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스와 귤이- (1/22)

사람들은 그 애를 보고 모두 다스라고 불렀다. 성을 붙여서 홍다스, 하고 말이다. 물론 녀석의 본명은 아니었다.

‘다스’의 뜻이 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 다스, 두 다스 할 때 그 다스일 수도 있었고 다스 베이더의 다스일 수도 있었고, ‘다’ 자가 들어간 그의 이름에다 ‘스’를 붙인 걸 수도 있고, 혹은 아무 뜻도 없을 수도 있었다.

확실한 건 한 가지였다. 홍다스는, 홍다환은 본명을 불리길 싫어했다.

“아, 씨발, 또 죽었어.”

게임기 패드를 고쳐 쥐며 다스가 내게 손짓했다. 순순히 옆으로 다가가자 그가 한 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대로 상체가 숙어지더니 얼굴이 그의 바지춤에 닿았다.

“좆같아, 콤보 쓰지 마.”

“내 맘이야, 십새끼야.”

다스와 강태가 대화하는 소리가 머리 위로 들렸다. 나는 얼굴 아래 있는 다스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벌써 발기하기 시작한 다스의 페니스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다스가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깐이었다. 다시 양손으로 패드를 쥐느라 내 머리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다스의 좆을 빠는 동안 다스는 강태와 게임을 한다. 내가 다스를 생각하는 동안 다스는 다른 생각을 한다. 내가 다스의 손길을 기다리는 동안 다스는 다른 것을 만진다.

두 사람의 결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승부가 난 모양이었다. 당연히 다스가 이겼을 거다. 강태는 다스에게 언제나 져 주니까.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다스의 눈치를 보고, 그의 기분을 맞춰 주려 애쓴다.

다스는 우리의 왕이었다.

그리고 나는 왕의 개였다.

개가 정성을 다해 다스의 좆을 핥고 빨았다. 딱딱하게 발기한 것을 빼낸 다스가 나를 일으켰다. 나는 순순히 엉덩이를 들고 엎드리며 한 손으로 바지 버클을 풀었다. 다스가 내 바지를 끌어 내렸다.

***

아버지는 목사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뒤부터 나를 팼다. 그러니 나는 다섯 살부터 맞고 자랐다.

아버지는 내게 사탄이 끼었다고 했다.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아버지 말을 잘 들으라고 했다. 나는 며칠씩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금식 기도를 올리곤 했다.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래. 신앙은 모든 죄를 다 씻어 준다, 규인아.’

아무도 아버지가 나를 때리는 줄 몰랐다. 학교 선생님한테 말하자 선생님은 나를 나무랐다. 우리 학교에 아버지가 얼마나 돈을 많이 바쳤는지 그제야 알았다. 어린 나는 그때부터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가끔 교회 신도들이 집에 놀러 왔다.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림자 놀이를 해야 했다. 착한 그림자는 말을 할 줄 모른다. 착한 그림자는 사람들이 웃을 때마다 꼬박꼬박 흔들리며 함께 웃는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움직이지 않으면서.

아버지는 신도들과 화투를 쳤다. 만 원짜리, 오만 원짜리가 담요 위에 화투장과 함께 흩날렸다. 나는 돈이 그렇게 하찮게 날아다닐 수 있을 줄 몰랐다.

그때만큼은 아버지도 내게 웃어 주었다. 그러나 그림자가 흐트러지는 날에는 두들겨 맞았다.

나는 열심히 기도했다. 아버지는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사탄이 내게서 빠져나갈 거라 했다. 정성 들여 기도하면 언젠가는 내게도 신이 와서, 이 좆같은 상황을 끝내 주리라 믿었다.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기도했다.

그러나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기도해도 신은 오지 않았다. 신은 죽고 싶어 하는 자의 말은 들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아버지의 학대는 계속되었다. 단식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며 내게 밥 한 그릇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학교 급식 시간마다 폭식을 했다. 금요일에는 매점에서 훔친 과자를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다.

훔쳐 온 과자는 내 그림자와 나눠 먹었다. 장판 바닥에 툭, 툭, 과자를 던져 주면 나만큼이나 탐욕스러운 그림자가 그것을 꾸역꾸역 삼켰다.

물론 도망치려 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골목으로 달려가는 나를 기어코 붙잡아 끌고 왔다. 그 뒤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묶여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사탄 새끼라서, 자기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벗어나면 그 순간 죽을 거라고.

