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우 속으로(2) (7/22)

장마가 끝난 이후 오랜만에 비가 오는 날이었다. 

다스는 하루 종일 애들이랑 통화를 했다. 클럽 손님이랑 애들 사이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백용태가 그걸 빌미로 애들을 괴롭힐 거란 사실은 다스가 말해 주지 않아도 뻔했다.

다스는 통화하는 내내 화를 냈다. 머리칼을 바짝 당겨 묶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푹푹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한눈에도 심각해 보였다.

“아무래도 나갔다 와야겠다.”

긴 통화를 끝낸 다스가 티셔츠를 벗고 몸에 붙는 검은 민소매 셔츠로 갈아입었다. 얇은 흰색 스카쟌을 어깨에 걸친 다스가 내게 물컵과 약을 내밀었다.

“언제 와?”

“오래 걸릴 거야. 기다리지 말고 자고 있어.”

그가 집을 비운단 사실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벌써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심각해 보이는 다스 앞에서 몰래 나갔다 올 생각이나 하고 있단 사실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스에게 내 딴생각을 들킬까 두려웠다.

“며, 몇 시간 정도?”

“글쎄. 가 봐야 알겠는데. 왜?”

“그냥…. 혼자 있기 싫어서.”

내 뻔뻔한 거짓말에 내가 놀랐다. 그가 내민 알약을 입에 넣었다. 그대로 삼키지 않고 몰래 혀를 움직여 아래쪽 앞니와 아랫입술 사이로 살짝 밀어 넣었다. 물컵을 입술에 대었지만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갔다 올게.”

다스가 내 이마에 입술을 얹었다. 이전이라면 빨리 갔다 오라고 했을 테지만 오늘은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돌아서서 방을 나가는 뒷모습에서 딱히 의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기에 안도했다. 그리고 안도하는 내가 싫었다.

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가 온전히 사라지고서야 입술과 앞니 사이에 끼워 놓았던 알약을 손바닥에 뱉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끼워 넣어 버렸다.

다스가 혹시라도 집에 돌아올까, 잠깐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그의 오토바이 소리가 점차 멀어지는 것을 들은 뒤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목발을 짚고 방을 나왔다. 계단을 마주하자 조금 난감했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단단히 목발을 고쳐 쥐었다.

‘할 수 있어.’

전에는 넘어질 뻔했지만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도 엄청 많이 했다.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멀쩡한 발이 아래 계단에 안착했다. 다행히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심스레 목발부터 옮겼다. 이번에도 성공했다.

그렇게 1층 계단을 내려가는 데만도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렸다. 중간중간 손에 찬 땀을 닦느라 더 오래 걸린 듯했다. 밖에서 조금이라도 기척이 들리면 다스가 아닌지 확인해야 하는 탓도 있었다.

운이 더럽게도 없는지,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타닥타닥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러운 저주 같았다.

‘아, 재수 없게….’

그래도 천천히 가면 괜찮겠지. 폭우도 아니고 평지에서 움직이는 건 자신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찾아 멀쩡한 쪽 발에만 신고 다시 일어섰다. 목발을 짚은 채 우산을 쓸 수 없으니 그대로 비를 맞으며 가야 한다는 게 좀 찝찝하지만, 다스에게는 혼자 씻었다고 둘러대면 될 터다.

벌써부터 다스에게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내가 싫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집에 처박혀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하지만….

나는 나가기 전까지도 고민을 했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그래도 다스에게 들켰을 때 일이 커지진 않겠지.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되잖아,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괜찮아. 금방 오면 돼.’

목발을 고쳐 쥐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제법 왔지만 그래도 목발을 쥐고 걸을 만은 했다. 그냥 갈까, 고민하다가 택시를 잡았다. 다스에게서 받았던 현금이 조금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다시 목발을 짚고 빗속을 뚫으며 걸었다.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목발을 짚은 채 걷고 있자니 곳곳에서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직 오픈 시간이 되지 않아 호프집 근처는 조용했다. 인적 없는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뒷골목 쪽은 지붕 덕에 비가 덜 오지만 바닥은 훨씬 더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최대한 조심스레 목발을 디뎠지만 한 번 크게 삐끗했다.

“히익….”

뒷덜미에 소름이 끼쳤다. 나도 모르게 다친 발에도 힘을 줘서 찌릿하게 아팠다. 눈을 꾹 감았다 뜨며 통증을 참아 냈다.

“흐읍….”

다시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레 움직여 에어컨 실외기까지 갔다. 벌써 집 밖에 나온 지 족히 삼십 분은 넘은 듯했다.

마음이 급해 옷이 흙탕물에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대로 몸을 굽혔다. 목발을 내던지고, 진흙탕 위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에어컨 실외기 아래 손을 넣었다. 조금 젖은 시멘트 땅 위에 묵직한 비닐 봉투가 잡혔다.

꺼내자마자 얼른 봉투를 풀어 안에 든 대본을 확인했다. 모서리가 흠뻑 젖고 표지도 축축했다. 다급히 몇 장을 넘겨 보았는데 안쪽 글자들은 멀쩡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진흙탕에 앉은 채 ‘남자 1’의 대사를 찾았다. 내가 리딩했던 부분이 보였다. 반가움에 눈물마저 날 것 같았다. 꼭 친구라도 만난 것 같았다. 나한테는 친구가 없지만 말이다.

대본을 다시 비닐 봉투에 단단히 싼 다음 등 뒤에 넣었다. 바지 고무줄로 고정시키고는 혹시라도 이 빌어먹게 헐렁헐렁한 반바지가 흘러내릴라 다시 한번 단단히 앞쪽 끈을 당겨 묶었다.

맨다리와 흰 양말이 진흙탕에 다 젖었으니 다스에게 변명할 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집 앞에 나갔다가 굴렀다고 할까. 오기 전에 빨리 씻어 낸다면 걱정 없을 텐데.

젖은 땅에서 혼자 목발을 짚고 일어서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그대로 목발 손잡이를 놓치기 여러 번, 오물로 더러운 벽에 붙다시피 하고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집에 가야지.’

꼴은 엉망이고 다스에게 뭐라 변명할지도 걱정이었지만 대본을 도로 찾은 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택시를 타고 가면 도착도 금방이겠지, 쉽게 생각하고 열심히 목발을 움직여 큰길로 나갔다.

그러나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택시는 비에 쫄딱 젖은 데다 진흙에 뒹군 꼴로 목발까지 짚은 나를 그냥 지나쳤다.

다시 택시를 기다리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잡기가 힘든지 알 수 없었다. 올 때는 쉽게 왔는데…. 휴대폰을 안 들고 나와서 앱으로 콜택시를 부르지도 못했다.

‘어쩌지.’

조금 더 늦으면 다스가 집에 올 텐데. 적어도 그보다는 일찍 도착해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그가 언제 오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더 초조해졌다.

한참 더 기다리다 도저히 택시를 못 잡을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대놓고 나를 흘끔거렸다. 나도 내 몰골이 우스운 건 알았다. 그래도 등 뒤에 끼워 놓은 대본 덕에 기분은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은 몇 정거장 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새를 못 참고 다시 대본을 꺼내 보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진 대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역할’을 맡은 연극의 대본이었다. 그러니 그대로 버려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읽는 것도 아까워서 비닐을 풀지 않고 그대로 다시 등에 끼워 넣었다. 이걸 어디다가 감출지도 생각해야 했다. 매트리스 아래가 역시 제일 만만하긴 한데, 시트를 갈 때 들키지 않으려면 최대한 깊숙이 넣어 놔야겠지. 아니면 협탁 아래 두거나.

하차할 때에는 마음이 급해서 결국 넘어졌다. 버스에 깔리지 않으려고 인도 위로 뛰어오르다 멀쩡한 발을 삐기까지 했다.

“아, 진짜….”

심지어 버스가 튀기고 간 흙탕물까지 고스란히 맞았다. 속으로 욕을 씹으며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빗줄기는 훨씬 가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바닥은 여전히 미끄러웠고, 목발을 쥔 팔에는 슬슬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집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내 기억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데에 평소에도 십 분은 족히 걸렸다. 멀쩡한 발로 걸었을 때 말이다.

다스가 나간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다스와 마주치면 어떡하지? 뭐라고 변명하지?

‘아니야. 솔직히 대본 하나 가져온 것뿐인데, 그렇게 크게 화내겠어?’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눈앞에서 번뜩이던 망치가 떠올랐다. 목발을 짚어 빗속을 걸으며 제발 다스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기만 바랐다.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가 야속하고 갑갑했다.

“어이.”

집으로 가는 골목에 막 들어갔을 때였다.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답 않고 지나치려 했다.

“홍다환 좆집질도 관뒀냐? 꼴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뒤이어 들린 말만 아니었으면 그랬을 터다. 돌아본 곳에는 신명호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본 녀석은 이전보다 더 찌질해 보였다.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지금은 다스가 돌아오기 전에 집에 가는 일이 더 중요했다. 목발을 고쳐 쥐고 집 쪽으로 다시 걸었다.

“야, 씨발, 사람 말이 말 같잖냐?”

아니나 다를까 신명호가 뒤따라오는 기척이 들렸다. 등에 무릎이 꽂히거나 뒤통수에 주먹이 날아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뒤이어 들린 건 신명호의 비명 소리였다.

“아악, 씨발! 이거 놔!”

화들짝 놀라 다시 돌아보았다. 신명호가 빗길 위에 뒹굴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먼저 보인 것은 다스의 스카쟌 입은 등이었다.

다스가 쓰러진 신명호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퍽, 퍽, 발길질이 이어지며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신명호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벗어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다스가 그의 얼굴을 발로 밟았다.

“귤아.”

목발을 짚은 채 멍하니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비를 맞는 다스의 모습이 영화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빗줄기가 그의 뺨 위에 균열 같은 무늬를 그려 냈다.

“이 새끼가 너한테 손댔어?”

고개를 멍하니 가로저었다. 다스의 발이 다시 녀석의 얼굴을 꽉, 짓눌렀다. 끔찍한 비명이 빗속에 울려 퍼졌다.

“다행이네. 손댔으면 어디 하나 잘라 버리려고 했지, 난.”

“으, 으흑, 흑, 그만! 그만해!”

다스는 신명호의 비명에도 아랑곳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녀석을 밟아 대는 그가 오늘따라 낯설어 보였다.

한참 발길질이 이어졌다. 신명호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일방적인 폭행이 멈췄다. 하아, 한숨을 내쉰 다스가 내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그대로 목발을 놓치고 주저앉았다. 빗물과 흙으로 엉망인 내 몸이 점점 젖어 가는 게 느껴졌다.

