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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캉.
잠결에 손을 내뻗었던 강우가 멈칫했다. 설마, 하면서도 눈을 뜨는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하.
자신의 손목에 채워 놓은 수갑은 분명 그대로였다. 하지만 역시나 다른 이의 손목이 있어야할 반대편이 텅 비어 있었다. 수갑을 어떻게 풀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분명 반쯤 기절하듯 잠든 것을 확인했었는데, 기가 막혔다.
“망할, 백설형.”
사나운 눈으로 수갑을 노려보던 강우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봐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움직일 기운이 남은 줄 알았으면 마지막에도 그냥 해 버리는 건데.”
물론 그곳에 설형이 있었다면 대체 언제 봐줬냐고 억울해했겠지만 그런 항의를 할 수 있는 설형은 빈 수갑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지 오래. 빈 침대를 보며 기가 막혀하고 있던 그때였다.
Trrrrrrrrr. Trrrrrrrrrr.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강우가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네. 한 형사.”
철컹, 손목에 매달린 수갑이 서로 부딪치며 금속성 소리를 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강우의 눈이 커졌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철컹, 철컹, 이번엔 좀 더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강우에게는 그것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 소리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화기 너머 소리도 강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도, 도 검사님!”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강우를 본 재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늘 여유롭던 도강우가 이렇게 필사적인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놀란 이유 또 하나.
“검사님 손목에 그거.”
강우의 손목에 채워진 것은 분명 수갑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용건만 물었다.
“어딨냐고 물었습니다만.”
“여기, 취조실 안에 계세요.”
강우의 시선이 굳게 닫힌 푸른색 문을 응시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저희 팀은 여기 출입 금지라 정확히는 모르는데,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계신가 봐요.”
재민의 설명을 듣고 있는 강우의 눈빛이 사나웠다.
“검사님이 들어가셔서 잘 설득 좀 해 보세요. 저렇게 계속 묵비권 행사하다간 백 형사님 진짜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데 왜 저러시는 건지…….”
“좋게 말로 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네?”
발을 동동 구르며 부탁하던 재민이 강우의 차가운 대답에 당황했다.
“저희도 서운하긴 한데 그래도 워낙 백 형사님 성격이 그런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화가 나셔도, 일단 말로 하시면 안 될까요?”
아마도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사라졌다가 또 이렇게 예고도 없이 자수하겠다고 온 설형이 서운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 재민이 급히 설형을 대신해 변명을 늘어놓는다. 물론 강우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끼익.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강우가 취조실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좋게좋게, 제발 싸우시지 말구요.”
그런 강우의 뒤를 쫓아가며 재민이 마지막까지 당부의 말을 거듭했다. 물론 돌아온 대답은 쿵, 하고 닫혀 버린 문소리뿐이었지만.
“도 검사님.”
취조실 안 설형의 맞은편에 서 있던 최 형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강우를 보고 인사를 했다. 등을 지고 앉은 설형도 부르는 이름을 들었을 텐데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십 분만, 아니 오 분만 내가 맡죠.”
“……네. 알겠습니다.”
강우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최 형사가 뭐라고 항의하려다 이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강우가 바란 것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둘이서 얘기했으면 하는데요.”
“…….”
흘끔. 못마땅한 표정으로 설형에게 시선을 주었던 최 형사가 이내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드르륵.
설형의 옆을 스쳐지나 온 강우가 의자를 빼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책상에 시선을 주고 있던 설형이 고개를 들었다. 강우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설형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 때문만은 아니었다.
“웃음이 나옵니까?”
“다시는 못 웃을 줄 알았는데 검사님 얼굴 보니까 웃음이 나오네요.”
태연히 웃고 있는 설형을 보니 기가 막혔다. 헛웃음을 짓던 강우가 단숨에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내가 준 선택지를 선택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럴까 했는데. 도망쳐서 숨어 있는 건 제 성격에 안 맞는 거 같아서요.”
잘못하면 복상사로 인생 마감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는 것은 물론 비밀이었다.
“그래서 또 먹튀를 했다? 내가 분명 경고했을 텐데요. 세 번은 안 봐준다고.”
