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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상한 만남 (4/13)

4. 이상한 만남

옷을 갈아입으며 어제의 기억을 다시 되새겨봤다. 아무리 떠올려도 술집 앞에서 규영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평소 술을 못 마시는 편이긴 했으나, 술을 마시고 지금처럼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 적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희영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가, 내려놨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뭐가 문제지…. 하.”

깊은 한숨을 쉬며 얼굴을 제 손으로 감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꾸만 떠올려도…. 그게 꿈이 아니었다면 규영을 꾄 건 자신이었다.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혼자 자책하며 침대 커버를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띠링-.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였다. 느낌에 규영인 것 같았다. 이걸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전화가 끊겼다.

“휴….”

마저 침대 커버를 정리하고 있는데 현관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

그 소리를 시발점으로 우겸의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요동쳤다. 주말에 집까지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회사에서 가장 절친하다고 할 수 있는 지민도 집 주소는 모른다. 지금 저렇게 문을 두들길 수 있는 사람은 규영밖에 없었다.

우겸이 현관문으로 가서 누구세요, 하고 조용히 말했다.

“나예요. 일단 문 열어봐요.”

역시나 규영이 맞았다.

  

***

  

현재 규영이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자기 집인 마냥 거만하게 다리까지 꼬고 앉아있었다.

그와 반면에 우겸은 뭐가 그리 눈치가 보이는지 규영과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손을 연신 쥐었다 폈다. 규영의 얼굴, 아니 눈조차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고, 티 나게 힐끔거렸다.

“전화는 왜 안 받았어요?”

규영이 고개 숙인 우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아, 그게 씻고 나와서….”

“그래서, 몸은?”

“아….”

우겸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차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꿈인 줄 알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꿈인 줄 알았다고 말을 하는 것 자체도 문제였다. 규영이 왜 그런 꿈을 꾸었냐고 물으면…. 생각에 생각이 더해질수록 답이 없었다.

“괜찮아요? 내가 어제….”

우겸이 규영의 뒷말이 예상이라도 된 듯 고개를 들고 서둘러 말을 막았다.

“괜찮아요.”

“정말?”

우겸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규영이 꼰 다리를 풀고 우겸 쪽으로 다가왔다. 규영이 가까워질수록 우겸이 흠칫거리며 놀랐다. 그 모습에 규영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멈췄다.

“어제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요.”

“네?”

우겸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규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규영이 사과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있었나? 제 기억대로라면 규영이 잘못한 건 없었다.

“그… 제가 어제 먼저…. 하자고….”

“아….”

“아닌가요?”

우겸이 제 잘못을 시인하자, 규영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과 다르게 여유로운 모습을 했다. 다시 다리를 꼬고 소파에 등을 기댄 다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우겸 씨가 갑자기 제 위에 올라타서….”

화들짝 놀란 우겸이 몸을 움직여 잽싸게 규영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자 규영이 한술 더 떠서 우겸의 손바닥을 혀로 핥았다.

우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뭐 하시는…!”

우겸이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규영을 쳐다봤다. 그러자 규영이 상처라도 받은 듯 볼멘소리를 했다.

“우겸 씨가 이렇게 나오면 너무 속상한데, 어제 다 기억이 안 나나 봐요.”

규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우겸이 제 귀를 막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규영을 집에 들어오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다. 어제 술을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규영과 애초에 자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하는 행동을 보니 규영이 가만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이걸 약점으로 쥐고 자신을 흔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성이 아닌 동성이었고, 직장 상사를 부하 직원인 자신이 꼬셔서 자게 된 것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규영이 우겸의 좁은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우겸 씨가 듣기 싫은 눈치니까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정말요?”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건가? 우겸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규영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응, …그런데.”

“네?”

규영이 말을 하다 말았다. 초조해진 우겸의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허벅지에 손을 계속 문지르며, 초조하게 굴었다.

“어제 너무 급하게 하느라 콘돔도 없이 해서, 괜찮아요? 혼자 씻기 힘들었을 텐데….”

“아….”

규영은 어제의 일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했다. 오히려 우겸을 걱정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그,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나요?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지?”

우겸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럼 저희 어제 있었던 일은….”

그러자 규영이 작게 웃으며 우겸의 손을 살살 쓰다듬으며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네. 그래서 지금 우겸 씨는 괜찮아요? 나는 그게 더 궁금한데. 아, 아니면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까요?”

규영이 회사에서의 모습으로 우겸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당황한 우겸이 아뇨, 아뇨, 하고 같은 말만 반복하자 인상을 쓰며 다시 말했다.

“안 괜찮다고?”

“…괜찮아요.”

안 괜찮다고 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지라도 내릴 기세였다. 규영의 얼굴이며 눈빛이 곧 우겸을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다.