다스를, 홍다환을 만난 것은 내가 열아홉 살 때였다. 아버지의 도박벽이 점점 더 심해지던 시기이기도 했고 아버지가 나를 때리는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스는 당시 어느 조직폭력배에 고용되어서 돈을 받으러 다녔다. 반지를 잔뜩 낀 손에 만 원짜리 식칼을 들고 한마디를 하면 대부분은 쫄아서 어떻게든 지갑을 열었다나. 우리 집이 다스가 찾아간 일곱 번째 집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다스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사탄 새끼, 어린놈의 새끼라고 멱살을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스는 식칼을 쓰지 않았다. 그는 주먹으로 내 아버지를 두들겨 팼다. 아버지가 비명을 더 지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동안 식탁 밑에 웅크리고 앉아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퍽, 퍽, 주먹질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둠이 떨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식탁 밑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저 사람 아들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돈 어디 있는지 알아?’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는 나한테 용돈도 제대로 준 적이 없었다. 나는 자식새끼가 아니라 사탄 새끼인데, 내게 돈을 어디 뒀는지 알려 줄 리가 있나.

다스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묶인 자국이 그대로 남은 손목과 멍이 든 팔뚝을 유심히 살폈다.

‘너, 내가 살려 줄까? 나랑 가면 살 수 있어.’

떨군 시선에 아버지의 손이 보였다. 죽지는 않았는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안 돼.’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사탄 새끼라서 아버지를 벗어나면 뒈지고 말 거라는 말이.

‘나는 못 나가.’

내가 듣기에도 한심한 목소리로 말하자 다스가 내게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손에 낀 반지가 모두 열 개는 되어 보이는, 손가락이 무척 길고 커다란 손이었다.

‘좆 까고, 그냥 나랑 가자.’

아무리 기도해도 오지 않던 신이 비로소 내 앞에 와 있었다. 장판의 핏자국 위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다스는 나의 신앙이 되었다.

***

다스는 ‘착하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다스는 머리를 목이 덮일 정도까지 길렀다. 새카만 머리칼은 항상 깨끗하게 빗어서 바짝 당겨 하나로 묶고 다녔다. 다스가 머리를 푼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머리칼을 깨끗하게 묶은 탓에 언제나 귀가 보인다.

다스의 귀는 끝이 조금 뾰족한 모양이다. 그리고 항상 귓바퀴에 피어싱을 두 개씩 하고 있다.

다스는 점퍼를 좋아한다. 가죽점퍼, 야구 점퍼, 스카쟌 같은 것들을 사시사철 입는다. 여름에는 맨상체에다가 점퍼만 걸치고 다닌다.

다스는 피어싱만큼이나 반지를 많이 낀다. 한 손에 열 개씩 낄 때도 있다. 왜 그렇게 반지를 많이 끼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다스는 여상하게 대답했다.

“그냥. 손가락이 아깝잖아.”

아마도 다스는 제 손이 크고 예쁜 걸 아주 잘 알 것이다. 제가 잘생긴 것도 안다. 제가 연옥동에서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도.

다스는 양아치고 깡패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스를 좋아한다.

다스는 나를 ‘귤아’ 하고 불렀다. 손규인이라는 심심한 이름보다는 귤이라는 애칭이 더 부르기에 좋다고 했다.

그가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었다. 그저 속 쌍꺼풀 있는 눈을 접으며 웃는 얼굴이 좋았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도, 저음의 또박또박한 음색도.

“…그래서 맥주값 이천 원 모자란 거만 나중에 드리면 안 되냐고 하니까 거지새끼라고 욕을 하잖아, 씨발 놈이.”

“야, 이거 가지고 가서 당장 거기 냉장고에 든 맥주 죄다 사 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스가 점퍼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강태에게 던졌다. 보고 있던 애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혼자서만 소리를 죽였다. 다스의 좆이 내 구멍을 쑤셔 박고 있기 때문이다.

애들이 보든 말든 다스는 내 바지를 내리게 하고 좆을 쑤셔 박았다.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애들도 우리가 몸 섞는 모습을 눈앞에 두고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니, 익숙해졌다기보다는 다스가 무서워서일 터다. 홍다스는, 홍다환은 이 무리의 왕이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러그를 움켜쥐며 어금니를 씹었다. 다스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내 발기한 좆 대가리가 꺼슬꺼슬한 러그에 마구 쓸려 아팠다.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누구 것인지 모를 발이 얼굴 옆을 지나쳤다.

