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28)화 (156/159)

#5

“왜 그래, 응? 청신아. 말 좀 해 줘.”

“이럼 안 되는데. 안 된다고….”

“뭐가 안 돼?”

“우리가 벌써 만나면 안 돼…. 게, 게다가,”

“게다가?”

“네가 나보다 키 크면 안 된단 말야…. 내가 아직 다 안 자랐어도, 이번엔 내가 안아 주려고 했단 말야.”

“…….”

당혹스러운 것도 잠시, 울고 있으면서도 낯선 것을 보듯 저를 관찰하는 청신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말을 곱씹어 본 도유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물었다.

“청신아, 지금 너 몇 살이지?”

질문을 하면서도 스스로도 이게 얼마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인지 잘 알았다. 아니, 세상에 영화나 소설도 아닌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도유는 청신이 장난치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 열다섯 살이야.”

“…….”

외형만 어려진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정신까지 육체의 나이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망치로 제 머리를 후려친 기분이 들었다. 청신은 여전히 훌쩍훌쩍 울며 말을 이었다.

“아직 흉성의 힘도 제대로 제어도 못하고, 요리도 연습 못 했는데 벌써 만나면 어떡해. 너랑, 아, 맞아. 도유, 도유 형.”

갑작스레 바뀐 호칭에 도유가 눈을 깜빡였다. 입에 달라붙은 듯이 ‘도유 형’이라고 불렀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어색한 어조로 연신 도유 형, 이라고 중얼거리던 청신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고 보니 도유 형, 왜 나랑 있어… 요? 여긴 어디야, 요?”

“…그, 편한 대로 말해도 돼.”

존댓말을 진짜 못 쓴다. 아카데미에서 만났을 때부터 귀에 착착 달라붙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존댓말을 하고, 아무리 흥분을 해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던 청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듣는 사람까지 어색해질 정도로 못했다.

“안 돼… 요.”

“존댓말은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편히 말해.”

“그치만 도유가, 도유 형이 알려 줬잖아.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고, 이름을 불러 주고, 대화도 나누고, 귀찮아하지 않고, 웃어 주고, 기뻐해 주고, 무서워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나는 도유 형을 사랑하는걸. 사랑하니까 존중해 줄 거야. 존중하는 건 존댓말부터 시작하는 거랬어요.”

도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릴 적부터 줄곧 도유가 생각해 왔던 ‘사랑’의 정의가 청신의 입을 통해 나오자 당혹스러운 한편, 실제로 청신이 도유를 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연습 많이 했어… 요. 흉성의 힘은 아직 완전히 다룰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덜 아파. 도유 형을 존중하는 방법을 공부했어요. 도유 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존댓말을 해야 하고,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이제 알아요. 그리고 형은 겁이 많고, 예쁜 걸 좋아하고, 단걸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니까 내가 지켜 줄 수 있도록 마법 공부도 꾸준히 했어요.”

청신의 손이 도유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에 닿은 체온이 기분이 좋은지 청신이 배시시 웃었다.

“도유 형에게 사랑받으려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요리는 다 못 익혔어요. 그래도 형이 좋아하는 달콤한 것들은 잘 만들 수 있어요. 얼굴도 몸도 열심히 관리하고 있고, 형이 좋아할 것 같은 책도 꾸준히 읽고 있고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청신은 도유에게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길 해 준 적이 없다.

도유가 기억하는 청신은 언제나 완벽했다. 모르는 게 없었고, 도유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알고 있었다.

뭔가 먹고 싶어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도 막힘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도유는 청신이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으며, 그가 태생적으로 완벽하기에 어려움 없이 제게 맞춰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열다섯의 청신이 눈앞에 있다. 거짓말을 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애초에 도유가 눈앞에 있다고 펑펑 울던 놈이 무슨 거짓말을 할 정신이 있을까.

도유는 간지러워서 긁고 싶을 정도로 제 존재를 드러내는 심장을 한 손으로 꾹 눌렀다.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네게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까지 날, 사랑해 주는 거야?”

