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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상한 관계 (6/13)

6. 이상한 관계

“그래서 생각은 해봤고?”

“음….”

밥 먹는 데 괜한 소리를 하는 규영 덕에 우겸이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 아직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과연 규영과 파트너로 지내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싫으면 말고.”

규영의 아무렇지 않은 말에 우겸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제 일 아니라고 저렇게 속 편하게 말하는 걸 보니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팀장님은 정말 괜찮으세요? 저랑 자도?”

규영이 대답 대신 우겸의 눈을 쳐다봤다. 그러다 앞에 놓인 빨간색 참치 초밥을 손으로 들어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리고 손을 입으로 핥으며 말했다.

“싫은 게 뭐가 있지?”

방금 행동이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신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앞섶이 툭 튀어나온 걸 규영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 남자를 좋아하셨어요?”

“그러는 우겸 씨는?”

“저는… 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요즘 최대의 고민이긴 했다. 규영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이 있을 때 다정하기만 한 규영이었으나 회사에서는 몹시 까칠하게 굴어 더 마음이 쓰이는 걸 수도 있었다.

“뭐, 거기까지만 들을게요.”

“음…. 제가 지난번에 책임진다고 한 말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말을 하는 내내 뭐가 그리 조심스러운지 우겸은 초밥에 회를 젓가락으로 콕콕 찔러댔다. 그 모습에 규영이 미소 지으며 우겸의 젓가락을 빼앗았다.

“응. 알겠어요. 그럼 키스는 같이 퇴근해서 우리 집에서? 회사에서 하는 건 나도 좋지만, 그러다 들키면 그렇잖아요.”

“아….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아니면 제가 출근 전에 맨날 팀장님 집으로 올까요?”

“아, 아니면 가끔 우리 집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며칠 전에 종종 자고 간다고 했던 건 우겸 씨였잖아요.”

하긴, 어차피 집도 근처이고…. 생각보다 규영의 집에서 자는 게 나쁘지 않았다. 제 침대보다 침대가 폭신폭신한 것이, 딱 봐도 비싼 침대 같았다. 크기도 둘이 누워 자도 넉넉할 정도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말 나온 김에 오늘 자고 가요. 같이 자는 것도 적응해야 편안해지니까.”

“아, 오늘은 집에 불도 다 켜놓고 오고, 음….”

“알겠어요. 이따가 내가 집에 데려다주는 건 괜찮죠?”

순순히 뒤로 물러나는 규영이 수상스러웠다.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규영에게 말했다.

“저를요? 어차피 코앞인데, 저 보기보다 강한 남자라.”

규영이 우겸의 반응에 코웃음을 치며 응, 얼른 먹어요, 하고 말을 돌렸다.

  

***

  

규영의 말도 안 되는 과잉보호에 결국 집까지 같이 걸어왔다. 집에 오는 내내 무슨 꿍꿍이가 있는 사람처럼 자꾸만 피식거리며 웃어대는 탓에 속으로 무서움을 느꼈다.

도대체 왜 저래. 저런 모습까지는 아직 감당되지 않았다.

우겸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규영에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려고 할 때, 규영이 볼멘소리를 하며 집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우겸 씨, 정말 기회주의자네. 사람이 정이 없다.”

“네?”

규영이 자기 집인 양 안으로 들어와,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우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그… 어, 집에 안 가시게요?”

“아까 우겸 씨 집에 오는 내내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밖이 어둡더라고요.”

“그래서요?”

우겸이 앉아있는 규영의 앞에 서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밤이니까 밖이 어둡지, 그럼 밝나?

“그래서, 여기서 오늘 내가 여기서 신세를 지고 가는 게 어떨까 해서.”

“허?”

천연덕스러운 규영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결국은 오늘 같이 자자는 것 같은데…. 원래 저렇게 뻔뻔한 사람이었나?

규영이 가만히 있는 우겸의 팔을 이끌어 무릎에 앉혔다.

“어?”

“그리고 내가 또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매일같이 키스해 주고, 우겸 씨는 말만 파트너지, 고작 몇 번이나 나랑 잘지도 모르잖아요?”

“고작이라뇨…. 그게 얼마나.”

“응, 그러니까 나는 매일 이렇게 안아 줘요. 어려운 부탁은 아니죠?”

규영의 뻔뻔한 말에 우겸이 또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영업부의 팀장을 괜히 하는 게 아니었다. 말이 어찌나 청산유수인지…. 까딱하다가는 규영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릴 것 같았다.

우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규영이 우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꽉 껴안았다. 그렇게 몇 분을 껴안았을까. 고개를 떼고 우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지금 규영의 모습은 지난번과 같이 꽤 위태로워 보였다. 안쓰러워 보이는 규영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우겸은 뭐에 홀린 듯 규영의 얼굴을 작은 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규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쪽-.

“어?”

사람 홀리는 데 뭐가 있구나.

우겸도 제 행동에 놀란 듯 규영의 무릎 위에서 번쩍 일어났다. 순간 반동에 넘어지려고 하자, 규영이 우겸의 손을 잡고 다시 앉혔다. 그리고 우겸이 행동에 답이라도 하듯, 양 볼을 잡고 입을 맞췄다.