“일단 내가 어제 미안해요. 그렇게 거칠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일단 먹는 약이랑 바르는 연고 사 왔어요. 마음 같아서는 직접 발라주고 싶은데 지금 우겸 씨를 보아하니 질색할 것 같고. 괜찮아질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딱 하루에 두 번 연락해요.”

“네?”

우겸은 지금 규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귀를 후비적거렸다.

귀는 멀쩡한 것 같은데…. 지금 뭐라고?

“아니다. 지금 옷 벗어볼래요? 우겸 씨 태도를 보니까 내가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르겠네.”

“잠… 잠시만. 저한테 왜 그러세요?”

우겸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벌벌 떨며 뒷걸음질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규영은 코웃음을 치며 우겸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우겸이 소파로 올 생각을 하지 않자 소파 위를 손으로 툭툭 쳤다.

“다시 앉아요. 아침부터 힘 빼지 말고.”

규영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낮아졌다. 표정 또한 무섭게 변해있었다.

우겸의 피부에 오돌토돌 닭살이 돋았다. 항상 규영이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렇게 표정을 굳히니 더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둘만 있었다.

“빨리.”

규영의 강압적인 태도에 우겸이 현관문을 한 번 쳐다만 보고 다시 소파에 힘없이 앉았다.

눈을 차마 마주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코를 훌쩍였다. 이제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손으로 쓱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질질 새어 나왔다.

“흡….”

잘못한 거라고는 어제 규영에게 자자고 한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까지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이 싫었다.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왜 울어, 우겸아.”

어제처럼 우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그 말에 우겸이 화들짝 놀라며 조금 전보다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규영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우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큰 품으로 경직된 우겸을 감싸 안으며 천천히 등을 쓸어내렸다.

“흑….”

“울지 마, 나 속상하게. 응?”

꿈이라고 착각했던 그 목소리였다. 무섭게 굴었던 규영이 사라지고, 어제의 규영이, 꿈에서 항상 나왔던 규영의 모습처럼 다정하게 굴었다.

그 행동에 우겸의 호흡이 더 가빠지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규영의 옷자락을 꽉 잡으며, 품 안으로 얼굴을 더 파고들었다.

어느 정도 울음이 그치자 규영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규영과 눈이 마주치자, 눈꺼풀을 빠르게 움직여댔다.

그러자 규영이 큰 손으로 우겸의 얼굴을 매만졌다. 눈물과 콧물을 별것 아니라는 듯 손으로 쓱 닦았다. 그 행동에 우겸의 목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다 울었어요?”

우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느릿하게 끄덕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서웠던 규영이었는데…. 규영의 눈빛에 저를 향한 걱정이 가득 차올랐다. 거기에 다정한 말투와 행동까지 더하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혹여 규영에게 소리가 들킬까, 괜한 헛기침을 하며 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규영이 저를 보는 눈빛이 이상할 때가 많았다. 무섭게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가끔 집요한 눈빛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할 때가 있었다. 매번 눈을 피하고 못 본 척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눈빛과 꽤 비슷했다.

규영이 우겸의 앞머리를 천천히 쓸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뭐를… 요?”

지금도 쳐다보는 눈빛이 꽤 끈질겼다. 원하는 대답이 있는 듯 자꾸만 머리를 매만지며 답을 요구했다.

“이렇게 하루만 자고 끝이에요? 요즘 이걸 먹튀라고 한다던데.”

“제가요? 제가 무슨….”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우겸은 규영의 품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 한 발짝 뒤로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래도 규영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은 직후라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편안한 얼굴로 규영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우겸 씨가 괜찮아질 때까지, 우겸 씨가 나를 책임지는 거로 할까요?”

“…어, 왜…, 제가, 왜요?”

우겸이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규영에게 되물었다. 규영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눈물이 쏙 들어가고, 오히려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책임? 이 상황에서 책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제가 규영을 책임질 행동을 했던가? 정말 단순히 하룻밤을 지새운 게 전부였다.

따지고 보면 지금 관계 후 고생하는 건 자신이었다. 책임은 규영이 지어야…. 하긴, 보아하니 남자와 몸을 섞은 행위가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제의 규영은 자신과 다르게 모든 게 익숙해 보였다.

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규영은 사람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니면 찾는 사람은 따로고, 몸으로 즐기는 사람을 따로 둔다는 뜻인가….

“음….”

규영이 괜한 소파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꽤 초조해 보였다. 한 번도 저렇게 행동한 적이 없었던 규영이었다. 매사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지금 하는 거로 봐서 몹시 조바심이 나 보였다.

“내가 잘 부탁한다고까지 했잖아요.”

“네?”

우겸은 규영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 잘 부탁한다고 했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아, 아니면 어제 몸을 섞을 때 그런 말을 했나. 사실 어제의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 우겸이 인상을 찌푸리면서까지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으나 규영이 언제 저런 말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 못 해도 괜찮으니까, 한 번 생각해 줘요. 나는 우겸 씨랑 잘 지내고 싶어요.”

우겸이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어… 그런데, 그….”

