으로 표가 났다.
손규인은 제법 소질이 있었다. 가르치는 대로 착실히 따라했다. 손가락을 빠는 게 이 정도로 훌륭하면, 좆을 물려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확실하게 길들이려면 서둘러선 안 된단 사실을 알았다.
가끔 그는 내가 하는 스킨십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손규인답게, 아주 소심하게.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겁을 내는 듯이 움츠러드는 게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왜, 싫어?”
물어보면 손규인은 냉큼 고개를 저었다.
“너, 키스도 안 해 봤고 섹스도 안 해 봤다며. 그러니까 나한테서 배워야지.”
꼭 배워야 하냐거나 나한테서 배워야만 하냐는 물음은 없었다. 이유는 뻔했다. 그가 나를 좋아하니까.
옷 속에 손을 불쑥 넣어도, 애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입술을 묻어도 반항하지 않는 그가 가엾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손규인은 내가 만든 무리에 섞이지 못했다. 싸움도 못하고 체구도 자그마한 녀석은 내가 고른 놈들하고 딴판이었다. 오히려 그놈들한테 맞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손규인이 마음에 들었다. 무리랑 같이 있으면 녀석이 더 주눅 드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의 두려움을 그를 길들이는 데에 쓰기로 했다. 그래서 일부러 애들이 보는 곳에서 더 그를 탐했다.
“애, 애들이… 보는데….”
“그래서?”
뻔뻔한 물음에 당황하는 이 자그마한 얼굴을 보고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애들이 보는 게 문제가 돼?”
어차피 이제 내 소유물이 된 그인데, 고작 시선 몇 개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게 우스웠다.
“아니면 내가 만지는 게 싫어?”
“아, 아니, 아니야.”
생각도 감각도 얼굴에 다 드러나는 손규인은 가지고 놀기에 재미있었다. 그래서 더 못되게 굴었다.
그는 무척 잘 느끼는 편이었다. 유두를 조금만 건드려도 프리컴을 질질 흘리며 몸을 꼬아 댔다.
“너, 원래 몸 파는 애야?”
아무리 봐도 내가 첫 경험임이 분명했지만 일부러 그리 물어 보았다. 양쪽 허벅지 사이로 파고드는 내 페니스를 다리로 열심히 조이는 힘이 어설프고 서투른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아, 아니, 야.”
“아냐? 근데 왜 이렇게 걸레 새끼처럼… 잘해?”
일부러 천박하게 묻자 그는 잘못이라도 한 듯 움찔, 몸을 떨었다. 그게 귀여워서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즐거움은 조금 더 아껴 두기로 했다.
“아니면… 내 좆이 그렇게 좋아?”
“아, 흣…!”
허벅지에 페니스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몹시 느끼는지 내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는 거의 자지러졌다.
회음을 미는 듯이 스치며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일부러 동작을 뚝 멈추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는 듯이 돌아보는 머리통을 꽉, 짓눌렀다. 무릎 꿇은 자세로 엎드리게 하자 아무도 손대지 않았을 게 분명한 분홍빛 구멍이 빠끔하게 드러났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 위를 엄지로 꾹, 눌러 보았다. 그러자 꼭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구멍이 조금 더 벌어졌다. 내 얼굴이 엎드린 그에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씩 웃었다. 당장 구멍에 손가락이든 좆이든 쑤셔 넣고 싶은 것을 참으며 다시 엄지로 구멍 위를 문질렀다.
“빨리, 대답해 봐. 귤아.”
“으, 응, 좋아. 흑…!”
화들짝 나온 대답에 그제야 만족했다.
나는 손규인이 어떤 자세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크게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취향을 모조리 내 마음대로 바꾸고 길들이고 싶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내 것이니, 오직 나로 인해서만 쾌감을 느꼈으면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좆과 구멍을 밀랍으로 틀어막기라도 했을 터다.
“좋아? 아직 구멍에는 박아 주지도 않았는데, 내 좆이 그렇게 좋아?”
“아, 흐.”
그가 몸을 떨면서 긍정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를 냈다. 고작 손으로 문지르는 것뿐인데 반응은 거의 삽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애들은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지만 몇몇은 우리 쪽을 흘끔거렸다.
