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29)화 (157/159)

#6

“제가 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줄게요.”

“고마워, 청신아. …있잖아, 네가 기억하는 나와, 내가 기억하는 너와의 시간이 달라서 그런지 요즘에 너와 함께 있는데도 너는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하고 걱정돼.”

“도유 형….”

“청신아, 나는 네가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너와 함께한 뒤로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알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네 존재 덕분에 매 순간이 설레고 외롭지 않아.”

청신이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기쁨으로 달아오른 뺨과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는 걸 보면서 도유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겨우 울음을 그쳤는데 다시 눈물을 흘리면 눈가가 많이 쓰라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울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네가 나와 같이 매일이 행복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는데, 너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고 걱정돼.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네 생각을 말해 줄래?”

“저는….”

결국 여린 뺨으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도유는 곧바로 티슈를 뽑아 청신의 눈가를 훔쳐 주었다.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청신은 또다시 감동에 벅찬 얼굴을 했다.

바로 대답을 내놓을 거라 생각했던 청신은 고민하는 얼굴로 도유를 빤히 바라볼 뿐 좀처럼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도유를 빤히 보는 시선이 범상치 않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그런 청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도유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 녀석의 머릿속이 지금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청신은 도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자기만큼 도유의 표정이나 미묘한 변화를 잘 읽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도유도 마찬가지다. 도유도 이제는 청신을 잘 알았다.

끙끙 앓기까지 하는 청신의 모습을 실컷 감상한 도유는 기꺼이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다섯의 네가 대답하기 어렵다면, 스물여섯의 네가 대답해 줘도 돼.”

청신은 도토리를 떨어트린 다람쥐처럼 놀란 얼굴을 했다. 입술을 벙긋거리던 청신의 뺨이 한순간에 화악 붉어지는 것이 마치 만개하는 꽃을 보는 것 같다 생각하며, 도유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청신의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뺨에 내려앉은 입술에 정신 차린 청신이 화드득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언제부터 알았어요?”

“중간부터 날 보는 눈빛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몰라봐? 도중에 기억을 찾은 거지?”

고민 상담을 운운했을 때부터 도유를 응시하던 눈빛이 일순 달라진 것을 도유는 바로 알아봤다.

나름 숨기고는 있었지만 도유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애욕으로 눈을 번뜩이는 15살 청신의 모습이 26살의 이청신과 너무 똑같아, 나름 숨긴다고 노력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게다가 말은 해 주지 않았지만 ‘나’라고 했던 표현이 어느덧 ‘저’로 바뀐 것도 한몫했다. 도유는 그런 청신이 너무나 귀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눈을 뜨자마자 동영상 녹화라도 켜 놨을 것이다.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아쉬움을 느끼며 도유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인 청신을 보았다. 많이 부끄럽나 보다. 손까지 써서 얼굴을 가린 탓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려지지 못한 귀는 귓불까지 새빨갰다.

“청신아, 대답 안 해 줄 거야? 응? 다시 반말해도 모른 척해 줄게.”

일부러 짓궂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도유는 청신의 귓불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몸까지 바르르 떠는 청신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어떻게 하면 청신의 귀여운 반응을 더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무방비하게 있었다. 아니, 무방비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안전하다 느끼는 집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대상과 단둘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도유의 연인은 평소의 늠름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느낌보다는 여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모가 더 부각된 모습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었기에 자연히 긴장을 늦추게 되었다.

그게 도유의 실책이었다.

“흡-!”

몸을 끌어당기는 거센 손길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도유는 눈을 부릅뜨고 제 위에 올라탄 청신을 봤다. 달아오른 청신의 뺨, 흥분으로 떨리는 숨결, 욕망에 젖어 번들거리는 눈을 올려다보게 된 도유가 숨을 삼키다가, 청신의 변화를 깨닫고 입을 떡 벌렸다.

15살의 앳된 얼굴은 어디 가고,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온 청신이 도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유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청신은 원래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다. 어린 체구에 그나마 맞는 작은 셔츠 말이다. 갑자기 몸이 커진 지금, 그가 입은 셔츠는 터질 것처럼 그의 상체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게 더 음란해 보일 수 있다는 걸 도유는 처음으로 알았다.

“너, 너! 마법 풀 수 있었어?!”

“그야 당연하죠. 제가 만든 마법인걸요.”