우겸이 입이 살짝 벌어진 틈으로 규영이 혀를 넣었다. 여러 번 입을 맞춘 탓에 우겸 또한 당연하게 규영의 혀를 맞이했다. 서로에 타액을 섞으며 안달 난 듯 조급하게 굴었다.

  

***

  

아까 격정적으로 키스를 한 탓에 입술이 퉁퉁 불은 듯 따가웠다. 입을 맞추는 도중 지민의 전화만 아니었으면…. 진도가 더 나갈 뻔했다. 지민의 전화가 꽤 길어지자 규영이 툴툴거리며, 잠깐 집에 들러 짐을 가져온다고 나갔다.

그럴 거면 각자 집에서 자는 게 낫지 않나요, 팀장님….

몇 분이 지났을까. 우겸의 집에 살림이라도 차릴 것처럼 아예 캐리어를 끌고 온 규영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동침을 하게 되었다.

“근데 꿈에서 나는 어땠어요?”

“음…. 잘 모르겠어요.”

우겸이 이불을 손에 쥐고 대답했다.

“왜?”

“그냥, 처음에는 울면서 깼는데….”

규영이 몸을 돌려 우겸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응. 그다음에는?”

“아, 그게 정말 예지몽이었나? 맨날 팀장님이랑 꿈에서 잠만 잤거든요.”

“잠만? 지금처럼? 아니면, 아….”

우겸의 미간에 인상을 쓴 걸 규영이 봤는지, 뒷말을 흐리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생각해 보니 이러려고 다 예지몽을 꾸었던 것 같았다. 일리가 있었다. 규영과 침대에 누워서 자고, 규영과… 그러면 규영을 빨아주기도 해야 하나….

우겸이 갑자기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규영이 옆에서 머리를 잡았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안녕히 주무세요.”

“응, 잘 자. 우겸아.”

은근슬쩍 또다시 반말을 하는 규영이 짜증나서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다.

“응.”

규영에게 들릴 듯 말 듯 작게 대답하고 서둘러 몸을 규영의 반대편으로 돌렸다. 소심한 반항이었다.

“뭐라고?”

규영이 옆에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우겸은 애써 무시한 채 눈만 꼭 감았다. 항상 혼자만 지내서 그런가, 규영이 옆에 있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더 안정되었다고 해야 하나.

평소 혼자만 지낸 탓에, 남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외로움을 느꼈다. 가족이라고는 누나밖에 없는 것도 한몫했다. 누구에게 제 이야기를 터놓을 상대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규영이 같이 자자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을 때 크게 거절을 안 했던 것 같았다. 옆에 규영의 온기 때문인지, 점점….

  

***

  

경쾌한 알람 소리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참, 제 마음과 달랐다. 평소보다 시간을 앞당겨서 알람을 맞춘 탓에 더 일어나기가 싫은 날이었다. 눈을 뜨지 않고 꼼지락거리자, 옆에 있는 규영이 제 어깨를 토닥였다.

“잘 잤어?”

아침부터 반말은.

“…응.”

규영이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 웃기 시작했다. 반말한다고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웃기만 하니 그것도 나름 무서웠다.

“우겸아.”

“응?”

규영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우겸아?”

“네….”

규영이 자꾸 이름을 부르는 탓에 하는 수없이 다시 존댓말을 했다. 그제야 규영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멈추고 우겸을 꽉 껴안았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금방 씻고 나올게요. 조금만 더 누워있어요.”

문이 달칵하는 소리를 듣고 우겸이 눈을 떴다. 작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빠르게 뛰는 심장을 매만졌다.

앞으로 규영에게 반말은커녕 더 공손하게 대해야겠다. 아침부터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살 떨리는 대화였다. 단순히 이름만 부르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들릴 줄은 몰랐다.

  

***

  

아침에 규영과 같이 일어나고, 규영이 챙겨주는 밥을 먹고, 규영이 골라주는 옷을 입고…. 이래나 되나 싶은 정도로 아침 출근 준비가 순탄하게 지나갔다.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꿈을 다 기억하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꿈속에서도 이렇게 규영이 잘해줬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당연한 기분이 들 리가 없었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규영이 아침에 배달시킨 밥은 꿀맛이었다. 이 동네에 꽤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이렇게 도시락을 배달시켜주는 건 또 처음 알았다.

“어제도 잘 잤죠?”

“…네.”

“다행이네, 안색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규영이 우겸의 머리를 정리해 줬다. 뭐가 이렇게 자연스러운 건지, 우겸은 뭔가 이상한 마음에 입술을 쭉 내밀었다.

싱숭생숭했다. 뭔가를 잊은 기분인데, 뭔지는 모르겠고.

“아침부터 해달라고 조르는 건가?”

규영의 말에 우겸이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추어진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누가 봐도 규영의 말 그대로처럼 보였다.

“아, 아뇨….”

규영을 등지고 엘리베이터 문 쪽으로 바짝 걸어갔다. 뒤에 서 있는 규영이 숨죽이고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눈을 뒤로 흘긴 다음에 엘리베이터가 층수가 내려가는 것만 조급하게 바라보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하자마자, 우겸이 작은 보폭으로 서둘러 나갔다. 그 뒤로 규영이 바짝 우겸을 따라붙으며 더 크게 웃었다.

