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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묶기 (13/22)

골목의 그늘에 숨어 기다리자 일전 나를 치료해 주었던 그 의사와 정장 입은 사내 몇이 다스와 나를 데리러 왔다. 커다란 승합차에 타자마자 다스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의사가 다스에게 이것저것 주사를 놓고 부산스레 굴었으나 다스는 눈을 뜨지 못했다. 한눈에도 몸에 상처가 너무 많고, 죄다 심각해 보였다. 이미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던 곳도 있었다.

의사는 내 다친 발도 지혈해 주었으나 이깟 건 아무 상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찮으니, 내 운을 다 주어도 좋으니 그가 살아야 했다.

“다스, 살려 주세요. 제발, 흐윽, 제발요. 제발….”

의사에게 울며 애원했다. 그가 없이 혼자 살 자신이 없었다. 피가 흥건한 스카쟌을 품에 안고 눈 감은 다스의 이마를 계속 쓰다듬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스는 제한 구역이라 쓰인 곳으로 실려 갔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나 또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놔주세요, 다스… 같이, 같이 있게 해 주세요…. 제발….”

찔린 발을 치료하는 내내 울고 애원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간호사 하나가 내게 다스가 수술 중이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상태가 그다지 좋진 않아요. 피도 많이 흘렸고, 이미 크게 다친 몸이었는데 다 낫기도 전에 또 다친 거라서.”

백용태에게 두 번이나 다쳤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맨몸에 칼을 수어 번이나 맞았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지경이겠지.

“원래 보호자 말고는 이런 거 안 알려 주는데, 홍다환 환자분 보호자께서 특별히 부탁하셔서 알려 드리는 거예요.”

‘홍다환 환자의 보호자’가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국천시장이라는 그의 이모겠지.

“수술이 끝난 뒤에 면회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일단 환자분 본인부터 치료받으세요.”

…그래, 일단 내가 나아야 다스를 볼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에 잠자코 치료를 받았다.

처치가 다 끝난 뒤에는 병실로 이동했다. 깨끗하고 야경이 잘 내다보이는 1인실이었다. 백용태에게 찔린 발은 하마터면 크게 잘못될 뻔했다고 했다. 칼에 찔린 상태에서 처치도 안 하고 오래 걸어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통증이 굉장히 심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나마 이만큼이라 다행인 줄 알아요.”

의사의 말에도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발의 상처는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경 쇠약이라나. 다스가 괜찮아지면 나도 괜찮아질 테니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내 병실 밖에는 정장 입은 남자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깡패는 아닌 것 같았고, 귀에 이어폰 같은 걸 차고 있으니 경호원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이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 병실에서 앉지도, 눕지도, 서 있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승합차 안에서 끙끙 앓던 다스의 얼굴이 지워지질 않았다.

그의 피 묻은 스카쟌은 여태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피가 말라붙은 것을 곱게 폈다가 다시 개었다. 그리고 코에 가져갔다. 피 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다스의 체취가 났다.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간호사를 불러 수술이 끝났느냐고, 다스는 괜찮으냐고 물어보았으나 간호사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갑갑했다. 고작 십 분이 지났는데도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여태까지 살아남은 다스니까. 손톱을 물어뜯으며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오랜만이에요. 몸은 좀 어때요?”

다스의 이모였다.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보호자용 의자에서 얼른 일어나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여인은 내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환이가 학생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 어서 나아요.”

“…다, 다환이가요…?”

“하루 종일 학생 이야기만 하던걸요. 이전에 백용태한테 다쳐 왔을 때도요.”

얼굴이 붉어졌다. 다스가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 줄은….

“다환이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

“아직 집도 중인 모양이에요. 나도 알 수가 없어 갑갑하네. 수술 끝나면 바로 알려 준다고 하니까 우리 조금만 기다려 봐요.”

조곤조곤 말하는 태도가 확실히 어른은 어른이구나 싶었다. 자연스레 마음이 놓였다.

“다환이, 처음에는 나한테 학생 찾지 말라고 했어요. 자기 일에 더 엮이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를 그렇게 차갑게 내친 거였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인은 자세를 조금 더 편하게 고쳤다. 나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백용태가 다환이한테 접근한 줄은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깊이 연루될 줄은 몰랐지만요.”

“…다스… 다환이는 잘못 없어요. 다 그놈이 시켜서….”

그래도 다스의 집안 어른 앞인데 그놈이라는 말은 좀 그런가, 그래도 그 새끼라고 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눈치를 보고 있자니 나를 보는 따뜻한 미소가 조금 슬픔을 띠었다.

“다 어른 잘못이죠.”

피는 못 속이는지, 그 미소가 다스랑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저희도, 어른이에요.”

스무 살은 이 세상에서 아직 너무 어리고 하찮은 나이이긴 하지만, 다스도 나도 뭐가 잘못된 일인 줄은 안다.

“하지만 잘못한 건 없어요. 정말이에요.”

“알아요. 걱정 말아요. 마약 관련 일도 잘 해결되었고, 다환이도 학생도 그 자리에 없던 걸로 처리될 테니까.”

혹시라도 다스가 감옥에 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 그럼 백용태는….”

“중태예요. 지금은 혼수상태라던데, 깨어난다고 해도 아마 꽤 오래 징역을 살 거예요.”

죽었냐고는 차마 묻지 못했는데, 살았다고 하니 묘하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그 개새끼를 동정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 새끼가 죽으면 다스도 나도 앞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찝찝한 죄책감 속에서 계속 살아야 할 테니까.

“백용태는 평범한 양아치가 아니에요. 외국이랑 연줄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마약 거래까지 하는 대형 범죄자예요. 그래서 내가 계속 주시했던 거고요.”

‘대형 범죄자’라는 말이 어째 조폭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놈한테 개겼으니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 해야 하나. 새삼 다스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환이가 처음 흑매파 건물에 들어갔을 때, 내가 경고했어요.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면 내가 다환이를 지켜 줄 수 없다고요.”

…다스는 좀 고집이 세긴 해도 무모한 타입은 아닌데. 나도 그게 좀 이상하긴 했다. 혈혈단신으로 칼 하나 들고 흑매파 건물로 쳐들어가다니. 아무리 백용태가 미워도 다스가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다쳐 가면서까지 백용태를 찌르고 온 날, 다환이가 나한테 와서 뭔가를 줬어요. 건물 구조도랑 마약이 있을 법한 곳 위치였어요.”

“…그냥 무모하게 들어간 게… 아니었네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다스는 바보가 아니니까. 괜히 내가 뿌듯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경찰이라 한들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남의 영업장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예전에 드라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영장인가 뭔가를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던 검사 주인공이 떠올랐다. 다스는 경찰도 검사도 아니지만 혼자서 그 일을 해낸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더니 아픈 몸 이끌고 다시 가더군요.”

아까처럼 흑매파 놈들한테 맞는 다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다쳤을 다스를 떠올리자 마음이 몹시 아렸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었어요…?”