강우가 으르렁거렸다. 그나마 지켜보고 있는 눈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왠지 등줄기가 서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어쩌시려구요. 전 이미 여기 이렇게 용의자로 잡혀 들어와 있는데요.”
물론 그렇게 말하는 설형의 모습은 전혀 쫄았던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뭘 어떻게 하고 싶으시면, 절 빼내 주시든가요.”
강우의 미간 주름이 더 짙어졌다.
“내가 범인이 아니라면서요.”
설형이 턱을 치켜 올렸다.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요. 진짜 범인 잡아서 나 여기서 빼내 주세요. 실력 좀 보죠, 도강우 검사님.”
누가 봐도 이건 절대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설형은 확신하고 있었다. 도강우가 반드시 이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걸. 그리고 그것을 확인시켜 주듯 강우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나가서 봅시다.”
설형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미치도록 매력적인 미소였다.
“피해자에게 온 전화 기록은요? 그거 호텔 쪽에 문의하면 번호가 나오지 않을까요?”
머리를 쥐어짜던 재민이 새로운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목격자 진술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화가 룸에 비치된 전화로 왔었고 그래서 호텔 측에서 온 전화로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설형의 책상에서 열쇠를 꺼내 수갑을 풀던 강우가 곧바로 고개를 내젓는다.
“호텔로 온 전화라 전화번호 추적은 어렵다더군요.”
이미 생각해서 확인까지 끝낸 모양이었다. 재민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 사이 철컥, 하고 수갑을 푼 강우가 수갑을 얌전히 포개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뭐 더 할 말 있습니까?”
문득 저를―정확히는 수갑이 채워져 있던 강우의 손목이었다―향한 시선을 느낀 강우가 물었다. 사실 그것을 보고 있던 시선은 셋이었는데 강우가 고개를 드는 순간 두 개의 시선은 단숨에 흩어졌지만 재민은 그러질 못했다.
“아뇨. 전혀요.”
덕분에 독박을 쓴 재민만 어디 모자라는 사람처럼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왜 수갑을 차고 출근하신 건지, 그리고 그 수갑이 어째서 백 형사님의 열쇠로 풀리는 건지, 등등 사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재민은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는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더 나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건 재민만 그런 것은 아닌지 3팀 멤버 누구도 거기에 대해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첫 번째 피해자로 돌아가 보죠. 문제는 피해자 핸드폰 통화 목록에 백 형사도 모르는 백 형사의 번호가 기록되어 있었다는 건데.”
설형도 그건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얼굴도 기억 안 난다는 상대의 전화번호를 설형이 알 리가 없었다.
“피해자가 직접 백 형사님 전화로 건 게 아닐까요?”
김 형사의 추측에 재민이 되물었다.
“피해자가요?”
“보통 서로 연락처를 모른다고 할 때 상대편 전화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서 전화를 걸잖아. 백 형사님이 안 보는 사이에 가져가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왜 호텔 바에서 서지철이 백 형사님 술잔에 약을 탔던 것처럼.”
뒤늦게 입수한 호텔바에 설치된 CCTV영상―바텐더가 있는 바 안쪽을 찍는 카메라였는데 운 좋게도 바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찍혔다―에는 서지철이 백 형사의 술잔에 약을 넣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로서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고 서지철이 호텔방으로 데려다 줬다는 백 형사의 진술은 거짓이 아니었음으로 밝혀졌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재민이 손바닥에 주먹을 탁, 쳤다.
“그런 거라면 백 형사님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진술이 조금은 납득이 되죠.”
설형은 현재 서지철처럼 피해자들과 자신이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는 모르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는 중이었다. 실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진실이기도 했고.
“백 형사님이 좀 남자들이 꼬이는 편이긴 하죠. 오죽하면 마초 집단인 형사들 사이에서도 백 형사님이라면 괜찮을 거 같다는 소리가 나오―.”
“또또 삼천포로 빠진다. 검사님도 계신데.”