다가오는 다스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그림자 같았다. 주변의 빛이 비와 함께 일그러졌다. 그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뒤로 손을 짚은 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역광과 비 때문에 다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왜 안 자고 여기 있어.”

손이 뻗어 왔고, 나는 반사적으로 움츠렸다. 머리채가 잡혔다. 반항할 새도 없이 그대로 몸이 질질 끌려갔다.

잡힌 머리칼이 모조리 뜯겨 나갈 듯이 아팠지만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두 발이 바닥 위를 더걱더걱 끌리고 스쳤다. 깁스한 발이 바닥에 튕길 때마다 통증이 더해졌다.

물건처럼 질질 끌려가던 나는 곧 다스의 어깨 위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가 걸을 때마다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집 거실이었다. 다스가 나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온몸이 다 아파 신음을 삼켰다. 몸에서 떨어진 물이 러그에 얼룩을 남겼다.

입고 있던 티셔츠가 삽시간에 찢겨 나갔다. 동시에 허리에 끼워 놓았던 대본이 떨어졌다. 다스가 그것을 주워 들었다.

“안 돼….”

손을 뻗었지만 자리에서 일어선 그에게 닿지 못했다. 비닐 봉투가 벗겨지고 안에 있던 책자가 드러났다. 몇 장 넘겨 본 다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가지러 나갔던 거야?”

“다, 다스야, 잘못, 잘못했어.”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서, 다시 그가 웃었다. 어쩐지 그 얼굴이 슬퍼 보였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나로 인해 슬픈 다스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고작 이거 가지러 가느라고….”

불길했다. 아픈 다리를 끌고 다가가 그에게 매달렸다.

“미안, 자, 잘못했어. 다스야, 내가 다 잘못했….”

부욱, 종이 찢어지는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스의 손에 찢긴 대본이 내 얼굴을 스치고 떨어졌다.

“하, 하지 마. 그러지 마. 미안, 제발….”

그의 허리를 기어오르며 기를 쓰고 말리려 했으나 대본은 무참히 찢겨 나갔다. 아픈 발을 억지로 디디며 그의 팔을 붙들었으나 그가 찢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딴 것 때문에 나 속이고 그 몸으로…. 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어진 대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거라도 집으려 기어갔으나 다스가 발로 멀리 차 버렸다.

바닥에 흩어진 종잇조각을 보고 있자니 처참했다. 마치 내가 찢겨 나간 것 같았다. 갈기갈기 뜯어진 페이지를 손으로 훑어 모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 대본이잖아. 내가… 이걸 얼마나 다시 읽고 싶었는데. 얼마나 되찾고 싶었는데. 아니, 읽지 못해도 괜찮았다.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

“…왜… 왜 이래…?”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소리가 목에서 흘러나왔다. 다스가 몸을 굽혀 나를 일으키려 했으나 뿌리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

빽 소리를 질렀다. 놀란 다스를 마주한 채 다시 소리를, 이번에는 의미 없는 괴성을 내질렀다.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 같지 않게 끔찍하고 괴이했다.

온갖 감정이 뒤엉키고 들끓으며 튀어 올랐다. 다스의 상체를 주먹으로 퍽퍽 치기 시작했다. 다스는 무표정하게 앉은 채로 내 힘없는 주먹을 다 받아 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둘러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이것만 기대하며 지냈는데. 왜 몰랐을까. 다스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이렇게 찢겨 버릴 것을.

다스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내 멍청함에 더 화가 났다. 그의 말대로, 이깟 게 뭐라고. 이깟 종이가 뭐라고 이렇게 서럽고 아까울까. 내 몸이 찢긴 것처럼 고통스러울까. 왜, 왜.

내 발악은 어느새 울음으로 바뀌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펑펑 솟았다. 내가 왜 우는지, 왜 이렇게 서러운지, 뭘 하겠다고 비를 맞아 가며 이 꼴이 될 때까지 싸돌아다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에 앉은 다스가 아무 말 않아서 더 서러웠다.

울음소리가 꺽꺽거리는 소리로 줄어들 때쯤, 그가 내 턱을 쥐고 얼굴을 살폈다. 속 쌍꺼풀이 진 두 눈이 내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엉망이 되었을 내 눈, 코, 입을 차례대로 훑어 내린 뒤 입술에서 멈췄다.

“내가 준 약, 안 먹었어?”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필요도 없이 다스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를 놓아준 그가 식탁에서 약을 가져왔다. 양쪽 볼을 커다란 손으로 눌러 입을 벌리게 하고 알약을 넣었다.

“삼켜.”

무슨 오기인지 나는 다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입에 문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약이 중요한 게 아닌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내가 휘두른 손톱에 긁힌 것인지 다스의 왼쪽 뺨에 긴 자국이 나 있었다.

“삼켜.”

삼키지 않았다. 울음을 덜 그친 목이 행여 알약을 삼킬까 꺽꺽거리며 버텼다.

급기야 다스는 손가락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반지 낀 손가락이 혀 위에 고인 알약을 억지로 밀었다. 이에 닿는 손마디를 씹으며 버텼으나 다스의 손이 더 억셌다.

“귤아, 삼켜.”

명백한 명령. 하지만 나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그를 따를 수가 없었다. 바깥에 다녀온 그 잠깐 동안 내 무언가가 빗물에 씻긴 것 같았다.

손가락이 우악스레 송곳니와 어금니를 밀고 깊이 파고들었다. 들척지근한 피 맛과 함께 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쿨럭거리며 거부했으나 이미 목 안 깊숙이 들어간 뒤였다.

“내가 빗속에서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다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차분했다. 그래서 더 불길했다. 그가 벨트를 풀더니 내 뒷덜미를 잡아챘다. 너덜너덜해진 채로 겨우 걸쳐 있던 티셔츠는 온전히 몸에서 분리되고, 반바지는 속옷과 함께 끌려 내려갔다.

엎드린 채 양손이 뒤로 당겨졌다. 뒤이어 손목에 무언가가 단단히 감겼다. 다스의 벨트일 것이다.

“내가… 너 없어져서… 얼마나….”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던 다스가 손동작을 멈췄다. 뒤를 보려 했으나 얼굴이 짓눌렸다. 다리가 벌어지고,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뒤를 뚫었다.

한동안 그를 받아들인 적 없던 아래쪽이 억지로 벌어졌다. 아니, 벌어진 게 아니라 찢어진 것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마신 채 통증을 참았다. 손목은 벨트에 묶였고, 아픈 발로는 버둥거릴 수도 없었다.

그의 성기가 난폭하게 안으로 쑤시고 들어와 내벽까지 모조리 찢어 버릴 기세로 움직였다. 통증에 입이 절로 벌어졌으나 신음은 나오지 않았다.

오물과 빗물, 눈물, 침을 러그에 묻히며 나는 꼼짝없이 통증을 받아들였다. 기가 막히게도 내 성기는 이 와중에 빳빳하게 발기했다.

“다, 으으, 다, 스, 야….”

그에 대한 공포심은 딱 그만큼, 똑같은 양의 흥분감을 가져왔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다스가 야속했다. 그 고생을 하고 가져온 대본을 찢어 버린 그가 죽을 만큼 미웠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상처 입히기를, 더 난폭하게 굴기를, 화를 내기를.

그렇게 나에게만 모든 감정을 쏟아붓기를.

덜덜 떨며 그가 선사하는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꾸역꾸역 삼켰다. 퍽, 퍽, 살덩어리가 들어올 때마다 쾌감과 고통이 싸우듯 서로 치솟았다. 발기한 내 성기 끝에서 미끌미끌한 프리컴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귤아… 나는 가끔 못 견디겠어.”

하아, 하고 내뱉는 신음과 함께 다스가 잠깐 속도를 늦췄다. 그의 손이 뻗어 와 내 턱을 쥐었다. 비틀린 얼굴에 다스의 숨결이 닿았다.

“가끔은… 그냥 너를 내 손으로 죽여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으, 으흑, 읍….”

무력하게 헐떡거리는데, 천 조각이 내 눈을 가렸다. 축축하고 비 냄새가 나는 걸 봐서 찢어진 내 티셔츠인 모양이었다.

눈이 셔츠에 가려지자 숨이 턱 막혔다. 손이 묶여서 공포심이 더했다. 다스야, 하고 한 마디 내뱉는 것조차 어려웠다.

“내 손으로 죽이면 그래도 너… 자꾸 다른 데다 눈깔 돌리는 꼴은 안 봐도 될 테니까….”

다스의 성기가 안을 찢을 기세로 더 깊이 밀고 들어왔다. 온몸의 감각이 공포와 흥분으로 타닥, 타닥, 타오르는 듯했다.

“죽더라도… 네가 마지막까지 보는 건 나일 테니까, 그치.”

그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 사실에 더 흥분하는 내가 낯설었다. 내 위에서 날뛰는 그가, 분노를 뱉어 내며 내 위에서 움직이는 그가 화난 만큼 나를 더 괴롭혀 주길 바랐다.

다스는 알까. 그의 말처럼 이따금 내가 그의 손에 죽는 상상을 한단 사실을.

안쪽 깊은 곳까지 들어온 다스의 성기는 어떤 기교 없이 무지막지하게 찔러 대기만 했다. 굵직한 살덩어리가 퍽, 퍽, 쑤셔 들어올 때마다 끔찍한 통증이 머릿속을 채웠다.

다스의 난폭한 성기가 안쪽을 헤집을 때마다 묶인 손목까지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이유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흐으, 으….”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개처럼 뒤에서 박히는 것 말고, 얼굴을 마주한 채로 다스의 감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주하기 두렵기도 했다. 그가 한 번 박을 때마다 내 안으로 그의 넘친 감정이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명백한 분노와, 화,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무언가까지.

찢어진 대본이 감긴 눈앞에 팔락거리며 흩어지는 듯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고작 그의 손에 찢어질 종이 몇 장일 뿐이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 아니었다. 내가 바랐던 것은 그렇게 하찮고 작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새삼 내 세상이 다스라는 게 실감 났다. 나는 그 없이는 종잇장 하나조차 가질 수 없다. 벗어나려 들면 금세 갈기갈기 찢어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본을 찢은 다스가 미웠다. 다스를 좋아하는 만큼 다스가 미웠다. 다스에게 죽고 싶은 만큼 다스와 살고 싶었다.

“다, 스야….”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동작을 따라 온몸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스는 내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성기를 뿌리 끝까지 단번에 처박았다. 통증에 숨이 꽉 막혀 고개만 위로 쳐든 채 끄읍, 앓는 소리를 냈다.

“…하아… 씨발….”

다스의 목소리가 머리칼 한 올 한 올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숨을 들이마신 채로 참았다가, 다시 이어지는 움직임에 신음과 함께 토해 냈다.