아무리 백용태가 싫다고 해도, 그렇게 목숨을 거는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백용태를 그대로 놔두면 규인 군이 위험할 거라고 하더군요.”

내 아버지 때문인가. 다스는 어떻게 그것까지 알고 있지. 나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던 다스의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간 거예요. 규인 군 때문에요.”

죄책감도 들고, 두렵기도 했다. 다스가 오직 나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단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설레기도 했다. 다스가 그렇게까지 해 줬다니.

“다환이, 이제 연옥동 떠날 거예요.”

쿵쿵 뛰던 가슴이 뒤이은 말 한마디로 금세 멈추었다.

“제 조건이었어요. 학생 구해 주는 거 돕는 대신 연옥동 떠나서 제대로 공부하고, 수능 준비하는 거.”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다스를 못 만나는 건가. 하지만 다스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대학 입학까지 준비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제아무리 다스라 해도 언제까지 연옥동의 깡패 노릇만 하고 살 수는 없음을 나도 알았다.

다스의 이모는 몸조리를 잘하라는 말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나는 침대에 앉아 한참을 굳은 듯이 있었다. 그가 연옥동을 떠나면 이제 나 혼자 살길을 찾아야겠지.

본래 그게 맞는 일이긴 했다. 여태껏 다스한테 빌붙은 것만으로도 너무했지.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휴….”

다리를 끌어당겨 양 무릎을 안고 웅크렸다. 지금 당장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다스의 건강이 걱정이었다.

지옥 같은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다스가 있는 병실로 안내받았다. 목발을 짚고 거의 달리다시피 해서 병원 복도를 지나갔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다스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모습이 그답지 않게 유약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다스의 손을 쥐었다. 손에도 상처가 그득해서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다스야….”

작게 부르자 다스의 미간이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쌌다. 익숙한 온기가 나를 안도하게 했다.

고통스레 얼굴을 구기던 그가 조금씩 제정신을 차리고, 마침내 눈이 뜨였다. 보고 싶던 연갈색의 두 눈이 나를 담아냈다. 멍청한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다스의 두 눈이 몇 번 깜박였다. 얼굴에 드리웠던 고통도 찬찬히 사라졌다.

“…우리 못생긴 귤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최대한 환히 웃었다. 진심으로 기뻤으니까. 눈물 흘리기가 아까울 만큼.

대신 허리를 숙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 일전에 그가 계곡물에서 했던 것처럼 숨을 나누어 주듯이, 정성 들여 입술을 포개고 호흡을 섞었다.

커다란 손이 내 등을 감쌌다. 반지가 다 빠진 그의 손은 조금 거칠고, 커다랗고, 묵직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몸을 맞댄 채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말이 없어도 안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사하구나, 살아남았구나.

의사는 다스가 죽을 뻔했다는데도 다스는 그게 별것 아니라는 투로 허세를 부렸다. 나는 그의 허세가 싫지 않았다. 다스니까 가능한 허세였다.

다스가 병원 측에 부탁을 해서 우리는 2인실을 함께 쓸 수 있었다. 내 몸은 입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다스랑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으니 괜찮은 티를 내지 않았다.

다스의 몸은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 예후를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경과는 좋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다스의 이모 덕분인지 병실은 2인실치고 굉장히 호화로웠다. 나는 복도 쪽, 다스가 창가 쪽 침대를 썼다. 위치는 내가 결정했는데, 창밖을 보는 다스의 옆모습이 근사해서였다.

나는 다스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지만 꼭 보호자라도 된 것처럼 그의 머리칼을 빗겨 주고,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다스는 발이 불편한 내가 이동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보다 더 많이 다친 다스의 수발을 받으며 나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이제 퇴원하면 다스는 입시를 준비하러 가야 할 테니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상처 많이 좋아졌네요. 무리하지 말고 좀 더 지켜봅시다. 요청한 대로 진통제는 줄여 드릴게요.”

그래서 다스의 몸이 낫고 있단 이야기가 몹시 기쁘면서도 조금 서운했다. 다스가 빨리 낫는 것을 서운해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입원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날씨가 제법 추워져서 내내 담요를 덮고 있었다. 춥다는 핑계로 다스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좋았다.

다스는 나보다 체온이 높은 편이라 안고 있으면 따뜻했다. 다스의 몸에서 약 냄새가 나는 것은 조금 슬펐지만 말이다.

“…다스야.”

식판을 한 침대에 나란히 두고 같이 밥을 먹던 중, 다스를 불렀다.

“응, 귤아.”

그가 자기 식판에 있던 소시지 하나를 내 쪽으로 옮겨 주었다.

“퇴원… 하면 어디로 갈 거야…?”

“응? 어디로 가다니?”

그가 준 소시지를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운을 떼었다.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 줄 수 있지 않나. 계속 연락도… 주고받을 수 있고….

“너… 연옥동 떠난다고 너희 이모님께서….”

“아아, 맞아. 안 그래도 너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뒤이은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그래, 사실이구나. 소시지를 입에 넣고 억지로 씹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스는 다스답게 내 바로 옆에서 복스럽게 밥을 입에 퍼 넣었다.

“아무래도 서울 쪽이 공부하긴 좋다던데. 그래도 너무 시끄러운 곳은 싫고. 그 여자가 집 좋은 걸로 구해 준다니까 이왕이면 한강 보이는 곳으로 달라고 하자, 어때, 귤아?”

“…어?”

마지막 물음에 덜 씹은 소시지를 꿀꺽 삼키고 다스를 보았다. 다스는 뭐가 문제냐는 투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가 이내 눈치를 채곤 손을 뻗어 와 내 이마를 콩, 때렸다.

“아, 아파.”

“내가 너 두고 갈 줄 알았냐? 미쳤다고?”

멍하게 입을 벌리고 있자니 그 위에 다스의 입술이 쪽, 소리를 내며 닿았다가 떨어졌다.

“당연히 너 데리고 가려고 했지. 나 공부할 때 옆에 있어. 너 없으면 나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할 거니까.”

“지, 진짜…?”

그와 헤어지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그래. 너한테 선택권 없어. 넌 내가 가면 무조건 따라와야 돼. 그게 어디든.”

다스가 가는 곳이면 정말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었다. 맨발로 불 위를 걸어야 하더라도. 그는 나를 두 번이나, 아니, 백 번도, 천 번도 넘게 살려 준 내 은인이니까.

그를 만난 이후 매일 하루씩 목숨이 더해졌으니 하루에 한 번씩 다스에게서 구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너는 죽을 때까지 내 옆에서 못 벗어나. 알았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니 다스가 장조림에 든 메추리알을 콕 찍어 내게 내밀었다. 순순히 받아먹자 다스는 예쁘게 웃어 주었다.