시선이 닿을 때마다 손규인은 흥분한 티를 냈다. 내 페니스를 끼운 허벅지를 조이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대로 넣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래도 길을 제대로 들여야 하니 손가락부터 구멍에 넣었다.
“읏…!”
검지 하나만 넣었는데도 그의 구멍은 끊어 먹을 듯이 조였다. 넣은 검지를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벌 떠는 모습이 딱 겁먹은 동물이었다.
“내 좆 받아들이려면 손가락 다 넣어야 하는데…. 벌써 힘들어?”
묻자 그가 도리질을 쳤다. 속으로만 비죽이 웃으며 중지를 하나 더 밀어 넣었다.
“흐읍!”
“안 힘들다니, 다행이네.”
손가락 두 개로 구멍을 억지로 벌리듯이 움직였다. 남의 손이 닿아 본 적 없을 구멍은 그 사소한 움직임에도 힘겨워했다. 헐떡거리는 손규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막 쌓인 새 눈을 짓밟는 듯한 즐거움이 들었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래도 아래쪽이 풀리기는 풀렸다. 조금이나마 말랑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빼냈다.
허리를 다시 움직였다. 내 페니스에 녀석의 회음과 고환이 스치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양 옆으로 페니스를 감싼 허벅지는 말캉해서 꼭 부드러운 털 같은 것에 좆을 비비는 것 같았다. 안쪽은 더 말랑하고 부드럽겠지, 생각하자 더 참기가 힘들었다.
“너… 진짜 섹스해 본 적 없어?”
허벅지 사이에서 빼낸 페니스로 그의 구멍 위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손규인은 내게 머리채가 짓눌린 채로도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어, 없어. 흣.”
“진짜 없어? 확인해 볼까?”
“으, 우.”
그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헐떡거렸다. 구멍에 페니스를 갖다 대자 몸이 대번에 얼어붙었다. 더는 봐 줄 여력이 없었다. 그대로 귀두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흐윽!”
이불을 손으로 말아쥐는 동작에 고통이 드러났다. 개의치 않고 조금 더 안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아, 아파…!”
아프다는 말이 절대 과장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손규인의 안쪽은 더럽게 조였고 또 뜨거웠다.
“아파? 그래도 참아야지.”
좁은 구멍으로 귀두를 물고 있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손규인은 와중에도 아이들의 눈치를 봤다. 나 말고 다른 쪽으로 눈깔을 돌리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기를 안쪽으로 좀 더 밀어 넣었다.
“아아!”
“나한테서 다 배우기로 했잖아. 아냐?”
그는 나와의 스킨십을 좋아했다. 내가 어떻게 만져 줘도 자지러졌다. 특히 애들이 보는 앞에서는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바지를 내리고 개처럼 엎드린 자세에서 내 페니스를 받아들이려 용쓰는 그에게 애들의 시선이 닿는 건 못마땅했지만, 오히려 이렇게 못을 박아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손규인은 내 좆집이라고. 그러니 함부로 넘보지 말라고 말이다.
“아니면 애들한테 시킬까? 너 뒤 뚫어 달라고.”
“시, 싫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 보자 대번에 나오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한 손은 머리채를 잡은 채, 다른 손은 그의 페니스를 잡고 귀두 부분을 엄지로 힘줘 싹싹 문질렀다. 감각이 치솟았는지 그가 화들짝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질질 싸.”
“흐윽, 아, 아.”
엄지로 귀두 끝을 짓누르듯이 계속 문질렀다. 손규인은 몸을 꼬며 헐떡거렸다. 달아오른 그의 몸은 갓 구운 빵처럼 부드럽고 또 뜨거웠다.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잘근잘근 씹었다.
“아파… 아, 아!”
구멍이 아프다는 건지 씹히는 어깨가 아프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놔주지 않고 더 힘을 줘서 살을 씹으며 안쪽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아파, 아파, 흑, 아.”
손규인이 발발 떨며 애원했다. 그는 아직도 모르나 보다. 이렇게 떨면서 우는 소리를 내면 내가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아파도 참아야지.”
머리통을 짓누르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귀두를 끊어먹을 듯이 조이고 있던 힘이 아주 조금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좁았다.
“아니면 애들한테 한 번씩 박게 해서 헐겁게 만들어 줄까?”
“아, 아니, 아, 아!”
진심으로 공포스러워하는 듯 손규인이 손을 마구 휘저으며 나를 벗어나려 했다. 그의 뒤에서 조용히 소리 없이 웃었다.