안 되겠다 싶었던 김 형사가 쓸데없는 소리까지 덧붙이는 재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지만 오히려 강우는 흥미롭다는 반응. 제대로 들어 보자는 듯 팔짱까지 끼고 되묻는다.
“왜요. 재밌는데 더 들어 보죠.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형사들이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실 강우로서는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묻는 것이었지만 재민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저를 돌려서 까는 거라고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곧바로 사과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재민에게 강우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검사님.”
그때 똑똑, 하고 누가 검사실 문을 두들겼다. 최재명 서기관이었다. 잠시만요. 손짓으로 말한 강우가 문을 열고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이거. 부탁하신 퀵 배달 기사 신상 정보요.”
“아.”
그러고 보니 최 서기관에게 경찰서로 박스를 가져왔던 퀵 배달 기사에 대한 신상 정보를 좀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워낙 스펙터클한 일들이 잔뜩 일어나기도 했고, 사실 이렇게 빨리 찾아낼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떻게 찾았습니까?”
“뭐, 인근 도로 CCTV를 타임라인 따라 훑었죠.”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서 앞에서 나뉘는 도로가 한두 개도 아니고.
“고생하셨네요.”
“에이, 뭘요.”
강우의 인사에 손사래를 치던 최 서기관이 강우가 봉투 안에서 서류를 꺼내자 설명을 덧붙였다.
“이름 강봉수, 나이 스물아홉. 입고 있던 퀵 업체 소속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퀵 배달도 하고 대리운전도 하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면서 사는 위인이더라구요.”
서류를 들추며 설명을 듣고 있던 강우가 순간 멈칫했다.
“대리운전이요?”
“네. 주로 야간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모양이던데요.”
최 서기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우가 검사실 문을 열었다.
“한 형사. 서지철 핸드폰에 부재중 통화 그거 대리운전으로 넘어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네. 그랬죠.”
멍 때리고 있던 데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라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재민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강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 휴대폰 어딨습니까.”
“그거라면 이미 조사가 끝나서 증거물 보관실에―.”
재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우는 이미 문을 박차고 나가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서로 얼굴만 마주보던 재민과 김 형사도 곧 강우가 뭔가를 알아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강우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신호만 가고 전화는 안 받는데요.”
수화기를 들고 있던 재민이 고개를 내저었다. 강우의 예상대로 서지철 휴대폰에 남아 있던 부재중 통화의 전화번호는 설형에게 택배박스를 가져다놓았던 강봉수의 휴대폰 번호와 정확이 일치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새끼가 범인이라고?”
돌아가는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최 형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 이 새끼야.”
턱을 치켜 올리며 대꾸하는 김 형사 뒤로 재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강봉수가 진짜 범인이라면 모든 상황이 다 설명이 돼요. 각기 전혀 접점이 없는 피해자들의 공통분모가 백 형사님이었잖아요. 그래서 백 형사님이 범인으로 몰린 거구요.”
“몰렸는지 아닌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거야 조금만 머리가 있으면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떤 새끼―.”
누가 끼어드는 거냐고, 고개를 돌렸던 최 형사가 곧바로 상대가 강우라는 것을 깨닫고 어깨를 움츠렸다.
“최 형사 말대로 백 형사가 범인이라는 주장에는 몇 가지 설명할 수 없는 오류가 있습니다. 백 형사가 그날 서지철을 죽이고 시체유기하고, 그리고 증거를 모두 지우고 다시 호텔에 돌아오기까지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의 시간밖에 없는데 그건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또 하나 백 형사에게는 살해 동기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어떤 범죄든 살인 동기는 있어요. 설사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사소한 이유는 있는 법인데 백 형사에게는 그게 없어요.”
“살인마 아버지의 피가 몸속에서 날뛰는 모양이죠.”
빈정거리는 최 형사를 보는 강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최 형사는 수사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연좌제 없어진 지가 언젠데 대한민국 경찰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됩니까?”
“…….”
서슬 퍼런 강우의 추궁에 최 형사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범행 동기는 이쪽이 더 확실해 보이네요. 백 형사를 스토킹하던 스토커가 백 형사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라고 보는 게 상식적으로 더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고.”