“하루나 이틀이 지나야 풀린다고 했잖아…!”

“자연스럽게 마법 효과가 완전히 사라지는 시간을 말했던 거죠. 제가 직접 풀면 1초면 되는 거고요.”

“나한테 거짓말을 했… 청신아, 진정하고 일단 나 좀 내려놔. 응?”

제 다리를 잡아 어깨에 걸쳐 놓는 청신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엉덩이 쪽이 그의 다리 사이에 닿았다. 도유는 보지 않아도 옷 너머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열기에 조금 전의 청신이 그랬듯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대체 왜 흥분한 거야….”

“도유 형이 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직접적으로 들었는데 제가 어떻게 흥분을 안 해요? 당장 도유 형의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허락해 줘요, 도유 형.”

그렇게 말하며 청신이 너무 자연스럽게 도유의 바지를 벗기려 들었다. 도유는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으로 바지를 사수했다.

“형, 왜요? 아, 열다섯 살 때의 모습이 더 좋아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청신을 향해 도유가 버럭 소리쳤다.

“미쳤어? 그런 게 아니라…!”

“그럼요?”

“내가 고민 상담 했잖아. 대답, 안 해 줄 거야?”

이렇게 되니 답을 조르는 기분이 들어 부끄러웠지만 도유는 꿋꿋이 질문했다. 청신이 환하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기는커녕, 볼 때마다 호흡마저 삼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웃음에 도유는 하마터면 키스해 달라고 조를 뻔한 제 주둥이를 손으로 턱 막았다.

“이게 대답이에요.”

“이거? 섹스?”

“섹스가 아니어도 저는 도유 형과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해져요.”

청신은 도유를 덮치려는 것을 포기했는지 꼬물거리며 옆에 누워 도유를 껴안았다.

청신의 품에 안겨 도유는 생각했다. 역시 작은 청신을 안는 것보다 이렇게 안겨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하반신을 노골적으로 찌르는 뜨거운 살덩이는 좀 거슬리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5살에 도유 형과 헤어진 날부터 계속, 전 정말 단 하루도, 한시도 도유 형을 잊어 본 적이 없어요. 매일매일 도유 형에 대해 생각했어요. 무얼 하든 도유 형이 떠올랐고, 보는 것도 전부 도유 형이 떠올랐어요. 도유 형은 뭘 어떤 걸 좋아하게 됐을까. 여전히 단걸 좋아할까. 여전히 반짝이는 걸 좋아할까. 내가 없는 곳에서 울진 않을까. 딴 새끼한테 웃어 주면 어떡하지….”

키는 얼마나 자라고, 목소리는,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손가락 길이는, 입술은 얼마나 탐스러워졌을까…. 이 외에도, 청신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고백을 닮은 달콤한 말에 귀 기울이며 내심 눈을 반짝였던 도유의 얼굴은, 음담패설을 닮은 야한 말들이 뒷부분에 섞이기 시작하자 점점 홍조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청신의 말들이 그저 도유의 반응을 보기 위한 수작이 아니라 진심이란 걸 알기에 더더욱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얼굴에 열이 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신은 담담하게 제 속에 담긴 말들을 꺼내 놓았다.

“-도유 형이 저를 대하는 것이 잘못됐다거나, 우리가 공유한 시간이 서로 다르고, 부족해서 제가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도유 형이 제게 신경 써서 애정을 쏟는 걸 알아요. 그저 제가 욕심이 많은 것뿐이에요. 제가 욕심쟁이라서 죄송해요.”

“아니, 아니야. 청신아. 내가 미안해.”

“도유 형은 잘못 없어요. 제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도유 형이 이렇게 마음 쓰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청신은 다정하게 웃으며 도유의 푸른 눈 위에 입을 맞췄다. 그에 도유의 표정이 무너졌다.

사랑하는 연인의 애정에 몸과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았고, 항상 첫사랑을 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도유는 깊이 반성했다.

“청신아, 내가 그동안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나도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앞으로는 네가 전에 권유했던 것처럼 서류 업무는 전부 재택근무로 돌릴게. 임무 자원도 되도록 줄여 볼게.”

특수부 제1팀의 임무는 대부분 선택권이 없지만, 이따금 자원할 수 있는 임무도 내려왔다. 그에 도유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거의 모든 임무에 자원하여 사건을 해결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를 줄이고, 그만큼 청신과의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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