“네 거 너무 좁아서… 그래야 나랑 섹스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흐윽….”
그가 고개를 틀고 나를 돌아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이 내 눈치를 봤다. 어떻게 해야 내가 예뻐해 줄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귀두를 좀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그러기 싫으면 힘 빼.”
마음 같아선 그냥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아래쪽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한동안 이 예쁜 걸 먹지 못할 테니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짜냈다.
손규인은 반면 힘을 빼기보다 오히려 구멍을 더 조여 댔다. 귀엽기도 하지만 이젠 슬슬 좆이 아플 정도로 참았기에 그의 구멍에 검지를 대고 살살 문질렀다.
“착하지. 조금만 더 힘 빼자.”
부드럽게 말하며 내 귀두를 반도 물지 못하고 있는 구멍을 살살 쓰다듬었다. 착하게도 정말로 힘이 조금 빠졌는지 뻑뻑한 구멍이 조금 편해졌다. 기특해서 구멍을 꾹꾹 눌러주니 그는 또 발발 떨며 안쪽을 조이려 들었다.
“자꾸 조이네. 어쩔 수 없이 그냥 넣어야겠는데….”
사실 이미 반 이상은 풀어졌지만 손규인은 잔뜩 겁을 먹었다. 웃기고 귀여워서 소리 내어 웃자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움찔거렸다.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진 좆을 조금씩 안으로 더 넣었다. 이제 귀두 부분은 거의 다 들어갔지만 손규인은 몹시 힘겨워했다.
“아, 흑, 아.”
“응, 다 들어갔다. 조금만 더 하면 돼.”
어르고 달래며 내 셔츠를 벗어 그의 등 위에 덮어 주었다. 그래도 첫 섹스니까, 이미 애들한테 다 보여 줬어도 본게임은 단둘이 하고 싶었기에 삽입을 빼지 않은 채 녀석을 안아 들었다.
“힉…!”
내 개새끼는 놀라는 소리도 귀엽지,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것을 무시하고 2층 방에 들어가 침대에 그를 엎드리게 했다. 동시에 허리를 움직였다.
“아, 흑….”
예상했던 대로 손규인의 안쪽은 지독히도 말캉하고 뜨겁고 또 촉촉했다. 욕심이 나서 기둥을 단번에 절반 정도 넣어 버렸다.
“아악!”
터져 나오는 비명이 듣기에 좋았다. 그대로 남은 기둥도 끝까지 쑤셔 박았다.
손규인은 이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엎드린 채로 머리만 뒤로 겨우 젖혔다. 지독히도 아파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소리 없이 웃었다.
“많이 아파, 귤아?”
“흡, 읍….”
숨도 쉬지 못한 채 할딱거리는 그를 더 짓밟고 싶은 마음이 성욕과 함께 치솟았다. 그를 다치게 하고 싶었다. 내 손으로 울리고, 괴롭히고, 나락 끝까지 짓밟아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 뒤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럼 그는 저를 부수었던 내 손을 감사히 붙잡겠지.
거의 끝까지 페니스를 넣은 채로 나는 잠시 멈추었다. 티셔츠를 입은 그의 등줄기를 검지로 그어 내렸다. 손규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많이 아프면 뺄까?”
묻자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말 내가 뺄까 봐 겁이 나는지 가뜩이나 뻑뻑한 구멍에 힘을 주기까지 했다.
‘하, 이것 봐라.’
이렇게 괴로워하면서도 내 좆을 물고 있으려는 그가 지독히도 예뻐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예뻐해 줘야 할까, 고민하며 다 들어간 페니스를 슬쩍 빼 보았다.
“아프다며, 귤아.”
“아, 흑, 시, 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는 기어코 내 좆을 물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어 좀 더 그를 괴롭히고 싶었지만 내가 더 참기 힘들었다.
“그럼 계속한다?”
“아!”
다시 뿌리 끝까지 처박자 대답 대신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안쪽은 자극적이다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입에 손가락을 빨릴 때 밑구멍도 장난 아니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기분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하, 귤아.”
“으, 우.”
