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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해피엔딩 (10/11)

외전 1 해피엔딩

“반장님, 오늘 우리 회식해야죠.”

해맑은 목소리에 백설형의 걸음이 멈췄다. 막 걸려 있던 점퍼를 챙겨 조용히 나가려던 참이었다.

“회식은 무슨 회식이야.”

얼굴을 구긴 백설형이 핀잔했지만 재민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그 말이 핀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게 재민의 수많은 단점 중에 가장 최악의 단점이었다.

“왜요. 백 형사님도 복귀하셨고, 도 검사님도 다시 오셨으니까 당연히 축하를 해야죠.”

“좌천되서 오신 걸 축하하자고?”

“아…….”

그제야 재민도 아차 싶었던지 슬그머니 주변을 살핀다. 다행히 도강우는 청장실에 인사를 하러 간 뒤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 틈에 백설형은 슬쩍 사라져 버리려고 한 것이고.

“아쉬운 대로 백 형사님 복귀 축하라고 하죠, 뭐.”

“아주 고맙지만, 들러리는 사양한다.”

“들러리라뇨. 그동안 백 형사님 없으셔서 얼마나 허전했다고요.”

“방금 아쉬운 대로, 라고 덧붙이는 거 똑똑히 들었거든?”

“백 형사님이 그리웠다는 건 진짜예요.”

“…….”

“백 형사님 담당 사건들 대체 왜 그렇게 많은 거예요? 김 형사님이랑 나눴는데도 제 담당의 두 배나 되던데요? 그거 수습하느라 진짜 죽을 뻔했잖아요.”

잠깐이나마 감동 먹을 뻔했던 것 취소.

“백 형사님이 맡은 사건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욱도 한마디 거들었다.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이건 순도 백프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괜스레 머쓱해진 백설형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 하필 눈을 반짝이고 있던 재민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 축하를 해야 한다니까요.”

피식, 웃음을 흘린 백설형이 못 말린다는 듯

“넌 어린 놈이 왜 이렇게 회식을 좋아해. 하루 종일 보는 시커먼 사내들이랑 퇴근 후에도 또 마주 앉아서 밥을 먹고 싶냐?”

“혼자 처량하게 먹는 것보다는 낫죠.”

“왜 혼자야. 여자 친구는.”

“…….”

아슬아슬하다 싶더니 결국 차인 모양이었다. 급격히 어두워지는 표정을 확인한 뒤에야 지뢰를 밟았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던 백설형이 미안하다는 사과 대신 물었다.

“고기 사 줄까?”

그런 백설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재민도 별다른 불만 없이 대꾸했다.

“소고기요.”

“나 간다.”

“물론 고기는 또 돼지고기죠.”

“…….”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다 개구라다. 한껏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눈을 반짝이는 재민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응시하던 백설형이 결국 어깨를 늘어트렸다. 물론 그런 백설형의 눈동자에서 맘대로 해라, 라는 기색을 읽은 재민이 후다닥, 옷가지를 챙겨 일어났다. 이미 전원을 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김욱 형사도 조용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반장님께 전화할게요.”

신이 난 재민이 황급히 통화 목록에 있는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Trrrrrrrrr, Trrrrrrrrr. 연신 울리던 통화음이 찰칵, 하고 넘어간 것은 막 문을 통과하려던 참이었다.

“왜.”

하지만 목소리가 목소리가 들려 온 곳은 핸드폰이 아니라 바로 코앞이었다. 막 들어오려던 참이었던지 수화기를 든 홍 반장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목까지 잠근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집어넣고 걸음을 내딛던 백설형도 한발 물러선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반장님, 백 형사님이 한턱 쏘신대요.”

재민의 말에 홍반장의 사나운 눈빛이 백설형을 향했다.

“미친놈. 정직 먹어서 월급도 까인 놈이 쏘긴 뭘 쏴.”

“저도 좋아서 쏘는 거 아니거든요.”

억울해진 백설형이 투덜거리다 도강우와 눈이 마주쳤다. 물론 그가 거기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앞선 홍 반장보다 뒤에 선 도강우가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단순히 그의 키가 홍 반장보다 크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도 검사님도 같이 가시죠.”

뒤돌아선 홍 반장이 도강우에게 권했다.

“오랜만에 회포도 풀 겸.”

“미안하지만 오늘은 패스하죠. 할 일이 좀 있어서.”

“아, 그러십니까. 그럼 할 수 없지요.”

딱 잘라 거절하는 도강우에 홍 반장이 곧장 물러섰다.

“급한 일이세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래도 식사는 하시고―”

“할 일이 있으시다잖아. 그럼 저희는 이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권하는 재민을 백설형이 말리며 걸음을 내딛으려고 할 때였다.

“백 형사도 오늘은 빠져야겠네요. 할 일이 있어서.”

“무슨―”

붙잡힌 팔을 빼내려 했지만 별로 힘도 주지 않은 것 같은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눈이었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도강우는 지금 굉장히 열이 받은 상태라는 걸.

백설형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오늘 밥값은 이걸로 계산하세요.”

도강우가 지갑에서 꺼낸 카드를 내밀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영문을 몰라 시선만 주고받고 있던 이들 중에 재민이 머뭇거리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럼.”