***

다스는 팔을 제일 크게 다쳤다. 물리 치료를 오래 받아야 한다고 했다. 총을 맞은 쪽 어깨가 아직 아픈지 가끔 인상을 쓰곤 했다. 내게는 티를 안 내려 하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나는 발 말고 딱히 심각한 곳이 없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는데, 몸 여기저기가 많이 약해졌다며 수도 없이 검사를 했다. 무서운 기계에도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그때마다 다스가 내 옆에 있어 주었다. 보호자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에는 손도 잡아 주었다.

우리는 2인실을 나누어 썼다. 밥이 오면 반찬을 나눠 먹고, 번갈아서 서로의 침대에 붙어 잤으며 함께 잠들었다 깨어났다.

강태랑 민우가 병문안을 왔다. 수형이 어머니께서 보내 주셨다는 과일을 잔뜩 들고서 말이다. 다른 손에는 만화책이 한 박스였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이야기해.”

나는 매번 셋이 말 나누는 데에 방해가 되었으므로 이번에도 빠져 주려 했는데, 다스가 내 팔을 붙들기에 조금 놀랐다.

“어딜 가. 발도 불편하면서.”

곧바로 다스의 무릎 위에 안착하며 목발을 빼앗겼다. 다스는 내게서 빼앗은 목발을 침대 옆으로 내던져 버리곤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다스의 품에 안긴 채 애들이 이야기하는 걸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꼭 내가 인형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 줄 때보다 훨씬 기뻤다.

애들이 가고 나서 다스는 사과를 깎아 주겠다며 접시며 과도를 꺼내어 부산스레 굴었다.

“내가 예쁘게 깎아 줄게. 같이 먹자.”

아직 팔이 덜 나았는데 칼을 쓴다고 해서 불안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아무 말도 않았다.

다스는 사과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열심히 움직이더니 이내 예쁘게 자른 한 조각을 내 앞에 내밀었다.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였다.

“우와! 진짜 예쁘다.”

“얼른 먹어.”

먹기가 아까워 보고만 있으니 그가 직접 내 입에 사과 조각을 물려 주었다. 토끼 귀부터 아삭아삭 베어 물었다. 괜히 웃음이 나와 비실거리자 다스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응시했다.

“왜, 왜 그래?”

내가 너무 바보같이 웃었나. 아니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괜히 뺨을 더듬는데, 들고 있던 사과와 과도를 던지듯 내려놓은 다스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왔다. 이내 입술이 닿았다.

입 안으로 다스의 혀가 침범했다. 맞닿은 입술에서는 사과 향이 짙게 났다.

***

병실에서 같이 지내며 백용태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다스에게서 더 들을 수 있었다.

“흑매파가 사실 이전 보스 때부터 국천시 관광 사업을 노려 왔거든. 애초에 시장은 줄 생각도 없었는데 헛물 켠 백용태가 제대로 빡이 친 거지.”

하긴, 시에서 하는 관광 사업이라니 합법적으로 세력도 늘리고 돈도 벌 것이다. 얼마나 좋았을까.

국천시에서 자기들 사업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 백용태는 애들을 모아 직접 카지노와 호텔에 쳐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무모한 생각이었다.

때마침 다스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증거가 경찰 쪽을 움직이게 해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놈들이 카지노에 쳐들어오기 전에 경찰이 먼저 칠 수 있던 거고.

좁은 환자용 침대에 마주 보고 누운 채 이야기를 하던 다스가 손으로 내 코를 살짝 쥐었다 놓았다.

“대신 귤이 네가 문제였어.”

“내, 내가?”

코를 잡았던 손은 턱을 매만지고 가슴 쪽으로 내려왔다.

“너 구하는 건 경찰들이 할 수 있는데, 경찰이 너를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네 아버지한테 넘겨야 하거든.”

“…아.”

아직도 법적으론 아버지가 내 보호자니까.

“그렇다고 해서 어딘지도 모를 보호소 같은 데 보내서 남 손 타게 하기는 뒈져도 싫고…. 그러니 내가 먼저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는 수밖에.”

어느새 옆구리를 파고든 손이 간질간질했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다. 나 때문에 그렇게 위험에 뛰어든 다스가 혹시라도 잘못되었다면.

“그, 그래도 너무… 위험했던 것 같아….”

조심스레 말하며 그의 품에다 얼굴을 묻자 다스가 자연스레 내 등에 팔을 둘렀다.

“내 건 내가 챙겨야지. 그럼 등신처럼 남이 손대는 걸 보고 있어? 씨발, 몸만 멀쩡했어도 너 진작 데리러 갔을 텐데….”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쉰 다스가 몸을 조금 떨었다.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의사가 꼭 안정하라고 했는데….

“…내가 너한테 심한 말 해서, 많이 놀랐어?”

나를 쫓아내고 꺼지라고 하던 다스의 얼굴이 떠올라서 다시 마음이 조금 아렸다. 아무 말도 않았지만 다스는 다 안다는 투로 내 등을 어루만졌다.

“어떻게든 나랑 멀어지면 그 새끼가 너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 백용태는 카지노 칠 준비 하려고 여기저기 병합하면서 자기편 만드는 데만도 정신 없었거든.”

역시 다 이유가 있던 거였구나. 내가 괜히 다스네 집에 돌아가고 알짱거리는 바람에 백용태한테 잡힌 거겠지. 나는 다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다 이해한다고 말하려는데 그의 손이 내 등을 부드럽게 쓸다 어깨를 꾸욱, 쥐었다.

“…미안해.”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했다.

“미안해, 귤아. 혼자 둬서. 너한테 미운 말 하고 아프게 해서.”

나를 안은 다스의 몸은 곳곳에 상처가 그득했고 그만큼 뜨거웠다. 나를 단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그 품을 있는 힘껏 마주 안았다.

“…나도… 미안해.”

그 품을 다시는 벗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도 미안해. 다스야.”

품에 대고 말하자 다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네가 뭐가 미안해, 바보야.”

다스의 팔이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수없는 상처를 달고도 나를 놓지 않겠다는 투로 안는 그 몸이 좋았다. 세상 그 어느 것이 덤벼도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는 정말로 떨어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래도 미안해.”

작게 속삭이며 품을 더 파고들자 다스가 내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

다스는 나를 정성껏 간호했다. 자기 몸도 만신창이면서 말이다. 화장실이라도 가려 하면 꼭 이전처럼 번쩍 들어다 데려가곤 했다.

“아프면서 그냥 누워 있어…. 화장실은 나 혼자서도 갈 수 있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다스가 훨씬 더 상태가 안 좋았기에 수발을 받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를 이길까.

“거짓말 마. 네가 나 없이 어떻게 화장실에 혼자 가.”

하여튼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런데 사실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요의를 느끼면 발기했고 그의 손이 딱딱해진 내 성기를 만져 주길 바랐다.

다스는 내 몸을 번쩍 안아 들고 병실에 딸린 욕실로 갔다. 환자가 되어서도 다스는 여전히 힘이 셌다.

