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벗어 놓고 휴대폰을 확인하며 지금이라도 전화를 할까, 고민하는 중에 다스의 오토바이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어떡하지.’
오늘 사라고에 가면서도, 대본을 숨기면서도 한 번도 겁을 먹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겁이 났다.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밖으로 나갔다.
“끝났어? 집에 가자.”
메시지를 안 보내서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왔겠거니, 생각했는데 다스는 의외로 별말이 없었다. 그가 건네주는 헬멧을 쓰고 집까지 가는 동안 조금 불안했지만 내가 오늘 얻은 기쁨을 억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다스의 등에다 헬멧 쓴 머리를 붙이고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연옥동을 구경했다. 오토바이의 속도만큼 내달리는 불빛들이, 수많은 간판과 띄엄띄엄한 어둠이 새삼스러웠다. 모두 연극의 조명처럼 보였다.
다스에게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연극을 할 수 있단 기대감이 나를 더 자극했다. TV에 나오는 연기자들처럼, 나도 분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고 무대에 설 수 있다. 진짜 대사를 입으로 내뱉을 수 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스는 나를 밀어 넘어뜨리고 후드 티를 찢듯이 벗겼다. 투두둑, 실밥 뜯어지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다스야, 잠, 깐….”
애원하는 목소리도 금세 먹혔다. 바지 역시 뜯어지는 소리를 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 나 연극할 때 입으려고 했는데, 하는 생각이었다. 바보같이. 다스가 얼마나 화났는지도 모르면서.
다스는 내 속옷을 벗기지도 않고 옆으로 젖히곤 그대로 성기를 들이밀었다. 애무도 없이 갑자기 들어오는 이물감에 비명을 삼켰다.
“아파…!”
그러나 다스는 내 말을 듣는 시늉도 않았다. 머리를 맨바닥에 처박으며 몸으로 나를 짓눌렀다. 현관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못한 채, 한쪽 다리에는 찢어진 바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은 채로 다스를 받아들여야 했다.
“아파, 아프다고!”
바닥을 긁으며 애원했다. 이를 앙다물 정도로 아팠다. 다스가 차라리 뭐라고 말을 해 줬으면 나았을 텐데, 왜 메시지를 안 보냈느냐고 다그치는 말이라도 듣고 싶은데, 그는 일언반구 없이 마른 내 아래쪽에 성기만 쑤셔 박았다.
덜덜 떨며 바닥을 기다시피 했다. 힘없는 손끝은 바닥에서 미끄러지기만 했다.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차라리 힘을 빼면 덜 아프리란 사실이야 알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내 잘못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없이 폭력적으로 박아 대는 건 싫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이잖아.
있는 힘껏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몸부림쳤다. 그러자 다스가 내 머리통을 다시 세게 짓눌렀다.
“하지, 말, 라고! 아파!”
결국 빽 소리를 질렀다. 다스가 반쯤 들어온 것을 꽂은 채 내게 상체를 바짝 숙였다. 머리채가 잡혔다.
“아파?”
눈물이 날 정도로 따가웠지만 울지는 않았다. 대신 허공을 노려보았다. 다스가 눈앞에 있었다면 노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플 거 알고 그런 거 아냐?”
다스의 목소리는 몹시 낮고 조곤조곤했다. 그가 허리를 툭, 밀듯이 올려 쳤다. 동시에 아래쪽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또 밀려들었다. 어금니를 씹었다.
“너 아픈 것도 좋아하잖아. 변태 새끼라서.”
그가 나를 아프게 해 줄 때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런 건 싫었다. 무표정할 다스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아래쪽의 통증보다 그 표정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다스는 내게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쑤셔 박는 것으로 감정을 표출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쑤셔 박는 강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이가 갈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아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그저 아프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다스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맞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안 지킨 쪽은 나니까. 아는데, 잘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서러울까.
“그, 만….”
남은 힘을 짜내 몸을 비틀었다. 겨우 다스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팔꿈치로 기어가자 구멍에서 성기가 빠져나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조차 아파서 욕을 할 뻔했다.
힘이 하나도 없는 손으로 겨우 기었다. 두어 번을 갔을까. 발목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대로 주르륵, 힘없이 끌려갔다. 반쯤 찢어진 브리프가 온전히 벗겨졌다.
“아….”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박혔다. 안에 들어온 다스의 것이 꾸역꾸역 다친 내벽을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흐으, 아….”
다시 바닥을 손끝으로 긁어 댔다. 도망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아파서 반쯤 본능적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 착하지.”
와중에도 다스의 목소리는 달았다. 화가 난 아랫도리와는 달라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평소라면 그 목소리에 안심했을 텐데, 오히려 겁을 먹고 다시 바닥을 기었다.