“아…!”

안쪽으로 들어온 성기가 내벽을 찢을 듯 밀고 들어올 때마다 어마어마한 쾌감과 통증이 싸워 댔다. 내 성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사정한 모양이었다. 절정도 없는, 거의 반사적인 사정이었다.

뒤이어 정말로 머리칼이 잡아당겨졌다. 그가 내 머리채를 쥔 것이었다. 목은 젖혀지고, 눈은 가려지고, 손목은 뒤로 묶여 있으니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래쪽으로 들어오는 다스의 성기 감촉만 뻑뻑하게 몸을 채웠다.

“으읏, 으….”

기이한 소리가 내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와중에도 나는 다스의 성기를 구멍으로 꾹꾹 조여 물었다. 홍다스의 걸레 새끼답게.

다스의 손이 내 머리채를 놓자마자 상체가 앞으로 쏟아졌다. 러그에 코가 닿자 빗물 비린내가 났다. 나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목소리라도 더 들려주었으면 했다.

왜 내 대본을 찢었는지, 그게 그렇게 너를 화나게 할 만한 잘못인지, 눈을 보고 이야기하길 바랐다.

나는 다스가 내게만 감정을 쏟아붓는 게 좋았다. 다스의 분노와 화를 감당하는 일이 기꺼웠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눈을 맞춘 채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게 소리를 질러도 좋으니까….

나조차도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쾌감과 통증에 뒤섞여 엉망으로 뒤엉켰다. 눈이 가려진 것도, 손목이 묶인 것도 억울했다. 억울해서 다시 펑펑 울고 싶었지만 울음조차 치솟는 감각에 먹혀 버렸다. 나는 이제 우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 으, 흐윽….”

다스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굴을 바닥에 댄 채 다스가 흔드는 대로 맥없이 바닥에다 몸을 문댔다. 발기한 성기 끝이 꺼슬꺼슬한 러그 위에 스쳤다. 금방이라도 또 정액을 뱉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벨트에 묶인 손이 뒤로 바짝 당겨졌다. 어깨가 뒤틀렸다. 벨트를 바짝 당긴 다스가 허리 속도를 올렸다. 가죽에 쓸린 살이 무척 따가웠다.

그가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이미 찢어진 것 같은 구멍은 끔찍한 통증과 그에 대응하는 쾌감을 자아냈고, 딱딱한 가죽에 반복해서 밀린 손목은 껍질이 벗겨지는 듯이 아팠다.

다스의 성기가 내 안쪽 어딘가를 꽉꽉 짓누르자 몸이 저릿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손목이 뜨거웠다. 벨트에 스친 곳이 그대로 끊어질 것 같았다.

“아, 아파, 흑, 흐으, 아파….”

뻣뻣하게 당겨진 팔이 오르가슴인지 통증인지 모를 감각으로 푸르르 떨렸다. 어깨가 같이 경련했다.

다스는 말이 없었다. 신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괴로운지도 몰랐다. 눈이 가려졌으니 뒤돌아서 그를 볼 수도 없었다.

쑤셔 박던 동작이 어느 순간 속도를 천천히 했다. 참았던 숨을 헐떡거리며 몰아쉬었다. 뒤로 팽팽하게 당겨진 손목은 여전히 따가웠다.

다스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는 지금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그와 몸이 닿은 곳이 너덜너덜해졌을 구멍밖에 없다는 사실이 문득 서러웠다.

감각을 아래쪽으로 집중하자 다스의 딱딱한 성기가 구멍을 스치고 내벽을 밀고 들어와 안을 꽉 채우는 게 느껴졌다. 느릿하게 빠져나갔다가 깊숙이 들어오자 배 속이 틈 하나 없이 꽉 찼다.

“흐으으….”

찢어진 게 확실한 모양인지, 구멍 어느 한쪽을 스칠 때마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 만큼 쓰라렸다. 상처를 밀고 들어온 페니스는 다시 안쪽을 빈틈없이 채웠다. 다스의 성기 크기는 아무리 섹스를 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그러나 쾌감은 또 별개의 것이었다. 그의 페니스가 내벽 어느 곳을 누를 때마다 머리털이 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밀고 들어온 다스의 성기가 그 지점을 꾸욱, 눌렀다가 나가고, 다시 꾸욱, 눌렀다가 나갔다. 나갈 때에는 찢어진 상처를 스쳤다. 쾌감과 고통이 그의 성기와 함께 나를 드나들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지금보다 더 강한 감각을 쏟아 주길 바랐다. 엎드린 채 엉덩이를 어설프게 위로 올려쳤다. 느리게 움직이던 다스가 후우, 하고 화난 한숨을 뱉었다.

“너… 지금 장난해?”

뒤이어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이 한쪽을 얻어맞았다.

“읏….”

“어디서 허리를… 후, 멋대로 흔들어?”

맞은 엉덩이가 찌릿하게 아픈데 기분이 좋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손목이 묶이고 개처럼 엎드린 불편한 자세에서도 나는 또 허리를 흔들었다. 다스가 다시 엉덩이를 짜악, 소리 나게 때렸다.

“씨발, 걸레 새끼가…. 좆같게, 굴고 있어.”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허리를 단단히 짓누른 그가 다시 속도를 올려 움직였다. 퍽, 퍽, 쑤셔 박힐 때마다 다스의 귀두와 울퉁불퉁한 핏줄 감촉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돌 같은 살덩어리가 내 안에 처박힐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쾌감이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다스가 중얼거렸다. 멍한 머리로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가, 왜? 왜 죽을 것 같아?

곧 다시 절정에 다다를 것 같았다. 사정감이 성기를 타고 치솟아 정액이 막 나오기 직전, 다스의 손이 뻗어 왔다.

“……!”

그대로 요도를 꽉 움켜쥔 힘에 막혀 사정하지 못하고 멈췄다. 절정 직전에 그의 손에 갇힌 성기는 경련하듯이 떨렸다. 참기 힘든 찌르르한 성감에 발이라도 동동 구르고 싶었다.

다스는 내 성기를 쥔 채로 다시 움직였다. 쑤셔 박힐 때마다 이미 가득 찬 성감이 역치를 넘어 더 치솟았다.

“흑, 아, 잠깐…!”

숨이 차고 머릿속이 아찔했다. 다스가 한 번 박을 때마다 한 번씩 싸고 싶을 만큼 좋은데 그가 놓아 주질 않으니 딱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하, 으으, 하게, 해, 줘, 으읏.”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려 내 성기를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가 내게 박을 때마다 감각은 더 치솟았다. 다스의 페니스가 가진 요철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는 듯이 선명했다. 찢어진 곳은 여전히 아팠다.

“으흑, 흐으, 아, 아!”

눈물이 줄줄 흘러나와 눈을 가린 티셔츠 조각을 적셨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당장 싸고 싶었으나 아플 정도로 꽉 쥔 다스의 손을 이길 수가 없었다.

온갖 감각이 살아서 날뛰었다. 살 부딪치는 소리는 귀를 자극하고 그의 체취는 코를 찔렀다. 러그에 얼굴을 비비다가, 이마를 찧다가 하며 난리를 부렸다. 그래도 사정감을 죽일 수가 없었다.

“응, 하, 하게, 흑, 해 줘, 흑, 하으…!”

감각은 점점 더 커져서 성기를 터뜨려 버릴 것 같았다. 울음이 펑펑 새어 나왔다. 머릿속이 희게 지워지고 해갈되지 않은 쾌감만 꽉 들어찼다. 싸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 안에 깊이 박은 다스가 돌연 동작을 뚝 멈췄다. 나는 사정도 하지 못하고 그의 페니스를 아래에 가득 채운 채로 덜덜 떨었다. 한기가 돌았다.

“귤아.”

다스의 손 안에 갇힌 성기가 자꾸 꿈틀거렸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또 네 멋대로 나갈 거야?”

“아, 으, 아니, 아니.”

얼른 대답했다. 두려웠다. 다스에게 미움을 샀을까 봐. 이번에야말로 그가 정말로 나를 버릴까 봐.

“…정말, 멋대로 안 굴 거지?”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가슴이 아릴 만큼. 이러니 내가 어떻게 너를 부정해.

“응….”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자 다스의 손이 내 성기를 놓아 주었다. 동시에 정액이 줄줄 쏟아졌다.

“아, 흐으, 아! 아!”

다스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그가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계속 사정했다. 거의 실금하듯이 흘러나온 정액이 가뜩이나 빗물에 젖은 러그를 더 질퍽하게 적셨다.

“흐으, 아, 으….”

온몸의 수분을 다 짜낼 듯이 사정했다. 그러고도 다스는 멈추지 않았다.

삽입한 것을 빼지 않은 채로 그가 나를 모로 눕혔다. 동시에 다리 한 짝이 허공으로 들렸다. 각도가 바뀌자 내벽 다른 곳이 자극되어 또 금세 절정에 가까워질 것 같았다.

다스는 이제 내 한쪽 다리를 옆으로 든 채 처박기 시작했다. 그가 난폭하게 움직일 때마다 갈비뼈가 바닥에 쓸려 멍이 들 것처럼 아팠다. 억지로 벌어진 허벅지는 맛이라도 갔는지 근육이 연신 경련했다.

그의 움직임이 더 격해지자 뒤통수가 소파 다리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허리 움직임 한 번마다 뒤통수가 처박혀 현기증마저 났으나, 어느 순간 다스가 허리를 숙여 내 머리통을 손으로 감싸 주었다. 그 다정한 손길 한 번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옆으로 쑤셔 박힐 때마다 내 몸이 하찮게 흔들렸다. 그의 몸짓 한 번에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나는 몰려드는 파도 같은 감각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다스가 움직일 때마다 나 혼자 쌓아 온 감정들이 모래처럼 쓸려 나갔다. 나는 그것을 일 초도 되지 않아 또 쌓고, 또 쌓는다. 미련하게도.

다스가 바다라면 분명 깊고 짙고 차가운 겨울 바다일 것이다. 바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차갑고 어두운 그가 나를 삼키면, 그 크고 깊은 곳에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다스의 안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얼마나 움직였을까. 그가 돌연 성기를 빼냈다. 놀랄 새도 없이 눈을 가린 티셔츠 조각 위에 미지근하고 끈적한 것이 투둑, 툭, 소리 내며 떨어졌다. 몇 방울은 내 입가에 떨어졌다. 다스의 정액일 터다.

하아, 하는 다스의 한숨 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제야 이유 모를 안도감을 조금 느꼈다. 그의 화가 풀렸다고 멋대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귤아…. 너… 해서….”

그가 뭐라고 했지만 목소리가 멀어졌다. 손목을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로, 내 체액과 오물에 범벅이 된 채로 나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파도 소리일 리가 없었다. 집 앞을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가 물을 튀기는 소리일 뿐이었다.

