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꿈속의 꿈 (2) (9/22)

아침마다 박아 준다는 다스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아래쪽 구멍으로 쑤셔 들어오는 살덩어리 감촉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잠, 깐만, 나, 흐으….”

아침 발기와 요의, 그리고 아래쪽에서부터 시작된 쾌감이 뒤섞여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깨어나면 다스는 내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깼어?” 하고 물은 뒤 속도를 올려 처박았다.

아침마다 쑤셔 박히는 일은 힘들었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다스가 꼬박꼬박 젤을 써 준 덕분에 잠결에 밑이 찢어지는 일은 없었다.

매일 다스와 하는 섹스로 아침을 시작하니 좀 어색하기도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좆을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박아 주진 않은 그였으니 말이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중요한 사실은 그와 내가 한집에 함께 있고, 그가 내게 다정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충분해야 했다. 백용태와 관련된 일이 해결되지 않았어도, 내 안에 박힌 가시 같은 것이 자꾸만 튀어 오르려 하더라도. 나는 홍다스만으로 충분해야 했다.

불안할 건 없었다. 발은 조금씩 나아 가고, 다스는 내 곁을 내내 지켰으니. 그런데 왜 자꾸 똑같은 악몽을 꾸는지 모르겠다.

매일 같은 꿈이었다. 무대 위에 서서 소리를 내려는데 소리를 낼 수 없는 꿈. 주변에는 어둠만 가득하고, 나는 혼자였다.

두려움에 떨다가 깨면 내 위에서 다스가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안도했다. 현실로 돌아왔구나. 다스가 있는 세상에서 무사히 오늘을 보내겠구나, 하며.

다스는 내게 하루에 두 번씩 약을 주었다. 낮에 먹고 잠들 때는 꿈을 꾸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스가 나를 두고 어디 나갈까 두려웠다.

“괜찮아, 자도 돼.”

그는 내 불안감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켜 주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낮잠에서 깨어나면 하루 종일 멍한 것도, 자꾸 머리가 아프고 둔해지는 것도. 모두 괜찮았다.

늦여름의 더위가 유독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집 앞에서 실컷 킥복싱인지 뭔지 하며 몸을 움직이고 들어온 다스가 수건을 목에 걸치곤 거실 바닥에 앉아 TV를 켰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에어컨을 틀고 담요로 몸을 감쌌다. 다스보다 내가 훨씬 더 추위를 많이 탔다.

“있잖아….”

다스가 다소 사나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저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더니 이제 다른 걸로 부르네. 혼날래?”

“…다스야.”

얼른 고쳐 부르자 표정이 조금 풀린다.

“요즘 백용태한테서는 연락 안 와?”

“응, 안 와.”

거짓말인지 뭔지 알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대답한 다스가 일어나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냉장고 속 콜라 캔 하나를 따서 시원하게 들이켜는 그의 옆모습을 훔쳐보다가 TV로 시선을 돌렸다.

TV에는 정치 관련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려다가 손을 멈췄다. 화면에 내가 아는 얼굴이 나와서였다.

“다스야, 얼른 와 봐.”

다스가 양손에 콜라 캔과 물컵을 들고 왔다.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내 눈이 맞았다.

“저분… 너희 이모 아니셔?”

그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대신 내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아 그대로 TV를 꺼 버렸다.

“약 먹자.”

이 약을 먹으면 또 낮잠을 자게 되고, 나는 그동안 다스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그가 내 옆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 그리고 일어나면 또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있겠지.

그럼에도 나는 약을 받아 삼켰다. 다스가 내게 주었으니까.

TV에서 연설 같은 것을 하던 그 여자분의 얼굴도, 다스가 마신 콜라의 단내도 모두 부옇게 사라지겠지. 차라리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일지도 몰랐다.

나의 하루는 졸음과 멍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않고 앉아 있으면 가끔 다스가 부르는 말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내 생활에다 무언가 불투명한 것을 탄 것 같았다.

집 창문에는 죄다 쇠창살 같은 것들이 더해졌다. 본래 1층 주방에 있는 작은 창문이랑 2층 창문에만 보안 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1층 전면 창에도 창살이 설치되어 바깥의 풍경을 조각조각 나누어 버렸다.