상체만 겨우 앞으로 좀 내밀었을 때였다. 짜악,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내 엉덩이를 때린 것이었다.
아픈 것보다는 그가 나를 때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내게 폭력적으로 좆을 쑤셔 박아 대도, 손찌검을 한 적은 없는 다스였다. 그런 다스가 나를 때렸다.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다시 똑같은 곳에 짜악, 한 대를 더 맞았다. 놀라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하, 씨발. 때리니까 끊어 먹을 것처럼 조이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쪽에 연달아 두 대. 짝, 짝. 대체 왜 내가 엉덩이를 맞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스가 다시 한 대를 짜악, 이번에는 더 세게 때렸다.
“흐윽…!”
“이거 봐. 또 조이잖아. 이딴 건 어디서 배웠어?”
내가 조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놀라서 움츠러든 거 아닌가 싶었지만 말할 여력도 없었다. 엉덩이는 얼얼하고, 구멍은 여전히 빌어먹게 따가웠다. 그리고 와중에도 내 좆은 발딱 서서 프리컴을 질질 흘려 댔다.
“그냥 걸레 새끼라서… 타고난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가 다시 움직였다. 너무 아팠지만, 서럽기도 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꾹 참았다. 죽은 듯이 엎드려만 있었다.
그렇게 해야 다스의 화가 풀릴 것 같았다. 그렇게 해야 이 짓거리가 끝나고,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스는 내 머리를 짓누른 채 허리를 다시 움직였다. 성기가 깊숙이 쑤셔 박히며 통증 사이로 쾌감이 일었다.
“흐윽….”
울음 같은 신음을 작게 내뱉었다. 다스가 그 소리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조금 더 빨리 몰아치기 시작했다. 거의 내벽을 찢을 기세로 파고든 성기가 사납게 쑤셔 박혔다가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흑, 아, 아! 흐윽!”
“귤아…. 가끔 너는 내가, 씨발, 그냥 확 돌아 버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여….”
씹어뱉는 욕이 사나웠다. 아래쪽을 쑤셔 박는 힘 역시 몹시 사나웠다. 다스의 숨소리가 꼭 짐승 혓바닥처럼 사납게 귓가를 씹어 댔다. 나는 통증과 쾌감을 참으며 눈을 꾹 감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내가… 화가 날 리가 없잖아…. 씨발, 지금도 나는 당장 돌아 버릴 것 같은데….”
건조한 목소리였으나 어쩐지 나는 그가 슬퍼하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나는 다스가 슬픈 게 싫었다. 나 때문에 슬픈 것은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그의 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딱딱한 바닥에 얼굴이 짓눌렸다. 관자놀이와 광대뼈가 그의 허리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 쓸려 따가웠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흘렀으면 덜 아플 것 같은데, 울기는 죽어도 싫었다.
울음을 참느라 신음 대신 끅끅거리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라리 아프기만 하면 좋을 텐데, 지독한 통증 사이에 끼어들듯 불쑥불쑥 대가리를 쳐드는 쾌감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다스가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나를 아프게 해도 나는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가 내게 폭력적으로 좆을 박아 대도 내 몸은 그를 원한다. 헐떡거리며 더 깊이 박아 주길 바란다. 다스가 그렇게라도 나와 연결되어 있길 바란다. 그 사실이 오늘처럼 싫은 적이 없었다.
그가 내 목덜미와 어깨를 잘근잘근 씹고 빨기 시작했다. 꼭 고기를 씹기라도 하듯이 사나운 입질이었다. 잔뜩 자국이 남았겠다 싶을 때에야 그는 입술을 떼었다.
“귤아….”
잔뜩 낮아진 목소리가 자극적이었다. 안쪽을 꽉 채운 페니스가 내벽을 미는 듯이 쑤셔 댔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낮은 목소리가 내 몸 전체를 짓누르고, 긁어 대고, 아프게 했다. 발기한 내 페니스가 딱딱한 바닥에 짓눌린 채 정액을 울컥, 쏟아 냈다. 오르가슴도 없는 절정이었다. 마려워서 바지에 싸 버린 소변처럼 반사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에 치가 떨렸다.
너덜너덜해지는 것은 좆에 박히는 구멍만이 아니었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에 선득한 바람 같은 것이 들어왔다. 나는 내가 찢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뜨자 다스의 손에 찢긴 블랙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눈을 감았다.
다스는 한참 나를 괴롭혔지만 사정하지 않고 좆을 빼냈다. 나는 딱딱한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늘어져 숨을 몰아쉬었다.