***

눈을 떴을 때는 거실 소파였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서 잠에서 깨자마자 오만상을 썼다.

“으….”

맨몸 위에는 보송보송한 담요가 덮여 있고, 내 몸은 깨끗했다. 냄새도 나지 않고 진흙도 정액도 더는 묻어 있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틀자 러그를 치운 바닥이 보였다. 찢어진 대본 조각은 보이지 않았다.

다스는 청바지만 입은 채 거실 전면 창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웬일인지 머리를 묶지 않은 채였다. 해가 진 지 오래되어 비 그친 바깥은 새카맣게 어두웠다.

문득 담배 냄새가 났다. 다스의 손에 들린 담배를 한 박자 늦게 발견했다. 그는 이전에도 몇 번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물건에 매이는 기분이 싫다며 끊겠다 선언한 뒤로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내가 왜 너를 데려왔는지 알아, 귤아?”

다스가 창문을 마주한 채로 물었다. 검은 유리에는 다스의 모습과 내 모습이 겹겹이 진 얼룩처럼 반사되어 보였다.

그가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뿜었다. 나는 다스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거대한 신처럼 보이던 그의 모습도.

“그날, 등신같이 쭈그리고 처앉아 있는 게 딱 옛날 나 같아서.”

옆에 놓인 맥주 캔에 담뱃재를 턴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샤워를 했는지, 비에 젖었는지 축축해 보이는 앞머리는 손가락으로 빗어 넘겨 잘생긴 이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내 아버지도 나 때렸거든. 태어나면 안 됐었다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다스의 가족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까….

“몸 아픈 처제 강간한 씨발놈의 새끼가, 지가 지은 죄는 생각 안 하고 나더러 그러더라고. 나는 원래 태어나면 안 됐던 새끼라고.”

욕을 뱉는 다스의 얼굴은 딱히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소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맞는 다스는, 약한 다스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너 보자마자 내 옛날 생각나더라고. 꼭… 잃어버린 형제 찾은 것처럼, 너를 못 알아볼 수가 없더라.”

다스가 담배를 한 모금 더 마셨다가 뱉은 뒤 맥주 캔에 비벼 껐다.

“너랑 나는, 둘 다 생존자야.”

그가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소파 앞에 앉아 코앞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갈색 눈동자가 진중했다.

“우리는 같은 지옥에서 살아남았어. 그리고 내가 너 찾아냈고.”

그가 내 손을 찾아 쥐더니 자신이 껴 준 반지를 곧장 찾아 검지로 문질렀다.

“그러니까 나랑 너는 같이 죽거나… 같이 살거나, 둘 중 하나인 거야.”

낮게 속삭여서 꼭 겨울바람 같은 다스의 목소리. 그런데도 왜 불길 같을까. 덴 듯이 귀가 뜨거울까.

“같이 죽을까, 귤아?”

꼭 ‘같이 밥 먹을까?’, ‘같이 놀까?’ 하는 따위의 물음처럼 무심히 던져진 질문이지만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 연신 주억거렸다. 다스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러고 싶어? 같이 죽고 싶어?”

“어, 그러고 싶어.”

그와 사는 것과 그와 죽는 것이 내게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다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다스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가 내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났을 텐데, 어떻게 혼자 살아남는단 말이야.

그러나 다스는 쓰게 웃었다. 속 쌍꺼풀이 예쁘게 진 눈이 살며시 휘어지는 모습이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노을 같은 것을 문득 떠올렸다.

그의 이마가 내 이마에 맞닿았다. 코끝도 맞닿았다. 입술 역시 잠깐 맞닿았다가,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그러자. 나중에 같이 죽자.”

다스의 그 말이 내게는 든든한 약속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같이 죽자. 다스의 말을 혼자 입 속으로 반복하며 그의 목에다 팔을 감았다.

몸 위로 겹쳐 오는 온기에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다스는 내게 제 티셔츠를 입혀 주었다. 품이 한참 큰 다스의 티셔츠는 내가 입기에 많이 컸다.

“내 옷은?”

“없어.”

없기는…. 하긴, 맨날 찢어 먹으니 없기도 하겠다. 다스의 티셔츠에 속옷도 없이 덩그러니 앉은 나를 그가 안아 들었다.

“밥 먹자.”

나는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겼다. 방금 전까지 난폭하게 굴던 홍다스라고 생각되지 않게 다정했다. 그렇게 잔혹하다가도 또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다스가 나는 좋았다. 이것도 나만 볼 수 있는 모습일 테니까.

찢어진 대본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지만, 혹시라도 테이프로 붙여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미련이 남았지만 구태여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꾹꾹 눌러 담는 마음이 반발하듯 자꾸만 튀어 올랐다.

한참 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나는 다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었다.

다스의 엄마는 몸이 안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의 병치레로 인해 마음도 많이 아팠다고 했다.

“애비라는 새끼는 나 태어나고 들여다보지도 않았대. 엄마는 아파서 나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고.”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으며 다스가 말했다. 나는 정갈하게 담긴 콩자반을 한 알씩 집어 먹었다.

“아직도 기억나. 그 새끼가 나 찾아와서 엄마랑 나한테 왜 아직도 안 뒈졌냐고 하면서 두들겨 팬 거.”

어린 다스, 지금보다 훨씬 작고 작은 다스가 어른의 주먹 아래 무력하게 웅크린 모습은 사실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다. 다스의 얼굴 대신 내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한테서 맞고 굶던 어린 시절의 나 말이다.

“제일 화난 게 뭔지 알아? 이모는 다 알고 있었어.”

“…그… 병원에 왔던 그분?”

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속옷 없이 앉은 의자가 조금 불편해서 나는 다리를 꼼지락거렸다. 깁스한 다리를 벌려 옆의 의자에 얹어 놓은 덕에 식탁 아래 훤하게 드러났을 아랫도리도 신경 쓰였다.

“지 남편 새끼가 자기 동생 강간한 것부터,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나랑 엄마 팬 거. 그 여자는 다 알았어.”

“그런데 왜….”

“계속 중요한 일 한답시고 이미지 관리하느라 일부러 아무 말 않고 덮은 거야.”

헛웃음을 지은 다스가 국을 크게 한 술 떠먹었다. 어투도, 밥을 먹는 모습도 무덤덤한데 어쩐지 내 눈에는 그것이 더 슬퍼 보였다.

“그래서 나한테 자꾸 돈 주고, 아는 척하는 거야. 엄마 죽은 뒤로 나 혼자 사는 거 들여다보고. 그러면 뭐 해. 뒈진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어린 다스는 얼마나 아팠을까. 나만큼 괴롭고 외로웠을까. 나처럼 매일 죽고 싶었을까.

다스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존재하는지도 모를 때부터 같은 지옥에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슬펐다. 내가 만나지 못한 다스의 우울과 고통을 만져 주고 싶었다. 어린 홍다환을 안아 주고 싶었다.

“골고루 먹어. 이것도 먹고.”

다스가 내 밥 위에 나물 반찬을 종류별로 잔뜩 얹어 주었다. 시금치는 싫어서 고사리랑 무나물만 골라 먹었다.

“이모는 결국 그 새끼랑 이혼했다는데, 그럼 뭐 해. 엄마는 죽고 그 새끼는 여전히 멀쩡히 살아 있는데.”

다스의 이모라는 그 여자분이 얻어맞는 다스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나쁜 분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다스가 반도 비지 않은 내 그릇을 흘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제 것 한 그릇을 더 떠 왔다. 밥 아래 숨기려 했던 시금치를 입에 넣고 씹었다.

“원래 세상이 그래. 죄지은 새끼들은 멀쩡하게 살고, 당한 사람들만 뒤지게 고생하면서 사는 거야. 너도 밥 더 줄까?”

고개를 가로저으며 얼른 남은 시금치도 마저 입에 밀어 넣었다. 다스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웃는 다스는 끝내주게 멋있었다.

“…다스야.”

“응, 귤아.”

“안아 줘.”

사실은 내가 다스를 안아 주고 싶었다. ‘안아 줄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부끄러워서 그렇게만 말했다. 다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저를 내려 두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스의 품이 나를 가둬 안았다. 이 품이 감옥이 되어도 나는 기꺼이 갇힐 것이다. 다스의 개새끼로서 말이다. 지금껏 다스가 입었던 상처는 내가 핥아 주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는 아니길 바랐다.

“…난 그렇게 살아남았어. 그러니 내가 널 보는 순간 어떻게 널 그냥 두고 갈 수 있었겠어, 귤아.”

그의 말이 맞다. 우리는 같은 지옥에서 살아남은 형제다.

팔을 감아 다스를 있는 힘껏 마주 껴안았다. 정말로 그와 같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다스가 내 옷을 주지 않아 하루 종일 그의 티셔츠만 입고 있어야 했다. 바지도 없이 속옷만 입고 말이다.

다스의 손이 닿지 않으면 화장실을 갈 수 없는 현상은 여전했다. 이제는 다스가 만져 주지 않아도 요의를 조금만 느끼면 곧바로 발기했다.

언제까지 이 꼴로 지내야 할지 불안했다. 저번처럼 다스가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나는 걷지도, 화장실을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는 바보 천치가 되어서 또 소변을 아무 데나 지리고 욕실을 나뒹굴 것이다.

정작 다스는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투로 여전히 나를 만지고, 더듬고, 욕실로 데려가 내가 소변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다스에게 내 모습을 온전히 까발리는 게 싫지는 않았다. 단 하나, 혹시라도 다스가 나를 버린다면, 하는 불안감만 뺀다면.

목발 연습은 관두었다. 발은 어차피 나을 테니까. 물론 다스가 싫어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태블릿 PC를 켤 때마다 자꾸 연극 공연에 눈이 갔지만 의식적으로 피했다. 또 공연을 봤다간 또 나도 모르게 무슨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연극을 생각하면 무언가 간질간질한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려 했다. 억지로 삼키면 꼭 가시를 삼킨 것처럼 속이 아파 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다스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면 연극을 생각하지 않아야 했다.

여름은 하루마다 더 깊어 가고 내 발은 조금씩 나았다. 의사 아저씨가 찾아와 이제 석고 깁스가 아니라 반깁스를 해도 된다며 바꿔 주었다.

깁스를 자르는 일은 굉장히 무서웠다. 우웅, 전기톱 소리가 내 발까지 자를 것 같았다. 다스가 안아 주지 않았더라면 바보처럼 무서운 티를 냈을 터다. 그래도 반깁스로 바꾸니 훨씬 시원했다.