2층 침실 창문에는 기존에 있던 가느다란 창살 위에 굵은 쇠창살이 더해졌다. 창문이 열린 걸 본 지도 오래된 듯했다.

‘나가고 싶다….’

멍하니 생각했다가 내 생각에 내가 화들짝 놀랐다. 나가고 싶다니. 여기가 내 집인데.

‘아냐. 나가면 안 돼.’

밖에 나가면 죽을 거란 다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그런 생각조차도 해선 안 되었다.

다만 전면 창에 드리운 거대한 쇠창살들을 보면 기분이 좀 묘하기는 했다. 숨이 갑자기 턱 막힐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 그림자를 찾았다. 어둑한 자국 같은 내 그림자를 보면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게 실감이 나서 차오르던 숨이 조금 나아졌다.

물론 나를 제일 확실하게 안심시키는 건 다스였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다스의 얼굴과 마주한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물론 아래쪽에 박히는 뻐근한 감각은 좀 버겁지만….

“으응…?”

그런데 오늘 아침은 어쩐 일인지 박히는 감각이 없어 이상했다. 고개를 들자 다스가 알몸으로 다리 사이에 앉아 내 장골과 아랫배를 살살 만지고 있었다. 언제 발기했는지 모를 내 페니스가 면구스럽게 고개를 들고 쾌락을 찾았다.

“다스야…. 빨리….”

왜 오늘은 눈뜨기 전부터 박아 주지 않는 거야. 잠에서 다 깨지도 못한 채 다스의 손을 끌어다 내 몸을 마구 만지게 했다. 다스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 닿았다.

“빠, 빨리, 해 줘. 응?”

보채면서 허리를 위로 올려 치자 다스가 내 허리를 꾹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딱 죽을 맛이었다. 매일 아침 박힌 기억이 몸에 남아서 내 구멍은 벌써 다스의 것을 문 것처럼 벌름거리며 조여들었다.

“박아 줘, 빨리, 박아 줘. 세게 박아 줘.”

창피한 줄도 모르고 허리를 올려 치려 애쓰며 그의 손목을 긁어 대고 끙끙거렸다. 내가 짐승 새끼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박아 줘…?”

다스가 내 아랫배를 쓸며 느긋한 어조로 물었다.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이 가려웠다. 누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라도 한 듯 당장 그에게 박히고 싶단 생각만 그득했다.

그가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내 다리를 벌렸다. 벌써 구멍이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스가 발기한 페니스를 바로 넣지 않고 내 구멍에 슬슬 문질렀다. 언제 발랐는지 미끄러운 젤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헐떡거렸다. 매일 아침 그에게 박히면서 깨어난 탓인지 눈을 뜨자마자 성감이 머리끝까지 꽉 차 있었다.

“너, 완전, 창놈 새끼 같아. 존나 구멍 너덜너덜한 걸레 새끼.”

다스의 느릿한 욕에 벌써 구멍이 찌릿하게 좋았다. 그는 한참이나 내 구멍에 페니스를 문지르기만 하다가 내가 숨이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벌어진 구멍에 귀두를 쑤셔 박았다.

“흐읏!”

다스의 말대로 내 구멍이 정말 너덜너덜해졌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침마다 그가 박아 주지 않으면 이렇게 벌어진 채로 벌름거리기만 할 텐데.

그가 내 허리를 가볍게 누른 채 빠르게 성기를 박았다가 빼냈다. 그때마다 그의 좆을 한껏 물기 위해 밑에 힘을 주며 용을 써 댔다. 어느새 나는 허리를 올려 치고 있었다. 내 멋대로 움직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스가 돌연 미간을 구겼다.

“씨발…. 진짜 창놈 새끼도, 아니고, 후….”

그리고 갑자기 속도를 올려 미친 듯이 처박기 시작했다. 원하던 것을 얻어 낸 몸은 잔뜩 흥분해 그의 것을 쥐어짜 댔다. 기분이 좋다 못해 괴로울 지경이었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쾌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다. 다스는 속도를 늦추거나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하라는 투로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퍽, 퍽, 치대는 동작마다 숨이 찰 정도로 쾌감이 몰려들었다. 매일 아침 그에게 이렇게 박힐 수만 있으면 뭐든지 해낼 것 같았다.