도강우가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백설형의 팔은 여전히 붙잡은 채였다. 못마땅한 표정이긴 했지만 백설형도 포기한 듯 반항 없이 순순히 제 발로 걸었다.

저벅저벅.

길어지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이윽고 모습을 감춘 후에야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설마.”

재민이 달싹이던 입술을 열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시는 건 아니겠죠?”

“설마.”

홍 반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도 검사님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으셔서요.”

“하긴, 백 형사님이 사람 속 뒤집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시죠.”

“…….”

이번엔 홍 반장도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그렇다고 백 형사님이 누구한테 맞고 있을 성격도 아니니까요.”

“맞어. 그놈이 어떤 놈인데.”

백설형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랄 맞은 녀석이라는 사실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홍 반장의 눈빛에 서린 것은 분명 확신이었다.

그때였다.

“헉.”

갑자기 들려온 숨을 들이키는 소리에 홍 반장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재민에게로 향했다.

“왜.”

하지만 정작 휘둥그레진 눈이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조금 전 도강우가 던져 주고 간 카드였다. 카드를 귀신이라도 본 듯 경악한 눈으로 보고 있던 재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블랙카드예요.”

비장하게 선언한 것이 무색하게도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카드? 그게 뭔데.”

그게 뭔지도 몰랐으니까. 시큰둥하게 되묻는 김욱에게 재민이 소리치듯 외쳤다.

“한도 없는 카드요!”

그제야 두 사람의 눈이 조금 전 재민처럼 커졌다.

“그런 카드가 있어?!”

“사실 저도, 실물로 본 건 처음이라.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네요.”

“이야. 재벌집 아들은 다르구만.”

“한도가 없으면 그럼 이걸로 집도 살 수 있다는 건가?”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플라스틱 카드를 마치 금덩이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있던 재민이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무슨 엄청난 제안을 하려는 것인가, 덩달아 몸을 웅크린 홍 반장과 김욱 형사도 귀만 쫑긋 세웠다. 뜸을 들이던 재민이 덧붙였다.

“이걸로 소고기 먹을까요?”

“…….”

“…….”

“그건 좀.”

“아무리 한도가 없어도 소고기는 너무 심하잖아.”

침묵하던 김욱과 홍 반장이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그렇죠?”

두 사람의 그런 반응에 재민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조금 전보다 마음이 훨씬 후련해진 표정이었다.

“역시 고기는 돼지고기죠.”

만약 백설형이 있었다면 줘도 못 먹는다며 혀를 찼겠지만 안타깝게도 백설형은 이곳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

“이건 좀 놓고 가죠.”

건물을 나설 때까지 반항하지 않고 얌전하던 백설형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물론 내딛는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안 됩니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절하는 도강우에 설형이 걷는 속도를 늦췄다. 무언의 항의에 결국 도강우도 뒤돌아섰다.

“여기 보는 눈 많습니다.”

사실 설형이 손은 놓고 가자고 말한 이유도 도강우를 생각해서였다. 사고뭉치 형사와 엮여서 좋을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런 설형의 배려가 도강우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거였지만.

“놓아주면 또 도망가려구요.”

“도망을 가긴 누가 도망을 갔다는 겁니까.”

“…….”

몰라서 묻냐는 시선에 설형이 슬그머니 고개를 꺾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도강우가 덧붙인다.

“게다가 좀 전에도 내가 억지로 끌고 나오지 않았으면 그대로 도망쳤겠죠.”

“도망이라뇨. 팀 회식인 거 도 검사님도 보셨잖습니까.”

직접 본인 카드까지 줘 놓고 이러긴가. 하지만 억울해하는 설형에도 도강우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회식이 아니었으면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까?”

“제가, 왜 도 검사님을 기다려야 합니까.”

“…….”

또 침묵. 차라리 뭐라고 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자신을 응시하는 도강우의 얼굴이 어쩐지 지쳐 보이는 것은 착각일 게 분명하다.

“우리 못 다한 이야기가 꽤 많이 밀려 있는 걸로 아는데요.”

“저랑은 더 이상 얘기도 하기 싫은 것 아니었습니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구요?”

“…….”

이번에도 먼저 말문이 막힌 쪽은 설형이었다. 툭툭,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던 설형이 불쑥, 불만을 토해 냈다.

“연락도 없이 복귀하신 쪽은 검사님이잖습니까.”

따지는 말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설형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채 대치하던 도강우가 되물었다.

“백설형 씨가 먼저 연락할 생각은 못했습니까.”

“제가 왜 도 검사님께 연락을 해야 합니까.”

“…….”

곧바로 받아칠 줄 알았던 도강우가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이게 아닌데. 설형도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건 어려웠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 아니었습니까?”

발끝만 내려다보고 있던 설형의 고개가 도로 들렸다. 차갑게 식은 눈동자가 말했다.

“나한테 갚을 빚이 세 개나 있잖습니까.”

“…….”

“설마, 떼먹을 생각이었습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하지 않고서야 대한민국 검사 빚을 떼먹을 리가요.”

차라리 이쪽이 쉬웠다. 적어도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태연히 받아치는 설형에 도강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하고 웃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형사, 정도겠네요.”