깁스를 바꾼 날에는 오랜만에 목욕도 했다. 다스가 나를 직접 씻겨 주는 게 좋아서 얌전히 있었다. 그의 손길이 내 몸 곳곳을 닦을 때마다 찌릿하게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 냄새 안 나?”

“나면 어때. 나도 냄새나.”

거짓말. 다스한테는 좋은 냄새만 난다. 그는 가끔 집 앞에서 혼자 킥복싱 같은 것을 하곤 하는데, 무슨 조화인지 한 시간이 넘게 몸을 움직이고 와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욕실 바닥에 얌전히 앉은 채로 그에게 팔다리를 내맡겼다. 샤워 솔이 내 팔을 살살 문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다스는 잠옷 바지만 걷어 입은 채였다. 짙은 색의 체크무늬 면 잠옷은 별것 아니었지만 다스가 입고 있어서 멋있었다. 다스는 그런 애였다. 천 쪼가리 하나만 걸쳐도, 그것도 밑단을 대충 걷어 입어도 멋있단 소리를 절로 끌어내는 애.

“나도… 너 씻겨 줄까?”

매끈한 이마를 보다 물었다. 다스가 나를 흘끔 올려다보더니 픽, 입꼬리를 틀어 웃었다.

“됐어.”

곧바로 나온 대답에 조금 면구스러웠다. 나도 다스의 몸을 마음껏 문지르며 만지고 싶다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돌아앉아 봐. 등 닦아 줄게.”

다스가 명령했지만 나는 선뜻 그러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다스의 속 쌍꺼풀 진 눈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없는 용기를 억지로 자아냈다. 입이 열리기까지 다스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었다.

“나, 하고 싶어.”

다스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눈빛이 미묘하게 바뀐 듯도 했다.

“…섹스… 하고 싶어.”

말로 내뱉으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뒤늦게 창피하고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걱정도 되었다. 걸레 새끼처럼 밝히기나 한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싶어서.

다스의 눈이 샐쭉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묘한 웃음을 담아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샤워 솔을 내던졌다. 눈 깜짝할 새에 몸이 번쩍, 들리더니 욕조 위에 앉혀졌다.

“내 어깨 잡아.”

“어…?”

멍청하게 되물으면서도 나는 다스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의 손이 내 구멍을 파고들었다.

“아…!”

“가만있어. 깨끗하게 씻어야지.”

손가락이 안쪽을 마구 헤집었다. 부끄러워서 자꾸만 오므라들려는 양 무릎을 다스의 어깨가 단단히 버텨 냈다.

역시 이번에도 다스는 나한테 박아 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구멍만 헤집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아래쪽 정도야 내가 씻을 수 있는데….

헤매던 시선을 내리니 다스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보다 키가 훨씬 큰 다스는 무릎 꿇고 앉은 상태였지만 나와 눈높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얼굴이 다시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동시에 손가락이 안쪽으로 불쑥, 더 깊이 침범했다.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히익….”

“자꾸 눈 피할래?”

다스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쥐고 고개를 돌리게 했다. 강압적인 손길과 안쪽을 더듬는 손가락 감촉에 내 페니스는 딱딱하게 발기해 프리컴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 눈 보기 싫어, 귤아?”

“아,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다스는 바보다.

“그런데 왜 자꾸 눈 피해…. 목 묶어 버릴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기한 페니스가 부끄러웠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다스가, 좆을 박는 대신 안쪽을 씻기겠답시고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시는 그가 미웠다.

다스의 손가락이 안쪽 어느 곳을 건드릴 때마다 저릿하고 기분이 좋았다. 다스의 좆보다는 못했지만 그는 내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손끝이 누르는 곳마다 이렇게 찌릿한 쾌감이 일 리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만으로는 싸기 싫었다. 신음을 참고 버텼다. 다스의 눈을 마주하기 부끄러워서 살며시 시선을 돌렸다가, 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다시 그를 마주 보길 반복했다.

안쪽을 괴롭히던 손가락은 한참 지나서야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턱을 놓은 다스는 물을 틀고 비누 묻힌 손가락을 내 안쪽에 넣었다 빼길 반복했다.

“흡….”

좆이 드나들듯이 손가락이 드나들 때마다 몸이 반응했다. 바짝 선 성기가 그의 가슴 바로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에게 요의를 맡겨 놓다 못해 이제는 구멍 청소까지 당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몸도 혼자 못 씻는 바보.

그렇게 한참을 씻기고서야 다스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사이 비누 거품이 다 꺼져서 아랫도리가 드러나 창피했다.

“나….”

겨우 입을 열었다.

“박아 주면… 안 돼…?”

다스의 입술이 슬며시 비틀려 올라갔다. 이번에는 기분 좋은 웃음 같아서 안도했다.

“응, 잠시만.”

그가 미소를 지우더니 내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다리 사이 깊은 곳에 말캉하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다스의 혀였다.

그의 입술이 내 고환을 부드럽게 핥고 빨았다. 조심스러운 듯하면서도 다급한 그 감촉에 나는 금세 흥분했다.

“아, 거기, 잠, 깐만….”

다스의 혀는 거침이 없었고 나는 아래에 느껴지는 감각만으로도 딱 죽을 것 같았다. 나조차도 잘 손대지 않는 곳에 다스의 혀가 닿는 게 이상했다. 고환 아래쪽을 살살 핥던 다스가 내 무릎을 양손으로 쥐더니 다리를 확, 벌렸다.

“아, 흣…!”

고환 아래쪽 깊은 곳까지 파고든 혓바닥이 회음을 핥았다. 기분이 좋은데 부끄럽기도 했다. 예민한 속살에 까슬한 혀끝이 닿자 숨이 턱턱 막혔다.

‘너무 깊은데….’

좀 부끄러울 정도로 깊이 들어왔다 싶은데, 회음을 핥던 혀끝이 더 아래로 내려와 내 구멍에 닿았다.

“미, 미쳤어? 거기, 왜…! 아…!”

기겁하며 밀어내려 했으나 다스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손가락이 드나들어 이미 풀어진 아래쪽에 혀끝이 파고들었다.

미쳤나 봐. 도대체 어디를 핥는 거야. 목이 뻣뻣하게 굳을 정도로 놀랐으나 몸은 이상하게도 좆이 들어올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으, 아….”

다스의 혀가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몸이 달달 떨렸다. 좆도 아니고 고작 혀가 들어왔을 뿐인데도 벌써 쌀 것처럼 좋았다. 요즘 섹스를 안 해서인 듯했다.

이대로 사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고 싶은데 그 말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창피했다.

다스가 내 구멍을 빨고 핥다니, 믿을 수가 없어 슬며시 시선을 내렸다. 머리를 묶은 다스의 정수리가 제일 먼저 보였다. 눈으로 확인하자 자극이 더했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걸까. 잘생긴 눈썹이 한 번 살짝 꿈틀거리더니 그가 입술은 그대로 두고 눈만 들어 나와 시선을 맞췄다. 동시에 쾌감이 정점까지 치달았다.

“자, 잠깐, 만…!”

진짜 위험하겠다 싶어서 억지로 말을 꺼냈다. 다스가 멈출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

다스의 혓바닥이 안쪽으로 깊숙이 쑤욱, 들어와 내 안쪽 내벽을 눌렀다. 동시에 참지 못하고 사정해 버렸다.

“아, 그, 그, 만, 흐으, 아!”

다스의 이마와 머리칼에 내 정액이 그득히 뿌려졌다. 그러고서도 다스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정액을 쏟아 내고 나서야 슬그머니 혀를 뺐다.

그가 눈썹에 튄 정액을 엄지로 닦더니 혀끝으로 핥아 먹었다.

“와, 좆은 근처에도 안 갔는데 혼자 쌌네?”

픽 웃는 다스가 섹시해 보여서 하마터면 연달아 사정할 뻔했다. 다스가 내 다리를 벌리고 제 잠옷 바지를 슬쩍 내렸다. 딱딱하게 발기한 다스의 성기를 보자마자 군침이 돌았다.

“내 목에 팔 감아.”

등 뒤로 손을 뻗어 내 허리를 안으며 다스가 말했다. 나는 얼른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발기한 두 개의 좆이 부딪쳤다. 다스가 허리를 슬슬 움직이자 좆물 묻은 내 페니스와 그의 페니스가 부대꼈다.

그가 허리를 조금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욕조 아래로 떨어질까 싶어 목에 감은 팔에다 힘을 주었다. 밀착할수록 성기가 스치는 감촉이 더 짙어졌다.

“너 같은 걸레 새끼는… 역시 나 말고는 먹을 놈도 없을 거야. 그치, 귤아.”

“으, 으으….”

응, 하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 기둥에 스치는 다스의 기둥 감촉이 적나라했다. 돋은 핏줄과 귀두의 요철이 보지 않아도 그대로 느껴졌다.

또 쌀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다스가 허리를 멈추는가 싶더니 귀두 끝으로 내 기둥을 쓸고 내려갔다. 그리고 단숨에 구멍을 찌르고 들어왔다.

“흡…!”

젖은 데다 그의 손가락이 오래 헤집어 놓아서 미끄러지듯 들어왔으나 버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배를 꽉 채운 이물감에 이를 앙다물었다.

다스가 내 엉덩이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터뜨려 버리기라도 할 듯 손아귀 힘이 장난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내 몸 전체를 들다시피 하고서 성기를 쑤셔 박아 댔다.

“아, 흑, 아아….”

욕실 습기 때문인지 내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살이 부딪치는 소리도 평소보다 더 질척했다. 다스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하아, 씨발, 내 좆 때문에, 너 구멍 넓어져서, 맛도 없을 거라고.”

그가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내 발기한 페니스가 그의 복근에 짓눌리듯 스쳤다. 단단한 다스의 아랫배에 귀두 끝이 닿는 것만으로도 무척 자극적이었다. 그의 배에 성기가 짓눌리는 감촉에 또 사정할 것 같았다.

거실에서 옷이 찢기고 벨트에 묶인 채 박힌 이후 오랜만의 섹스였다. 감각이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커진 듯했다. 소변을 볼 때마다 매번 발기하고 삭여야 했던 탓도 있을 터다.

“흐으, 으, 다, 스야….”

허공에 매달린 채로 무력하게 흔들리며 그를 불렀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그의 목을 감은 팔에다 힘을 잔뜩 주었다. 다스는 나를 안고 허리만 위로 올려 쳤다. 가벼운 동작 같은데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좆이 거의 끝까지 빠져나갔다가 다시 뿌리까지 처박혔다.

미치게 좋았다. 머리칼이 곤두서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소변을 볼 때마다 조금씩 쌓였던 성욕이 죄다 폭발하는 듯했다.

“아, 흐으, 아, 아!”