“응?”

“저번에 사람을 찾으러 오셨다고…. 그런데 저한테… 음, 그러시면 안 되지 않아요?”

우겸의 말에 규영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규영이 점점 무서워졌다.

무슨 사람 성격이 저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지….

규영이 그건 기억하고, 잘 부탁한다는 말은 기억 못 하네, 하고 우겸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웅얼거렸다.

저렇게 혼잣말까지 하고… 규영을 힐긋 바라보며 혼자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렇게 단둘이 같이 있어도 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양손에서 땀이 촉촉하게 배고 있었다.

“뭐, 그 사람이 우겸 씨일 수도 있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왜 말이 안 되지?”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알 수 없는 말을 해댔다.

“아무튼, 그래서 좋아요. 싫어요?”

다짜고짜 좋냐, 싫냐 묻는 규영의 물음에 우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고개를 들고 찬찬히 규영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충분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키도 자신보다 컸고, 허우대도 멀쩡했다. 남들이 보기에 정말 멀쩡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왜 저에게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지금 이 상황이 꿈인가?

우겸이 갑자기 자신의 양 볼을 손으로 꼬집었다.

“아!”

쏙 들어간 눈물이 다시 나오려고 하는 걸 보니 이 상황 자체가 꿈이 아닌 게 확실했다.

“왜 아프게 얼굴을 꼬집고 그래, 우겸아.”

규영의 큰손이 허물없이 우겸의 여린 볼을 쓰다듬었다. 규영의 체온이 직접 닿자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스킨십이 꽤 자연스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쓰다듬는 행위조차 자연스러운 줄은 몰랐다. 눈을 크게 뜨고 여러 번 깜빡였다.

자꾸만 살살 쓰다듬는 규영의 손길에 잠시 헛된 생각을 했다. 규영과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그 생각도 잠시, 흐트러지는 정신 줄을 잡고 진지하게 현재 상황에 임했다. 일단 규영은 직장 내 상사였다. 그리고 자신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또 규영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우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규영과 친해져서 찾고 있는 사람에 대해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규영보다 여기에서 터를 잡고 산 기간이 긴 편이니, 혼자 찾는 것보다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규영이 서울로 다시 돌아갈 테고, 그럼 예전과 같은 삶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네, 그러면 그냥 일단 생각만 해봐요. 생각만.”

규영이 우겸의 볼을 가볍게 톡 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며 우겸의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들어갔다.

우겸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만 있었다. 뭘 생각해 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규영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모르겠다. 규영이 앉았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규영이 침대 커버와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 모습에 놀란 우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규영에게 다가갔다.

어제 관계로 고생하긴 했는지, 걸음걸이가 꽤 엉성했다. 그 모습을 본 규영이 얼굴을 찡그리며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겸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규영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 하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어요.”

“그러니까, 뭐를요?”

우겸이 되묻는 말에 규영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

“아니, 그니까…. 그걸 왜, 팀장님이….”

우겸이 자신의 침대 커버와 규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 하, 그럼 그렇게 걸으면서 밖에 나갔다가 올래?”

“아니….”

규영이 톡 쏘아붙이며 말하자 우겸이 입을 꾹 다물었다. 묘하게 하대하는 규영의 말투에 슬슬 기분이 상했다. 평소에도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긴 했지만, 오늘처럼 ‘우겸아, 너’라고 대놓고 말한 적은 없었다.

“뭐요?”

우겸이 양손을 꾹 쥐고 눈을 감은 상태로 작게 말했다.

“근데 왜 자꾸 반말… 하세요?”

규영이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그 소리에 우겸이 살짝 눈을 뜨자, 갑자기 규영이 양손으로 양 볼을 턱하고 잡았다. 순식간에 규영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가 떨어졌다.

쪽-.

“미쳤나 봐?”

눈을 크게 뜨고 다급하게 입을 손으로 가렸다. 우겸의 놀란 모습에 규영이 허파에 바람이 찬 사람처럼 실성하며 웃기 시작했다.

“응. 잠깐만 기다려요, 얼른 다녀올게.”

우겸은 규영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더 말을 걸었다가 지금보다 더 심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규영은 정신 나간 게 분명했다. 뭐지, 도대체 뭐지. 방금 행동은 뭐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겸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미쳤나 봐, 진짜.”

살짝 닿은 것뿐인데 입술에 규영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화끈거린다고 해야 하나, 화상이라도 입은 듯 그 자리만 홧홧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멍하니 있던 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규영이 생각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갔을 때는 침대 커버며 이불이며, 한 아름 들고나갔는데, 현재 규영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은 오늘 우리 집 가서 잘래요?”

“아니, 왜 빈손이세요?”

규영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돌리고 잠깐 한눈판 사이에 누가 이불을 훔쳐 갔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꽤 정성스럽게 하고 있었다. 규영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우겸은 속으로 또 생각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구나. 틈만 나면 거짓말에….

