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터 팬 죽이기 (1) (3/22)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한 ‘일’인 호프집 아르바이트는 한 달 동안 무사히 이어졌다. 월급날이 다가온 것이었다. 사장님은 월급 내역이 간략하게 작성한 급여 명세서도 써 주었다. 근무 시간과 시급, 총 지급액이 적힌 종이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 다스랑 은행에 가서 만들었던 내 통장에 처음으로 제법 큰 돈이 들어왔다. 만들 때 받아 놓고 한 번도 쓴 적 없던 체크 카드를 오랜만에 꺼냈다.

‘월급으로 다스한테 선물 사 줘야지….’

아주 비싼 건 못 사겠지만, 그래도 기념이니까 작은 거라도 하나 사 주어야지 싶었다. 하지만 뭘 선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스는 어마어마한 부자니까.

옷을 사 줄까, 싶어도 내 패션 센스를 믿지 못하겠거니와 다스가 갖고 있는 것만큼 멋진 옷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먹는 건 남는 게 없어서 싫고….

휴대폰으로 검색도 좀 해 보았다. 검색어를 고민하다가 ‘남자 친구 선물’이라고 꾹꾹 눌러쓸 때는 약간 두근두근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휴대폰도 다스가 준 건데.

여태 다스에게 받기만 했지, 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야 사소한 거라도 그에게 줄 수 있단 생각에 나는 몹시 들떴다.

오래 고민하다가 고른 선물은 바로 지갑이었다. 다스는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았다. 항상 점퍼나 바지 주머니에 카드랑 현금만 넣고 다녔다. 하지만 내가 선물하면 필요할 땐 들고 다니지 않을까?

일부러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서 근처 쇼핑몰에 갔다. 내 월급으로 구매할 수 있는 지갑 종류가 생각보다 많아 신이 나서 고르는데, 빤한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았다. 정장 입은 사내 하나가 나를 지긋이 보고 있었다.

‘…뭐야?’

어디서 본 얼굴인데, 싶어 기억을 되새겼다. 별로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일전 세탁소에 들렀다 집에 갈 때 봤던, 각진 외제 차를 타고 있던 남자였다.

왜 이렇게 사람을 빤히 쳐다보나 싶어 나도 마주 보았다. 비록 머리칼 때문에 눈이 가려졌지만 말이다. 남자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내 앞의 쇼케이스를 흘끔 확인했다.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사는 건가?”

험악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나긋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기분은 나빴다. 왜 다짜고짜 반말인가 싶어 대답 않고 노려보기만 했다. 남자가 슬그머니 웃었다. 그 웃음도 기분 나빴다.

“나를 모르는 모양이네.”

“…아저씨가 누군데요? 제가 알아야 돼요?”

설마 아버지 친구는 아니겠지. 아버지 돈 받으러 다니는 사채업자라거나. 혹은 아버지가 나 찾으러 보낸 사람이거나.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얼마 전에 그렇게 두들겨 맞고 각서까지 쓰게 했는데.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거리를 유지한 채 팔만 쭉 뻗어 얼른 받아 들었다. 전에 클럽에서 받았던 명함과 똑같았다. 블랙호크 컴퍼니라는 웃긴 회사명. 뭐야, 흑매파 사람이 왜…. 그리고 아래쪽에 적힌 이름이 한 박자 늦게 눈에 들어왔다.

대표 이사 백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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