“씨발….”
다스의 욕이 뒤에서 들려왔다. 뒤이어 큰 한숨 소리도 들렸다.
그가 나를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 버리거나 2층으로 올라가리라 생각했지만, 내 짐작과 달리 다스는 내 몸을 뒤에서 일으켰다. 늘어져 있던 몸뚱이를 반사적으로 뒤틀었다.
“싫…!”
또 그가 나를 아프게 할까 겁을 낸 것이었지만 다스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나를 뒤에서 안았을 뿐이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같이 숨을 참았다. 다스의 흐트러진 머리칼이 흘러내려 내 눈가를 간질였다.
다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를 꽉 안고 있는 팔에서 어떤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의 호흡에 내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내 가슴을 안은 다스의 팔에 손을 얹었다.
새벽이 깊어질 때까지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마치 본래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단단하게 얽힌 채로.
동이 틀 때가 되었을 때에야 다스는 2층으로 나를 안고 갔다. 공주처럼, 혹은 병자처럼 그에게 안긴 게 기분이 좋아서 나는 서럽고 아팠던 것도 잊고 멍청하게 헤실헤실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바보처럼 웃냐.”
“그냥….”
핀잔을 듣고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자 다스가 어이없다는 투로 픽, 웃음을 흘렸다.
그는 침대에 나를 엎드리게 하고 찢어진 구멍에다 약을 발라 주었다. 그 손길만은 하도 조심스러워서 방금 전까지 무식하게 처박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 있던 화도 죄다 풀려 버렸다.
“아, 아…. 거기 따가워….”
“여기?”
“응….”
일부러 엄살까지 부렸다. 다스는 진지하게 내 안쪽까지 꼼꼼하게 약을 발랐다. 얻어맞은 엉덩이에도 연고를 발랐다. 중간중간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당분간 떡은 못 치겠다.”
“뭐? 그 정도야?”
상체를 일으키려다 다스가 누르는 힘에 다시 풀썩, 엎어졌다.
섹스 못 하는 건 싫은데….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났다. 섹스를 안 하면 나는 다스랑 뭘 하고 지내야 하지. 오토바이를 타고, 계곡에 뛰어들고, 함께 게임을 하긴 해도 그와 내 생활의 대부분은 섹스였다. 그가 나를 데리고 있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테고….
“왜, 싫어?”
어쩔 수 없이 또 마음을 들키고 만다. 대답 않고 엎드려만 있자 다스가 내 몸 위로 겹쳐 왔다. 나보다 높은 체온이 달았다. 그가 내 뒤통수에 코끝을 살짝 비볐다. 손으로는 어깨를 쓸었다.
“꼴리면 말해. 내가 손으로 해 줄게.”
“…됐어.”
괜히 뚱하게 대답했다.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닌데. 다스랑 섹스할 때마다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보다 그가 내게 흥분한다는 사실이 더 기분 좋음을, 나한테 들어오는 그의 성기가 딱딱하게 발기해 있는 것을 느낄 때마다 미치게 만족스럽단 사실을 그는 모르나 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그냥 아까 아프게 해서, 때려서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 주면 되는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게 나를 좀 서운하게 했다.
다스는 내 목덜미에 입을 쪽, 맞추고는 약 상자를 치웠다. 팬티를 입자 엉덩이 통증에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찢어진 블랙진이 문득 생각나 신경 쓰였다. 그리고 호프집 뒤에 감춰 둔 대본도 떠올랐다.
“자자. 해 뜨겠다.”
“응.”
다스는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잠들었다. 나는 그가 잠든 뒤 몰래 거실로 내려왔다.
아랫도리의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TV를 켰다. 메뉴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택하고 리모콘을 꾹꾹 눌러 검색어를 입력했다. ‘ㅍ, ㅣ, ㅌ, ㅓ, ㅍ, ㅐ, ㄴ’.
<피터 팬> 애니메이션은 내 기억 속에 있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또 유치했다. 머릿속에 남은 대본과 내용을 비교해 보며 장면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봤다.
웬디는 피터 팬의 그림자를 꿰매 준다. 그녀와 피터 팬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피터 팬이 나이를 먹지 않고 네버랜드에 사는 동안 혼자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웬디는 외롭지 않았을까? 피터는 웬디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나는 피터가 아이들을 도로 런던에 데려다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웬디는 그와 함께 지낼 수 없었을까.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웬디를 생각했다. 피터가 버린 그녀가 행복할 리 없다고 믿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TV를 켠 채 잠들면서 나는 다스를 생각했다. 꿈속에서 나는 다스의 웬디도 피터도 아니었다. 나는 그의 찢어진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