“지금 내 말을 안 믿나 본데… 진짜예요.”

평소였더라면 규영에게 주저하며 말하기 머뭇거렸을 텐데, 갑자기 무슨 자신감이 생겼는지 규영에게 할 말을 다 하기 시작했다.

“혹시 버리셨어요?”

“설마요, 아무튼 대충 필요한 짐만 챙겨서 우리 집으로 가요.”

규영이 우겸의 손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우겸이 잽싸게 몸을 피하고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왜요?”

“그럼 침대 커버도 없이 어떻게 자려고.”

“음… 그냥 여름 이불 깔고 자면 돼요.”

규영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살짝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혹시, 여름 이불도 누가 훔쳐 가면 그제야 우리 집으로 갈 거예요? 그럼 오늘 내가 도둑하고.”

“허….”

규영의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꽤 오래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규영의 손에 이끌려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서로 힘 빠지게 말씨름하느니 자신이 져주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마치 집에 있는 이불이란 이불을 밖에다가 다 버리고 올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어?”

규영이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옆 동이었다. 우겸의 집과 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아까 규영이 이불을 들고 왔다 갔다 한 시간이 얼추….

규영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겸이 다급하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닫혀있는 방문을 하나하나 다 열며 집 안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몇 분을 혼자 땀 흘리며 돌아다녔을까. 제풀에 지친 우겸이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불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내 말 못 믿나 보네.”

우겸이 규영을 티 나지 않게 째려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대놓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을래요?”

규영이 우겸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밀며 선심 쓰듯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다. 우겸은 또 규영을 힐긋거리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뭐라도 먹어야지.”

규영이 우겸의 손에 핸드폰을 쥐여주었다. 우겸이 가만히 화면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자, 규영이 또 말했다.

“초밥 먹을까?”

우겸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저었다.

꼬르륵-.

아씨, 쪽팔려.

갑자기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얼굴부터 목까지 새빨갛게 변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규영의 눈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규영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우겸의 손에 있던 핸드폰을 뺏었다.

“여기 근처에 마라탕 집 생겼던데, 거기서 시킬까요?”

우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아무거나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 먹는다고 버티다가 또 배에서 소리가 난다면…. 쪽팔림에 규영의 집에서 뛰쳐나갈 수도 있었다.

메마른 배에 괜히 손을 올렸다. 입술을 꾹 물고 규영이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

  

규영의 눈치를 보며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처음 규영의 집에 호기롭게 들어왔던 우겸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소파가 불편한 건지, 아니면 규영의 집이 불편한 건지 자꾸만 몸을 움찔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규영이 우겸의 행동을 아무 말 없이 쳐다만 봤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우겸은 자꾸만 몸 안에서 뭔가 나오는 기분에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집이라면 화장실에 다녀와서 씻기라고 할 텐데, 규영의 집이라 섣불리 씻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몸을 옴짝달싹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제 뭘 어떻게 한 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손을 넣고 씻을 걸 그랬다. 후회가 밀려오긴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참는 데까지 참아봐야겠다.

혼자 몸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편한 자세를 찾을 때 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규영이 무슨 눈치라고 챈 듯 방 안에서 가벼운 옷을 가지고 나왔다.

“씻을래요? 혼자 하기 힘들면 내가 도와줄까?”

“아, 아니요. 집에 가서 씻으면….”

“그게 몸 안에 오래 있으면 탈 날 텐데….”

규영의 말에 우겸이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제 배를 쳐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씻을 때 빼내려는 노력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그, 정말…이요?”

우겸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었다. 이걸로 병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랑 관계하고 정액을 미처….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눈 딱 감고 있으면 내가 빼줄게요.”

규영의 말에 우겸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따지고 보면 도움을 요청할 때가 규영밖에 없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거라면 진작 씻을 때 했을 것이다.

잠시나마 고개를 저으며 고민했다. 어차피 잠깐인데, 규영에게 부탁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어제 벗은 몸도 다 봤을 거고….

“아니면 병원을….”

규영의 입에서 병원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겸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그건….”

아까 규영이 콘돔 없이 했다고 하면서 사과한 게 떠올랐다. 다 이유가 있었던 건데, 그걸 지금에서야 알아차린 자신도 참….

  

***

  

현재 우겸은 상체의 옷만 입은 상태로 규영에게 폭 안겨있다. 이렇게까지 몸을 가깝게 할 생각은 정말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 규영의 눈치를 보며 바지만 살짝 내리려고 하자, 규영이 한마디 거들었다.

“바지에 묻으면 조금 그렇지 않아요?”

“아….”

머뭇거리는 사이 규영이 순식간에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놀란 눈을 하고 규영을 쳐다보자, 다시금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현재 규영이 애타게 필요했기에 아무 말 없이 티를 꾹 잡아, 내렸다.