“그렇다니까요!”
상황판에 적힌 내용과 사진들을 훑어보던 강 형사가 중얼거리자 재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느 장소에 나타나도 사람들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퀵 배달기사일 겁니다. 지금 호텔 측에 확인 협조를 해 놓았는데 분명 그날 호텔 주차장에 퀵 배달 오토바이가 출입한 기록이 있을 겁니다.”
“아, 강봉수 소유의 오토바이가 그날 밤 호텔 지하주차장에 출입한 기록 확인됐답니다.”
걸려온 전화를 받은 김 형사가 반색을 하며 상대가 알려온 소식을 전했다. 재민의 표정도 밝아졌지만 강우는 이미 예상한 일이라는 듯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다, 정황 증거지 않습니까.”
듣고 있던 강 형사가 반박을 하고 나섰다. 최 형사가 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을 본 강 형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이건 형사로서 냉철하게 판단한 것이지, 최 형사처럼 딴지를 걸려고 한 말은 결코 아니었다.
“단순히 강봉수가 서지철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과 그날 호텔에 갔다는 것만으로 강봉수가 범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증거가 빈약해요. 그나마 확실한 건 강봉수가 백 형사에게 이상한 메시지가 담긴 택배박스를 보냈다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았다고 발뺌하면 그만이구요.”
“그러니까 일단 잡아와서 조사를 해 보자는 거죠. 그리고 그 사이에 강봉수 집을 조사해 보면 분명 뭔가 수상쩍은 것이 나올 거예요.”
재민의 주장에 강 형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
“영장도 없이 어떻게 집을 수색하겠다는 거야.”
“그건 내가 책임지죠.”
이번엔 강우가 대신 대답했다.
“긴급 영장 발부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건 안 될 소리지.”
최창학 검사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이미 범인을 체포했다고 언론에다 떡하니 발표해 놨는데 갑자기 또 다른 용의자를 정황 증거만으로 잡아온다는 게 말이 돼?”
말은 증거가 불충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국 자기가 언론에 범인을 체포했다는 발표를 해 놨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였다. 사실 이게 사실이라고 밝혀지면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생겼으니 최 검사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언론이 대숩니까? 범인을 잡는 게 중요하죠!”
“김 형사. 그만 못 둬?!”
김 형사가 참지 못하고 최 검사에게 대들자 홍 반장이 그런 김 형사를 말리고 나섰다.
“지금 안 그래도 언론이 경찰을 주시하고 있는 판에 확실한 증거 없이 다른 용의자를 잡아왔다가 풀어주게 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건데.”
“그건 강 형사 말이 맞아.”
강 형사가 한 번 더 논리적인 근거를 대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른 형사들도 강 형사와 생각이 동일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강우의 미간이 살풋 찌푸려졌다. 다른 건 다 무시할 수 있어도 어쨌든 최창학 검사가 특검의 가장 높은 총책임자라 이렇게 반대를 하고 나오면 자신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뒤로 손을 쓰면 되겠지만 그러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이런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를 하려니 속이 쓰렸다. 다들 난감한 상황에 얼굴만 찌푸리고 있던 그때였다.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요?”
불쑥 끼어든 불청객의 목소리에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이 선생님!”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이석진 검시관이었다.
“댁은 누구야.”
대부분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최 검사만 모르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피해자 한지석 씨 부검의였던 이석진입니다.”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쫄았던 터라 최 검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부검의가 여긴 왜―.”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하지만 그런 최 검사의 투덜거림 같은 건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강우가 최 검사가 말을 자르고 용건부터 묻는다. 강우의 말에 석진이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첫 번째 피해자의 흉부에 박혀 있던 손톱과 피부조직 일부의 DNA 기록입니다.”
“경찰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던 것 같은데.”
서류를 확인하던 강우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석진이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부주의로 이 증거물 자체가 누락되었던 것 같습니다.”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강우는 일단 확인부터 했다.
“그래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동일한 DNA가 나왔습니까?”
“누락된 걸 확인하고 곧바로 DB에 돌려봤더니 동일한 DNA를 가진 사람이 하나 나왔습니다.”