“귤아.”

“으, 으….”

“너 진짜 창놈이야? 왜 이렇게 질질 싸?”

“흐으….”

살벌한 말과 낮은 목소리가 나를 더 흥분하게 했다. 그가 내 발기한 페니스 끝을 손으로 조금 세게 툭, 쳤다.

“흣…!”

“창놈이라고 해 주니까 좆 더 세우네. 좆물도 더 나오고.”

내 몸은 그의 말 하나하나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이 프리컴을 싸 댔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았다.

“너… 진짜 어디 못 나가겠다, 이제. 시도 때도 없이 세우고 싸겠네.”

그의 손이 내 귀두 끝을 틀어막듯 쥐었다. 그대로 손끝으로 요도를 싹싹 문질렀다.

“아, 아! 아흑!”

참지 못하고 다스의 손에다 흥건하게 사정했다. 흐린 시야에 다스의 모습이 보였다.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나한테 박아 줄 거야? 창놈 새끼라고 욕해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물음을 쾌감과 함께 꾸역꾸역 삼켰다.

다스는 내 허리가 아플 정도로 몰아쳤고, 나는 두어 번을 더 사정했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았다.

그날은 거의 기절할 때까지 다스가 내게 박아 줬다. 잠도 덜 깬 채 쾌락에 시달린 나는 한참이나 알몸으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정액이 이리저리 튄 내 몸이 훤하게 드러나 수치스러울 만도 한데 가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다스는 속옷을 입지 않고 그대로 청바지를 입었다. 밑위가 짧은 바지라서 장골이 그대로 드러났다.

혼몽한 와중에도 그의 몸 곳곳 흉터와 근육을 감상하려 고개를 트는데 다스가 침대 위에 올라섰다. 그가 손에 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자 찰칵, 소리가 났다. 그제야 내 몸이 찍힌 것을 알았다. 정액으로 범벅이 된, 방금 전까지 다스와 섹스한 알몸이.

“…그걸 왜 찍어….”

“귀엽잖아. 좆물 있는 대로 쏟아 내고 널브러진 게.”

다스는 웃으며 한 컷을 더 찍었다. 손을 뻗어 이불을 쥘 힘도 없어서 그대로 있었다.

“찍지 마….”

“내 마음이야. 내가 내 거 찍는데.”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래, 맞는 말이기는 했다. 나는 다스 거니까…. 내가 힘없이 웃으니 다스도 따라 웃었다.

“일어나자.”

뒤이어 나를 안아 일으켜 주는 손길만은 다정했다.

아침에 나와 섹스하고 샤워한 후 밥을 먹은 다스는 늘 집 앞에서 운동을 했다. 작은 마당에서 킥복싱 같은 것을 할 때도 있었고 줄넘기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전면 창으로 다스가 운동하는 걸 구경했다. 영 잠이 깨지 않아 멍하지만, 요즘 들어 머릿속이 계속 흐리멍덩할 때가 많지만 다스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아니, 좋은 것 같다고 믿었다.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았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게임 오버 메시지가 떠 있고, 그 뒤로 사망한 내 캐릭터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언제부터 휴대폰을 쥐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게임을 하고 있었나….’

멍하니 아무 곳이나 누르자 다시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화면을 꾹꾹 누르며 게임을 이어 갔지만 재미가 없었다.

운동을 끝낸 다스가 거실로 들어왔다. 나는 어느새 또 게임을 켜 놓기만 하고 멍하게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다스의 체취가 가까워졌다. 그가 내 손에서 휴대폰을 가져갔다.

“이거 나 주고, 나랑 놀자.”

다스가 내 뺨에 입을 맞추며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흠칫 떨며 그의 옷자락을 쥐고 매달렸다. 그의 손길에 잠이 깨듯 감각이 깨어났다.

최근의 나는 계속 멍하고 둔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스의 손이 몸에 닿으면 정신이 조금 들었다. 지금도 그의 손길 한 번에 이렇게 찌릿하게 피가 돈다.

왼손 엄지로 검지를 문질러 다스가 준 반지의 감촉을 읽었다. 꿈속에서도 이 반지를 만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잘 때 다스가 사라지지 않을까 겁을 내지 않아도 될 텐데.