오랜만에 그에게 안겨 화장실에 가자 요의가 없는데도 성기가 딱딱해졌다. 그가 변기 앞에 나를 세우고 환자복 바지 안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 것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오랜만에 닿는 손 감촉이 소름 끼칠 만큼 좋았다.

“그동안도 나 없어서 고생했지? 내 손 없이 어떻게 혼자 쉬했어?”

“모, 못 했어, 잘….”

다스의 손이 발기한 내 성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등 뒤로 철컥, 하고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은 다스의 손에 착실하게 반응했다.

“우리 귤이 자지 많이 아팠겠다.”

어쩐지 안심하는 듯한, 혹은 기분이 좋은 듯한 어투였다. 경박한 말에 내 성기는 더 딱딱해졌다.

사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내 등에 닿는 다스의 체온과 익숙하게 내 페니스를 감싸 쥐는 손바닥 감촉, 그리고 귓가에 닿는 낮고 다소 느긋한 목소리.

성기를 감싼 그의 손이 부드럽게 오르내렸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이 닿기만 해도 찌릿하고 좋았다. 사정감을 참으며 고개를 떨구자 그의 손이 내 턱을 쥐고 당겼다. 목이 옆으로 꺾이며 입술이 닿았다.

“읍….”

혀가 파고들고 호흡을 빼앗겼다. 숨이 막혔지만 기분은 좋았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다스랑 하는 입맞춤을.

“너랑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몰라.”

더 숨을 못 쉬겠다 싶을 때에 떨어지며 하는 말에는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다스가 내 귓바퀴를 살짝 깨물었다. 숨결이 한껏 거칠어진 게 느껴졌다.

“너무 하고 싶었는데… 딸도 안 쳤어. 쌓았다가 다 너랑 하려고.”

사실 혼자 자위하는 다스는 끝내주게 섹시하기 때문에 그 말만으로도 나는 흥분했다. 딱딱한 감촉이 꼬리뼈에 닿았다. 다스가 내 바지와 자기 바지를 차례대로 내렸다. 물컹하고 따뜻한 살덩어리가 느껴지자마자 또 흥분되었다.

내 페니스를 문지르는 다스의 손길이 조금씩 빨라졌다. 나는 허리를 뒤로 빼며 그의 것을 보챘다. 소리 내어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하고 싶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다스의 숨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귓등부터 턱까지 찌릿하게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와 몸이 닿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지. 꼭 몇 년은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반가웠다. 이제야 그와 재회했다는 실감이 나기도 했다.

그가 허리를 뭉근하게 움직이자 꼬리뼈가 프리컴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다스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지자 내 감각도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조금만 더 하면 다스의 손에 사정할 것 같았다.

위험하다 싶을 때에 다스가 내 것을 놓고 대신 바지를 아예 바닥까지 끌어 내렸다. 속옷도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내 한쪽 다리가 그의 손에 붙들려 올라갔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 넘어질 것 같기에 앞에 있는 세면대를 황급히 쥐었다. 다스의 다른 쪽 팔이 안심하라는 투로 내 허리를 단단히 감아 안았다.

뒤이어 아래쪽으로 다스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수백 번도 더 그를 받아들여 본 밑은 몇 번 헤집지도 않았는데 금세 풀어졌다.

“의사 선생님 오면 어떡해….”

“오늘 회진 없어.”

그래도 간호사 선생님이 혈압을 잰다느니 체온을 잰다느니 하며 자주 들어오는데…. 불안해하고 있자니 다스가 안심하란 투로 내 어깨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괜찮아, 괜찮아…. 착하지….”

다스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꼭 아이 다루듯 어르자 놀랍게도 몸이 먼저 차분해졌다. 늘 그랬듯이 아래쪽은 다스를 빨리 받아들이고 싶어 안달을 냈다.

아래를 헤집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대신 묵직한 살덩어리가 짓눌렸다. 오랜만이긴 해서인지 쉽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벽에다가 주먹을 두드리듯 뻑뻑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조금 얼어붙었다.

“힘… 빼 봐.”

빼란다고 그렇게 쉽게 빠질 리가…. 세면대를 짚은 채 끙끙거리고 있자니 다스는 더 들어오지 않고 내 어깨와 정수리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귤아….”

“으, 응.”

“너한테서 아직도 내 냄새 난다.”

아직 입고 있는 환자복 상의 안으로 손이 파고들었다. 단추 몇 개를 톡, 톡 풀어낸 손은 헤매지도 않고 곧바로 내 유두를 찾아내어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 아….”

“내 냄새가 너한테 완전히 배었나 봐….”

다스가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정말 내게서 다스의 냄새가 날까? 한참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그 전까지는 정말 매일 붙어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세면대를 짚고 있던 손 하나가 다스의 손에 의해 떨어졌다. 중심을 잃을까 싶어 다시 뻗는 손을 그가 부드럽게 제 쪽으로 당겼다.

“짚지 말고 나한테 기대.”

한쪽 다리로만 선 채, 다른 쪽 다리는 다스에게 들린 어정쩡한 자세로 어쩔 줄을 몰라 하자 다스가 잡은 손을 좀 더 당기며 내가 그에게 등을 기대게 했다. 마치 춤을 추는 듯이 우리의 몸이 바짝 겹쳤다.

등에 닿는 체온이 무섭도록 달았다. 이렇게 좋아도 될까 싶게 말이다. 다스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서,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행복해서 내가 이걸 누려도 되나 싶었다.

“귤아, 귤아….”

다스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내 이름이 말해 주었다. 이건 현실이라고.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다고.

“다스, 야….”

귀두 끝만 걸쳐 있던 그의 페니스가 조금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오랜만이라 뻑뻑하고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아픔마저 달았다.

“빠, 빨리, 더, 넣어 줘.”

아직 반도 들어가지 않은 그의 것을 구멍으로 꽉꽉 조이며 보챘다. 빨리 끝까지 박아 주었으면 했다. 이전처럼 정신 못 차리게 머리채를 잡고 마구 쑤셔 줬으면 했다. 그러나 다스는 그러지 않았다.

“안 그래도 참고 있는데 보채지 마….”

‘참고 있다’는 말이 그렇게 야할 수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너 다 찢어진단 말이야.”

“찢, 어져도, 흑, 괜찮은데….”

나는 다스가 나를 아프게 해 주는 걸 좋아하는데. 알면서도 그리 말하는 다스가 야속할 만도 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설렜다.

“우리 귤이, 변태인 건 여전하네.”

쪽, 쪽, 귓바퀴와 목에 입맞춤이 이어졌다. ‘우리’ 귤이라는 호칭이 가슴 저리게 좋았다.

“난 네가 괜찮다고 하면 꼭 해 주기 싫더라.”

그 말이 왜 그리 달게 느껴졌을까. 이전이라면 다스가 왜 이러는지, 나랑 하는 섹스가 지겨워진 건 아닌지 걱정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달기만 했다.

“너 닮아서 나도 변태 새끼가 되어 가는 건지….”

