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27)화 (155/159)

#4

청신은 제 얼굴을 만지작거리던 도유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쪽, 하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도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청신에게 얌전히 손을 내어 주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난 네가 크게 다친 줄 알고, 얼마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응?”

도유의 손을 만지며 달래 주자,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연구를 했는데 이렇게 된 거야?”

도유는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마법에 대한 지식은 어지간한 마법사들보다 뛰어났다.

그렇기에 타인이 ‘보는’ 외형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육체를, 골격과 키, 나이를 바꾸는 마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알았다.

청신이 마법에 있어 천재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그의 실수도 의아했지만 무엇보다 이 마법을 만든 이유가 궁금해졌다.

“화내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요.”

“위험한 일에 손댄 거면 화낼 거야.”

마법에 의해 사람이 죽는 일을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는 청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도유 형이 바라지 않는 건 절대 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연인을 위해 범법자의 일조차 하지 않게 된 청신의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그제야 도유의 얼굴에 안도한 기색이 떠올랐다.

“제가 연구한 마법은 마법을 건 사람을 어려지게 만드는 마법이에요.”

“이유는.”

“…….”

도유의 손을 잡은 청신의 손에 살며시 힘이 들어간다. 도유는 눈을 가늘게 치뜨며 청신의 얼굴을 보았다. 머뭇거리며 달싹이는 입술, 붉게 물든 뺨, 햇살에 비친 아침 이슬처럼 맑은 눈이 그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설마… 내게 사용하려고?”

“네….”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대답에 도유가 기가 차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청신이 열심히 항변했다.

“제가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도유 형. 형이 요즘에 일이 바빠서 저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고. 그래서 일을 못 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그게 어째서 몸이 어려지는 마법으로 이어지는 걸까.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도유의 얼굴을 본 청신이 변명했다.

“그치만 형의 고운 손과 발목이나 목에 자국을 남기면서 속박해서 감금하는 건 절대 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형을 약으로 재우거나 마법으로 재우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아예 내가 포기하도록 그런 꼴로 만들려고 했다, 이거군.”

“네. 딱 반나절만요.”

“하…. 혹시 일주일간 계속 바쁘고, 식사 중에 전화 받으러 갔던 것도 이거랑 관계 있는 거야?”

“네. 이 마법은 마법도 마법이지만, 재료가 좀 까다로워서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게다가 정제하는 과정도 일부는 제가 할 수 없어서 의뢰도 맡겼고요.”

도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크림수프를 만들어 줬을 때와 똑같이, 함께 있고 싶다는 욕심에서 이런 엉뚱한 일을 일삼는 청신에게 화를 내야 한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인형처럼 예쁘고 귀여운 소년의 얼굴을 한 청신을 보니 화가 푸스스 누그러졌다. 오히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연약함까지 보여서, 지켜 줘야겠다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원래대로 되돌아오기만 해 봐.”

용서해 준 게 아니라 보류했을 뿐이라는 말에 청신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까지 오는 내내 청신이 많이 아파할까 봐,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까 봐 벌벌 떨면서 왔다. 청신이 없는 집을, 시간을, 미래를 떠올리니 정신이 아뜩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도유 형, 많이 걱정했어요?”

청신이 무릎을 세워 일어나 도유를 끌어안았다. 작아진 연인의 품이 마음에 걸렸지만 익숙한 체온과 은은한 향에 도유는 안도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신은 황홀해하며 속삭였다.

“저, 마법이 풀릴 때까지는 집에만 있어야 해요.”

청신의 손이 도유의 뺨을, 턱을 만지작거린다.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손길에 결국 고개를 들어 녹색 눈을 보자, 소년의 얼굴로 그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동안 도유 형도 같이 있어 주면 안 돼요?”

“…나 내일부터 임무 시작인 건 알고 있지?”

성희유가 이미 연차를 써도 된다고 말해 줬지만 괜한 심술을 부렸다. 청신은 사랑스럽게 웃었다.

“대체 인력은 있으니 걱정 마요. 그리고 정 안 될 것 같으면, 제가 도와줄게요.”

어느 쪽으로 보나 청신의 말이 옳았다. 도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신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 데이트해요.”

“…갑자기?”

“네. 이렇게 어리고 예쁜 미소년인 저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경험은 지금뿐이라고요.”

“지금 네 몸의 나이가 몇 살인데.”

“이 모습은 15살이에요.”

“내 나이는 몇 살이지?”