“누굽니까.”
재촉하는 강우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강봉수라는 스물아홉 살 청년이었습니다. 5년 전에 폭력사건으로 3년 복역한 전과가 있더군요.”
“예!!!”
숨죽여 듣고 있던 재민이 꽉 소리를 내질렀다. 강우가 바로 고개를 꺾었다.
“이 정도면 체포 영장 나올 만한 증거, 충분한 것 같습니다만?”
얼굴을 확 찌푸린 최 검사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범인 체포해 오죠.”
“예!!!”
강우의 선언에 다시 한 번 아이처럼 소리를 내지른 재민이 앞장서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최 형사도 불만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움직였다.
“고맙습니다. 실수를 밝히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건 정말 진심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잘못하면 이대로 옷을 벗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건 본인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알아차리는 것이 힘든 일이라 고마움이 더 컸다.
하지만 인사를 들은 석진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졌다.
“검사님이 뭐가 고맙습니까? 검사님 때문에 한 일도 아닌데요.”
어쩐지 따지는 것 같은 석진의 말투를 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러네요. 백 형사가 아주 좋은 친구를 뒀습니다.”
그렇게 말한 강우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대신한 뒤 걸음을 내딛었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빌어먹을 백설형이 차가운 유치장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그 잠깐의 시간도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쾅쾅쾅.
“총각! 총각?! 여기 주인집인데 잠깐 문 좀 열어 봐. 수도 때문에 그래.”
골목에 세워진 오토바이로 강봉수가 집안에 있다는 걸 확인한 터라 주인집 아주머니의 도움을 얻어서 문을 열 계획이었다.
“안에 없나 본데.”
한참을 불러도 안에서 돌아오는 답이 없자 주인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려 형사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혹시 뒤쪽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이나 창문 있습니까?”
“지하방에 뒷문이 어딨어. 창문이면 또 모를까. 그런데 그것도 사람은 못 드나들어요. 땅바닥에서 기껏해야 손바닥 하나 높이밖에 안 올라와 있어서.”
까딱. 김 형사의 고갯짓에 뒤편에 서 있던 형사 둘이 건물 뒤쪽을 살피러 사라졌다.
“한 번만 더 불러 보시겠어요?”
“어? 김 형사님.”
아주머니에게 한 번 더 불러 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데 재민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속삭이듯 김 형사를 불렀다. 재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주었던 김 형사도 삐죽 열려 있는 문을 발견했다. 아마도 잠겨 있지 않았던 문이 두들기는 힘에 스륵 밖으로 열린 모양이었다.
하나, 둘, 셋.
손가락으로 신호를 준 김 형사가 셋, 하는 타이밍에 문을 확 잡아당겼다. 열린 문틈으로 형사들이 일사분란하게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관문 앞에서 다들 걸음을 멈추고 만다. 총을 겨누고 있던 팔도 아래로 떨궈졌다.
거실 한가운데 강봉수가 천장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온 김 형사가 강봉수의 사진과 시체의 얼굴을 대조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강봉수가 맞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감한 표정으로 죽은 강봉수를 응시하고 있던 그때. 방안을 확인하러 들어갔던 재민이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다급하게 외쳤다.
“도 검사님! 여기 좀 와 보셔야겠는데요.”
시선을 주고받은 강우와 김 형사가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열린 문을 통과해 방안으로 들어간 순간, 그대로 굳었다.
―!
방안의 광경을 본 강우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와, 이 미친 새끼.”
뒤따라 들어온 형사들 중 누군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스탠드가 놓인 작은 앉은뱅이책상 말고는 변변한 물건 하나 없는 텅 빈 방안. 그리고 그 앉은뱅이책상은 기묘하게도 방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는데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컴컴한 방 안 온 벽면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백설형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
한 사람을 향한 광狂적인 집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방안의 모습은 평생 온갖 참혹한 범죄 현장들을 맞닥뜨렸던 베테랑 형사들에게도 참으로 소름끼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덜컹.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유치장 밖으로 나오던 설형이 곧바로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건 뭐야.”