“뭐가 부끄러워서 그렇게 먼저 가요? 같이 가요, 우겸 씨.”

우겸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제 뒤에 바짝 붙은 규영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집에서는 우겸아, 라고 하세요? 가끔 보면 반말도….”

“음, 그냥? 우겸 씨도 응, 응 거리면서 반말했잖아요.”

“아니, 제가 무슨 또 응, 응, 그랬다고….”

“어제 자기 전에도….”

우겸이 놀란 눈으로 다급하게 규영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가 떼었다.

“누가 들어요.”

주위를 의식하는 우겸의 모습에 규영이 꽤 귀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겸을 골목 구석으로 끌고 갔다. 가까이 다가와 옷을 정리해 주는 척하며 우겸의 입술을 훔치듯 살짝 머금었다 떼었다. 그 행동에 우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위를 더 두리번거렸다.

“허?”

“주위에 아무도 없고, 심지어 CCTV도 없어요.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아침에 그런 얼굴하고 쳐다보지 마요. 나도 밖에서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누가 자꾸 입술을 쭉 내미니까.”

규영은 어안이 벙벙한 우겸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고는 한 번 더 짧게 입을 맞추었다. 거듭하는 입맞춤에 순간 다리에 맥이 풀릴 뻔했다.

규영의 말도 안 되는 행동에 종일 넋이 나가 있었다. 미쳤지, 미쳤어. 길 한복판에서 그게 무슨 몹쓸 짓인지….

계속 정신을 놓고 멍하게 있자 규영이 책상을 두들겼다.

“일 안 해요?”

“아, 아뇨. 죄송합니다.”

“어제 제대로 잠 못 잤어요?”

네? 저희같이 잤잖아요….

우겸이 울 듯한 표정을 짓고 규영을 올려보자, 혼자만 재미있는지 작게 웃었다. 물론 사무실에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얼굴로만 웃었다.

“이따가 오후에 미팅 같이 갈 거니까, 결재 올릴 서류 있으면 오전 중으로 올려주세요.”

“…네.”

갑질이 어마어마했다.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게 하더니, 회사에만 오면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댔다.

왜 저러는 거야, 정말?

거기에 파티션도 한몫했다. 아무튼… 규영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우겸 씨, 괜찮아?”

복도에서 만난 희영이 걱정스러운 듯 우겸의 손을 잡고 비상계단으로 데려갔다. 축 처진 우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아, 네….”

“며칠 안색이 좋아지는 것 같더니만, 다시 퀭해지는 거 아니야? 아까 팀장님도 다시 뭐라 하시는 것 같고.”

남들이 보기에도 우겸의 낯빛이 꽤 좋아진 듯했다. 고작 며칠을 푹 잤을 뿐인데, 그 차이가 티가 날 정도였다니….

하긴, 자신이 느끼기에도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뭔가 안정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규영이 쳐다볼 때, 말을 걸 때 등등 규영의 근처만 가면 심장이 쿵쿵거렸었다. 그러나 요즘은 뭔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몸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에이, 아니에요. 이따 오후에 미팅 갔다가 거기서 바로 퇴근하게 되면, 내일 뵐게요.”

“응, 혹시나 단둘이 있을 때 너무 꽁해있지는 말고.”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영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규영을 한 번 쳐다보고, 자리로 가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규영이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에 인상을 쓰며 않은 상태로 우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우겸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까닥거렸다. 우겸은 갑작스러운 규영의 행동에 고개를 숙이고 규영에게 가깝게 붙었다. 규영이 가까워진 우겸의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이상 행동에 우겸이 당황해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규영이 팔에 힘을 주고 우겸을 더 꽉 잡았다.

그렇게 몇 분 냄새를 맡더니, 우겸을 놔주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향수를 우겸의 몸에 뿌려댔다. 갑작스러운 향수 공격에 우겸이 작게 기침하며 규영에게 말했다.

“…왜, 왜 그러세요?”

“….”

아무런 말 없이 노려보기만 하는 규영에 반응에 우겸이 몸을 움찔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규영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갑시다.”

  

***

  

규영과 같이 있는 차 안, 공기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사무실 내에서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규영은 지금까지 쭉 말이 없었다.

우겸 혼자 안절부절못한 상태로 규영의 눈치를 힐끔거리며 계속 봤다. 자신이 쳐다보는 걸 느꼈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무 말이 없는걸 보니 뭔가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저… 팀장님. 혹시 제가 뭐 잘못했을까요?”

“아뇨.”

규영과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뚝, 뚝 끊기자 우겸의 이성도 뚝, 뚝 끊겨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밖에서 키스해서 사람을 놀라게 해놓고, 지금은 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렇게 굴고….

자신을 장난감 대하듯 막 다루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놈의 책임도, 찾는 사람에게 거절당해서 대체자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입술을 꾹 물고,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너무 서러웠다. 창문 밖을 보며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해도, 자꾸만 규영이 자신에게 멋대로 굴던 행동이 떠올랐다.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볼을 씹어댔다. 그러니까 눈물 대신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휴지를 꺼내 킁킁거리며 닦아내자, 그제야 규영이 관심을 보였다.

“갑자기 왜 그래요?”