“33살이요.”

“아직 생일 안 지났… 아니, 됐다. 그래, 청신아. 난 미성년자랑 데이트 안 해.”

도유의 단호한 일갈에 청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 26살이에요, 도유 형.”

“지금은 몸의 나이로 따져야지.”

“저 잘할 자신 있- 으븝.”

“안 해.”

역시나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질색한 도유는 아쉬워하는 청신을 무시하고 그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도유 형?”

“보아하니 부작용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돌아올 때까지 누워 있어.”

“그럼 도유 형도 같이 누워요.”

“안 돼.”

“도유 혀엉.”

“…!”

도유의 심장이 덜컹 떨어져 내렸다. 낯선, 아니 낯익긴 하지만 나이대가 달라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청신이 눈물을 글썽이며 옷깃을 잡자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는 결국 죄책감에 굴복했다. 어쩔 수 없이 청신의 옆에 나란히 눕자, 어려진 연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도유의 품에 파고들었다.

청신을 품에 가둔 도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체 쪽에 닿아 오는 감촉을 통해 청신이 상의만 입었을 뿐, 바지도 속옷도 입지 않은 걸 느껴서가 아니었다.

항상 도유보다 체격이 큰 청신이 도유를 품에 가뒀다. 이번에는 그 반대다. 생소한 만큼 신기하고 귀여워 당장 꼭 껴안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에 손끝이 간질거렸다.

“이런 것도 너무 좋네요, 도유 형.”

수줍은 듯 웃으며 뺨을 붉게 물들이는 얼굴과 기쁨으로 반짝이는 녹색 눈에 간질거리던 충동이 잦아들었다. 도유는 청신에게 간지럼을 태우는 대신, 작아진 연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도.”

둘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점점 나른해지는 몸에 눈꺼풀마저 무거워진 도유가 눈을 깜빡이자, 청신이 연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속삭였다.

“한숨 자요, 계속 여기 있을게요.”

다정한 목소리에 도유는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

“으흡, 읏….”

깊이 잠들어 있던 도유의 의식이 떠오르기 시작한 건, 간헐적으로 들리는 흐느껴 우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지만, 울음을 참는 숨소리와 훌쩍이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분간이 되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번쩍 뜬 도유가 본 것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청신의 어린 얼굴이었다. 심지어 청신은 입술을 꾹 깨문 채, 너무 울어 붉어진 눈으로 도유를 보고 있었다.

“청신아, 청신아, 왜 울어? 많이 아파? 응?”

청신이 여전히 열다섯 때의 모습이었기에 뒤늦게 부작용이라도 나타난 건가 싶었던 도유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청신을 살폈다. 청신은 대답하지 않은 채, 오히려 놀란 듯한 오묘한 얼굴로 도유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제발 대답해 줘. 청신아. 제발….”

섹스 중에도 행복하다고 우는 녀석이라 이미 우는 건 자주 봤지만, 이렇게 어린 얼굴로 소리를 참으며 앓듯이 울고 있으니 그저 안타깝고 슬펐다.

도유는 청신의 뺨을 쓸었다. 가슴이 지끈거렸다. 얼마나 운 걸까. 눈가가 살짝 부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 눈물을 닦았는지 뺨이 축축했다. 자세히 보니 눈물에 베갯잇도 젖어 있었다.

“청신아. 내가 뭘 하면 돼? 구급차 부를까? 아니지, 치유용 아티팩트를 가져올게. 잠깐 기-.”

기다리라고 하며 침대에 내려가려던 도유의 손목을, 청신의 손이 잡았다. 도유는 곧바로 다시 청신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진짜….”

잔뜩 잠겨 있는 연인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도유가 귀 기울였다.

“진짜 서도유야…?”

“뭐?”

“너 진짜 도유야? 내가 아는 도유?”

매일 존댓말을 하고, 꼬박꼬박 도유 형이라고 부르던 녀석이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반말에 호칭까지 집어치우자 도유는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애가 마법 때문에 잠깐 돌았나 보네.’라는 생각만 들어 오히려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가 서도유지, 그럼 누가 서도유야.”

“내가 아는 도유는 이렇게 안 컸는데…. 그렇지만 넌 분명히 서도유가 맞아.”

“청신아, 네가 지금 많이 아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두통이 많이 심해? 약 가져다줄까?”

도유가 다정하게 물었지만, 대답 대신 돌아오는 건 청신의 울먹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