기가 막힌다는 설형의 반응에도 재민은 손에 들린 두부를 뒤로 물리지 않는다. 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잔말 말고 한입 크게 베어 물어. 액땜한다 생각하고.”
찌푸린 얼굴로 한 발 뒤에 물러서 있던 홍 반장이 명령했다.
“고작 두부로 될 액땜이었으면―.”
“액받이용 부적도 준비했는데요.”
투덜거리는 설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민이 오히려 더 잘되었다는 듯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작은 복주머니를 꺼냈다.
“액땜엔 두부지.”
단박에 말을 바꾼 설형이 재민의 손에 들린 두부를 낚아채 한입 베어 물었다. 으. 비려.
“고생하셨어요.”
아쉽다는 듯 부적을 움켜쥔 재민이 설형을 위로하자 홍 반장이 코웃음을 쳤다.
“고생은 무슨. 그게 다 지 혼자 잘났다고 깝치다가 큰코다친 거지.”
우적우적 생두부를 씹던 설형이 홍 반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누가 니 걱정 같은 걸 했다고.”
흥! 하고 크게 콧방귀를 낀 홍 반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이 액받이 부적, 홍 반장님이 사 오신 거예요.”
재민이 목소리를 죽인 채 속삭였다.
아마 설형이 서운해할까 봐 그런 모양이지만 홍 반장은 설형이 더 오래 겪었다. 말은 늘 저렇게 해도 팀에서 자신의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홍 반장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살갑게 굴 수 있는 성격이면 좋으련만, 그게 늘 아쉬운 설형이다.
“그래서, 범인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봐. 내 스토커였다고?”
설형이 한입 베어 문 두부를 그대로 휴지통으로 던져넣으며 확인부터 한다. 사실 나오자마자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놈 완전 소름끼치는 놈이던데요.”
다시 생각해도 기분 나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김 형사가 말을 이었다.
“이 새끼 오 년 전에 폭력 사건으로 잡아넣은 게 백 형사님이던데, 기억 안 나세요?”
“전혀.”
사건 파일을 건네받았지만 전혀 기억이 없었다. 평범한(?) 폭력 사건이었고 얼굴 역시 음침한 인상이라는 것 말고는 언제 어디서나 볼 법한 그런 얼굴이었다.
“하긴. 이런 새끼들이야 하루에도 열두 명은 더 잡혀 들어오니까. 암튼 그때 처음 백 형사님을 알게 됐고, 본격적인 스토킹은 3년 복역 후에 출소한 날부터 시작되었더라구요. 아마 교도소 안에 갇혀 지내면서 집착과 망상이 더 심해졌을 거라고.”
“…….”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설형에게 재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덧붙였다.
“왜 이 년 전에 이 미친놈이 이상한 물건 보내고 할 때요. 그때 백 형사님 집에도 침입했었잖아요. 칫솔이나 수건 같은 것만 들고 갔다고.”
“…….”
차라리 돈이 될 만한 물건―물론 그런 게 집에 있지는 않았지만―이 사라졌다면 그냥 좀도둑이구나 하고 말았을 텐데. 소름끼치게 그런 사소한 물건이 없어졌었다.
“근데 보니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진짜 별. 입었던 속옷 가져간 건 차라리 나아요. 화장실 배수구에 있던 머리카락 뭉치요. 그것까지 지퍼락에 하나씩 넣어서 보관해 놨더라니까요.”
으~, 하고 진저리를 치는 재민에도 설형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그런 일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고, 설형은 그냥 상대가 흥미를 잃고 그만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범죄가 제 의지로 멈춰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범죄는 더 큰 범죄로 성장할 뿐이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제게 일어났던 소름끼치는 일들이 딱 멈춘 시기가 바로 범인이 첫 살인을 저지른 때였으리라.
“네 명의 피해자들을 살해한 동기는?”
“강봉수의 집에서 나온 증거물 중에 정확히 피해자 네 명의 생전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나왔어요. 모두 백 형사님과 찍힌 사진들이구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물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무심한 어투로 물었다.
“어떤 사진들이야?”