규영의 말에 그간 참은 서러움이 터졌다. 꾹 누르고 있던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규영이 당황했는지,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다급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에 당황한 우겸이 더 세차게 울기 시작했다. 자신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

“흑…. 흐.”

규영이 차 문을 열었다. 우겸이 괜찮은지 확인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몸을 돌려 샅샅이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장이라도 풀린 듯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규영의 행동에 우겸은 더 울컥했다. 뭐가 그리 걱정되길래, 그런 눈을 하는지…. 순간 규영의 눈에도 눈물이 일렁였다.

“왜 울어? 응?”

규영이 우겸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양 손목을 꽉 잡았다. 너무 가깝게 붙어있었다. 또 자신이 오해하게끔 행동하는 규영이 싫었다.

“흑….”

“내가 미안. 우겸아, 그만 울어. 응?”

규영의 사과에 우겸이 목 놓아 울어댔다. 한 번 터진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규영이 큰 손으로 우겸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연신 사과했다. 남들이 보면 규영이 엄청난 잘못이라도 한 줄 알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우겸을 달래고, 또 달랬다.

울음이 진정되자 제 앞에 있는 규영을 일으켜 세웠다.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달래주는지….

“괜찮아졌어?”

우겸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이 된 표정을 한 규영이 잠깐 전화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규영이 자리를 떠나자, 우겸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운 이유를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규영이 차에 올라탄 다음 다시 우겸의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오늘 집으로 바로 갈까?”

“저희… 흑, 미팅은요?”

“네가 이런데 미팅을 어떻게 가.”

“그래도… 죄송해… 흑.”

규영이 또 울려고 하는 우겸의 얼굴을 큰 손으로 잡아,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겸이 놀라 규영을 쳐다보았다.

“그만 울어, 우겸아. 응? 내가 잘못했어.”

또 사과만 하는 규영의 말에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규영이 우겸의 눈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꾹 눌렀다.

  

***

  

거실 소파에 앉아 퉁퉁 부은 눈을 손으로 비볐다. 평소 눈물이 없는 편이었다. 이렇게 펑펑 운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규영이 부엌으로 물을 가지러 간 사이 우겸은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무릎 위에 얼굴을 숙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규영이 왜 울었냐고 물으면, 자꾸만 뭐라고 해서 운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나이 스물여덟에 직장 상사에게 혼났다고 이렇게까지 우는 것이…,

“물 마시자, 우겸아.”

규영이 소파 아래에 앉아 우겸의 손에 조심스럽게 물컵을 쥐여주었다.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우겸이 물을 마시는 걸 확인한 규영은 우겸에게 컵을 건네어 받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우겸을 빤히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이럴 게 아닌데.”

우겸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가리자, 규영이 그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응, 내가 미안. 오늘은 그만 울자.”

또 사과. 도대체 규영은 왜 자신에게 사과만 할까.

“그런데 왜 자꾸 사과만 하세요?”

“그냥, 네가 내 옆에서 우니까. 다 내 잘못이지 뭐.”

규영의 처연한 표정에 우겸이 또 볼을 씹어댔다. 이러다 볼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본 규영이 우겸의 양 볼을 손으로 잡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넣어 우겸의 여린 볼 안쪽을 손으로 꾹꾹 둘러댔다.

침이 흐를까 침을 꿀꺽 삼키자 의도치 않게 규영의 손가락도 같이 빨게 되었다. 이상한 모양새였다.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빼, 빼주세요. 안 깨물게요.”

우겸의 말에 규영이 느릿하게 볼을 건들고 손을 뺐다. 그리고 우겸의 팔을 잡아, 소파 아래로 끌어내렸다. 규영이 다리 위에 우겸을 앉혔다. 자연스럽게 우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 잠깐만 안고 있자.”

자신이 우는 거에 많이 놀랐는지, 규영의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쿵쿵쿵.

펑펑 울 일이 아니었는데….

우겸이 허공에 있는 팔을 규영의 몸 쪽으로 내렸다. 작은 손으로 널따란 규영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까 자신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는데, 괜스레 미안해졌다.

“…우겸아.”

“….”

“내가 회사 그만둘까?”

당황한 우겸이 안고 있는 규영을 살짝 밀쳤다. 얼굴을 보아하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왜, 왜요? 아니, 갑자기?”

“네가 돈 벌어오면 내가 집에서 얌전히 살림할게.”

“살림이요?”

규영의 얼토당토않은 말에 우겸이 말을 잃었다. 가만 보면 사무실에서 일을 가장 좋아하는 건 규영이었다. 쉴 새 없이 일하고, 일하고…. 죽기 직전까지 일할 사람 하나 뽑으라면 그건 규영이었다. 그 정도로 일에 자부심도 있고, 그래 보였는데…. 살림한다는 소리는 너무 터무니없었다.

“나 책임진다면서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 이렇게 돼요?”

“책임진다는 게 순 거짓말이었구나?”

규영이 또 장난치듯 웃으며 우겸의 볼을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우겸 씨 주위에 사람이 많아서…. 그래서 자꾸 내가 질투하나 봐요. 아까도 우겸 씨 몸에서 희영 씨 향수 냄새가 나서….”

“아….”

갑자기 존댓말로 이야기하는 규영을 보니 정말 진심인 게 느껴졌다.

“내가 미안.”