“너 진짜… 장난 아니게 조인다.”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손규인의 구멍은 내 페니스를 조르는 것처럼 조여 댔다. 쾌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하아… 씨발, 무슨… 손으로 쥐어짜는 것 같네,”
내 욕 때문인지 그가 작게 움찔했다. 나는 그의 허리를 손으로 짓누른 채 허리를 좀 더 크게 움직였다.
“아, 읏!”
신음을 터뜨리며 내가 움직이는 대로 하릴없이 흔들리는 그는 피부가 워낙 희어서인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현실감을 찾으려고 그의 몸을 멋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깨, 팔, 허리, 옆구리, 어디 하나 살이 붙은 곳이 없이 비쩍 마른 몸인데 왜 이렇게 야한지 알 수 없었다.
“귤아….”
“어, 으, 응.”
내가 부르자 대답하려 애쓰는 게 기특했다.
“너, 하, 진짜 안쪽 장난 아니다….”
“읏, 으응, 으.”
신음을 예쁘게 내는 법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숙여 그의 몸에 입을 댔다. 그대로 물고 빨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희어서 자국도 쉽게 남았다. 내가 낸 자국을 보고 있자니 더 기분이 좋았다.
“진짜, 창놈 새끼 같아. 조이는 게…. 후….”
귀에 대고 속삭이며 몰아치듯 움직였다. 손규인은 내가 세게 몰아쳐도 절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가느다란 몸이 내 아래에서 흔들리는 걸 보고 있자니 자꾸 가학심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더 괴롭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희고 작은 것을 내 손에 완전히 담을 수 있을까. 지독한 소유욕 속에서 나는 허리를 빠르게 앞뒤로 움직였다. 손규인은 내 밑에서 착실히 신음하며 내가 움직이는 대로 느꼈다.
“으응, 으, 아.”
어깨를 잡아 일으켜 엎드려 있던 상체만 바짝 들게 했다. 삽입 지점이 바뀌자 안쪽이 더 꽉 조였다. 내가 어딘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응, 여기 좋아하는구나.”
삽입 각도를 똑같이 해서 빠르게 처박자 손규인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겨워했다. 내가 그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그가 더 괴로웠으면 했다. 울면서 매달리고 애원하는 걸 보고 싶었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몇 번을 더 박자 손규인이 사정했다. 침대 위에 흩뿌려지는 정액이 어찌나 많은지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잡고 있던 어깨를 놓자 상체가 힘없이 도로 쓰러졌다. 머리채를 잡아 도로 일으켰다. 귓바퀴를 조금 세게 깨물자 그가 흠칫거리며 놀랐다.
“왜 멋대로 싸? 내가 싸라고도 안 했는데.”
잘못을 깨닫고는 금세 겁먹는 얼굴이 코앞에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대로 악어가 먹이를 삼키듯이 한입에 삼키고 싶었다.
“응? 귤아. 왜 쌌어.”
“흐, 으, 미, 미아, 읏.”
미안하다고 하는 건가. 죄다 뭉개진 발음을 들으니 혀라도 씹진 않을까 걱정되어서 입에다 손을 물렸다. 이에 내 손이 닿자 그는 죄라도 지은 듯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뜩이나 작은 입을 더 벌리려 애썼다.
“내 손 물어도 돼.”
혀를 깨물까 봐 손을 넣어 준 건데 나를 다치게 할까 겁을 내는 그가 기특했다. 상으로 뒤통수에 쪽, 쪽, 연달아 입맞춤을 주니 얼어붙은 몸이 조금 녹았다.
내 손에 멋대로 엉키는 말캉한 혀를 느끼며 허리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퍽, 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 손규인이 끙끙 앓는 소리, 내 숨소리가 난잡하게 뒤엉켰다.
방 안에 아무것도 없이 나와 그만 남은 것 같았다. 아니, 우리의 감각만이 남은 것 같았다. 사납게 널뛰는 쾌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처럼 훑었다.
손규인이 다시 한번 사정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의 안에 사정했다. 뿌리 끝까지 페니스를 깊이 처박은 채로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안에다 쏟았다.
“하아, 후….”
숨을 고를 때마다 손규인의 체취가 코를 스쳤다. 나는 그의 체취마저도 모두 삼키고 싶었다.
그렇게 손규인과 처음으로 잤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되기까지 금방이었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엉켰다.
손규인은 결코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애들이 보고 있으면 조금 부끄러워하는 눈치는 있어도 밀어내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결코 없었다.