나오는 대로 신음을 내질렀다. 그가 허리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오르가슴에 가까운 쾌감이 한 번씩 들이닥쳤다. 머릿속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좋, 좋아, 흐으, 좋, 거기, 으응, 아!”

안에 들어온 다스의 성기는 거의 칼 같았다. 나를 난도질하듯이 난폭했다. 아플 정도로 좋다는 말이 뭔지 깨달았다. 전기가 척추를 타고 쭉쭉 번져 나갔다. 버거워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그에게 매달린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를 든 채로 움직이던 다스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씨발, 하고 다시 욕을 씹어뱉더니 박던 성기를 빼내었다.

“흐읏….”

한창 좋았는데 박혀 있던 게 빠져나가서 아쉬웠다. 다스는 나를 바닥에 내려 두곤 뒤돌아서게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욕조 끝을 짚고 겨우 섰다. 다스는 양손으로 내 허리를 붙들더니 단번에 다시 삽입했다. 기분 좋은 압박감에 신음을 삼켰다.

그가 다시 움직였다. 뒤에서 치댈 때마다 온몸이 뼈째로 흔들렸다.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다스가 깊이 들어오는 게 좋았다. 뿌리 끝까지 좆을 처박았다가 아슬아슬하게 거의 끝까지 빼냈다가, 다시 단번에 처박는 리드미컬한 동작 하나하나가 미치게 기분 좋았다. 그때마다 내벽 안쪽 어느 지점이 건드려졌고, 동시에 소름이 쭉쭉 끼쳤다.

“으, 으응, 아…! 흐읍!”

내 신음 소리와 다스의 거칠어진 숨소리, 살 부딪치는 소리가 욕실에 왕왕 울렸다. 습기 때문에 숨이 찼다.

다리는 자꾸 힘이 풀려서 넘어지려 했다. 다스의 양손이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작 고꾸라졌을 터다. 키 차이 때문에 까치발을 들고 바들바들 떨며 서 있자니 힘을 감당하지 못한 종아리 근육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내가 힘든 걸 알아차렸는지 그가 내 한쪽 다리를 들었다. 그 탓에 구멍이 활짝 더 벌어졌다. 구멍이 벌어져도 다스의 성기는 여전히 버거웠다. 아니, 벌어진 만큼 더 비집고 밀고 들어왔다. 그의 것이 내 몸에 꼭 맞춰지는 것 같아 기뻤다.

한쪽 허벅지를 다스의 손에 붙들린 채, 엉덩이만 어설프게 내밀고 버거운 쾌감을 받아들였다. 구멍을 스치는 다스의 페니스 감촉에 집중했다. 딱딱한 살덩어리가 내 안을 꽉 채웠다가, 다시 나갔다가, 금세 또 밀고 들어왔다.

“흐으…!”

그리고 그때, 다스가 돌연 속도를 올렸다. 느리게 들어왔다 나가던 성기가 갑자기 빨라지며 팟, 팟, 팟, 구멍을 처박았다.

머릿속을 때리는 듯한 쾌감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목을 뒤로 젖히며 입을 벌렸지만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좋은 걸 넘어서서 버거웠다. 아니, 죽을 것 같았다.

“그, 만, 할래…. 아, 으으…!”

“후, 조용히 해.”

다스가 내 입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비누 냄새 나는 손가락을 물고 빨았다. 반지가 이에 더걱더걱 걸렸지만 반사적으로 혀를 움직이며 열심히 핥아 댔다.

“우으, 으, 우….”

그의 성기가 어느 순간 안쪽으로 콰악, 틀어막듯이 밀고 들어왔다. 동시에 내 좆에서 멀건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 투명한 소변이 욕조 바닥을 적시고 타일에도 튀었다. 발기한 성기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을 뿌려 댔다.

또 저번처럼 소변을 지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멈추고 싶었지만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배뇨감과 쾌감이 뒤섞여서 머릿속이 어지럽고 혼몽했다.

“아, 우, 으으….”

다스의 손가락을 좆 빨듯이 쪽쪽 빨아 대며 나는 한참이나 오줌인지 뭔지 모를 것을 싸 댔다. 더럽다고 욕하면 어떡하지, 그딴 걱정이나 하면서.

“후, 귤아.”

“으, 우으.”

귓가에 닿는 그의 물음에 얼른 소리를 냈다. 대답보다는 반응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중에도 다스의 손가락을 열심히 빨았다.

“앞으로도, 후, 나한테 좆 박히고 싶을 때는 그냥 말해. 알았어?”

허리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로 다스가 말했다. 나는 그의 것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에도 감히 다스를 의심했다. 정말 말해도 돼? 걸레 새끼라고, 밝히는 더러운 새끼라고 욕하면서 쫓아내지 않을 거야?

물음은 요원했고 쾌락은 생각을 지워 갔다. 금세 구멍에 박히는 다스의 좆 감촉에 다시 집중했다. 딱딱한 것이 안쪽을 사납게 헤집었다. 찢어질 것 같은데도 내 구멍은 그의 것을 버겁게 다 받아들였다.

다스가 내 허벅지를 놓아 주곤 허리를 양쪽 팔로 꽉 가둬 안았다. 배를 터트릴 것처럼 강하게 안는 힘에 하마터면 또 쌀 뻔했다.

“흐읏….”

다행히도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그의 한쪽 손이 내 아랫배 어딘가를 더듬었다. 무언가를 찾듯이 꾹꾹 누르던 검지가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여기까지… 오려나.”

“으, 응…?”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서 고개를 틀며 물었다. 그가 내 귀를 살짝 깨물었다 놓았다.

“내 좆 말이야. 네 배에… 후우, 한 이 정도까지… 들어간 것 같은데.”

거짓말. 배꼽 아래 어딘가를 짚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느리게 처박을 때마다 그 지점이 살 위로 불룩해지는 것 같은 것은 착각이겠지.

“거울로 볼래?”

말하며 다스가 내 몸을 또 번쩍, 안아 올렸다. 김이 반쯤 서린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닦아 봐, 거울.”

힘없는 손을 뻗어 거울을 문질렀다. 다소 선명해진 거울에 우리 모습이 비쳤다. 나도 모르게 아랫배에 시선을 집중했다.

다스는 나를 든 채로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다. 쑤욱, 쑥, 안으로 들어오는 감촉과 거울에 비치는 광경을 비교했다. 붉어진 삽입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정말로 아랫배가 조금 볼록하게 보이는 듯했다. 시야가 흐려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다음 순간, 다스가 다시 느리게 빠져나갔다가 쑤욱, 끝까지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좀 더 확연하게 요철이 보였다.

“보여? 응?”

다스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다스와의 섹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걸. 그와 내가 겹쳐지는 게 좋았다. 내가 감히 그를 품고 있다는 게 좋았다.

다시 그의 붉은 성기가 내 구멍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삽입부를 내 눈으로 보자 더 흥분되었다. 굵직한 다스의 성기를 받아들이느라 한껏 벌어져서 새빨개진 내 구멍이 낯설었다.

질퍽, 질퍽, 땀과 습기에 살 부딪치는 소리는 적나라했다. 그 소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스가 내게 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좋았다. 거울이 다시 뿌옇게 변해 아쉬울 정도였다.

다스가 내 몸을 안은 채 반 바퀴를 돌았다. 그대로 욕조 끝에 앉은 그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곤 허리를 아래서 위로 툭, 툭, 쳐올리기 시작했다.

“으, 으응….”

나는 신음하며 눈을 감았다. 한 손은 욕조를 짚고 다른 손은 아랫배를 만져 보았다. 방금 전 거울로 보았듯이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배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튀어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 사실이 너무 좋아서 나는 또 한 번 절정을 맞았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정액이 나오지 않았다. 다스의 손에 자꾸 발기하더니 아예 좆이 고장이라도 났나 보다.

“흐으, 으응, 아… 흐으….”

나도 모르게 그의 무릎 위에 엉덩이를 비비며 구멍을 꽉꽉 조여 물었다. 다스가 그런 나를 혼내는 듯이 허리를 꽉 붙들어 안았다. 움직이지 못한 채로 다시 딱딱한 페니스가 빠르게 쑤셔 박혔다.

“하아….”

다스가 내 뒤통수에 이마를 댄 채 신음했다. 뒷덜미에 뜨거운 숨이 닿자 소름이 오소소 끼쳤다.

기분이 좋아서, 또 사정할 것 같아서 엉덩이를 흔들고 싶었다. 그의 위에서 멋대로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다스가 움직여 주는 게 더 좋았다. 나를 못 움직이게 가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쑤셔 박고, 찢어발길 듯이 난폭하게 움직이는 게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스는 내 안에 사정했다. 사정하면서도 계속 움직였다.

“후우, 후…. 하아….”

뒷덜미에 뿌려지는 다스의 신음은 무척 낮고 목을 긁는 듯이 위협적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미끄러운 정액이 흘러나와 내 엉덩이를 적시고 그의 허벅지에 묻었다.

“하아, 귤아….”

다스가 내 목덜미를 잘근잘근 물어 댔다. 꼭 짐승이 씹어 대는 것 같아서 살짝 소름이 끼쳤다.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어깨를 그가 단단히 안아 가두었다.

“귤아….”

다스는 그렇게 나를 몇 번이나 불렀다. 욕실 안을 가득 채워 울리는 목소리로. 낮고 낮아서 꼭 다친 짐승 같은 목소리로.

나는 그 목소리가 좋아서, 더 듣고 싶은 욕심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욕실을 채운 습기와 함께 그의 목소리를 마시는 것 같았다.

***

습기 그득하고 더운 곳에서 일을 쳤더니 몹시 피로했다. 손가락은 팅팅 불어 버렸고 다친 발은 거의 시체처럼 허옇게 떴다.

다스가 내 퉁퉁 불은 발에 반깁스를 대 주고 붕대를 감았다. 악력이 세서인지 붕대도 잘 감았다. 뭐, 그가 못하는 게 있겠냐마는.

그날도 속옷 없이 다스의 티셔츠만을 입었다. 어쩐지 요즘은 내 옷이 보이질 않아 이 차림인 경우가 많았다. 붕대를 감느라 다리를 내맡기자 훤히 드러난 아랫도리가 신경 쓰여서 자꾸 셔츠를 끌어 내렸다.

“나 옷 줘. 이거 말고.”

“그거 말고 뭐?”

“내 옷.”

붕대 끝을 마무리한 다스가 느지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버렸는데.”

무심히 하는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가, 에이, 아니겠지, 거짓말이겠지, 했다. 바지는 산 지도 얼마 안 됐고, 티셔츠는 전에 하나 찢어졌지만 다스가 사 준 내 여름 셔츠가 몇 벌 있었다. 죄다 시커먼 색이지만.