“뭐, 대부분 술집이나 바에서 찍힌 사진들인데 뒤에서 몰래 찍은 것들이라 얼굴 표정이나 그런 건 잘 보이지 않구요. 다만 피해자들이 백 형사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부축하는 척하면서 허리를 감싸거나 그런 거 위주로 찍었더라구요. 마지막 피해자 서지철이 백 형사님 잔에 약을 넣는 것도 찍혔구요.”
“…….”
호텔에 들어가는 장면이라도 찍혀 있지 않았을까. 잔뜩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밝혀진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너무 별것 아니라 허무할 정도였다.
물론 술자리에서 모르는 남자사람과 함께 술을 먹었다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야 뭐. 마음대로 찧고 떠들라지. 남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에는 익숙한 설형이었다.
“자살은 확실한 거야? 타살일 가능성은 전혀 없고?”
“집에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나 몸싸움을 한 흔적이 없어요. 집주인도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하고. 짧지만 유서도 남긴 걸 봐서는 거의 자살이 확실하다고 봐야죠.”
“유서?”
“여기요.”
재민이 냉큼 휴대폰으로 찍어 둔 사진을 보여준다.
“백설형 형사는 범인이 아니다?”
책상 위 노트에 적힌 한줄 문장을 설형이 읽어 내렸다.
“이게 유서라고?”
“뭐. 식구도 없고 연락하는 주변 사람도 없으니 굳이 길게 남길 필요가 없었나 보죠. 본인 필적 확인도 마쳤어요.”
“…….”
뭔가 석연찮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설형의 표정을 읽은 김 형사가 물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이 자살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잖아. 이미 내가 범인으로 수배되어서 잡혔는데.”
“바로 그게 이유죠. 그렇게 집착하는 백 형사님이 범인으로 지목당했으니 당황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다 백 형사님이 연쇄살인범으로 몰려서 사형이라도 당해 봐요. 다시는 못 보는 건데 그게 더 견디기 힘들었겠죠.”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라뇨. 백 형사님이 그 방을 안 보셔서 그래요. 그런 집착이라면 충분히 자살하고도 남는다고 봐요. 심지어 백 형사님에 대한 집착이 너무 지나쳐서 연쇄 살인까지 저질렀던 인간인걸요.”
“…….”
흐음. 턱을 만지작거리며 묘한 소리를 낸 설형이 그것은 두고 이번엔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그럼 숙시닐콜린(succinylcholine)은? 겨우 중졸인 강봉수가 그런 약물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었는지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건 김 형사가 설명했다.
“아, 안 그래도 강봉수의 집에서 숙시닐콜린이 박스째로 발견됐어요. 확인해 보니까 예전에 일했던 퀵 회사가 제약회사에서 병원으로 급하게 의약품을 배달하는 전속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강봉수가 박스째 분실했나 보더라구요. 잠시 세워놓고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누가 가져갔다고 했다는데 결국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잘렸구요. 예상하신 대로 그 의약품이 숙시닐콜린이에요.”
“…….”
“그리고 그 신문기사 사진이요.”
순간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재민이 바로 부연 설명을 이었다.
“도 검사님이랑 같이 찍힌 사진이요. 그것도 강봉수의 집에서 수십 장 나왔는데 그거 보면 범인이 진짜 얼마나 분노했는지가 확연히 느껴져요. 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던 살인이 갑자기 그 텀이 짧아진 이유가 뭘까, 계속 궁금해했었잖아요. 두 분 사진이 범인을 자극한 거죠.”
안 그래도 계속 궁금하던 이름이 거론되자 순간, 가슴이 덜컥거렸다. 왜 이래. 손바닥으로 가슴께를 문지르던 설형이 그냥 지나가는 투로 슬쩍 물었다.
“그러고 보니 도검은?”
사실 강우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던 터라 혹여나 갑자기 도 검사님은 왜 찾는 거냐고, 재민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잠시 걱정했지만 그건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었다.
“아. 맞다. 지금쯤 시작했겠네요.”
재민이 눈치가 없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재민의 말을 들은 설형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가 시작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