무리는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 되었다. 나와 다스처럼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거나, 혹은 스물 언저리인 아이들이다. 이들은 종종 다스의 집에 모인다.

2층짜리 주택은 다스의 명의라고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다스가 국회 의원의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고, 재벌 3세라는 소문도 있지만 그 역시 확실하지는 않았다. 어디서 자꾸 돈이 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녀석은 부자였다.

애들 중 하나가 냉동실에 있는 도넛을 먹어도 되느냐고 묻자 다스는 내 뒤에서 박으며 그러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정신없고 시끄러운데도 다스는 애들이 자기 집에서 놀도록 놔둔다. 어차피 아침이 되면 놈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알아서 청소를 하고 나가니까.

나는 다스의 집에서 잠을 자는 유일한 무리원이다. 나를 무리원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스처럼 주먹질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니고, 몸이 빠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다스는 나를 이 집에 살게 해 줬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좆 박을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다스와 1년 넘게 동거를 했다. 다스는 내게 방세를 요구하지도, 생활비를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박히는 게 어쩌면 다스의 친절에 대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가 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상체가 역으로 휘면서 나도 모르게 히익, 소리를 냈다. 들락날락하던 다스의 좆이 돌연 안쪽 깊은 곳까지 꽈악, 밀고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통증과 쾌감이 동시에 들이닥치며 무언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정한 것이었다.

곧바로 다스가 내 안에 사정하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 쏟아지는 감촉을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식하게 틀어박혀 있던 것도 빠져나갔다.

다스는 내 뒤통수에 한 번 쪽, 입을 맞추곤 일어났다. 나는 그 짧은 입맞춤만으로 만족하며 바지를 어설프게 추스른 뒤 욕실로 들어갔다. 다스가 아이들과 떠들며 웃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바지를 도로 벗고 다리를 벌리자 다스가 싸 놓은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

아이들은 저녁마다 모여서 오토바이를 타곤 했다. 떼를 지어서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사나웠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내 뺨에 닿는 다스의 등도 좋았다.

다스의 등뼈에서는 따뜻한 소리가 났다. 물이 끓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달궈진 구슬이 타닥타닥 뛰어오르는 듯한 소리. 오토바이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여기서 야식 먹고 가자. 괜찮지?”

다스는 왕이지만 다정한 왕이다. 애들이 따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다스는 애들이 해 달라는 건 거의 다 해 줬다. 어디서 쥐어 터지고 오면 곧바로 복수를 해 주기도 했다.

호프집에 들어가자마자 먹고 싶은 건 다 주문하라는 다스의 말에 애들이 또 환호성을 질렀다. 직원들이 와서 테이블을 붙여 주었다. 다스는 자연스레 내 손목을 끌어당겨 제 옆에 앉혔다.

“귤아, 너는 먹고 싶은 거 없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본래 이렇게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지만, 싫어하다 못해 가끔 식은땀이 나기도 하지만, 그건 다스가 알 바가 아니었다.

기본으로 나온 땅콩을 집어먹고 있는데 다스의 팔이 내 어깨를 감쌌다. 옆을 보자 다스와 눈이 마주쳤다. 다스의 동공은 색소가 옅어서 이렇게 어슴푸레한 곳에서 봐도 갈색으로 보였다. 그가 해사하게 웃었다.

“착하네.”

다스가 말하는 ‘착하네’는 큰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다스가 보이는 눈웃음도 큰 의미가 없었다. 다스는 아무에게나 착하다고 하고, 아무에게나 웃어 준다.

왕은 누구의 것이 되지 않는다. 단지 군림하는 것뿐이지. 그러므로 나는 다스를 독차지할 수 없었다.

다스를 독차지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의 그림자가 되고 싶었다. 그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더 짙어지는, 떼어 낼 수 없는 그의 어둠이 내 몫이길 바랐다.

손에서 빠져나간 땅콩이 데구루루 굴러서 다스의 팔꿈치 옆까지 갔다. 주워 먹는 대신 다른 것을 집었다.

***

아이들은 보통 밤에 모이지만, 이따금 낮에 모였다. 동네 야산의 계곡에 가는 날이 그런 날이었다.

계곡에는 높이가 꽤 되는 절벽이 있었다. 다이빙을 하기에는 조금 높은 곳이지만 애들은 여기서 뛰어내렸다. 언젠가 여기서 머리가 깨져 죽은 사람도 있다고 했지만, 그런 소문은 오히려 녀석들의 호승심을 부추겼다.