물론 그리 말하는 도강우의 얼굴에 웃음기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

“호텔, 우리집, 편한 쪽으로 선택해요.”

“…….”

“백 형사 집은 기각입니다. 거기까지 갈 시간은 없어요.”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의견의 일치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벨트 해요.”

찰칵. 설형이 황급히 벨트를 당겨 잠금장치에 꽂았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도강우가 고개를 드는 설형의 타이밍에 맞춰 다시 묻는다.

“그래서, 호텔?”

“집으로, 가죠.”

그냥 호텔로 갔어야 했나. 사내 둘이 호텔을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었으나 막상 도강우의 집 앞에 서고 보니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지금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앞서서 들어가는 도강우를 따라 설형도 걸음을 내딛었다. 현관에서부터 기가 죽었다. 평범한 오피스텔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평범을 벗어날 줄은 몰랐다. 보통 오피스텔은 원룸 아니었나. 하지만 도강우의 오피스텔은 특검 때 임시로 빌렸다던 스위트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 때와 다른 점은 과하게 앤틱한 인테리어에서 도강우 이미지에 딱 맞는 심플한 인테리어로 꾸민 공간이라는 정도. 물론 하나같이 값비싸 보인다는 건 공통점이었지만.

“뭐 마시겠습니까.”

주방으로 곧장 걸어간 도강우는 이미 냉장고 문을 열고 있었다.

“아뇨……, 물, 이면 됩니다.”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목이 바짝 마르는 느낌에 설형이 말을 바꿨다. 그런 설형의 이상한 대답에도 도강우는 조용히 생수병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자마자 뚜껑을 열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게 목을 축이고 있는 설형을 향해 도강우가 물었다.

“목구멍 쓸 줄 압니까.”

마치 조금 전 뭐 마시겠냐고 묻던 무심한 말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투로. 하마터면 그대로 입안에 있던 물을 뿜을 뻔했다. 필사적으로 입안의 것을 삼킨 설형이 기가 막히다는 듯 항의했다.

“그딴 거 알 리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도강우는 태연했다. 휙. 벗은 상의를 식탁 위에 내려놓은 도강우가 조금 전보다 더 태연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럼 지금부터 익히면 되겠네.”

“…….”

물을, 먹길 잘했네. 핀트가 완전히 나간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설형이 한 생각은 고작 그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였을 뿐, 겁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여기서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설형이 손을 내뻗었다. 철컥, 벨트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린다. 검은 브리프가 눈에 들어왔다. 탄력 있게 아랫도리를 감싼 브리프 위로 성기의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몇 번을 봐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크기였다.

“고사 지냅니까.”

조금 머뭇거린 것뿐인데, 곧바로 질책이 돌아왔다. 눈매를 일그러트린 설형이 천천히 몸을 주저앉혔다. 무릎으로 서자 바로 눈앞에 사타구니가 있었다. 꽤나 굴욕적인 자세였으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성기를 보니 다른 것은 오히려 사소한 느낌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성기가 더 생생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귀두와 기둥 사이의 옴폭하게 들어간 경계까지 선명했다.

손을 뻗어 터질 것 같은 브리프를 끌어 내렸다. 성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거의 튕겨져 나온 긴 성기가 바짝 서 있었다. 이렇게 흥분한 이의 목소리가 그토록 차가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솔직히 안도한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제가 쓸모가 있다는 말이니까.

기둥을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입술에 뜨거운 것이 닿았다. 차가운 물에 식었던 탓인지 닿는 성기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꿀꺽. 물로 적신 입안이 그새 바짝 말라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설형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귀두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혀를 세워 귀두 아래를 핥았다. 우둘투둘하게 돋은 혈관이 느껴졌다. 그것을 더듬으며 좀 더 기둥을 삼켰다. 얼마 삼키지도 않았는데 한껏 벌어진 입안이 살덩이로 가득 찼다. 자꾸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안되겠다 싶어 고개를 뒤로 뺐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머리통을 붙든 손길이 아니었다면.

“도망치지 마.”

그런 게 아니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입안이 가득 차 제대로 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뒤트는 머리를 도강우가 꽉 움켜쥐었다. 항의할 새도 없이 기둥이 좀 더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으읍.”

단단한 귀두가 목구멍을 찔렀다. 목구멍을 쓸 줄 아냐는 말이 무슨 의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과의 사이에는 굉장한 괴리가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목구멍 깊은 곳을 찔러 대니 토기마저 일었다.

“으으, 으.”

“힘 빼고 가만히.”

어쩔 줄 몰라 하는 설형을 향해 도강우가 달래듯 말했다. 다정한 말투였지만 그 말에는 전혀 그만둬 줄 생각 같은 건 없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들어있었다. 설형은 도강우의 지시대로 몸에 힘을 뺐다. 착하게 말을 잘 들은 것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본능에 가까웠다.

“착하네.”

머리칼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장 뒤로 빠졌던 기둥이 쑥, 밀고 들어왔다. 귀두가 순간적으로 조여 드는 목구멍을 짓이기듯 눌렀다.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가만히 있자 귀두가 다시 뒤로 빠졌다. 그 틈에 겨우 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는 쉬웠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네요.”