나를 깨우는 건 다스밖에 없는 듯했다. 그가 있어야 나는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었다.

나를 만지는 다스의 어깨에다 이마를 비볐다. 다스가 내 목에 입술을 묻었다.

“다스야, 나… 꿈 꿨어.”

“무슨 꿈?”

…말하고 싶은데 막상 물으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안개 같은 것으로 차단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았다. 다만 다스의 손길이 조금씩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발기했다.

다스는 내가 대답하지 않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나를 만졌다. 아마 박아 주진 않을 것이다. 요즘 들어 섹스는 아침에만, 그것도 내가 눈을 뜨기 전부터만 하니까.

“흡….”

다스가 내 목덜미를 깨물듯이 괴롭히는 것은 섹스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체온과 체취가 곁에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와 나만 존재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다스도 그럴까.

그도 둘밖에 없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갑자기 질려서, 애들한테 줘 버리는 장난감처럼 나를 저 바깥으로 내던지진 않을까. 그럼 나는 하루도 못 살고 죽겠지.

나는 점점 멍청이가 되어 갔다. 다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진 않았다. 나는 다스 없이 화장실도 못 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심지어 아침마다 다스에게 박히면서 깨는 데에 익숙해졌으니까.

어느 날 낮이었다. 티셔츠를 벗고 민소매 셔츠로 갈아입은 다스가 얇은 바람막이를 옆구리에 끼고 계단에서 내려왔다. 나는 1층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그가 현관에서 신발 신는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이 파뜩 들었다. 겁이 났다.

“어디 가?”

“수형이가 과일 가지고 가래서. 잠깐 갔다 올게.”

요즘 들어 웬만해선 밖에 안 나가는 그인데, 고작 과일을 받으러 나간다니…. 괜스레 서운하고 무서웠다. 잠깐이라도 그가 나가는 게 싫었다.

“아, 안 가면 안 돼?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잖아.”

“요 앞 큰길에 부모님 차 타고 지나갈 거라고 해서. 과일만 받아 올게. 얌전히 있어.”

…그래, 과일만 받아 온다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겨우 고개를 끄덕이자 다스가 씩 웃어 보였다. 그의 근사한 미소를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탁, 문이 닫히고 한참 지나도 나는 다스가 나갔을 때와 달라진 것 없이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자니 텅 빈 집 안의 고요함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실감이 났다. 다스가 없다. 그 사실은 내게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적막이 투명한 벽처럼 몸을 사방에서 짓눌렀다. 조금씩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괜찮아, 괜찮아….”

숨을 억지로 고르며 스스로를 달랬다. 설령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아야 했다. 이전처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 그림자를 찾으려 했지만 훤하게 밝은 낮인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다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다스가 가지고 온 향긋한 과일은 맛있었지만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끼워 신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상했다. 이렇게 행복한데, 다스랑 있는 하루하루가 즐거운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귤아, 네가 좋아하는 복숭아도 있다. 깎아 줄까?”

내게는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할 힘도, 짝을 찾을 여력도 없었다. 다만 다스를 향해 어설프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마치 연기를 하듯이 말이다.

***

오늘은 음식 해 주시는 분이 쉬는 날이라 먹을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다스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곤 배달 앱을 켜서 화면을 쓱쓱 넘겼다.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봐.”

“잘 모르겠어…. 배 별로 안 고픈데.”

“그래도 말해 봐.”

정말 배가 별로 안 고픈데. 어째 요즘 식욕도 좀 줄어든 것 같았다. 집에만 있어서 그럴 것이다. 다스처럼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음… 짜장면?”

그냥 생각나는 아무 메뉴나 말했다. 다스가 움직일 때마다 내 몸이 흐느적흐느적 흔들리는 게 재미있었다.

“겨우? 또 말해. 중식 말고 다른 것도.”

“아니면… 치킨? 아니면 피자…. 아, 과자도 먹고 싶다. 크래커 같은 거. 그리고 육개장도. 김치볶음밥도.”

생각나는 대로 줄줄 메뉴를 읊다가 눈치를 보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스가 내 입술에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부딪쳤다.

“우리 나가서 먹으면 안 돼?”

“시켜 먹으면 되지.”

“그냥… 식당 가고 싶은데….”