화장실에 들어오자, 규영이 한술 더 떠서 엉덩이를 얼굴 앞에 가져다 대라고 했다.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규영에게 냅다 안겼다. 자기 집보다 밝게 빛나는 화장실 조명 아래에서 차마 규영의 얼굴에 엉덩이를 가져다 댈 수 없었다.

귓불이 빨개진 우겸이 규영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작게 숨소리만 내었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정말 부끄러웠다. 빨리 끝나길,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규영이 그 모습을 가만히 거울을 통해서 쳐다봤다. 다소 음흉해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우겸에게 말했다.

“금방 할 테니까, 눈 딱 감고 있어요.”

“…네….”

우겸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규영의 허리를 꽉 껴안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규영이 조심스럽게 우겸의 회음부를 누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느껴지는 통증에 어쩔 수 없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 읏.”

규영은 그 소리를 즐기기라고 하는 듯 손가락을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 덕에 입에서 자꾸만 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 싶으나 규영의 몸을 붙잡고 있느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죄 없는 입술을 꾹 물고 소리를 참았다.

“아파요?”

우겸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쓰라릴 듯 아팠다. 그러나 규영의 손가락이 점점 움직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찌릿한 느낌에 몸이 비비 꼬이기 시작했다.

“괜찮나?”

우겸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규영이 손을 더 느릿하게 움직였다. 참으려고 하는 소리가 자꾸만 입술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거기에 성기 또한 말을 듣지 않았다. 한 것도 없는데 점점 딱딱해지고 있었다. 이러고 있다가는 규영에게 들킬 것 같았다.

우겸이 새빨갛게 익은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더는 규영의 호의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규영이 계속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는지, 바로 눈이 마주쳤다.

“아파요?”

“…네.”

빤히 바라보는 규영의 눈빛에 우겸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규영을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티를 최대한 잡아끌어 툭 튀어나온 앞을 가렸다.

그러자 규영이 우겸을 위아래로 훑었다. 무언가 발견한 눈치였다. 규영답지 않게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우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추 다 나온 것 같은데, 그러면 마저 씻고 나와요.”

규영이 문을 닫고 화장실을 나가자 그제야 우겸이 고개를 들었다.

“하….”

규영이 제 모습을 볼까 봐 속으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몸 전체가 뜨거울 정도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서둘러 티를 벗고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고민 없이 찬물을 틀었다. 이렇게라도 열을 식혀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흥분되었던 게 가라앉자 우겸이 몸을 구석구석 씻기 시작했다.

“어?”

아까 규영이 정액을 제대로 빼준 게 맞나? 제 구멍 주위에 정액이 생각보다 많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분명 뚝뚝 떨어졌는데…. 거기에 팬티도 흥건히 젖어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샤워실 너머에 세면대 앞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와 같이 멀끔했다.

설마….

규영이 아까 나갈 때 손도 씻지 않고 나갔던 것 같은데…. 씻는 내내 의심스러운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

  

우겸이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다행히 거실에 규영은 없었다. 다시 주위 살피고 나와 화장실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속옷과 옷을 입었다. 이상하리만큼 제 옷처럼 크기가 딱 맞았다. 거기에 평소 즐겨 입던 취향의 옷이었다.

생긴 건 딴판인데 좋아하는 옷은 비슷한가 보네.

우겸이 수건을 들고 규영을 찾아 나섰다. 아까 규영이 잠깐 들어갔던 방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방 안에 없나?”

재차 두들겨도 아무런 말이 없자 방문을 조심히 열었다. 침대 위에도 규영은 없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 씻고 있는지, 물소리가 작게나마 들렸다. 그게 뭐라고 아까와 같이 얼굴에 열이 올랐다.

황급히 문을 닫고 거실 소파로 걸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TV를 틀고 작은 손바닥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문질렀다.

규영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문밖으로 나왔다. 얌전히 소파 위에서 몸을 구부린 채 자는 우겸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소파 아래에 살포시 앉아 우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제대로 말리지 않아 아직 촉촉한 상태였다. 규영이 눈살을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에서 드라이기를 꺼내왔다. 조금 전과 같이 우겸의 앞에 앉았다.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우겸을 불렀다.

“우겸아.”

우겸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규영은 손등으로 우겸의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살짝 입술을 벌리고 자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양 볼을 손으로 살짝 잡아, 벌어진 틈에 혀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그렇게 짧게나마 입을 맞추었는데도 우겸은 미동도 없이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규영은 무방비한 상태로 자는 우겸의 모습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윙-.

거실에 드라이기 소리가 울렸다. 얌전히 잘 자고 있던 우겸이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 공사하나.

몸을 뒤척이며 귀를 막았지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거기에 아까보다 더 머리에 열이 올랐다. 우겸이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깜짝이야.”

규영이 자신의 앞에 앉아 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뭐, 뭐 하세요?”

규영이 드라이기를 중단시킨 다음 자기주장이 강한 우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요, 이렇게 자면 감기 걸릴까 봐.”