나는 애들이 보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손규인을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를 들게 한 뒤 멋대로 처박았다. 그것은 일종의 영역표시였다. 내가 손규인과 어떤 관계인지 모두 알아야 하니까. 그래야 함부로 손을 댈 놈이 없을 테니까.
***
백용태와는 이전 보스 때부터 알고 지냈다. 나는 그가 흑매파 이전 보스를 밀어내고 앉을 줄 예상하고 있었다. 놈은 교활하고 욕심이 많았다.
문제는 놈들이 이전부터 탐을 내고 있던 국천시 관광개발 사업이었다. 이전 보스는 그래도 주제를 아는 놈이었다. 사업체로 선정되지 못하더라도 그러려니 했을 터다. 하지만 백용태는 아니었다.
놈은 집권한 지 얼마 안 돼서 미친 듯이 세력을 불려 나갔다. 오합지졸로 덩치만 커진 흑매파는 당연히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내 엄마의 여동생, 그러니까 국천시장은 백용태를 조심하라고 내게 몇 번이나 말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잔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백용태는 더 교활하고 악랄했다.
그 새끼가 처음 손규인을 달라고 했을 때, 당연히도 나는 무시했다.
‘새로 들인 애들 길들이기도 힘드실 텐데, 나까지 뭐하러 끌어들인대. 좆 까시고 우리한테 신경 꺼. 너 아니더라도 일 받을 사람 많으니까.’
‘네가 그런다고 내가 네 좆집 못 데려갈 것 같냐?’
백용태가 뜬금없이 손규인을 탐내는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나를 갖고 노는 것이었다. 손규인을 건드리면 내가 화를 낼 줄 알고.
‘뭘 어떻게 데려가게?’
‘그건 겪어 보면 알 거고. 목숨만 살려서 데리고 가는 수도 있으니.’
백용태는 우스워 보여도 어쨌든 조직폭력배의 보스였다. 스무 살 애새끼 하나 처리하는 일쯤이야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빌어먹게도 나는 아직 어린 애새끼였고, 내 개새끼 하나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다.
백용태는 내게 마약을 배달하는 일을 시키고 그 자리에 사람을 심어 놨다.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백용태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데. 그 새끼, 백퍼 뒤로 뒤통수 깔 새끼야.’
민우도, 강태도 나를 극구 말렸다.
‘너, 그 귤인가 뭔가 걔 하나 때문에 이러는 게 말이 돼?’
그래, 말이 되질 않았다. 내가 고작 손규인 하나 때문에 이러는 게.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귤이는 나 떠나서는 못 살아.’
내가 그 구렁텅이에서 구해 냈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가르치고 길들였다. 그러니 나를 떠나면 그는 살 수 없었다. 당장 카드 긁는 방법도 모르는데.
그리고 크게 다쳐 왔던 그날, 나는 우습게도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기뻐했다. 속으로 스스로를 욕했다. 멍청한 새끼. 그깟 일에 다쳐서 앞으로 어쩌겠다고. 그러면서도 나를 야무지게 치료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손규인이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
국천시장은 당연하게도 흑매파의 회사에 관광 사업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듣자 하니 백용태는 애 몇을 혼수상태가 되도록 두들겨 팰 정도로 화가 났다고 했다.
‘조심해라. 너도 위험할 수 있어.’
시장은 나한테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우스웠다.
‘이제 와서 나 죽을까 봐 겁이라도 나요? 그럼 진작 엄마 죽기 전부터, 아니, 그 새끼가 엄마한테 손 댈 때부터 신경 써 주지 그랬어요.’
오만임을 알지만 남의 손에 손규인을 맡길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게 이모더라도.
‘…백용태, 어떻게 해야 잡아넣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했다.
‘내가 그 새끼 잡아넣게 해 줄게요. 대신….’
처음 백용태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실패할 생각이 없었다. 손규인은 내가 없이 못 살기 때문에, 나는 죽어선 안 되었다.
‘하나만 묻자. 왜 그 새끼한테 그렇게까지 목매냐?’
내 칼에 배가 찔린 백용태가 한 물음에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야 당연히 손규인은 내 소유물이고, 그러니 내가 챙기는 건 당연하다고.
‘뭐, 어린놈이 그게 사랑 같은 거라도 되는 줄 아냐?’