‘거짓말이야’ 하며 내 셔츠를 가져다주길 바랐지만 다스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셨다. 한 잔을 다 비운 뒤에야 내 시선을 눈치챘다.

“물 마실래?”

“…진짜 다 버렸어?”

“응.”

다스가 물 한 잔을 더 따라서 내게 가져다주었다. 충격으로 선뜻 받아 들지 못하자 내 손에 잔을 쥐여 주었다.

“아, 속옷은 남아 있겠다. 속옷은 입어도 돼.”

…퍽이나 고맙다.

“옷도 없이 어떻게 살아….”

“왜 못 살아. 내 티셔츠 입고 있으면 되지. 집에서 바지 입을 필요 없잖아, 여름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옷도 죄다 다스가 사 준 것이니 뭐라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물을 마시려는데 다스가 내 손을 가져가더니 손바닥 위에 알약 하나를 놓았다.

“약도 먹자.”

늘 먹던 희고 자그마한 알약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입에 넣었다. 이거, 나 낫게 하는 약 아니지? 하는 물음과 함께 그대로 삼켰다.

“착하네.”

그의 칭찬과 웃음을 담고 휘어지는 눈이 슬그머니 올라오려는 두려움을 지워 냈다.

***

다스는 내색 않으려 했지만 클럽의 상황이 좀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다스가 직접 관리한 적이 드무니까.

전화 받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그때마다 다스의 표정도 안 좋았다. 하지만 클럽을 직접 관리한다고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내가 또 딴짓이라도 할까 봐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나는 절대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고, 다른 생각도 않고 집에 얌전히 있을 거라 다스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스가 사라졌을 때 내가 정말로 얌전히 있을지는 나조차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래. 강태 네가 그렇게 이야기해 봐. 나는 일 있어서 못 간다고 대충 둘러대. 백용태랑은 직접 이야기하지 말고, 그 주 대리랑. 그래.”

게임을 하면서 통화하는 그를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다스가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내게 안심하라고 명령하는 듯해서 나는 다스의 개새끼답게 얌전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상황이 심각한지 다스가 결단을 내렸다.

“귤아, 우리 밖에 잠깐 갔다 올까?”

아무리 생각해도 심각한 일인 것 같은데 웃으며 말해 주어 고마웠다.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다스는 내게 제 티셔츠와 바지를 입혔다. 벨트도 주지 않아서 헐렁헐렁한 바지가 걸을 때마다 흘러내릴 것 같았다.

“벨트 많잖아. 왜 안 줘….”

“어차피 금방 올 건데, 뭐.”

목발을 짚어야 하는데 줄줄 흘러내리는 바지를 어떻게 입고 있으란 건지. 하지만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는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집 밖은 몹시 맑고 더웠다. 바깥 공기를 쐰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덥기는 해도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다스가 나를 오토바이에 앉혔다. 앞에 앉은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나 목발은?”

“오토바이에서 안 내릴 거라 필요 없어.”

…그래도 한 번쯤은 내릴 일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스가 하도 단호해서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자 선선한 저녁 바람이 몸을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다스의 등에 얼굴을 댄 채 웃었다.

데이트도 아니고, 놀러 가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몹시 들떴다. 심란할 다스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헬멧을 쓰고 있어도 오랜만에 코끝을 스치는 바깥 공기의 냄새와 후덥지근한 기온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스의 체온과 그의 등뼈에서 나는 따뜻한 소리까지.

이대로 영영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바깥바람을 맞으면서 아픈 다리나 백용태 같은 것은 잊고 다스의 등에 매달려 있고만 싶었다.

오토바이는 8차선 도로를 유유히 가로질러 번화가로 이동했다. 그대로 클럽으로 갈 줄 알았는데, 다스는 시끄러운 상가를 지나 어둑한 구석 골목으로 갔다.

골목에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스를 본 애들이 반가움에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다스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은 채로 애들의 포옹을 받아 냈다. 애들을 만나고 기뻐하는 옆얼굴에 조금 질투가 나서 나는 일부러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더 꽉 주었다.

“백용태는?”

“곧 온댔어. 아까 전화했을 때 십 분 정도 걸린다더라.”

백용태를 밖에서 만난다니, 괜히 내가 긴장이 되었다. 내색 않으려고 헬멧 쓴 머리를 다스의 등에 꾹꾹 눌러 댔다.

나는 다스가 곧 오토바이에서 내릴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대로 앉아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옆으로 다리를 내고 앉았지만 허리에 감긴 내 팔을 풀지도 않았다. 헬멧 벗은 나를 옆에 끼고 대화하는 동안 다스는 조금 불안해 보였다.

“클럽에서 손님들하고 싸운 거야 민우가 잘못하긴 했지. 근데 그거 한 번으로 다른 애들까지 다 연대 책임을 물으니까…. 씨발, 너무한 거 아냐?”

일전에 애들이 클럽에서 손님들과 싸운 것 때문에 아직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손님이 먼저 민우한테 시비를 걸어서 대응한 것뿐이라던데, 백용태는 그걸 빌미로 애들한테 무보수로 일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내가 이따 말해 볼게. 너희는 내가 아까 말한 대로 근처에서 연락 기다리고 있어.”

애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벗어나고, 강태가 남아서 가까이 다가왔다. 내 쪽을 흘끔 보는 게 내가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지 눈치를 보는 듯했다.

“말해.”

다스가 곧바로 못을 박아 주어서 고마웠다. 나는 여전히 다스에게 예외이고 싶었다. 강태랑 민우처럼 싸움을 잘하지는 못해도, 개새끼만이 가질 수 있는 예외 말이다.

“백용태가 너 엄청 찾고 지랄했어. 계속 둘러대긴 했는데, 왜 코빼기도 안 보이냐면서 계속 우리한테 묻고, 씨발….”

하긴. 다스랑 친한 애들은 다 클럽에 있는데 얼굴을 안 보였으니 이상하긴 했을 거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너도 애들이랑 같이 있어.”

다스가 말하자 강태는 그제야 쭈뼛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다스의 어깨에 코를 비볐다. 그의 체취가 내 불안감을 삭여 주길 바라며.

“백용태가 여기 온대?”

“응. 귤이 넌 내 등 뒤에 가만히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 새끼가 뭐 물어도 대답하지 말고.”

백용태가 온다니 조금 긴장되었다. 다스가 옆에 있으니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괜히 무서운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한쪽 다리를 굽혀 몸을 숙이더니 오토바이 앞바퀴 아래에서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까 애들이 기다리면서 갖고 놀다가 두고 간 모양이었다. 다시 앉은 그는 주운 공을 벽에 던졌다. 도로 튕겨온 공은 커다란 손에 안착했다.

그가 공을 던지는 동안 나는 뒤에 앉은 채로 헐렁한 바지춤을 만지작거렸다. 비죽이 웃던 백용태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다스야, 나… 자꾸 바지 내려가서….”

오토바이 위에만 앉아 있으니 바지가 내려가도 상관이야 없지만 괜히 투정 부리고 싶었다. 다스가 공을 쥔 채 몸을 틀어 스카쟌을 벗어 내게 건넸다.

“이거 덮고 있어.”

몰래 옷자락을 코에 가져가 그의 냄새를 맡았다. 옷 한 장이 갑옷이라도 된 양 든든해짐을 다스는 알까.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꾹 누르며 다시 허리에다 팔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용태가 왔다. 깡패답게 쫄따구들을 줄줄 달고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덩치가 큰 한 놈만 데리고 왔다. 다스는 백용태가 가까이 다가와도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 벽에다 공을 던졌다.

그가 우리 쪽을 쳐다봤다. 내색 않으려 했지만 백용태의 시선이 내게 닿자마자 소름이 끼치고 겁이 났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봤다. 손이 떨리는 걸 감추려고 다스의 허리에 감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애새끼가 어디 어른을 오라 가라 하냐.”

“어른이 애새끼들 돈도 안 주고 일 시키나?”

곧바로 받아친 다스의 말에 할 말이 없는지 백용태는 입술을 비죽이며 웃었다.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코빼기도 안 비치던 놈이 말할 처지는 아닐 텐데.”

퉁, 퉁, 공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고 침묵이 들어찼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백용태도 덩치가 제법 큰 편이어서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석상처럼 굳은 사내들 사이로 눈빛이 오갔다. 나는 백용태를 보다가 내 앞에 있는 다스의 뒤통수를 보았고, 백용태와 같이 온 놈은 허공을 보고 있었으며 백용태는 다스를 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건 다스뿐이었다. 퉁, 마지막으로 튀긴 공이 다스의 손에 다시 안착했다.

“애들 돈 밀린 거 주고, 라운지 말고 룸 쪽으로 애들 위치 이동.”

흑매파는 이 동네를 꽉 잡고 있는 조직이고, 백용태는 그 흑매파의 보스였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을 반쯤 죽인 적도 많을 것이다. 조직 먹고 나서 반대파를 숙청한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런 백용태에게,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일 법한 저 덩치 크고 사나운 사내에게 다스는 반말로 요구 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그게 걱정스럽게도 한데 솔직히 멋있었다.

백용태가 묘하게 웃기만 하고 대답은 않자 다스는 어깨를 으쓱 움츠려 보였다.

“싫으면 관두고. 애들한테는 그쪽이 뭐가 무섭기라도 한지 일방적으로 거부해서 아무 협의도 못 했다고 해 둘 테니까.”

백용태의 웃음에 날이 섰다. 그런데도 다스는 전혀 쫄지 않았다.

“왜? 한참 어린 애들 데려다가 일 시키고 돈도 안 준 거 어디다 말하는 것보다야 낫잖아?”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백용태 옆에 있던 놈이 몸을 내밀자 백용태가 가로막았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붙을 듯 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다스가 쥐고 있던 공이 떨어져 땅을 굴렀다. 날씨가 후덥지근한데도 숨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쫄아 붙은 모습을 보이면 다스에게도 좋지 않단 사실을 되새겼다.

다스가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앉은 자세를 고쳤다. 혹여 그가 허리에 감긴 내 팔을 풀어낼까 겁이 났다. 다행히 다스는 그러지 않았다. 외려 배에 놓인 내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시선은 백용태에게 고정한 채로.

“그쪽이 나한테 뭘 바라는지 알 거 같은데, 착각이야. 내가 그 사람한테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거든.”

백용태가 그에게 바라는 건 뭐고, 그 사람은 또 누구람. 다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백용태의 표정이 바뀌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다스 역시 눈치챘을 터다.

“귤아, 저거 가져와.”

그가 턱짓했다. 뭘 가리키는지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스와 내 사이는 그런 사이니까. 백용태의 발 바로 앞에 있는 공이 눈에 들어왔다.