우겸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몸을 일으켜서 앉으려고 했다. 규영이 자연스럽게 우겸의 등 아래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틈이 보일 때마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자연스럽게 제 몸을 만지는 규영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 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눈치도 없는 배에서 또 꼬르륵 소리가 났다. 종일 민망함에 연속이었다. 규영이 또 웃으며 우겸에게 물었다.

“마침 방금 주문했던 음식이 와서, 일단 먹고 다시 자요.”

우겸이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갔다. 이렇게라도 깨서 다행이었다. 더 잤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규영에게 어떤 구박을 들을지 몰랐다.

식탁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짧게 몇 분 잔 거라 꿈을 꿀 겨를이 없긴 했겠지만, 정말 깊게 잠을 잔 것 같았다. 지난번에 규영과 미팅 갔을 때, 잠깐 차 안에서 잤을 때와 같이 몸이 개운했다.

“왜요, 막상 먹으려고 하니까 별로예요? 다른 거 먹을까?”

“아뇨, 아뇨. 잘 먹겠습니다.”

우겸은 지금 음식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규영이 옆에 있으면 꿈을 꾸지 않는 건가?

“별로예요? 영 못 먹는 것 같은데….”

우겸이 아니라는 듯 입에 크게 넣고 웃으면서 규영을 쳐다보았다.

“그만 먹을까? 차라리 더 재울 걸 그랬나….”

“아뇨, 아뇨. 맛있어요. 정말.”

규영이 우겸의 말에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괴었다.

“그런데 팀장님은 안 드세요?”

“영 못 먹는 것 같아서, 걱정되네. 이따 저녁에는 밖에 나가서 먹을까요?”

우겸이 뭐라고 하든 규영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우겸이 규영의 눈치를 힐끔 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 이것만 먹고 집에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방금까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규영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우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쓰고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어요?”

“…아, 아뇨…. 그냥 불편하실까 봐.”

“그래도 주말에 갑자기 아프고 그러면 내가 종일 신경이 쓰일 것 같으니까, 오늘만 자고 가요. 응? 커버랑 이불도 없는데, 가서 어떻게 자려고.”

“….”

우겸이 아무런 말 없이 규영만 쳐다봤다.

그냥 눈 딱 감고 자고 갈까. 잘 때 규영이 옆에 있으면 꿈을 꾸지 않는 걸 확인하고 싶어졌다. 규영이 발령받아 온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자지 않아 피곤하긴 했다. 거기에 어제의 일로 인해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리고 어제도 나란히 옆에서 잤는데, 오늘도 같이 잔다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남자끼리 뭐 어떠하겠는가. 규영과 몸을 한 번 맞대고 나니, 평소 마음가짐보다 조금 대범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

“응?”

우겸이 못 이기는 척 말했다.

“그… 침대에서 같이….”

“아, 그 생각은 못 했네. 제가 거실에서 잘게요. 우겸 씨는 편하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자 우겸이 다급하게 규영의 말을 막았다. 같이 자자고 어떻게 말해야 규영이 오해를 안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 아니…. 음….”

“뭐? 그러면 같이 잘까요?”

“혹시나 제가 자다가 아플 수도 있으니까…. 그게, 좋지 않을까요…?”

우겸이 용기 내 하고자 하는 말을 뱉었다. 그 말을 들은 규영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

  

우겸과 규영이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있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분명 몸을 섞고 같이 침대에 누웠지만, 이렇게 맨정신으로 이렇게 규영과 침대에 누울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불을 손에 쥐고 규영과의 하루를 떠올렸다. 종일 규영과 지내보니 나쁠 게 없었다. 오히려 너무 좋았다. 저녁까지 규영에게 환자 대접을 극진히 받았다. 지내보니 회사에서나 까칠한 편이지, 원래 성격은 다정한 성격 같았다.

틈만 나면 뭘 먹을지 물어봤다. 그래 놓고 음식을 시키면 규영은 입을 대기는커녕 자신을 쳐다보기 바빴다. 배달 음식이 입에 안 맞는 줄 알고 밖에 나가서 밥을 먹자고 했더니, 규영의 표정이 좋지 못해 빠르게 포기했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몸을 부스럭거리며 옆에 있는 규영을 쳐다봤다.

“안녕히 주무세요.”

“네, 자다가 몸 불편하면 깨워요.”

우겸도 눈을 감고 편한 자세로 몸을 고쳐 누웠다. 규영의 간호 덕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몸 상태가 아주 괜찮아졌다. 약도 먹고, 연고도 발라서 그런지, 약간의 불편함만 있을 뿐 참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분을 누워있을까. 아까 소파에 누워있을 때는 순식간에 잠이 들었는데, 지금은 정신뿐만 아니라 눈도 말똥말똥했다. 눈을 몇 번이나 떴다가 감았는지 모른다.