가장 먼저 뛰어드는 건 언제나 다스다. 드로어즈만 입고 절벽 끝까지 맨발로 척척 걸어가는 다스의 등은 꼭 수영 선수처럼 멋있었다. 다스가 절벽 끝에 서서 팔다리를 가볍게 풀면 애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절벽 아래를 보며 몸을 푼 다스는 항상 뒤로 돌았다. 그리고 우리 쪽을 보며 씩 웃은 다음 뒤로 점프했다.

점프하는 순간의 다스는 새 같기도 하고, 이름 모를 해양 포유류 같기도 했다. 빛에 물든 다스의 몸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는 일은 결코 질리지 않았다. 다스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빛과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애들은 하나둘씩 뒤이어 입수했다.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내리는 놈도 있고, 떨리는 내색을 숨기다가 등을 떠밀리자 비명을 지르는 놈도 있었다.

여기서 뛰어내리지 않는 놈은 등신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나도 뛰어야 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맨 마지막으로 절벽 끝에 서면, 아래에서 항상 다스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귤아, 이리 와.”

그러나 팔을 벌려 보이는 다스를 보면 무섭지 않았다. 그를 향해 낙하하는 순간은 찬연했다. 나는 마치 자살하듯 그를 향해 뛰어내리고, 그는 나를 보며 웃는다.

물보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항상 다스의 손이 다가와 나를 끌어 주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올라가는 수면은 아릴 만큼 눈부셨다.

아주 추운 겨울이 아니면 우리는 주기적으로 이 계곡에서 몸을 적셨다. 날리는 물방울들은 다스를 돋보이게 했다.

그날도 우리는 계곡물에 몸이 차게 식고 손이 퉁퉁 불 때까지 놀다가 나왔다. 다스는 젖은 머리칼을 다시 손으로 빗어 묶었다. 물에 젖은 반지들이 빛을 어지럽게 산란했다.

애들이 가져온 맥주를 마시는 동안 다스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그는 휴대폰을 바위에 내려 두곤 바지만 입은 채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어깨와 발만 쓰며 느린 스텝으로 움직이는 다스는 멋있었다. 젖은 몸이 반짝반짝하게 빛났다.

나는 드로어즈 차림에 남방만 어깨에 걸친 채로 몸을 웅크리고 다스를 보았다. 가뜩이나 눈을 가릴 정도로 길어 버린 앞머리는 물에 젖자 더 처치 곤란이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칼을 자르지 않은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다.

‘귤아, 너 앞머리 기르면 예쁘겠다.’

다스의 한마디 때문에 나는 앞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뺨까지 왔을 즈음 다스의 집 욕실에서 뒷머리와 함께 대충 가위로 다듬은 게 전부였다.

‘너는 못난이라서 머리라도 길러야지. 그치, 귤아.’

다스는 항상 내가 못생겼다고 했다. 누가 내 외모를 평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너는 못난이라서 내가 옆에서 예뻐해 줘야 해.’

나를 예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아비라는 놈은 나를 때리기나 했으니. 그러므로 다스는 나를 예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 말고 너 예뻐해 줄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귤아.’

다스가 나의 유일한 사람이라 좋았다. 내가 다스의 유일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1kg에 만 원도 하지 않는 싸구려 귤일 뿐이다. 던지면 구르고, 누르면 터지는 다스의 귤이다. 다스가 손에 힘만 주면 나는 질질 싸고 운다.

나는 그게 서럽지 않았다. 다만 두려웠다. 다스가 언제 질려서 나를 던져 버릴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언제 나의 신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점이 내 유일한 공포였다.

머리칼 사이로 아이들이 보였다. 다스를 따라 춤을 추는 놈도 있었고, 맥주 안주로 가져온 과자를 갖고 싸우는 놈들도 있었다.

“씨발, 누나가 연극 보러 가자고 하네.”

강태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 따위는 이 녀석들과 거리가 먼 것들이다.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갇혀서 무언가를 보는 게 고문이라고 생각할 놈들이니.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다스에게 제대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연극이 좋았다. TV에서 하는 드라마도, 영화도 좋았다.

어릴 때 시간을 죽이기 위해 숨었던 학교 도서관에서 별 의미 없이 꺼내 든 책에서 우연히 문장 하나를 읽은 나는 그것에 매료되었다.

많이 고통스러울 때는 이게 모두 연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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