사실 배는 하나도 안 고팠지만 다스랑 식당에 앉아 있는 일은 즐거울 것 같았다. 문득 묘한 허기가 느껴졌다. 배고픔과는 다른 종류의 허기가.

“집에서 편하게 먹으면 돼. 네가 말한 거 다 시키자.”

“뭐?”

농담인 줄 알았는데 다스는 정말로 내가 말한 메뉴를 죄다 시켰다. 이걸 다 어떻게 먹나 싶어 막막했으나, 다행히도 다스가 혼자 삼 인분 정도를 해치웠다. 그는 나보다 훨씬 먹성이 좋았다. 먹는 만큼 살이 찌지 않아서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주문한 음식이 아까워서 보관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은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그래도 한참 남았다.

“천천히 먹어. 남겨도 되니까.”

그가 말려도 상관 않고 미친 듯이 입으로 먹을 것을 쑤셔 넣었다. 음식이 아깝거나 맛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무언가가 자꾸 고팠다. 뭐가 고픈지 알 수 없으니 먹을 거라도 채워야 했다.

“말 안 들을 거면 물이라도 마시든가.”

그가 불만스레 미간을 구기며 내 쪽으로 물컵을 넘겨줬다. 행여 나의 허기가 표정에 드러날까 얼른 물을 마시는 척하며 컵으로 얼굴을 가렸다.

밥을 다 먹은 뒤 다스는 소화를 시킨답시고 나를 짐짝처럼 번쩍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주택이라 다행이지, 아파트였으면 층간 소음으로 항의가 들어왔을 것이다.

“뭐 해! 얼른 내려 줘!”

“너도 운동해야지.”

헛웃음이 났다. 난 매달려 있기만 하는데 무슨 운동이 된다고…. 그러나 사실 다스에게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버겁기는 했다. 그가 흔들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으니.

“다스야, 잠깐만…. 나 토할 거 같아….”

토할 거 같다고 하자 그제야 다스가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결국 먹은 것을 죄다 게워 냈다. 다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게 물컵을 내밀었다.

“괜찮아?”

“…체했나 봐.”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체할 만도 했다. 머리가 띵할 만큼 웩웩거리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소화제 사다 줄까?”

“아니, 그냥 있으면 나을 거 같아….”

약은 이제 지겨웠다. 그리고 다스가 잠깐이라도 나가는 게 싫었다. 다스는 내 손을 가져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렀다. 여기가 지압점이라나 뭐라나.

“속 많이 아파?”

사실 못 견딜 정도로 아프진 않았지만 다스가 걱정해 주는 게 좋아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다스는 나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품에 안기는 것도 좋았다. 나를 눕혀 주는 다정한 손길도.

“눕지 말고 앉아 있자. 소화 되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았다. 다스는 민우와 통화를 한다며 1층으로 내려갔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낯선 적막이 들이찼다. 나는 이불을 말아쥐고 몸을 웅크렸다. 다스가 1층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왜 이렇게 불안한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휴대폰도 태블릿 PC도 들고 오지 않았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점점 더 멍청해지는 내 머리에 화가 났다. 잠이나 잘까 싶어도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는 멍하기만 하고 잠은 오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려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혹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겨우 잠깐 졸다가 깨어났을 때에도 다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는 해가 져서 깜깜했다.

‘약… 먹어야 하는데.’

하루에 두 번씩 먹는 약을 먹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당장 알약을 삼켜야만 할 것 같았다. 먹을 땐 그렇게 먹기 싫더니, 막상 안 먹으니 불안할 건 또 뭐람.

‘다스는 금방 올 거야. 오면 약 달라고 하면 돼.’

하지만 그가 내가 여기 있는 걸 잊어버렸으면 어쩌지? 나갔으면 어쩌지? 나쁜 생각이 이어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전처럼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욕실에서 뒹굴어야 할지도 모른다. 침대에다 소변을 지릴지도 모른다. 닫힌 문을 노려보던 나는 문득 숨을 쉬기가 어려움을 깨달았다.

괜찮아, 저 문만 열면 다스가 있어. 어디 가지 않았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심호흡을 했다. 숨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후우, 후….”

억지로 하는 심호흡도 소용이 없는 듯했다. 헐떡거리는 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심상찮았다.