어쩐지, 아까 이상하다 싶었다. 그럼 설마….

“그러면 혹시, 지민이도…?”

규영이 대답 대신 우겸의 어깨에 얼굴을 숨겼다. 규영보다 작은 몸에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것도 아닌데 자꾸만 파고들었다.

“허?”

“미안….”

“그런데 저… 좋아하세요?”

“당연한 걸 왜 물어.”

규영이 이제는 우겸의 여린 살에 가볍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간지러운 우겸이 어깨를 움츠리며 규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자신보다 힘이 센 규영이었기에 역부족이었다.

“아니, 잠시만요….”

겨우 규영을 떨어트리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울 것 같은 건 규영이 아니라 저였다. 그럼 그동안 이상하다 싶었던 게 다 저런 이유였었나?

우겸의 눈썹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 처음에 보자마자 저한테 반하셨어요?”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확인은 해보고 싶었다.

“…응.”

“허? 아니, 그런데 사람 찾으러 온 건요? …뭔가 말이 안 맞잖아요”

“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찾기?”

“…거짓말 같은데.”

지난번 규영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둘 걸 그랬다. 그때 표정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무슨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니까 그 파트너인지 뭔지 그런 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 진지하게 만나면 안 돼요? 그러면 나도 이제 희영 씨나 지민 씨가 신경도 안 쓰이고, 오로지 우겸 씨만 보일 것 같은데. 파트너니, 뭐니 하니까, 자꾸만 주위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요.”

“….”

우겸이 눈만 껌뻑거렸다. 규영의 웅얼거리는 모습에 넋을 놓았다. 규영답지 않게 제 앞에서 낑낑거리는 꼴이라니….

“아, 아니면 우겸 씨가 살림하고 내가 돈 벌까?”

우겸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럼? 응?”

규영이 대답을 요구하며 우겸의 얼굴에 계속 입을 맞췄다. 순간 지난번 제가 자는 줄 알고 옆에서 조물조물하면서 만져대던 게 떠올랐다. 다 이유가 있는 스킨십이었다.

“내가 살림하고 우겸 씨가 돈 벌고 싶어요? 그런데 월급이….”

꽤 현실적인 규영의 말에 우겸의 눈이 도끼눈이 되었다. 잘나가다가 사람이 꼭 끝에서 초를 쳤다.

“그, 팀장님. 정말, 진심으로 저 좋아하세요?”

“왜 자꾸 물어요? 어떻게 해야 믿으려나.”

규영이 우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표정이 딱 그랬다.

“…그, 저 남자인 건 아시죠?”

우겸이 규영의 볼을 양손으로 잡고 눈을 마주 보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으나, 규영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응.”

“팀장님도 남자인 거 아시죠?”

“응.”

“….”

“근데 서로가 남자인 게 문제에요? 나랑 잘만 자놓고?”

“아니, 그게… 그건 사고였으니까.”

이번에는 우겸이 규영의 어깨에 얼굴을 숙이며 대답했다. 잔다는 표현이 저렇게 부끄러운 건지 몰랐다.

규영이 우겸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조금 전 우겸이 규영에게 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우겸도 싫지 않은지 그렇게 규영의 품에 안겨있었다. 규영의 다독이는 손길에 눈이 점점 감겨왔다.

“우겸아.”

“….”

“자?”

규영의 품에서 우겸이 잠이 들고야 말았다. 규영은 조심히 우겸을 안은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겸이 깨지 않게끔 최대한 조용히 걸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규영이 조심스레 침대에 내려놓을 때도 우겸은 깨지 않고 새근새근 잘만 잤다. 규영도 우겸의 옆에 조심스레 누웠다. 그리고 우겸의 몸에 바짝 붙어, 자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

  

그렇게 며칠을 규영의 집에서 살다시피, 아니 살았다. 펑펑 울었던 날을 기점으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규영과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언제 제가 사귄다고 했냐고 물으면, 규영에게 안겼을 때 귀에다가 속삭였다고 했다.

순 거짓말이었다. 분명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평생 남자는커녕 여자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이었는데….

그래도 규영이 하는 행동이 꽤 귀여워서 일단 지켜보겠다고 했다. 솔직히 규영 덕에 잠도 잘 자고, 꿈을 원래 꾸지 않았던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가 뜨면 아침이었다. 다시금 행복의 질이 높아졌다.

그리고 요즘 회사에서도 규영의 갈굼도 많이 사라졌다. 그 괴롭힘이 어떻게 사라졌냐면….

우겸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했다. 그리고 서둘러 규영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 행동에 규영의 입이 귀에 걸린다.

“그런데 지민 씨를 왜 이렇게 자주 만나요? 오늘만 해도 세 번째 아닌가?”

“…아니, 오늘은.”

우겸이 규영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렇다. 규영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억지로 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지민을 보면 사무실에 오자마자 뽀뽀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질투는커녕 마음의 평화가 올 거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처음에 학을 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난리를 피웠다.

그렇지 않은가. 바로 사무실이 옆이라, 잘만 하면 복도에 나갈 때마다 볼 수 있는 게 당연했다. 하도 규영이 난리를 피우는 탓에 알겠다고 대답했는데, 이걸 요즘은 나쁘게 이용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인사팀에 가서 서류를 전달하고 오라고 한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뭐 서류는 평소에 하던 일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종종 말도 안 되는 심부름도 시켰다. 방금은 지민에게 가서 A4 용지를 빌려오라고 한 참이다. 사무실에 지금 상자째로 있는데….