질척질척, 목구멍을 들쑤시는 소리가 났다. 입안에 침이 흥건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분명 입안이 헐었을 테니까.

“으, 으.”

뜨거운 성기가 몇 번이고 목구멍을 벌리고 들어왔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동자에 고였다. 반사적으로 올려다보는 시선에 도강우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괴롭습니까?”

설형의 눈이 커졌다. 도강우의 질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입에 물린 성기가 부피를 늘렸기 때문이다. 더 커질 게 남았단 말인가. 기가 막혔다. 직접 제 입으로 물고 있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터였다.

슥, 머리를 고정시키고 있던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눈가를 쓸던 도강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럼 그런 얼굴을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요.”

그런 얼굴이라니. 눈으로 되묻는 설형을 내려다보던 도강우가 눈매를 살풋 찌푸렸다.

“지금 그 얼굴 말입니다.”

그제야 설형도 알 것 같았다. 낮게 깔린 도강우의 목소리가 조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꽤나 거칠어져 있었다는 걸.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설형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지만 이미 소용은 없었다. 커다란 두 손으로 설형의 머리통을 단단하게 고정시킨 도강우가 슥슥, 거칠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읍, 으, 으.”

단단한 귀두가 목구멍을 찢어발길 기세로 들락였다. 힘을 빼려고 해도 잘 되질 않았다. 벌어진 입술사이로 고여 있던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한껏 벌어진 턱이 아팠다.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툭, 고여 있던 눈물이 볼을 덧그리는 순간.

“흣.”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입안이 비릿한 것으로 가득 찼다.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살덩이가 쓱, 빠져나갔다. 다물지 못한 입에서 침과 정액이 뒤섞인 점액질의 액체가 주륵, 쏟아졌다.

“입에다 할 생각은 없었는데.”

채 딸려 나가지 못한 것들을 입에 물고 있느라 말은 하지 못하고 눈으로 항의하는 설형에게 도강우가 손을 내밀었다.

“뱉어요.”

태연한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린 설형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설형의 턱을 도강우가 붙잡았다. 억지로 뱉게 하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을 때였다.

―!

마주한 얼굴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도강우의 입술이 설형의 입술을 눌렀다. 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지만 소용없었다. 턱이 한껏 위로 들린 탓에 아랫입술이 떨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혀가 쑥, 안으로 들어왔다.

물러서는 설형의 혀를 쫓아와 그것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쭉, 세게 빨아당겼다. 혀가 뽑힐 기세로 쭉 빠져나가 그대로 도강우의 입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것을 도강우가 이로 콱 물었다. 감히 저를 거부하려고 한 벌을 주듯.

으으읏, 설형이 목으로 울었다. 하지만 조금 전 도강우의 충고대로 설형은 몸에서 힘을 뺐다. 본능적으로 지금 도망치면 안 된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선택은 옳았다. 잘라 버릴 기세로 콱, 물었던 이가 살살 혓바닥을 긁다가 이내 놓아주었다. 물론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맞닿은 채 키스가 이어졌다. 쭉쭉, 몇 번 더 혀를 빠는 동안 입안의 액체는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번엔 반대로 도강우의 혀가 설형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뜨거운 살덩이로 입안이 가득 찼다.

목구멍 깊숙한 곳부터, 입천장, 잇몸, 고른 치아까지, 한곳도 빠지지 않고 문지르고, 긁어내렸다. 벌리고, 문지르고, 그리고 빠르게 들락인다.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다시금 입안이 질척해졌다. 아니, 입만이 아니라 온몸이 다 질척해지는 기분.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설형이 몸을 뒤로 뺐다. 뒤로 몸을 빼는 설형을 도강우는 집요하게 따라왔다. 입술은 맞닿은 채 몸을 바싹 붙였다. 어느새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도강우가 미는 힘에 뒤로 몸이 넘어가고 있었다. 밀어내던 손이 어느새 도강우의 팔에 매달리고 있었다.

응, 으응.

대리석 바닥에 등이 닿을 때까지 도강우는 설형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각도를 바꿔서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더 깊이 혀를 집어넣었다. 묵직하던 아래가 아예 벌렁거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영원히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키스가 한순간에 끝이 났다. 쏟아지는 숨을 들이키고서야 입술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멍하니 올려다보는 시선이 흐릿했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그제야 눈에 초점이 선명해졌다.

툭.

선명해진 초점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도강우의 단단한 가슴팍이었다. 어느새 자신의 셔츠를 벗어 던진 도강우가 이번엔 설형의 셔츠로 손을 뻗었다.

“제가―”

촥. 제가 하겠다는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셔츠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튕겨져 나간 단추들이 대리석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굴러가는 단추를 멍하게 보고 있는 사이 허리 버클이 풀리고 바지까지 벗겨졌다.

“그리,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나 보군요.”

사타구니를 내려다보던 도강우가 나직이 감상을 내놓았다. 미간을 찌푸린 설형이 고개를 외로 꼬았다.

“아님, 괴로운 게 좋았거나.”

“…….”

이번엔 반박할 수도 없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제 아랫도리의 상태가 어떤지는 설형이 제일 잘 알았으니까. 제대로 선 건 조금 전 입맞춤 때문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쪽이 더 곤란했으므로 설형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도강우가 브리프를 끌어 내렸다. 돕기 위해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가 놓자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맨살이 닿는 느낌이 선득했다. 하지만 그런 불만은 토로하지 않았다. 곧 차가움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읏. 흣, 아―!”