“다, 다스야….”

작게 소리를 내었지만 바깥까지 들릴 리 없었다. 그가 내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숨쉬기가 더 불편해졌다.

“다스야…!”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소리를 내었다. 1층에 있는 그에게는 결코 들리지 않을 크기였지만 목소리를 키울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창문이라도 열면 좀 낫겠지만 온통 쇠창살로 가로막힌 데다 잠금장치 때문에 열 수 없었다. 어둠 때문에 더 갑갑했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다가 굴러떨어졌다. 머리가 부딪쳤지만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처럼 내 그림자를 찾아내려 했다. 내 그림자를 찾아내면, 움직이는 나의 인영을 확인하면 괜찮아질 거다. 그러나 바닥이 흐리게 보이고 눈앞이 새카맸다. 숨을 쉬려 애쓰며 바닥을 기어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2층의 복도를 기어 계단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아래로 굴렸다.

쾅, 쾅, 내 몸이 나무 계단에 부딪치는 소리가 꼭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멀었다. 팔다리와 등의 통증은 뒤늦게 찾아왔다.

“으….”

계단 아래 짐짝처럼 던져진 상체를 억지로 일으켰다. 주변을 살폈지만 다스가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 1층도 어둡기만 했다. 어디 갔지. 아니야. 아주 잠깐 나갔을 거야. 그가 나를 두고 멀리 갈 리 없었다.

다행히도 전면 창 창살 사이로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혹시 다스가 아니면 어쩌나 잠깐 겁이 났으나 가까워진 실루엣은 내가 아는 그가 맞는 듯했다.

현관문 도어 록이 열리고,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다가왔다. 다스 특유의 철 냄새 비슷한 체취가 맡아졌다.

다스야, 하고 부르려는데 혀가 뻣뻣하고 목소리는 안 나왔다. 손발도 몹시 저렸다. 그가 다가와 내 몸을 일으키는데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헐떡거리기만 했다. 그가 내 앞에 앉아 얼굴을 확인했다.

“과호흡이라 그래. 숨 천천히 쉬어.”

그가 명령했지만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다스는 나를 좀 더 응시하더니 내 턱을 쥐고 입술을 겹쳐 왔다. 그리고 양손으로 입가를 가리듯이 둥글게 감쌌다.

“읍….”

처음에는 다스가 내 호흡을 막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숨을 쉬기 어려운데 입술을 겹치고 손까지 덮으니 더 괴로웠다. 반사적으로 버둥거렸으나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조금씩 편해졌다.

다스의 혀가 내 입 속을 파고들었다. 불안정한 호흡 사이로 타액이 오가고 그의 숨결이 침범했다. 조금씩 안정되는 나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호흡이 온전히 돌아오고 나서야 다스는 키스를 멈추었다. 어둠 속에서 다스의 눈빛이 조금씩 식별되었다.

그가 반깁스를 한 내 발등을 손으로 쥐었다. 닿는 것만으로도 신음이 새어 나올 만큼 아팠다.

“으윽….”

“발도 다시 다쳤잖아.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았는데.”

아깐 숨쉬기에도 버거워서 알지도 못했는데,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앙다물었다. 다스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친 발등을 꾹, 눌렀다.

“아, 아파…! 흐윽!”

“아파? 어떡해, 아파서.”

다정한 말투에 마음이 놓이고 금세 안도하게 된다. 호흡이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숨을 한 번 작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뒤, 입을 열었다.

“너… 없어서….”

너 없어서 많이 무서웠어. 그 말은 등신 같아서 하지 못했다. 얼마나 우스울까. 다 큰 사내놈이 혼자 있지도 못하다니.

“나 없어서, 불안해서 계단 혼자 내려온 거야? 그러다 굴러서 다친 거야?”

그러나 그를 속일 수는 없다.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그러자 다스가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그가 이렇게 예쁘게, 진심으로 기쁘게 환히 웃는 모습은 본 건 처음이었다. 보고 있기 아득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휘며 웃는 얼굴을 마주하자 소름이 끼치는 까닭도 알 수 없었다.

“얼굴도 다쳤네.”

그가 말하고서야 광대 쪽이 화끈하게 아팠다. 계단을 내려오며 다친 모양이었다. 다스가 상처 위에 엄지를 살짝 스쳤다.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안 그래도 못난 얼굴 다 망가져서 어쩌나.”