그러나 뒤이은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랑이라고. 그런 무거운 단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딴 감정도 사랑이 될 수 있다고? 그저 그를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몸으로 만들고 싶은 이게 사랑이라고.
나를 쫓아오는 놈들을 피해 건물을 도망쳐 나오며 나는 계속 놈의 물음을 되새겼다. 사랑이라니. 스무 살의 나와 손규인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혼란스러웠다. 통증 사이로 손규인의 얼굴이, 그의 작은 손발과 새빨간 입술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어색한 단어가 그 위로 동동 떠다니는 듯했다.
‘미친 거지.’
그래, 이건 사랑이 아니라 미친 거지. 결론을 내리자 웃음이 났다.
백용태를 찌르고 도망친 그날, 잔뜩 약이 오른 백용태가 분명 나를 찾아오리라 예상했다.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를 반겨 주는 그를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내 말 못 알아듣겠어? 꺼지라고.’
최대한 그가 내게서 멀어지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백용태가 나를 찾느라 정신이 없으니 그가 나와 떨어지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등신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가뜩이나 제 조직 덩치를 불려 국천시 카지노에 쳐들어갈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놈이 도망친 손규인까지 찾아다니진 않을 거라 여겼지만, 그건 내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근데 니 좆집한테서 연락 왔던데. 너 어디 갔냐고.’
내 손규인은 미련하고, 바보같고, 멍청하고, 한없이 여렸다.
‘씨발, 또 나한테 질척거리면 찢어 죽여 버릴 거라고 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잠깐이라고 믿었다. 잠깐만 떨어져 있으면 내가 그를 찾아가면 되니까. 손규인이 어디 있어도 내가 찾아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또 연락 오면… 그땐 나한테 말해.’
그가 들어간 여관 근처에서 흑매파 놈들 두 명을 잡았다. 평소 컨디션이면 쉽게 조졌을 텐데 피가 멎지도 않는 상처를 달고 있는 몸으로는 두 놈을 동시에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둘 다 놓치고 혹시나 걱정이 되어 들어간 여관방에서 나는 목을 매단 손규인을 마주했다.
이전이라면 뺨을 때리고 화를 냈을 터다. 내 것인 네 목숨을 왜 마음대로 하느냐고 정신 잃은 그를 다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눈물 젖은 얼굴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귤아, 이게 사랑일까?’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니.
이렇게 망가지고 뒤틀린 감정도 사랑이라면, 사랑은 분명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지독하게 손규인을 앓았다.
그가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하고 여관방을 나왔다.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피로 축축한 옆구리를 누른 채 주변을 살폈다. 흑매파 놈들을 놓쳤으니 아마 손규인을 데리러 금방 몰려들 것이다.
어떻게든 손규인을 데리고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미련한 몸뚱이는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귤이,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아니면 연락이라도. 흐려지는 시야가 야속했다. 여관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다 쓰러졌다. 바닥을 손끝으로 박박 긁으며 용을 써댔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손규인이 흑매파에 잡혀가도록 놔둔 것은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될 일이었다. 그를 내 손에서 놓쳤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이모는 내게 계속 진통제를 놓았다. 당장 손규인을 찾으러 가도 시원찮을 판인데 빌어먹을 약 기운 때문에 병원을 뛰쳐나갈 수가 없었다.
‘씨발, 이거, 약인지 지랄인지, 그만… 맞히라고….’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모 말로는 내가 약에 취해서도 손규인을 계속 찾았다고 했다. 정신이 혼몽한 와중에서도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잠들면 안 돼, 그를 찾으러 가야 해.
창가로 손을 뻗어 디퓨저 병을 깨뜨렸다. 깨진 유리 조각을 간호사 몰래 손에 쥐었다. 날카로운 유리가 손바닥을 긋는 감촉이 그나마 몰려오는 약 기운을 밀어내 주었다.
그렇게 유리 조각 덕분에 기어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비척거리며 병원을 나오며 나는 오직 하나만 생각했다. 손규인은 내가 구해야 한다고.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그보다 더 많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똑같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그를 구해 내고 말 것이라고.
이게 사랑이든, 정신병이든 상관없었다. 그런 한 마디짜리 감정으로 우리의 뒤엉킴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
확실한 건 오직 하나였다. 손규인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만큼, 딱 그만큼 나도 손규인을 필요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