다스는 내 허리를 붙든 채 조금씩 속도를 올렸다. 곧바로 끝까지 쑤셔 박지 않고 조금씩 느리게 들어오는 동작이 감질났다. 그러나 그만큼 좋기도 했다.

“사실 넌, 내가, 후, 어떻게 하든 좋아하잖아.”

“아, 으으, 읏, 아!”

“그게 가끔 마음에 안 들 때가 있거든….”

하지만 다스가 해 주는 건 뭐든 다 좋은 건 사실인데. 정말로 다 좋으면 어떡하란 말이야.

점차 강해지는 자극에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빼며 들썩거렸다. 한쪽 다리로만 체중을 지탱해야 하니 마음대로 허리를 움직이기 어려웠다. 키 차이 때문에 그마저도 발끝만 겨우 닿아 있었다.

다스의 페니스 감촉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안쪽 내벽을 뻐근하게 밀고 들어오는 묵직한 살덩어리가 버거웠다. 그리고 버거운 만큼 좋았다.

오랜만에 들어온 다스의 것이 내 안쪽을 뭉근하게 늘리는 게 느껴졌다. 그의 성기에 내 구멍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너… 오랜만에 하니까 엄청 조인다.”

말 안 해도 아는데 다스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 야했다. 나도 모르게 구멍을 더 조인 모양이었다. 다스의 신음이 후우, 하고 정수리 위에서 퍼졌다.

한쪽 다리를 들고 있던 다스는 더 참기 힘들다는 투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아예 내 다른 쪽 다리까지 번쩍 들어 올렸다. 허공에 몸이 들리며 구멍이 더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참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 어?”

느긋하게 움직이던 다스가 갑자기 허리를 빠르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안쪽을 드나드는 살덩어리가 어느 지점을 자꾸 스쳐 댔다. 그때마다 쾌감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아, 흐으, 아!”

M자로 벌어진 다리 사이에 묵직한 것이 멋대로 드나들었다. 몸은 다스의 움직임을 따라 맥없이 흔들렸다. 어느새 단추가 다 풀어진 환자복 상의가 정신없이 너풀거렸다.

나를 든 채로 쑤셔 박던 다스가 어느 순간 동작을 뚝 멈췄다. 안에서 페니스가 빠져나가는 감촉에 흠칫 떨었다.

바닥에 나를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다스는 덮인 변기 뚜껑 위에 나를 무릎 꿇게 했다. 엉덩이를 든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곧바로 삽입하지 않고 내 엉덩이를 빤히 보았다. 시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뭐 봐….”

창피해서 물었더니 아예 엉덩이 양쪽을 붙들고 벌리는 게 아닌가. 구멍이 활짝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위로 닿는 적나라한 시선도. 창피함에 허리를 뒤틀려 했으나 단단히 붙들려 그럴 수도 없었다.

“그동안 혼자 쑤시진 않았지?”

“호, 혼자 할 새가 어디 있어.”

다스한테 버림받은 줄 알고 여관에서 제대로 먹지도 않고 폐인처럼 지내다가 백용태한테 붙잡혔는데. 하는 말이 미워서 있는 힘껏 노려보자 다스가 특유의 웃음을 예쁘게 지었다.

“착하네.”

그가 하는 ‘착하네’ 한마디에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모조리 사라졌다. 벌어진 구멍에 닿는 시선은 여전히 민망했지만 그조차 일종의 자극이 되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벌써 부었다.”

구멍을 더듬는 손가락 감촉도 역시 자극적이었다.

“빨리, 넣어 줘….”

“너, 구멍 오물거리는 건 어디서 배웠어?”

넣어 달라니까 이건 또 뭔 소리야. 가뜩이나 몸이 잔뜩 달아올라 있는데 입구에서 손가락만 깔짝거리는 그가 얄미웠다.

“진짜 야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또 흥분하고 말았다.

다스는 좆을 박는 대신 내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헤집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좆에 박히던 구멍은 손가락이 주는 자극만으로는 모자란지 내가 의도치 않아도 자꾸 꾹꾹 조여 댔다.

안으로 들어온 다스의 손가락은 조금씩 더 깊숙한 곳을 더듬었다. 안쪽으로 들어오며 내벽 곳곳을 하나하나 짚는 손길이 꼼꼼하고 조심스러웠다. 다스는 손으로 하는 걸 대부분 잘한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으응, 으….”

어느 지점이 건드려지자 미치도록 기분이 좋았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어, 귤이 벌써 쌌다.”

그의 말에 아래를 보니 변기 위에 묽은 정액이 한 움큼 흩뿌려져 있었다. 언제 사정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스는 방금 누른 곳을 자꾸 꾹, 꾹, 연달아 눌렀다.

“여기가 좋은가 보네.”

“으, 으으, 응.”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후드득 액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사정한 것이었다. 엉덩이가 뻐근할 정도로 떨렸다. 감당하기 힘든 쾌감으로 몸이 뻣뻣해졌다. 벽을 짚고 있던 팔에 힘이 빠질 뻔했다.

“아, 흐으….”

다스의 손가락만으로 사정했단 사실에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의 좆을 넣고 싶단 생각이 더 컸다. 다스가 손가락 하나를 더 넣었다. 그리고 구멍을 고무줄 늘이듯이 좌우로 벌려 댔다.

“신기하다. 이렇게 작은 곳에 내 좆이 다 들어가는 게.”

수도 없이 쑤셔 박아 놓고 새삼 그런 말은 또 왜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박았는데 헐거워지지도 않아, 네 거는.”

헐거워지지 않는단 말은 그래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무릎을 꿇은 채 벽을 짚고 끙끙 앓고 있자니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도로 닫힌 구멍에 다스의 페니스가 다시 들어왔다.

“하으…!”

곧바로 반 이상 밀고 들어온 살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박는 대로 정신없이 느꼈다. 다스의 허벅지가 내 엉덩이에 탁, 탁, 소리를 내며 부딪칠 때마다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휘청거리는 몸이 옆으로 쓰러질 것 같을 때에 다스가 내 상체를 바짝 껴안았다. 벽을 어설프게 짚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다스가 내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귤아….”

어깨에 닿는 내 이름이 뜨거웠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돌아 버릴 것 같아.”

내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몸도 뜨거웠다. 등으로 다스의 심장 박동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 역시 흥분하고 있단 사실이 미치도록 좋았다.

“나, 나도, 좋, 아.”

섹스할 때 그에게 이런 표현을 해 본 적이 드물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매번 헐떡거리기 바빴던 것 같다. 물론 다스와 몸을 섞는 행위가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니 구태여 말하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한참 움직이던 다스가 갑자기 허리를 뚝 멈췄다. 한창 좋았는데, 뭐지…. 아쉬움에 돌아보려는데 다스가 내 어깨를 가볍게 한 번 깨물었다.

“다시 말해 봐.”