슥슥슥, 아래로 들어온 손가락 하나가 안을 들쑤셨다. 입구가 벌렁이며 꽉 꽉 물었지만 들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여기로 한 적 있습니까.”

“미친, 읏…….”

미친 거 아니냐고,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한 음절 이상 되는 단어를 내뱉는 것이 불가능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윗입을 대신해 아랫입이 마구 조여들었다. 물론 강우의 손가락이 들락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달라붙었던 살들이 떨어져 나갔다가 달라붙기를 반복할수록 손가락은 점점 더 안으로 딸려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더 깊이 넣으라고 조르기라도 하듯.

얼굴이 열이 올랐다.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설형이 오른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끝까지 다 밀어 넣은 손가락을 빙글인다.

“아으.”

설형이 진저리를 쳤다.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

집요했다. 본래도 답지 않게 집요한 구석이 있는 사내지만 오늘따라 정도가 더 심했다.

“있겠습니까!”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설형이 버럭 소리쳤다. 그런 적은 없다고, 순순히 대답하는 것은 설형의 성격상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못 알아먹고 다시 물으면 그땐 정말 다 뒤집어엎고 가 버릴 거라고 이를 득득 간 것이 무색하게도 더 이상 질문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혼잣말처럼 나직이 중얼거리는 도강우를 설형도 가만히 올려다본다. 놀리려고 하는 말인가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른 새끼랑 뒹굴었다는 생각만으로도.”

“…….”

“진짜 미칠 것 같으니까.”

마주한 눈이 새파랗게 일렁이고 있었다. 상대가 이렇게 대놓고 질투를 하니 설형도 당황했다. 우리가 무슨 사이라도 되냐고, 아무 사이도 아니지 않냐고, 평소라면 받아쳤을 설형도 지금은 좀처럼 받아칠 수가 없었다.

그저 불퉁하게 중얼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체, 사람을 뭘로 보는 겁니까.”

“발정이 오면 백설형 씨는 누구든 상관없잖습니까.”

“…….”

물론 그런 설형의 항의는 그대로 묵살되었지만. 순간적으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던 설형이 이내 다시 따져 물었다.

“누구든이라뇨. 저도 취향이라는 게 있습니다만.”

“그 말은.”

이번에도 본전도 못 찾았지만.

“내가 백설형 씨 취향이라는 겁니까?”

“…….”

아차, 싶어 입을 다무는 설형을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아, 나는 빚이었지.”

“…….”

“뭐, 취향이 아니라도 조금 참아요. 눈이라도 감고 있든지.”

설형이 뭐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을 낸 도강우가 친절하게 손을 뻗어 설형의 눈을 덮었다. 씨발. 아랫입술을 깨물었던 설형이 결국 도강우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애초에 취향도 아닌 새끼한테 다리를 벌릴 성격으로 보입니까, 제가?”

“…….”

“꼭, 제 입으로 그 말을 들어야 직성이 풀립니까.”

“네.”

“…….”

“꼭 그 입으로 들어야겠어서.”

“…….”

빌어먹을. 그제야 또 다시 강우에게 당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빙그레 웃고 있는 도강우를 노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래로 세 번째 손가락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흣……!”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아래를 빠듯하게 채운 손가락 세 개가 빙글빙글 돌았다. 구부러진 손가락 끝이 내벽을 긁듯이 문지른다. 무릎이 오므라들었다. 물론 이미 두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도강우에게 막혀 소용은 없었다.

아, 아, 아.

벌어진 입에서 어쩔 줄 모르겠는 신음이 쏟아졌다. 안이 휘저어질 때마다 허벅지 근육이 도드라졌다. 납작한 배가 동그랗게 올라붙었다.

하아.

구멍을 한계까지 벌리던 손가락이 한순간에 쑥 뽑혀 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과는 별개로 순간 아쉽다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잡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무릎이 위로 들렸다. 그리고는 설형에게 스스로 무릎 아래를 붙잡도록 명령한다. 이번엔 설형도 순순히 제 다리를 붙들었다. 위쪽으로 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구멍이 오물거리며 벌어진 입구를 좁히는 것까지. 제 몸인데도 제 마음대로 컨트롤이 불가능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번에도 그것을 놀리는 말이 들려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던 설형이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도강우의 표정에서 웃음기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유라고는 없는 새까만 눈동자. 지금 눈앞의 사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가지고 놀던 도강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눈동자였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몸이 그대로 굳었다. 만약 아래 깔린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뒷걸음질을 쳤을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그리 도망치고 싶은 설형의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마주한 도강우의 초점이 선명해졌다. 선명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핀트는 나간 것 같은 눈동자. 설형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전에 엉덩이 골에 뜨거운 것이 닿았다.

이미 한 번 사정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뜨거운 살덩이가 아직 다 다물리지 못한 구멍에 푹, 하고 맞춰졌다. 그러더니 그대로 힘을 주어 밀었다.

“으, 아―.”