현재의 청신에게선 들을 수 없었던 과거를 지금에야말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질문했다. 청신은 그 질문에 눈물을 뚝 그쳤다. 어린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을 바로 알아본 도유의 입이 저절로 열었다.

“뭐가 두려워?”

열다섯의 청신은 표정 관리를 능숙하게 해내지 못했다. 그 덕분에 도유는 청신이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 원인이 제 질문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청신은 맑게 빛나는 푸른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청신아. 대답해 줘.”

“…안 돼요. 말 안 할 거예요.”

“왜?”

“…….”

청신은 무엇인가를 꾹 참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너는 내가 그날의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

‘바라지 않아요. 저는. 도유 형이 기억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26살이 된 청신도, 15살의 청신도 똑같은 반응이다.

도유는 타인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힘이 제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청신이 원치 않으니 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청신과 함께 살고, 매일이 행복에 충만한 삶이 되며 청신과 보냈던 모든 시간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청신이 그러하듯이.

요즘 청신이 도유가 부족하다며 귀여운 계략을 꾸미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청신에게 표현하는 애정이 부족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는 시간이 다르기에 이 녀석이 애정이 더 고파진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한쪽은 매일매일 포만감을 느끼고, 다른 한쪽은 매일매일 굶주림을 느끼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도유는 이 기회에 청신을 더 깊이 알고, 이전보다 더 큰 애정을 쏟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열다섯의 청신은 입을 열지 않는다.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도유는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미안해. 곤란하게 만들어서.”

“아니-.”

도유는 청신의 입을 검지로 눌렀다. 아니라고, 되레 자기가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입술에 닿은 감촉에 청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청신아,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청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유는 그의 입술을 막았던 손을 들어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 주었다.

“지금의 나는 서른셋이야.”

“-! 서른셋이요?”

“그래. 넌 스물여섯.”

“난, 열다섯인데요. 육체 나이도…. 아. 혹시 내가 미래에 온 거… 예요? 시간 마법은 신의 영역이라지만, 나는 천재니까 가능할 것 같긴 했어요.”

허세라기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에 도유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아니야. 네가 날 붙잡아 두려고 어린애 모습으로 만들려다가 실수해서, 네가 그 모습이 된 거야.”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내가 했다고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황당해하는 얼굴이 너무나 예뻤다. 도유는 눈물에 젖어 있는 뺨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다정한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바보 같지 않아. 귀여운 실수지. 나는 너의 이런 면도 진심으로 사랑하거든.”

“도유 형….”

청신은 감동한 얼굴로 중얼거리더니 생각에 잠긴 눈을 했다. 이윽고 그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상하다 했어요. 눈을 떴더니 흉성의 힘을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절대 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도유 형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고, 이 집에는 내가 건 기억이 없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요. 처음엔 내가 도유 형을 너무 보고 싶어서 미쳐 버린 건가 했는데, 아무리 봐도 환상이 아니어서….”

“너와 내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굉장히 궁금해요.”

희망에 반짝이는 녹색 눈에는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잠깐 장난을 쳐 볼까 고민하던 도유는 생각을 접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넌 지금 내 약혼자야.”

“내, 내가…?!”

“응. 우린 올해 초에 약혼을 했고, 내년 3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지.”

입을 떡 벌리는 모습마저 어여뻤다. 도유는 옅게 웃으며 손으로 청신의 턱을 감싸고 올려 주었다.

“너와는 작년 초에 20년 만에 재회했는데, 나는 너와 적성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전혀 없어.”

“……그건 알고 있었어요.”

“내가 말해 줬다고 했지? 너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청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끄덕이면서도 자신이 이걸 수긍해도 되나 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도유가 왼손 약지에 낀 약혼반지와, 헐렁거리긴 하지만 제 손가락에 똑같은 반지가 있는 걸 보고 스스로 정한 ‘선’을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민 상담을 해도 될까?”

“고민 상담이요?”

“응. 지금의 너에게만 털어놓고 싶은 고민이 있어서.”

기대하면서도 내심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복잡한 눈빛이었지만, 청신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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