무릎 위에 덮고 있던 스카쟌을 내려 두곤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목발이 없어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지만 나는 다스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묘한 공포심에 몸이 뻣뻣했다. 발이 아픈 것보다는… 눈앞에 있는 백용태가 무서웠다. 예전에야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다스에게 나를 달라고 했단 사실을 안 뒤로는 이야기가 달랐다.

뒤를 돌아보자 다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조금 유순해지는 눈빛이 좋았다.

“괜찮아.”

그의 말은 언제나 주문 같은 힘을 갖고 있다. 신앙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일 테지. 말 한마디로도 금세 힘을 얻고 괜찮아지는 소소한 기적 같은 것 말이다.

한쪽 다리에만 힘을 주고 절뚝거리며 백용태 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거의 기어간다고 해야 옳을 터다. 넘어질 뻔해서 한쪽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백용태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애써 무시하고 팔을 뻗어, 공을 쥐었다.

다시 한쪽 발을 깡충거리며 다스에게 돌아왔다. 오토바이에 앉자마자 다시 그의 허리를 안고 매달렸다. 그가 손을 뒤로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른 손으로는 공을 쥔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그것만으로도 몹시 기뻤다.

“우리 애들 돈은 안 줘도 위치라도 바꿨음 하는데. 그게 그쪽도 편하지 않겠어?”

“얌전히 존댓말로 요구해 보든가.”

비꼬는 투가 명백한 백용태의 말에 다스가 픽, 헛웃음을 흘렸다.

“씨이팔, 깡패가 뭔 예의를 찾아. 그렇게 예의 좋아하면 먼저 좀 챙기시든가.”

이번에는 백용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정확히는 반깁스를 하고 있는 내 발을.

“애새끼가 발이나 다치고 말이야. 네 나이 때는 집에서 사탕이나 처빨고 있는 거야. 내가 사탕 사 줄까? 빨고 다닐래?”

비웃음이 명백한 목소리도, 눈빛도 모두 싫었다. 다스의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어 놈을 노려봤다.

“그거 감사한데, 필요 없어.”

“너한테 말한 거 아니다.”

“귤이는 남이 준 건 안 먹어서.”

나도 모르게 떨리던 손이 멈췄다. 다스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살살 간질이듯 보듬었다.

“딱 내가 준 것만 먹거든.”

가슴이 뛰었다. 이번에도 비웃을 줄 알았는데, 백용태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그가 담배를 꺼내자 옆에 있던 덩치가 얼른 불을 붙였다.

“애들 돈은 왜 갑자기 또 필요 없냐? 그건 네가 챙겨 주게?”

“알 거 없잖아.”

“일도 안 하는 놈이 어디서 그렇게 돈이 났을까.”

뒤틀려 올라가는 입술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너, 그 돈 전부 그 여자가 준 거지?”

…그 여자? 혹시 다스 이모를 말하는 건가? 백용태가 어떻게…. 그리고 그제야 기억났다. 그 여자를 집 앞에서 만났을 때 백용태를 아냐고 물었었지. 그 여자랑 백용태는 무슨 관계일까.

백용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시선이 다시 내 쪽을 향했다.

“그동안 일한 보수는 챙겨 주지. 대신 너희 애들은 앞으로 우리 클럽에서 일 못 한다.”

“잘됐네. 우리도 당신 밑에서 일하는 거 이제 싫은데.”

“대신, 저놈 데리고 와.”

내 쪽을 향한 백용태의 턱짓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멈췄다. 나도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럴 리 없단 사실을 알면서도 다스가 나를 버릴까 겁이 났다. 지금 당장 백용태에게 그래, 하고 등 뒤에 있는 나를 넘기면 어쩌지? 강태와 민우 같은 다스의 ‘친구들’보다 내가 그에게 더 중요할 리가 없으니까.

“씨발, 말 같잖은 소리를 해야지….”

욕을 씹어뱉은 다스가 헛웃음을 치더니 이내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보수 정리하고 우리 애들은 클럽에서 빠지는 걸로 마무리. 그리고 우리 다시는 보지 맙시다. 예?”

오토바이 앞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향을 틀었다. 다스는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백용태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간다고?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백용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스는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터질 것 같은 굉음을 내며 저녁의 도로를 짓밟았다.

다스가 화가 났다. 나는 그 사실이 무서웠다. 백용태가 나를 달라고 한 직후에 화가 난 거니까.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그가 계속 백용태의 요구를, 나를 보내라는 말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민우와 강태,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다스는 그걸 알고서도 나를 계속 곁에 둘까. 그러지 않겠지.

“귤아.”

오토바이의 시끄러운 소음 사이로 그가 나를 불렀다.

“나온 김에 드라이브 좀 하고 갈까?”

“어, 좋아!”

행여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대답했다. 다행히도 다스의 웃음이 등을 통해 전해졌다.

다스가 속도를 바짝 올렸다. 도로가 이렇게 넓은 걸, 밤이 이렇게 찬연한 걸 너무 오랜만에 깨달았다. 집에 있는 동안 내내 갇혀 있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밤거리를 달렸다. 오토바이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어둠을 찢듯이 가로지르는 일이 지겨워질 때까지. 밤이 늦어 도로에 우리가 내는 소리만 가득 찰 때까지.

다스가 어느 순간부터 소리를 질러 댔다. 나도 덩달아 소리를 내질렀다. 텅 빈 8차선 도로에 우리가 내는 굉음이 쩌렁쩌렁했다. 두려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

가로등 불빛이 마치 무대의 조명처럼 번뜩거리며 우리를 비추었다. 그 순간만큼은 무대에 선 상상을 할 때만큼 즐거웠다. 다스는 나의 상대역이었고, 나의 감독이었다. 함성이 우리의 대사였다.

연옥동은 다스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다스는 나의 세상이었다. 이 진리가 영원히 바뀌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리 믿어야만 했다.

집에 와서 다스의 바지를 벗었을 때는 성기가 잔뜩 발기해 있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흥분하기도 했고, 소변이 마려워서이기도 했다.

다스의 도움으로 화장실에 갔다가 샤워까지 했다. 씻는 동안 백용태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태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딴생각을 하는 걸 모를 다스가 아니었다.

“뭘 그렇게 멍하게 있어? 나 앞에 두고.”

다스가 샤워기로 내 얼굴에다 물을 뿌렸다.

“야!”

눈과 코에서 물을 줄줄 흘리며 얼굴을 닦아 냈다. 다스가 그 손마저 빼앗아 가두었다. 매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턱을 잡아챘다. 겨우 눈꺼풀을 떼자 그의 속 쌍꺼풀 진 눈과 마주했다.

“내 앞에 두고 다른 생각 하지 마.”

물 뿌려 대고 그런 말을 하니 좀 억울했다. 다른 생각을 한 건 사실이라 변명은 못 하지만.

“눈.”

한 글자짜리 명령을 바로 알아들었다. 잠깐 피했던 눈을 마주했다. 다스의 눈빛은 다정하기 그지없는데 나는 이유 모르게 무서웠다.

“오랜만에 나갔다 오니 기분 좋지?”

다스의 물음에 턱을 잡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오토바이 소리가 귓가를 왕왕 울려 댔다.

“말 잘 듣고 착하게 있으면 가끔 데리고 나가 줄게.”

꼭 평소엔 아예 못 나가게 할 것처럼 말해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어쨌든 다스랑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건 좋았다. 또 나가게 해 준다니 착하게 있어야지.

그가 내 턱을 놓아 주었다. 그러나 시선을 뗄 수는 없었다. 다스의 시선은 언제나 그랬다. 한번 마주치면 시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쉽게 풀려나지 못했다.

그래도 다스가 내 몸을 씻겨 주는 손길이 좋았다. 묻지 못한 것은 아직도 많지만 말이다. 백용태랑 그 여자분은 무슨 사이인지, 백용태가 다스에게 원하는 게 뭔지, 그리고… 나를 정말 안 넘길 건지.

꾸역꾸역 올라오는 물음을 삼키고 내 앞에 있는 다스에게 집중하려 애썼다. 어쨌든 지금은 다스가 나를 씻겨 주고 있고, 여기는 집이니까. 괜찮을 거야.

몸을 씻고 나서는 반깁스 위에 새 붕대를 감고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다스의 티셔츠만 달랑 입은 채로 속옷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있자니 아랫도리가 간질간질했다.

자기 전에 게임이나 하려고 오랜만에 휴대폰을 켰다. 자세를 고치다 액정을 잘못 눌러 들어간 곳이 하필이면 최근 통화 목록이었다. 제일 위에 이시훈 선생의 부재중 통화가 떠 있었다. 휴대폰을 꺼 놓았을 때 몇 번 건 모양이었다.

‘…잘 있겠지.’

설마 진짜로 신고하거나, 뭐, 그런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눈앞에서 내가 다스를 따라가는 걸 봤을 테니 말이다.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다스랑 신나게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날이니까.

앱을 종료하고 게임을 켜는데 다스가 불쑥 뭔가를 내밀기에 화들짝 놀랐다. 알약과 물컵이었다.

…약을 먹기가 싫었다. 조금 전까지 오토바이를 타며 다스의 등에 매달려 소리 지르던 일이 모두 잠 속으로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뭐 해? 어서 먹어.”

내가 망설이고 있자 다스는 들고 있던 알약을 제 입에 쏙 넣어 버렸다. 나 먹으라고 준 거 아닌가, 멍하니 있자 그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이내 입술이 닿았다.

“읍….”

닫혀 있던 입술이 벌어지고 그의 혀가 파고들었다. 저항하지 못하고 헤집는 대로 받아들였다. 이내 작고 둥근, 겉이 달큼한 알약 감촉이 목으로 흘러들듯 미끄러져 왔다. 고스란히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입 안을 좀 더 휘저은 뒤에야 다스의 입술이 떨어졌다.

“착하네.”

어쩐지 좀 억울해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다시 입을 맞췄다. 다스는 나를 밀어 내지 않았다. 입술을 열고 서툴게 밀어 넣은 내 혀를 휘감고 빨며 키스의 주도권을 금세 빼앗아 갔다.

우리는 오래도록 키스했다. 서로의 숨결을 빼앗고 빼앗기면서. 내 생각까지는 그에게 빼앗기지 않길 바랐다. 오늘을 아쉬워하는 나를, 그가 나를 백용태에게 줘 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나를 그가 모르길 바랐다. 나는 언제까지나 홍다스의 착한 개새끼여야 하니까.

평소보다 약 효과가 빨리 도는지 졸음이 금세 쏟아졌다. 다스는 내 옆에서 만화책을 읽었고, 나는 눈앞을 오가던 어슴푸레한 불빛이 오토바이 헤드라이트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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