순 억지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겸이 싫다고 안 가고 버티니 규영이 옆에서 얄밉게 웃으며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안 먹을래요.”

“왜, 삐졌어?”

“아니, 이건 너무….”

우겸이 입을 내밀고 툴툴거리자, 규영이 귀엽다는 듯 우겸을 쳐다봤다.

  

***

  

회사에서 갑질을 당한 걸 집에만 오면 우겸이 되로 갚아줬다. 의도치 않게 집 안에서 실세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든 생각이 있는데, 언제쯤 나랑 잘 거예요?”

규영은 꼭 필요할 때만 존댓말을 했다. 부탁하거나, 부탁…. 생각해 보니 부탁할 때만 존댓말을 쓴다. 지금도 그랬다. 며칠을 집에서 저렇게 들들 볶는지 모르겠다.

우겸은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었다.

“저 팀장님과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고 싶어요.”

“허?”

우겸의 말에 규영이 꽤 어이없어했다. 말이 자는 거지, 지난번에 관계 후 며칠을 고생했는지 모르겠다. 꿈에서는 그렇게 좋았던 게 실제로 하고 나니…. 아프기만 했다.

그리고 꿈 속보다 규영의 성기가 더 컸기에, 으….

“무슨 생각을 하길래 갑자기 인상을 찡그려요?”

“팀장님, 생각이요.”

“내가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건 그만큼 좋다는 건가?”

우겸이 규영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침대 안으로 쏙 들어왔다. 사실 이곳에 눌러앉은 계기에는 이 침대가 한몫했다. 정말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 올 정도로 푹신하고 안락했다. 내일은 집에 들르기는 해야 할 텐데.

“그때는 정말 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막 그런 거고.”

규영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이렇게 나란히 자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응?”

“저 아직도 상처가 안 아물었어요.”

“내가 한 번 볼까?”

규영이 이불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우겸의 바지를 벗기려고 들었다. 깜짝 놀란 우겸이 발버둥을 치며 규영의 손을 막아 세웠다.

“아!”

그 발에 규영이 맞았다. 힘없는 발에 차인 거라 크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규영이 이불 밖으로 나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

“괜찮으세요? 그러니까 왜….”

“여기 멍들 것 같은데.”

분명 제 발에 닿은 건 말랑한 살이었는데, 규영이 광대뼈를 붙잡고 아픈 척을 했다.

“…죄송해요.”

“내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줄게요. 그러니까….”

정말 무서운 규영이었다. 결국 기승전….

“그러면 천천히 해요. 천천히.”

“천천히? 어떻게 천천히 해요? 한 번 설명해 줘 봐요. 우겸 씨가 옷을 홀딱 벗고 있는데 눈이 안 돌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건 그랬다. 옷을 깜빡하고 씻으러 들어갔다가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나올 때 규영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규영이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꽤 노골적인 눈길을 하며 말했다.

‘혹시 일부러 이래?’

‘네? 아니, 옷을 깜빡해서.’

그대로 규영에게 몸이 납치당했다. 침대에 우겸을 눕힌 다음 몸을 핥고… 핥고…. 그 뒤는 생략하겠다. 그때 겨우 빠져나와서 옷 방으로 도망갔었다. 어찌나 눈이 희번덕거리는지, 그때 이후로는 침실 화장실이 아닌 거실 화장실에서만 씻었다.

“아니…. 그 꼭 넣지만 않고….”

“아…. 그런데 좀 그렇다.”

“뭐…가요?”

규영이 뭐가 토라진 듯 등을 돌리고 누웠다.

“아니… 됐어요. 잘 자요.”

갑작스러운 규영의 행동에 우겸이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어, 이게 아닌데….

우겸이 규영의 등 뒤에서 눈동자를 정신없이 움직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과부터 해야 하나? 그런데 자신이 뭘 잘못했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 팀장님.”

“자고 있어요.”

자는 사람이 무슨 대답을….

우겸이 규영의 팔을 쓰다듬으며 다시 규영을 불렀다. 뒤에서 슬쩍 보니 규영이 눈까지 감고 있었다. 도대체 뭐에 삐진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팔을 쓰다듬고, 어깨를 콕콕 찌르고, 규영이 뒤를 돌아보게끔 자꾸만 만져댔다.

“봐봐, 지금도 우겸 씨가 날 먼저 만지잖아요. 처음에 잘 때도 그렇고, 솔직히 내가 억울하지 않겠어요? 사람 혼을 홀라당 빼놓고, 지금 와서는…. 됐어요. 나 만지지 말아요. 잘 거니까.”

“허.”

“….”

“팀장님.”

우겸이 규영의 귀에 가까이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규영이 손으로 귀를 막았다.

“저, …음. 형.”

그 소리에 규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란 눈을 하고 우겸을 쳐다봤다.

어, 이게 아닌가.

“다시 불러봐.”

“형?”