또 눈을 떴다가 감았다. 괜히 몸을 움직여 자는 방향도 바꿔보았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잠자리만 바뀌었을 뿐 우겸의 집과 인테리어도 그렇고, 물건들이 거의 흡사했다. 그래서 규영의 집에 있는 내내 크게 낯섦을 느끼지 못했다.

거기에 제 몸에 맞는 잠옷까지 있었다. 처음에 옷이나 속옷을 가져다주었을 때도 의아하긴 했지만, 잘못 주문해서 여유분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잠옷까지 있는 건…. 이상하긴 했다.

규영이 좋아하는 사람이 저와 비슷한가….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새것 같았다. 거기에 가장 이상한 건 이 모든 것이 남자 옷이라는 점이었다.

설마, 찾으러 온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인 건가. 눈이 번쩍 뜨였다. 옆에 누워있는 규영을 몰래 훔쳐봤다. 저와 다르게 눈을 꾹 감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틈만 나면 뭐라고 하고, 노려보고 트집을 잡던 규영이었는데, 지금은 천사가 따로 없었다. 하긴, 저번에도 미팅 가는 차 안에서는 꽤 다정했었다.

“왜, 잠이 안 와요?”

“…아. 죄송해요.”

우겸이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뒤척이는 탓에 잠에 못 들었는지, 옆에서 규영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꼭 감고 몸을 움찔거렸다.

“이야기나 할까요?”

“네?”

규영이 옆으로 몸을 돌려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꿈에서처럼 다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현실로 다가왔다.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목소리에 규영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냥, 우겸 씨 이야기요.”

규영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까맣게 잊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한층 편안한 표정을 짓고, 규영에게 말했다.

“…음. 팀장님이 해주시면 안 돼요?”

“내가?”

“…네.”

우겸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규영의 목소리가 이렇게 나긋한 면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평소보다 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뭐 듣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우겸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웅얼거렸다. 서서히 졸리기 시작했다.

“음…. 좋아하는 음식?… 아니면, 누굴 찾으러 왔는지?”

규영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 우겸이 눈을 느릿하게 떠서 규영을 살폈다. 규영이 자리를 잡고 침대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또 마주치자 우겸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규영과 말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 갑자기 눈두덩이에 돌이라도 올린 듯 점점 무거워졌다.

거기다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길에 지금까지 규영에게 친 벽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까지 사람의 손길이 좋을 수도 있구나. 규영에게 몸을 더 가깝게 붙였다. 허벅지에 얼굴을 박다시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음. 초밥도 좋아하고, 아까 먹은 이상한 마라탕도 이제 좋아해 보려고 하고….”

규영의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근거가 이상했다. 좋아한다는 건지, 싫어한다는 건지…. 우겸은 별다른 반응 없이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찾으러 온 사람은…. 우겸 씨…. ….”

규영이 뭐라 말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다.

규영은 옆에서 세상모르게 자는 우겸을 빤히 쳐다봤다. 가만히 보다가 우겸의 코 아래에 손을 데어보기도 하고, 또 시간이 지나서 괜히 우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어떤 걸 확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자는 우겸을 쉴 새 없이 만져댔다. 규영의 손길에 우겸이 뒤척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만지던 것을 그만두었다.

심통 난 얼굴로 턱을 괴고 가만히 규영을 기다렸다. 아까 양손에 가득 들고 왔던 종이 가방 여러 개를 식탁 위에 올렸다. 포장 용기를 하나씩 꺼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좋아할지를 몰라서, 일단 사 올 수 있는 건 다 사 왔는데.”

규영이 식탁 위에 용기를 내려놓을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그 참치 초밥이었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했던 마라탕에….

“어?”

자신이 평소에 좋아했지만 비싸서 자주 못 먹던 소꼬리찜까지 줄줄이 나왔다.

“여기 것 맛있긴 하지?”

순간 규영에게 화났던 것이 싹 풀렸다. 누가 그러지 않는가, 먹을 거 사주는 사람은 다 착한 사람이라고.

우겸이 신이 난 듯 미소를 머금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이루어진 식탁이었다. 뭘 먼저 먹어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침이 입안 가득 고였다.

“꼬리찜부터 먹을까?”

규영이 자연스럽게 앞접시에 찜을 덜어줬다. 앞에 와사비 장을 밀어주고 얼른 먹으라고 손짓했다. 우겸이 규영의 눈치를 슬슬 보고 손을 식탁 위로 올렸다. 규영이 준 뼈를 잡고 입을 크게 벌려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이 기름지고 고소한 맛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앞에 규영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열심히 먹어댔다.

“팀장님은 안 드세요?”

“이제 먹게.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요.”

혼자만 먹어댔던 게 찔렸던 우겸이 조심스럽게 규영의 앞접시에 음식을 올려주었다. 그러자 규영이 이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먹기 시작했다.