…그러게. 다스는 내 얼굴 못생겨서 싫어하는데. 금세 주눅이 들었다.

“…싫어?”

“싫으면 네가 그만큼 더 예쁘게 굴면 되지.”

하지만 나는 본래 못났으니 예쁘게 구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냥 얌전히 다스가 시키는 대로 지내면 되는 걸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니 다스가 내 상체를 당겨 안았다.

“우리 귤아,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거야.”

이미 다 괜찮은데 다스는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행복한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착한 귤이 되고 싶었다. 터지고 짓물러서 엉망인 꼴이지만, 남들한텐 줘도 안 먹는 놈이지만, 다스에게는 무조건 착하게 굴고 싶었다. 얌전히 몸을 웅크리고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

계단에서 구른 탓에 광대 위쪽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가로로 반창고를 붙이자 영락없이 깡패처럼 보였다. 그래도 못난 얼굴이 조금이라도 가려지니 나은 건가.

다스는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 구멍에 좆을 박아 줬다. 아침마다 하는 섹스는 간밤의 꿈을 잊게 만들어 줬다. 매일 꿈을 꾸는데도 깨어나자마자 섹스를 하며 다 잊어버렸다.

‘…꿈… 무슨 내용이었더라….’

뭔가 엄청 괴로운 꿈을 꾼 것 같긴 한데… 다스의 좆에 쑤셔 박히고 있으면 사실 꿈 따위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행복했다. 다스와 함께 있어서. 그가 매일 내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춰 주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이 부옇게 번지는 것은 무엇일까. 나와 다스를 방해하는 요인이겠지. 창문을 닦듯이 간단하게 지워 버리고 싶은데 내게는 힘이 없었다.

‘다스야, 너는 행복해?’

나는 행복한데. 너도 행복하지? 묻지 못할 물음만 약과 함께 꾸역꾸역 삼켰다. 다시 잠을 기다리면서. 깨면 기억하지 못할 꿈을 기다리면서.

발은 조금씩 나았다. 이전에 계단에서 굴러 조금 악화되긴 했지만, 이미 뼈가 많이 붙은 뒤라서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소식이 딱히 기쁘지 않았다. 지독한 통증도 거의 줄어들었고, 이제는 시커먼 멍도 많이 빠졌는데 말이다.

“너무 안 움직이는 것도 안 좋으니까, 다친 발로 딛는 연습을 조금씩 해요.”

아무리 봐도 돌팔이처럼 보이는, 가운 안 입은 의사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쓰지 않아 구석에 처박아 둔 목발을 흘끔 볼 뿐이었다.

뭔가 잊은 게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시선을 돌리자 다스와 눈이 마주쳤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한 것처럼 불편했다.

“…아직 많이 아픈데요.”

그래서 아예 거짓말을 해 버렸다.

“가끔 통증이 오래가는 환자도 있어요. 진통제 처방해 줄게요.”

다스가 묘하게 불편한 표정을 짓더니 선생님과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눴다. 약을 함부로 어쩌고 하는 목소리, 자기는 엮이지 않을 거라며 떠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진통제를 처방해 준다던 그날 이후로도 다스가 내게 주는 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사실 나는 아프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다스도 내게 운동을 시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다정했다. 다정하기만 해서, 때로는 이상하기까지 했다.

약에 대한 내 의존성은 점점 더 커졌다. 약을 먹지 않으면 멍하기만 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다스는 이따금 내 멍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미간을 구기곤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얼굴에 난 상처 때문이겠지.

“귤아.”

그가 나를 부를 때마다 곧바로 쳐다보고 싶었지만 어딘가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머릿속은 시선마저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귤아, 내가 부르는데 나 봐야지.”

그제야 천천히 시선을 틀어 그를 보면 다스는 묘한 눈빛을 하곤 했다.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하루 내내 멍한 상태로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부연 안개 속에서 보내는 듯한 하루하루 중의 어느 날이었다. 다스는 샤워 중이었고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틀어 놓은 TV에는 외국의 관광지가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거리 공연이 한창인데요, 보시다시피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나와 제각기 자유롭게 버스킹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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