그 뒤로 우겸의 입은 규영에게 먹히다시피 잡아먹혔다. 우겸의 입술을 뜯을 기세로 격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놀란 우겸이 힘을 주며 규영을 밀치려고 했지만, 먹혀들어 가지 않았다.

“읏….”

잠깐씩 숨을 쉴 수 있게 입을 떼어줄 때마다 가파르게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몇 번 숨을 쉬었을까. 규영이 우겸의 입을 다시 머금었다. 평소에 하던 것과 달리 꽤 집요했다. 규영의 혀와 제 혀가 달라붙을 때마다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어 몸을 움찔거렸다.

규영도 우겸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우겸의 바지를 순식간에 벗겼다. 그리고 상체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홀로 나체가 되었다.

“그… 하시게요?”

규영이 우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하던 행동을 이어서 했다. 우겸의 목에 얼굴을 묻고 집요하리만큼 물어댔다. 그 행동에 간지러운 우겸이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댔다.

“으… 간지러… 읏.”

규영이 손을 내리고 우겸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마른 몸이라 딱히 잡힐 살이 없었지만, 그것도 가슴이라고 규영이 정성스럽게 대했다.

젖꼭지를 혀로 살짝 핥으며 우겸의 반응을 올려다보았다. 우겸이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찔거리자,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더 집중적으로 빨아댔다.

“읏… 잠시만, 요.”

그 탓에 우겸의 성기가 점점 단단하게 변하고 있었다. 제 신체의 반응을 모를 수 없었기에,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그 모습에 규영이 변태처럼 웃어댔다.

“부끄러워서? 형도 옷 벗을까?”

“형?”

형 소리에 저렇게 눈이 회까닥 돌았던 거였나, 우겸이 흠칫거리며 이불 속으로 몸을 더 숨겼다.

뒤이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규영이 옷을 벗는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고 초조한 마음으로 입술을 꾹 물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말짱한 정신으로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오늘이 첫날밤이나 다름없었다.

“우겸 씨, 그래서 오늘 해도 돼요? 싫다고 하면 안 하고.”

다 벗겨놓은 마당에 무슨….

우겸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자신과 같이 나체로 있는 규영의 몸을 훑었다. 제정신으로 보니까 정말 크고 우람했다. 저렇게까지 사람이 클 필요가 있나?

“빤히 보는 거 보니까 싫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규영이 저를 야하게 쳐다보며 성기를 만져댔다. 그 모습에 우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점점 성기의 크기가 커졌다. 규영이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맨 아래 서랍 안에서 뭔가를 왕창 들고 침대 위에 뿌렸다.

뭐지. 어?

“혹시, 저… 죽일 생각이세요?”

“아뇨, 일단 몇 개 쓸지 모르니까 꺼내 놓은 거죠. 내가 무슨.”

사람 좋게 웃는 규영이 무서웠다. 콘돔을 도대체 몇 개를 꺼낸 것이며, 거기에 투명한 통이….

그 길로 규영이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겸의 옆에 바짝 붙어 아까 하던 행동을 뒤이어 했다. 물고 빨고…. 규영이 우겸에게 짙은 키스를 할 때마다 몸이 달달 떨리었다.

우겸의 신음이 방 안에 가득 찰 정도로 집요하게 만져댄다.

“읏…. 으… 이제 그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몸집이 큰 규영의 위에 우겸이 다 벗고 있으니, 체격 차이가 눈에 훤히 보였다. 규영이 우겸이 움직이지 못하게 꽉 껴안은 다음 손가락으로 구멍 주변을 지분거렸다.

구멍에 손가락이 왔다 갔다 움직일 때마다 우겸의 몸이 들썩거렸다. 이제 두 개째, 겨우 들어갔다. 젤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우겸의 구멍에서 손가락이 뺄 때 젤이 같이 흘러나왔다. 찌걱거리는 소리에 더 몸을 움츠렸다.

“쉬, 힘 빼고, 우겸아.”

“…아, 흣. 아파…. 응?”

“응…. 조금만.”

우겸이 더 울먹이는 목소리고 흐느끼자, 규영이 성기에 젤을 쭈욱 짜기 시작했다. 손으로 빠르게 문지르고, 우겸의 구멍에 맞춰 귀두 부분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아! 아파, 아파.”

우겸이 질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규영이 몸을 가볍게 붙잡았다. 우겸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읏, 잠, 시만요.”

규영이 우겸의 등을 더 껴안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이러고 잠깐만 있자, 응?”

규영이 우겸의 얼굴을 살폈다. 인상이라는 인상은 다 쓰고 온몸이 빨개져 있는 상태였다.

그동안 꿨던 꿈은 예지몽이 확실했다. 꿈에서 했던 대로 규영이 똑같이 했다. 꿈에서는 이 상태에서 자신이 신나게 허리를 움직여댔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움직이기는커녕 가만히 있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지난번에 어떻게 한 거지?

가만히 있어도 몸이 벌벌 떨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팔에 힘을 주고 제 구멍에 들어간 규영의 성기를 조금 빼보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규영이 허리를 쳐올려 더 깊게 넣었다.

“…읏. 하, 잠…시만, 잠시만…요.”

“응…. 조금 더 이러고 있을까?”

우겸이 규영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빼려고 할 때마다 규영이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몸의 떨림이 조금 전보다 나아지자, 규영이 제 입에 입을 맞추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읏….”