***

우겸은 규영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린 상태로 누워있었다. 침대 위에서 며칠 같이 지낸 탓에 규영이 예전보다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하는 것 같았다. 첫인상은 정말 좋지 않았던 규영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서로 입을 맞추고, 몸을 섞…. 누가 이럴 줄 알았겠는가.

평소보다 배불리 음식을 먹었는지, 잠옷 사이로 우겸의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 마른 편인데 근육이 없어서 그런지, 밥을 많이 먹으면 유독 티가 났다.

그걸 규영이 슬쩍 보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우겸은 제 배를 벅벅 긁으며, TV에 집중했다.

“그런데 잘 때 씻겨주셨어요?”

“…네.”

어? 규영의 목소리가 꽤 수상했다. 웃음을 참는 것 같은 모양새에 우겸이 고개를 돌려 규영을 올려다봤다. 역시나 입을 가린 채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있었다.

음식이 상했나?

“왜….”

“아니, 흡….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우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규영이 이를 저지하고 다시 눕게 했다. 그리고 웃음을 겨우 참으며 우겸에게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돼요, 하고 말했다.

“갑자기요?”

“한 번만 배 만지게 해주면 안 돼요?”

규영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우겸이 잠옷을 살짝 올려 제 배를 바라봤다. 아씨, 이거 때문에 웃었나. 사람이 배가 나올 수도 있지, 참나.

규영이 뽀얀 우겸의 뱃살을 손으로 살살 주물렀다. 어찌나 말랑거리는지 규영이 만질 때마다 빨간색 자국이 다 남을 정도였다.

우겸이 신경질적으로 잠옷을 내리고 규영의 손을 툭하고 치웠다. 몸을 웅크려서 규영이 만지지 못하게 했는데, 규영이 더 숨이 넘어가게 웃어댔다.

점점 빈정이 상한 우겸이 몸을 벌떡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제 딴에는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규영을 노려봤다.

“너무 귀여워서…. 미안. 미안, 우겸아. 화났어?”

“….”

인상까지 쓰면서 째려봤다.

“내가 이렇게 배 나온 건 또 처음 봐서, 미안.”

그리고 슬쩍 우겸의 잠옷 안에 손을 넣고 배를 주물럭거렸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우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규영이 잽싸게 팔을 끌었다. 결국 규영의 무릎 위에 앉은 자세가 되었다.

“화내지 마, 형이 미안.”

규영이 우겸의 양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댔다. 우겸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규영을 피했지만, 힘을 당해 내기는 역부족이었다. 한술 더 떠서 볼 뿐만 아니라 톡 튀어나온 입술을 살짝 핥았다. 우겸이 치를 떨며 정색하자, 규영은 그 모습을 보며 실없이 웃었다. 아무래도 실성한 것 같았다. 초밥이 상한 게 분명하다.

“미안. 내가 스물여덟 살의 너는 처음 봐서.”

“저도 서른네 살의 팀장님은 처음 보는데요?”

“그러게.”

가끔 규영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당연히 처음 보는 게 맞는데, 지금처럼 이 모습을 생전 처음 본 것처럼 말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오래 봐왔던 것처럼 말할 때도 있었다. 평소에 워낙 이랬다저랬다 하는 규영이었으니, 변덕이겠느니 하며 줄곧 넘겼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의아하긴 했다. 어떻게 자신이 소꼬리찜을 좋아하는지 알고 포장을 해왔을까. 지나가는 말로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아까는 급하게 먹는 탓에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이상하리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가 막히게 알았다. 심지어 오늘 포장해 온 식당은 최근에 회사 근처에 생긴 체인점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게 아닌 것 같았다. 방금 굳이 스물여덟 살에 자신을 처음 본다고 말했을까. 말 하나, 하나를 곱씹을 필요가 있었다.

“왜 갑자기 인상 쓰고 그래.”

규영이 우겸의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저…. 음….”

“응?”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정말 혹시나 해서. 저를 이번에 처음 아신 거예요? …음. 발령받아서 오셨을 때?”

“왜요?”

제 얼굴을 주무르던 규영이 손이 멈췄다. 그리고 예전에, 언제였더라. 저를 이렇게 쳐다봤던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큼 집요하게, 속마음을 읽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냥요. 그냥… 저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아서.”

“내가 그랬나?”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하고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뭔가 있는 것 같지만, 규영이 말을 해줄 것 같지 않았다. 항상 뭘 물어보면 저렇게 시치미를 떼고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우겸이 애써 서운함을 숨기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직까지 규영과 제 사이에 선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선을 빨리 허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졸려?”

차라리 낮잠이라도 자는 게 낫겠다. 지난번처럼 규영이 옮겨주면 좋을 것 같은데…. 침을 꿀꺽 삼키고 규영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저 침대까지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응? 혹시 무슨 뜻이….”

우겸의 잠옷 안으로 규영의 손이 스멀스멀 들어왔다. 우겸이 화들짝 놀라며 그게 아니고, 쉬고 싶다고, 지금은 절대 안 된다고,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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