뭘…? 그냥 좋다는 말밖에 안 했는데…. 멍하니 있자 그가 재촉하듯 멈춰 있던 페니스를 조금 더 밀어 넣었다. 안달이 나서 몸을 살짝 떨었다.

“빨리.”

“조, 좋아….”

얼른 내뱉자 만족한 듯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낮게 울렸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섹스할 때 웃는 다스는 위험할 정도로 야하다. 특히 뒤에서 웃음소리만 들려줄 때엔 더더욱.

그가 내 상체를 안은 채 다시 움직였다. 몸 전체가 들썩거렸다. 다스의 힘에 맥없이 흔들리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다시 한번 사정했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몸이 금방 달아오르고 사정도 빨라 부끄러웠다.

“귤아.”

“으, 응.”

“너 너무 야해.”

야한 건 자기면서 누구보고 야하대…. 뭐라 대답도 못 하고 있자니 안으로 들어온 그의 것이 더 커지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다스가 움직일 때마다 진득한 쾌감이 등줄기를 훑었다. 무언가가 내 머리 위에서 펑, 펑, 폭죽 같은 것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환자복 상의는 벌어져서 멋대로 너풀거렸다. 다스의 숨결이 얼굴 옆으로 화하게 쏟아졌다.

“으, 으응, 으….”

내벽에 닿는 페니스 감촉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울퉁불퉁한 다스의 페니스 모양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또 아래쪽이 조여들었다.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 듯했다.

“나, 흐으, 힘들, 어….”

“으응, 힘들어? 나가서 하자.”

다스가 삽입한 채로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욕실 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밖에 간호사나 의사가 와 있지 않을까 움츠렸으나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나를 안아 든 채 병실 문을 잠근 다스는 곧장 침대로 가서 나를 바로 눕혔다. 내려놓는 동작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침대가 등에 닿자마자 다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의 아래 깔린 채 목에 손을 감고 매달렸다.

다스가 등을 웅크려 내게 입을 맞추었다. 혀가 얽히고 숨이 섞였다. 이렇게 진득한 키스 역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가 키스를 멈추지 않고 환자복을 벗었다. 배에 감긴 붕대에 내 페니스가 닿았다. 바짝 발기해서 프리컴을 줄줄 흘리는 것이 그의 다친 몸에 닿는 게 어쩐지 미안했고, 또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기분은 좋았다.

붕대의 까슬한 감촉이 페니스 끝에 연신 스쳐 몹시 자극적이었다. 귀두 끝에 붕대가 닿을 때마다 그의 상처 위에 사정할까 봐 잔뜩 긴장해야 했다.

“잠, 깐만….”

“싫은데.”

이러다 진짜 네 배에다가 사정할 것 같단 말이야. 애원이라도 하고픈 심정인데 다스는 속도 모르고 더 몰아쳤다. 어찌나 바짝 쑤셔 박았는지, 박을 때마다 내 허벅지에 그의 고환이 부딪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섹스 중에 네 말 들어준 적 있어?”

다스의 물음에 나는 이전 우리의 섹스들을 떠올렸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다스가 내 말을 들어준 적이 거의 없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꼬박꼬박 뭘 요구하더라, 너는. 후우, 귀엽게.”

요구한 거 아닌데…. 와중에도 페니스가 자꾸 그의 붕대에 짓눌려 미칠 지경이었다. 붕대 아래 복근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친 상태에서 이렇게 힘을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다스는 거칠게 움직였다.

“하, 으응, 으….”

그의 배에 짓눌린 페니스가 금방이라도 사정할 기세로 쾌감을 끌어모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내 배와 그의 붕대 감긴 배가 함께 젖는 게 느껴졌다.

“그, 만, 흐으, 그만하라고, 흑, 했잖, 아….”

“응, 그랬어?”

애원하는 내 말은 듣지도 않는 투로 다스는 계속 움직였다. 이번에는 아예 허리를 곧추세운 채로 퍽, 퍽, 빠르게 박아 댔다.

다리가 양쪽으로 벌어진 채 맥없이 흔들렸다. 그 사이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는 다스는 꼭 퓨즈가 하나 나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커다랗게 뜨인 눈은 분명 나를 보는데도 초점이 없고, 이마에는 핏발이 도드라졌으며 턱 근육은 굳어 있었다.

“흐으, 다, 스야….”

“응. 귤아.”

귤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제법 거친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또 사정할 것 같았다. 그의 상처투성이 몸에다 내 더러운 정액을 자꾸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있는 힘껏 절정을 참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조, 금만, 흑, 천천. 히….”

“응, 응.”

대답은 곧잘 하면서 다스는 오히려 움직임을 더 빨리했다. 그냥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강해졌다. 이러다 옆 병실에까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와중에 신음이 크게 터질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얼핏 무표정해 보이던 다스의 얼굴이 설핏 구겨졌다.

“왜? 소리, 후, 들릴까 봐?”

물음 사이에 섞인 숨소리가 야했다.

“듣고 티 내는 새끼 있으면, 내가, 귀에다가 못이라도 박아 버릴 거니까, 걱정하지 마.”

하여튼 말 살벌하게 하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다스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아서 차라리 내가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가 입을 틀어막은 내 손을 하나씩 떼어 냈다. 그리고 양 손끝에다 입을 쪽, 쪽, 번갈아 맞추었다. 허리를 빠르게 움직이던 동작이 조금 느려졌다. 완전히 맛이 간 것 같던 눈이 그나마 조금 돌아왔다.

손끝을 향했던 그의 시선이 내가 낀 반지에 고정되었다. 다스가 준 반지.

“안 잃어버리고 잘 끼고 있었네.”

“네가, 흣, 준, 거니까….”

“착하다.”

그가 준 것이라면 반지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도 당연히 잃어버리지 않고 목숨처럼 갖고 있을 거다. 내가 이 반지 때문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그는 알까. 내게는 성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다리를 양쪽으로 한껏 벌린 다스가 느리게, 그러나 깊이 움직였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찌릿한 쾌감이 몸을 꿰뚫고 정수리까지 퍼졌다.

“으, 으읏….”

신음을 크게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다스가 다시 허리를 숙여 내게 입을 맞춰 왔다. 쪽, 소리를 내고 떨어지는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몰아치는 아래와는 딴판이었다.

“입술 깨물지 마. 혼난다.”

입을 막지도 못하게 하고, 깨물지도 못하게 하면 어쩌란 거야. 억울했다.

“자꾸 깨물면 내가 다 씹어서 피 나게 만들 거야.”

뒤이은 말에는 더 억울했다.

“내, 흣, 내가 깨무는 건 안 되고, 네가, 읏, 하는 건 돼?”

“응, 당연하지.”

다스는 복수라도 하겠다는 투로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신음할 새도 없이 숨만 겨우 꺽꺽 몰아쉬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몸 안에 휘몰아쳤다.

“오랜만이라고 말도 잘하네, 귤이.”

그러고 보니 내가 섹스할 때 이렇게 말을 많이 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나도 오랜만이라고 안달이 난 걸까.