헐렁해졌던 입구가 꽉 조여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흐물흐물해진 좁은 입구는 미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벌어졌다. 푹, 하고 한 번에 귀두가 박혀 들어왔다. 허벅지 안쪽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하지만 강우는 사정 봐주지 않고 다시 허리를 밀었다.

“아, 아아.”

아래가 꿰뚫리는 선득한 감각.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말 그대로 저를 올라탄 사내에게 정복당하는 기분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그러니 진저리를 치던 설형이 저도 모르게 도강우를 밀어낸 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도강우는 그런 반사적인 움직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설형의 무릎을 더 가슴 쪽으로 찍어 누르며 허리를 박아 넣었다.

꾸우욱.

그 큰 페니스를 끝까지 다 밀어 넣은 뒤에도 도강우는 허리를 아래로 찍어 눌렀다. 사타구니에 엉덩이 골이 짓이기듯 눌러졌다. 몸 안으로 불길이 쏟아져 들어왔다.

“읏―…….”

설형이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도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다시 뒤로 뺐다. 쑥, 빠졌던 것이 다시 한번 깊이 박혀 들어왔다.

“히―익!”

쑤컹, 하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감각에 설형이 숨을 들이켰다. 반사적인 것이었지만 덕분에 들어온 페니스를 쭉쭉 빠는 꼴이 되었다. 귀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강우에게서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가 선명해졌다. 내려다보고 있는 도강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지금 도강우의 상태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늘 여유롭던 얼굴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반쯤 핀트가 나간 눈동자. 그것이 위협적이게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안심했다. 적어도 눈앞의 사내에게 자신이 아직은 매력적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해놓고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 스스로가 기가 막혀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설형의 진심이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취향은 더럽게 취향이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얼굴이 특히나. 아마도 본인은 그 얼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눈매를 일그러트린 설형이 손을 뻗었다. 다가오는 손을 보고도 도강우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불신이 가득한 눈동자였지만 그럼에도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손을 뻗어 목덜미를 붙잡은 설형이 그대로 제 쪽으로 당겼다. 도강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제야 설형이 당기는 의미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사실 도강우가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엔 키스 같은 건 됐다고 거부하던 설형이 먼저 키스해 달라고 끌어당기는 것이 믿기지 않았을 뿐.

알았으면 좀 알아서 하지. 눈으로 투덜거리는 설형에 도강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안 그래도 더럽게 취향인 얼굴이 더더욱 취향에 부합하게 하는 미소였다. 물론 그런 미소를 감상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상체를 숙인 도강우가 설형의 입술을 삼켰기 때문이다.

입술을 훑던 뜨거운 살덩이가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혀를 집어넣으면서 동시에 움켜쥔 엉덩이를 더 벌렸다. 상체를 숙이는 사이 반쯤 빠졌던 기둥을 도로 집어넣었다.

―!

맞닿은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벌어진 입안으로 밭은 숨이 쏟아졌다. 도망치는 혀를 감아 이번엔 제 입안으로 쭉 당겼다. 그러면서도 뒤로 뺐던 허리를 깊이 질러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아아.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힘에 설형이 눈을 질끈 감았다. 쑤욱, 좁아진 내벽을 벌리며 들어오는 감각에 설형이 허리를 떨었다. 벌어진 입안에도 살덩이가 가득 찼다. 질척질척, 혀가 얽히는 소리가 야했다. 삼키지 못한 침이 입안에 고였다. 젖은 소리가 더 커졌다. 이상한 것은 젖은 소리가 나는 곳은 윗입인데, 아래도 움직이는 것이 점점 수월해진다는 거였다. 엉덩이 안쪽이 묵직했다.

끄응.

무릎 아래 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릎이 가슴팍에 와 닿았고 엉덩이가 들렸다. 몸이 완전히 접힌 자세로 다시 삽입이 시작됐다.

쯔윽. 달라붙는 내벽을 떨치듯 크게 궁글린 뒤 허리를 뒤로 뺐다. 그럼에도 내벽이 딸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밑이 빠지는 느낌에 설형이 눈을 꽉 감았다.

“아으…….”

빠져나갔던 기둥이 다시 들어왔다. 조금 전처럼 한 번에 끝까지 밀고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느릿하게 안을 벌리고 들어왔다. 가득 차는 아래가 빠듯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내벽들이 도강우의 모양대로 자리를 잡았다. 꽉, 꽉, 무는 내벽에 들어온 것은 도강우인데 이상하게 설형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바싹 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는 건 헐떡이는 숨을 들이켜다 깨달았다.

아, 으, 응―!

나가는 속도도 느릿했다. 딸려나가던 내벽이 떨어져 나오는 감각이 생생했다. 꽉 감은 눈 안으로 물기가 어렸다.

“빨리, 빨리 좀.”

헐떡이는 숨 사이로 설형이 애원했다. 흐릿한 시야로 도강우의 실루엣만 보였다. 무슨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조금 무서워졌다. 설형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생리적으로 고여 있던 눈물이 눈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시야가 선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선명해진 시야에 도강우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무릎 아래를 누르고 있던 손이 물러갔다. 대신 무릎을 오므리게 해 발바닥이 제 가슴을 딛게 했다. 상체를 기울인 도강우가 설형의 어깨 위를 짚었다. 그리고 허리를 쳐올렸다.