입이 막힌 탓에 앓는 소리가 규영에게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

  

침대 위에 콘돔은 왜 꺼냈을까. 콘돔을 쓰기는커녕 뜯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규영이었다. 우겸의 몸속에 몇 번이나 사정했는지 모른다. 나중에 가서는 안에 흠뻑 싼 정액 때문에 젤이 필요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에 어찌나 집요한지 우겸이 사정하지 않으면 성기를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 결과 규영의 손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사정했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데, 규영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 자자며 또 성기를 안에 넣으려고 했다.

“흑…. 읏.”

우겸이 울먹이는 소리로 흐느꼈다.

“왜, 아파서 그래?”

규영의 험악한 아랫도리와 다르게 말투는 꽤 상냥했다. 그렇게 했으면 그만할 법도 했는데, 규영의 성기가 죽을 생각을 안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얼핏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우겸은 눈이 반쯤 감긴 채 규영을 받아들였다. 몸에 힘이 빠진 채 늘어져 있었다.

다음에 또 해도 될 것을, 뭐가 그리 조급한 걸까. 그렇게 우겸이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규영은 우겸이 축 늘어지자,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우겸의 몸에 얼굴을 바짝 붙었다. 항상 하던 것처럼 우겸의 가슴에 귀를 대었다. 쿵쿵거리는 소리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겸의 얼굴에 여러 번 입을 맞추고 허리 짓을 마저 했다.

  

***

  

우겸은 까무러치게 놀라며 일어났다. 아직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걸 보면 몇 분밖에 잠을 안 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 있어야 할 규영이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겨우 침대에 앉았다. 암막 커튼 때문에 지금이 몇 시인지 감이 안 왔다. 핸드폰을 찾으려고 침대 위를 손으로 휘적거렸지만,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난번과 다르게 다리 사이로 흐르는 건 없었다. 규영이 씻긴 것 같았다. 손을 아래로 뻗어 훑었지만 묻어 나오는 게 없었다. 아주 보송하고 좋았다. 그런데 차림새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개를 숙여 자기 모습을 훑었다.

“이런 게 취향인가.”

규영의 잠옷 상의만 입혀놓고, 아래는 홀라당 벗은 상태였다. 다행히 잠옷이 커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모습이 꽤 흉할 뻔했다. 거울 사이로 비추어진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저번보다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여전히 다리는 제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어찌나 후들거리는지….

“아!”

순간 넘어질 뻔했다. 침대 위로 넘어져서 천만다행이었다. 이불에 머리가 박힌 상태라 몸을 끙끙거리며 겨우 일으켰다.

그런데 몇 분밖에 안 잤는데, 이렇게 개운할 수가 있나?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몹시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어기적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정말 규영이 제 부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고생했으나….

거실에 나가니 밖에 해가 쨍쨍했다. 아침보다 더 밝은…. 설마. 고개를 황급히 돌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있었다.

미쳤나 봐, 진짜.

“팀장님.”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규영을 불렀다. 애타게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집 안 곳곳 돌아다녀도 규영의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부엌으로 가서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규영에게 전화라도 해볼 텐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기적거리며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방에 있는 침대가 가장 편하긴 했지만, 다시 걸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떡하니 탁자 위에 있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도대체 핸드폰은 어디로 간 거야.”

가만히 TV를 보면서 졸고 있을 때 현관문 근처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띠리릭-.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고개만 살짝 들어 현관문을 쳐다봤다. 규영이 해사하게 웃으며 우겸에게 인사했다.

“잘 잤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혼자 출근하셨어요? 저는요?”

“팀장의 권한으로 연차 사용했지,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해서.”

규영이 가까이 다가와 우겸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고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머리부터 말끝까지, 유독 하체의 시선이 길게 머물렀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우겸의 얼굴을 매만졌다.

“허….”

“그리고 나도 반차. 점심을 일단 사 오긴 했는데, 지금 먹을 수 있어? 아니면 조금 더 자고 이따가 먹을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구는 규영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말이 없어.”

우겸이 자꾸만 쓰다듬는 규영의 손을 살짝 깨물었다.

“제 연차를 왜….”

인상을 쓰고 위협을 가했지만, 규영에게 큰 타격이 없어 보였다.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한곳으로 머물렀다. 뒤에 있는 쿠션을 들어 앞을 가렸다. 그러나 규영의 눈길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미안. 일단 밥부터 먹자. 응?”

입을 샐쭉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우겸의 등과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가뿐히 안았다. 자꾸만 손이 엉덩이 쪽으로 내려가는 건 기분 탓인가. 슬금슬금 움직이는 손을 꽉 잡고 무섭게 쳐다봤다. 그러자 가볍게 웃으며 얼굴에 입을 맞춰댔다.

“허?”

신경질적으로 규영을 째려봤다. 가만 보면 종일 물고 빨고…. 틈만 나면 제 얼굴에 뽀뽀해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뭐 하는가. 눈 깜빡하면 규영의 입이 닿았다가 떼어질 정도였다.

분명 지금 자신이 화를 표출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려는 규영이었다. 눈치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힌 다음,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잠시만, 얼른 가져올게.”

2권에서 계속

공금.갠소.본문수정有.AngKemT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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