허리 움직임은 멈추지 않은 채, 다스가 손가락으로 내 배를 슬그머니 쓸었다. 이미 싸 놓은 정액이 손가락 움직임 따라 이리저리 번졌다.

“내가 섹스할 때 말하지 말라고 한 거, 기억 안 나?”

…기억났다. 섹스할 때 말하면 혼난다고 그랬었지. 다스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말이다.

입을 꾹 다문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허리 움직임은 여전히 감당하기 힘들 만큼 빨랐다. 다스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으, 흡….”

“자꾸 내가 못되게 굴게 되잖아.”

내 표정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했다. 분명히 못나게 일그러져 있겠지.

“그러니까 남한테는… 이런 표정 보이지 마…. 함부로 보이면, 후, 얼굴 그어 버린다.”

“아, 흑, 아, 알았, 어.”

하여튼 말은 사납게 하지. 하지만 다스라면 진짜 그어 버릴 수도 있단 사실을 알았다.

그는 나를 놔주지 않을 기세로 계속 몰아쳤다. 밤이라 다행이지, 낮이었으면 간호사 선생님이 진작 몇 번이나 들어왔을 시간이었다.

몇 번이나 쌌는지 배는 축축해져서 정액이 고이다 못해 옆구리로 흐를 정도였다. 들키지 않아도 침대가 푹 젖어서 섹스한 티가 날 것 같았다. 환자복은 이미 이전에 엉망이 되었고 말이다.

흐릿해진 시야로 다스를 올려다보았다. 곳곳에 붕대를 감은 몸은 여전히 섹시했다. 조금 더 살이 빠져서 이전보다 날렵해 보이기까지 했다. 날이 선 육식 동물 같은 근육은 보고만 있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멋있었다.

“흐으, 하….”

버둥거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다스가 흔드는 대로 맥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다스가 눈으로 내 몸을 훑었다. 엉망이 된 상체를 지나 그의 손에 들려 달랑거리는 다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허리를 옆으로 비튼 그가 내 붕대를 감은 쪽 발에 돌연 입을 맞췄다.

“내가 만든 상처인데… 그 씹새끼가, 씨발, 하아, 함부로 손을 대서….”

그리 말하는 다스는 얼굴이 차게 식어서 더 화가 나 보였다. 다스가 화가 나는 게 싫었다. 백용태는 이제 한동안 징역을 살 텐데 지난 일 때문에 그가 화를 내는 게 속상했다. 내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내게 집중해 주었으면 했다.

“네가 낫게, 흑, 해 주, 면… 되잖아….”

애초에 그의 손으로 내었던 상처니까, 그의 손으로 나으면 되는 거잖아. 나는 다스처럼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다스의 마음을 온전히 파악하지도 못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연 그의 움직임이 뚝 멈추어서 내가 말을 잘못했나, 또 괜히 나댔나…. 흐린 시야로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도 그는 화를 내는 대신 허리를 숙여 왔다. 다시 입을 맞추었다.

더 쌀 것도 없다 싶을 정도로 시달리고 나서야 다스는 나를 놓아주었다. 온몸이 정액으로 푹 젖은 데다 손가락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아, 으읏, 자, 깐마아….”

혀가 다 풀린 목소리로 겨우 말했으나 들을 다스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구멍에 감각이 없어질 만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감각은 갈수록 더 치솟기만 했다. 얼얼하다 못해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다스의 딱딱한 페니스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떨어져 있는 동안 쌓인 걸 다 풀기라도 할 듯이 그는 작정하고 나를 괴롭혀 댔다.

그로부터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 모를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한참 움직이던 다스가 벽 쪽을 보고는 속도를 늦췄다.

“어, 다섯 시 다 되어 간다. 곧 간호사 오겠네.”

“으, 으…?”

벌써 다섯 시라고…? 그럼 밤새도록 이 짓을 했다는 건가. 믿기지 않아 뻣뻣한 목을 옆으로 틀자 정말로 창가가 검정에서 검푸른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스가 자세를 고치더니 페니스를 깊숙이 박았다가 빼내길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 지나지 않아 안쪽에 쏟아지는 끈적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다스의 신음이 귓가에 쏟아졌다. 그는 오래도록 내 안에 사정했다. 그득하게 찬 정액이 흘러나오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스는 한참 헐떡거리고서야 아주 느리게 내게서 빠져나갔다. 그 조심스러운 동작마저도 자극적이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어 그저 널브러져 있자니 그가 티슈로 내 아래쪽과 배를 닦아 주었다. 구겨져 있던 환자복 상의도 도로 입혀 주었다. 내가 해도 된다고 말하기에는 손길이 너무 달았다.

“일단 오늘은 바지 없이 자고, 아침에 같이 씻자. 알았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스가 모로 누워 팔을 벌려 보였다.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땀에 젖은 몸이 선득할 만도 한데 다스의 체온이 높아서 하나도 춥지 않았다.

숨을 고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스의 말대로 간호사가 와서 아침 약을 주고 우리 둘의 혈압과 체온을 재었다.

“같은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고 했죠?”

간호사가 핀잔을 주었다. 사실 이전에도 같은 침대에서 자지 말라고 혼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나.

“그래도 친구끼리 사이좋아 보여서 좋네.”

활짝 웃으며 뒤이어 하는 말에 다스랑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아 참, 얘 붕대도 새로 갈아 주세요.”

“왜요? 아까 낮에 갈았잖아.”

내가 말하자 간호사가 의아해했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액 범벅이 되었다고 사실대로 말할 순 없으니. 다스가 대신 대답해 주었으면 했지만 그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하고서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더러워진 것… 같아서요.”

“그래요. 이따 아침 먹고 드레싱하면서 갈아 줄게요.”

별로 의심하진 않는 듯해 다행이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우리는 한 이불을 뒤집어쓰곤 킥킥거렸다. 몹시 피곤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했지만 그보다 기분 좋은 게 더 컸다.

나를 안은 다스는 뜨거울 정도로 따뜻하고 또 다정했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 왔고, 나는 이 새벽이 한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입원해 있는 동안 다스의 이모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정치 일 때문에 바빠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백용태 일도 마무리를 해야 할 테고.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몰라도 다음에 꼭 얼굴을 뵙고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 다짐했다.

아직 형량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백용태는 최소 징역 15년은 받을 거라고 했다. 마약 불법 유통뿐만 아니라 ‘블랙호크’의 탈세 의혹과 폭행 등 혐의가 여러 가지였다. 그가 보스 자리에 오르면서 요직에서 물러난 다른 놈들이 앙심을 품고 적극적으로 증언한 덕도 있다고 했다.

“그냥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다스는 자꾸 백용태를 자기 손으로 죽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랬다간 다스가 위험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다스가 내게 빗을 내밀고는 등을 보이고 앉았고, 나는 자연스레 다스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제법 길어서 자를 때가 된 듯했다. 머리칼은 여전히 부드럽고 매끈했다.