“으, 아―.”

미끄덩거리며 단숨에 들어온 페니스의 끄트머리가 조금 전보다 더 깊은 곳을 쑤셨다. 벌어진 입에서 신음이 쏟아졌다.

“읏, 아응. 응―.”

본능적으로 가슴을 디딘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밀어내려고 두 다리에 힘을 주면 줄수록 아래구멍은 더 수월하게 뚫렸다. 쑥, 빠졌다가 푹, 박혀 들어온다. 단단한 가슴팍을 디딘 발가락이 꿈틀거렸다.

“앗, 아―, 히익.”

상체를 더 위쪽으로 민 도강우가 허리를 더 깊게 들척였다. 반동까지 실려 푹, 푹, 박혀 들어오는 페니스가 쇠꼬챙이 같았다. 설형이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뒤트는 엉덩이를 따라온 페니스가 안을 휘젓는다.

“빨리 박아 달라면서요.”

“아니, 읏, 아―…….”

“그거 압니까.”

“힉, 익―.”

“백설형 씨는 너무 느낄 때, 도망치고 싶어 하는 거.”

단단한 끄트머리가 각도를 달리해 주욱, 하고 긁어내리자 설형이 날카롭게 울었다.

“부끄러운 겁니까, 아니면 무서운 겁니까.”

문질러지는 내벽이 홧홧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입구와 안이 근질근질해졌다.

“둘 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사실 대답 같은 건 상관없었다. 고개를 숙인 도강우의 입술이 설형의 눈꺼풀을 눌렀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에서 짠 맛이 났다. 혀로 젖은 속눈썹을 들척이던 도강우가 천천히 아래로 입술을 내렸다.

코끝, 입술끝,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 입술이 퉁퉁 부은 입술 바로 앞에서 멈췄다.

“부탁인데.”

달큰한 숨과 달리 경고하는 목소리가 거칠었다.

“다신 도망치려고 하지 마.”

부탁이라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고 들만큼 설형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땐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주인과 달리 몸은 솔직했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그 순간에도 아래를 조이고 있었다.

“착하네.”

상을 주듯 도강우가 안을 크게 휘저었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안이 마구 쑤셔졌다.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아, 아, 아―으……”

퍽, 퍽, 퍽, 사타구니가 엉덩이를 칠 때마다 안이 울렸다. 배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엉덩이 안쪽이 묵직해졌다. 부글부글 안쪽에서 서서히 거품이 일었다.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설형이 도강우의 팔에 매달렸다. 팔뚝에 손톱이 박혀 들어갔지만 도강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설형이 필사적으로 제게 매달리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 아―. 아―으.”

오히려 손가락에 힘을 뺀 것은 설형이었다. 뒤늦게 손톱자국이 난 팔뚝을 발견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도강우는 아예 짚고 있던 손을 떼 설형의 손을 마주 잡았다. 상체를 똑바로 한 뒤 양손을 지지대 삼아 이번엔 앞뒤로 들락인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들어오는 페니스에 설형이 진저리를 쳤다.

아아아―.

흐물흐물해진 안이 들락일 때마다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깍지 낀 손이 더 꽉 도강우의 손에 매달렸다. 아래만큼 기분 좋은 조임이었다.

“어떻게, 좀.”

헐떡이던 설형이 가쁜 숨 사이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눈동자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설형이 다시 한번 애원했다.

“제발, 흣, 아, 으―…….”

물론 설형의 애원은 다시 한번 각도를 달리해 들어오는 페니스에 그대로 삼켜졌다. 제대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목적은 달성했다.

“아, 아―읏, 흣―!”

길고 굵은 페니스가 빠졌다가 빠르게 들어온다. 내벽이 벌어지고, 짓이겨졌다. 들어오는 살덩이에 쫙쫙 달라붙던 내벽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따라가지 못한 내벽들은 그대로 단단하게 길을 냈다. 물이 잔뜩 나온 내벽에 페니스가 들락일 때마다 거품이 일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지금은 창피한 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는 거였다. 그래서 설형은 조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뒤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흐릿했다. 다행히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도강우는 설형이 하려는 말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히―익.”

이번엔 한쪽 다리가 들렸다. 덩달아 구멍도 다른 방향으로 벌어졌다. 각도를 달리해 들어올 때마다 설형이 날카롭게 울었다. 하지만 강우도 더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말이 더 맞았다.

퍽, 퍽, 퍽, 퍽.

아래가 마구 뚫렸다. 배가 아팠다. 두들겨지는 곳은 다른 곳인데 이상하게 아랫배를 두들겨 맞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픈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온몸에 들어간 힘을 뺄 수가 없다는 거였다. 엉덩이, 아랫배가 단단하게 올라붙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도강우의 허릿짓이 빨라지고 있다는 거였다.

온몸의 감각이 들락이는 구멍으로 다 쏠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저 들락이는 속도에 맞춰 아래를 꽉꽉 조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랫배가 들끓었다. 동그랗게 올라붙었다. 그 순간이었다.

―!

한 번에 죽, 긁어 올리는 감각에 눈앞이 쑥, 꺼졌다. 사정이었다. 들끓던 아랫배가 갑자기 열기를 잃었다. 사정감에 꽉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도강우는 아직 설형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이야.”