“십오 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짧아.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

“내가 너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게 준비할 시간.”

뭘 준비한다는 걸까. 다스는 지금까지도 나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었는데.

“공부 뒈지게 열심히 하고, 돈도 미친 듯이 벌 거야. 그렇게 아무도 나랑 너한테 함부로 굴지 못하게 할 거야. 백용태가 다시 나오든, 다른 어떤 놈이 오든.”

그리 말하는 다스는 진지하고 결의에 차 보였다. 평소에 장난기도 많고 설렁설렁한 편인 다스라서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보니 나도 괜히 긴장이 되었다.

“나도… 공부할래.”

나는 다스만큼 머리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뭔가를 배울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다스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네가 못 하면 내가 너 보호해 주면 되잖아.”

내 딴에는 큰 용기를 내어서 말했다. 그가 비웃을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진심이니까.

“나도 돈 많이 벌어서 너 보호하면 돼. 서로 하면 되는데, 왜 혼자 하려고 해.”

나답지 않게 너무 건방진 말인가, 하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지만 말을 물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나도 너 하는 거 같이하고 싶어. 혼자 집에만 있는 것도 싫고, 나만 너 기다리는 거도 싫어. 이제 나도 너랑 같이 다닐래. 공부도 같이하고,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할 거면 나도 같이할래. 그리고 내 용돈은 이제 너한테 신세 안 지고 내가 벌래.”

한번 말이 터지자 생각도 하지 않았던 말들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다스는 내 말을 막지 않았다. 다만 나를 돌아보며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나, 연극도 배울 거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었다. 그제야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다. 손바닥에 감은 그의 머리끈이 입술에 닿자 정신이 좀 들었다. 미쳤나 보다, 손규인. 다스한테 소리를 지르다니.

다스가 속 쌍꺼풀 진 눈을 크게 뜨고 깜박, 깜박 하며 나를 마주했다. 당혹감이 얼굴에 묻어났다. 역시 너무 나댔나…. 하지만…. 입을 가렸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연극… 해도 돼?”

눈치를 보며 뒤늦게 덧붙여 물었다. 당혹스러워하던 다스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 비슷한 게 떠올랐다.

“우리 귤이, 많이 컸네. 꼬박꼬박 말도 할 줄 알고.”

그가 다시 뒤돌아 앉았다. 나는 다스의 머리칼을 살살 모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그래도 병실에 있는 동안 몇 번 해 봤다고 이제는 머리 묶어 주는 것도 좀 익숙해졌다.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머리끈을 마무리하고 손을 떼었다.

“연극하고 싶어?”

다시 돌아보며 묻는 말에 조금 망설였다.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화를 내고 내가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할까. 또 내 발을 부서뜨릴까.

사실 다스의 집에 갇혀 지내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발이 부서지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진짜 무서운 것은 그와 나 사이를 갈라놓을 어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나 내 머리 위를 침범하고 나를 가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하진 못해도 연극을 한다면 다시 그것들이 몰려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 하고 싶어.”

또박또박, 확실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 마음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내가 반대해도?”

뒤이은 물음에 조금 움찔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나는 다스 너랑 같이 지내고 싶어. 그리고 연극도 하고 싶어. 둘 다 하면 안 돼?”

나를 마주한 다스의 표정이 묘했다. 꼭 충격을 받은 듯 보이기도 했다.

“둘 다 해도 되는 거잖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다스 옆에 머물겠다는 건, 내 욕심일까.

“…연기하는 나는 네 옆에 못 있는 거야?”

다스가 입을 한 번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표정에서 놀란 티가 가시고 순식간에 조금 진지해졌다. 같은 나이인데도 다스는 이렇게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가 가끔 있었다. 그 점이 나는 부럽고 또 멋있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뒤이은 대답은 꿈같았다.

“진짜?”

“응. 대신 학원은 다 내가 알아볼 거야.”

행여 다스가 말을 번복할까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그리고 연극이든 알바든 너 어디 나가서 다른 새끼한테 웃어 주면 진짜 얼굴 그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았어….”

뒤이은 말에는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기분은 여전히 좋았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지 마. 못생긴 게.”

뒤이은 다스의 말이, 내가 못생겼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서 결국 히히, 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

우리는 일주일을 입원하고 나란히 퇴원했다. 다스도 나도 물리 치료를 위해 주기적으로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병원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다스 이모가 말했던 대로 우리는 연옥동으로 가지 않았다. 멋진 경호원 같은 남자가 차를 태워 줬는데, 도착한 곳은 끝내주게 으리으리한 오피스텔이었다.

거실은 아늑했고, 흑매파 건물에서 백용태가 지내던 으리으리한 곳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주방도 예전 살던 다스네 집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디귿 자로 된 바형 식탁은 TV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 냉장고도 크고, 유리 벽으로 가려진 침실 공간도 포근해 보였다.

그리고 제일 놀라운 건 거실 전면 창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

“…저거, 바다야?”

어마어마하게 넓은 물의 밭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 너머에는 높은 빌딩들도 보였다.

다스가 내 뒤로 와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전면창에 우리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우리 귤이, 한강 처음 보는구나.”

“저게 한강이야?”

“응.”

그러고 보니 한강은 TV에서 몇 번 본 적 있는데, 그때 보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이렇게 큰 줄은 몰랐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어깨에 닿는 다스의 입술이 느껴졌다.

“한강의 ‘한’ 자가 원래 크다는 뜻이래.”

그렇구나. 하여튼 다스는 별걸 다 안다. 고개를 틀어 나를 안은 다스를 돌아보았다. 손으로는 내 쇄골 위를 감싼 손등을 매만졌다. 다시 반지를 주렁주렁 낀 손은 이전보다 흉터가 더 많아졌지만 여전히 크고 단단했다.

“나, 저기 놀러 가 봐도 돼? 나중에.”

“응, 당연하지. 저 위에 지하철도 지나다닌다?”

“그건 나도 알거든?”

완전 촌놈처럼 취급하는 게 억울해서 괜히 쏘아붙였더니 다스가 예쁘게 눈을 휘어 웃었다.

“지하철도 타고, 여의도도 구경 가고, 오리배도 타고 하자.”

다스가 하는 말이 죄다 꿈처럼 달아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쪽 손으로 내 앞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오토바이도 타고?”

“아니, 차 타고. 나 이제 오토바이 안 타려고.”

“진짜?”

“응. 면허 딸 거야.”

반가운 말이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다스는 솔직히 끝내주게 멋있지만, 그래도 자동차가 더 안전하긴 하니까.

“그럼, 면허 따기 전에는 택시 타고 가자….”

조금 눈치를 보며 말하자 다스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래, 그러자. 매일 가고 싶으면 매일 가자.”

다스 공부해야 하면 매일은 좀 그런데, 생각하며 나는 그의 어깨에 슬쩍 이마를 대었다. 다스가 나를 꽉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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