옹송그린 발을 잡아 벌린 도강우가 꽉 물고 있는 아래에서 제 것을 잡아 뺐다. 내벽이 다 딸려나가는 느낌에 설형이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도강우는 버둥거리는 두 발을 꽉 움켜쥐었다. 허공에 떠 있는 발가락이 오그라들어 있었다.

“쉬. 착하지.”

달래듯 중얼거린 도강우가 사정으로 오그라들어 있는 입구를 손가락으로 벌렸다. 츠윽, 버티지 못하고 주름이 벌어지는 틈을 타 제 것을 집어넣었다. 하아. 쫀득하게 달라붙는 내벽이 기분 좋았다.

억지로 벌어지는 것이 괴로운지 꽉 감은 설형의 눈썹이 물기에 젖어 들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다시 한번 더 아래가 묵직해졌다. 그것을 설형도 느꼈는지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별 소용 없는 반항이었다. 심지어 아래를 이렇게 꿰뚫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은근 학습 능력이 없단 말이지. 쯧, 하고 혀를 찬 도강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사정으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몸이 마구잡이로 벌리고 쑤셔진다.

“응, 아응. 으, 으…….”

설형이 진저리를 치며 헐떡였다. 밀어내려고 내뻗었던 손이 어느 새 도강우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 손을 마주 잡으며 도강우가 더 빠르게 허릿짓을 했다.

도망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사실 강우도 백설형이라는 사내를 어찌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형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적어도 오늘 설형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이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도강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적인 생각 같은 건 눈앞의 사내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저는 그런데 백설형은 아니라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다 상관없어졌다. 먹잇감이 도망치면 쫓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육식 동물의 본능이었다.

“으, 응―. 아응.”

제 입으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물론 그 말을 믿을 순 없지만 도망치지 못하게 지키면 될 일이었다. 사소한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허공에 뜬 설형의 발가락이 쫙, 펴졌다 오므라들기를 반복했다.

“설형아.”

강우가 설형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것이 제 이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백설형.”

“힉.”

다시 한번 신음과도 같은 이름을 되뇌며 도강우가 뒤로 뺐던 허리를 콱, 박아 넣었다.

―!

안이 흠뻑 젖었다. 가득 찬 정액이 꽉 다물린 입구를 삐집고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기묘한 감각에 설형이 진저리를 치며 몸을 뒤틀었다. 그런 움직임을 도망치는 것이라고 여긴 걸까.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놓은 몸을 강우가 다시금 꿰뚫었다.

길고 두꺼운 기둥이 안에 고여 있던 뜨거운 정액을 뒤섞었다. 아아아. 눈앞이 쑥 꺼지는 느낌에 설형이 도강우에게 매달렸다. 오늘 한 행동 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그것을 알려 줄 이는 없었다.

“줄까요.”

축 늘어져 있던 설형의 시선을 느꼈는지 도강우가 고개를 틀어 물었다. 대답할 기운도 없어 눈만 껌뻑이고 있으려니 다행히 도강우가 물병을 가지고 돌아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저와는 달리 묘하게 조금 전보다 생기가 넘치는 도강우를 보고 있으려니 조금 억울한 기분마저 드는 설형이었다. 사정한 횟수로 치면 도강우가 월등히 많았음에도 도강우는 마치 보양식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쌩쌩했다.

“보약 같은 거 드십니까?”

설형이 묻자 막 물병을 들고 돌아온 도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먹읍시다.”

그제야 도강우도 설형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차렸는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딱히 챙겨 먹는 건 없는데.”

“…….”

대놓고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알아보긴 해야겠군요. 이리 약해 빠져서 범인이나 잡겠습니까.”

“도 검사님이 지나치게 정력이 넘친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이 나이에 이 정도는 보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보통이 그 정도면 한국남자 대부분이 기준 미달입니다만.”

“백설형 씨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이래 봬도 어디 가서 체력으로 빠진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발끈해서 항의하는 설형을 물끄러미 보던 도강우가 가만히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네!”

“그럼, 더는 못하겠다고 죽는소리한 것은, 다 거짓말이었네요.”

“…….”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황급히 일어나 앉은 설형이 슬금슬금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지만 선 걸음으로 다가오는 도강우의 속도를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쫄아 붙은 것이 무색하게도 바로 코앞까지 다가 온 도강우는 가만히 물통을 내밀었을 뿐이다.

“쫄 것 없습니다.”

불신의 눈으로 보고만 있는 설형의 손에 친절하게 뚜껑까지 딴 물통을 쥐여 주며 도강우가 말했다.

“지금은 밥부터 먹을 테니까.”

일단은. 무시무시한 전제를 덧붙인 도강우는 방향을 틀어 소파에 올려놓은 가방에서 전화기를 찾아 꺼내 들었다. 핸드폰에서 배달앱을 켜는 도강우를 본 설형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이미 물병을 기울여 목을 축인 뒤였다.

“뭐, 먹을 건데요.”

이건 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단숨에 경계를 풀고 다가오는 설형을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보던 도강우가 도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꾸했다.

“보양식으로 먹어야겠네요.”

물론 자신을 위한 보양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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