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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25)화 (153/159)

#2

녹색 눈이 죄책감에 젖어 탁한 빛으로 물든 동시에, 애정을 갈구하며 희미한 빛을 품고 있는 걸 본 도유는 입술을 오므렸다.

사실 도유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처음 알아차렸을 때 나던 화조차, 저와 같이 있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걸 듣는 순간 씻겨 나가고 말았다.

그런데도 제 속내를 털어놨던 건 그렇게 해야 청신이 두 번 다시 이런 수작을 부리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그런 것뿐이었다. 이렇게 강렬한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도유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청신은 초조해하며 애절하게 도유를 올려다봤다.

이런 모습마저 귀여워 보인다. 낑낑거리는 강아지 같다. 여기서 울먹이기까지 하면 더 귀여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유는 자기가 한 생각에 흠칫했다.

‘…나에게 가학적인 성향이 있었나?’

“도유 형…?”

“큼, 약속해. 두 번 다시 안 하기로.”

“네! 두 번 다시 안 할게요.”

“그럼 용서해 줄게.”

“도유 형…! 용서해 줘서 고마워요.”

기쁘게 웃는 청신의 얼굴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도유는 청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미소 지었다.

“굉장히 기뻐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청신은 연인으로서 완벽한 사람이다. 가끔씩 도유는 청신의 애정에 울컥하기도 했다.

아무리 어렸을 때의 일이 있었다지만, 이렇게까지 과분한 애정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건, 자신 또한 청신을 알고 사랑하기에 제 연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신이라면 도유가 의문을 입에 담는 순간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오히려 자기가 미안해하며 슬퍼할 게 뻔했다.

만일 그와 같은 행동에 도유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해 줄게요.’라며 애교를 부리다가 덮쳤을 터였다.

“좀 더 만져 줘요. 응? 도유 형.”

손을 떼려고 하자, 청신이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유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청신의 머리카락을, 뺨을, 입술을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이러한 손길조차 모두 청신에게 배운 것이었다.

애정을 드러낸 연인의 손길에 청신은 행복하게 웃으며 도유의 허벅지 위에 양손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검은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유독 더 촉감이 좋은 듯하다.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연인의 손길을 받던 청신이 말했다.

“앞으론 제가 더 잘할게요.”

“여기서 어떻게 더 잘하려고?”

“뭐든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청신은 아카데미에서 만났을 때부터 도유에게 잘해 주었다. 그러다 함께 살고, 얼마 전에 약혼을 한 뒤에는 매일이 꿈같이 느껴질 정도로 도유를 아껴 주고 있다.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단 말인가?

도유의 손이 멈칫했다.

‘아. 침대에서는… 좀, 거칠어지지.’

몰아치는 쾌락이 무서워 도유가 울며 그만하라고 하면, 청신은 능청을 떨며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달콤한 말로 도유를 안심시키고 달래며 몸을 탐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건 그렇게 도유의 눈물을 쏙 빼 놓은 주제에, 자기는 ‘아, 행복해요. 너무 행복해요, 형. 사랑해요.’ 하고 속삭이며 눈이 빨갛게 될 때까지 운다는 거였다.

언제 짐승처럼 날카롭고 위협적으로 눈을 빛내며 도유를 탐했냐는 듯이.

순한 사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환하게 웃는 청신의 모습에 화도 못 내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던 도유는 불순한 손길을 느끼고 소리를 냈다.

“씁.”

은근슬쩍 제 허벅지 사이로 파고드는 요망한 손길에 곧장 경고를 날리자 손이 힘없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수프 새로 떠 줄 테니까 먹어.”

“…네.”

이마를 밀어 내자 청신이 시무룩해하며 순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도유는 청신의 자리에 두었던 수프를 버리고 새 접시를 꺼내 새로 떴다. 이번에는 제 몫도 떠서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청신은 다시 수프를 떴다. 도유도 한 입 떠먹어 봤다. 역시. 제대로 끓여졌다.

이런 종류의 요리는 처음 도전해 봤던 터라 내심 긴장했는데 만들어 보니 별일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도유는 묵묵히 수프를 먹었다.

그래도 이걸로는 부족하다. 저녁은 든든하게 차려서 먹여야겠다고 결심하는 도유의 귀에 익숙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청신의 것이었다.

도유는 청신이 전화를 받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지만, 청신은 ‘도유 형과 함께하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로 부드럽게 거절하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아…. 도유 형, 잠시 전화 좀 받아도 될까요?”

핸드폰을 확인한 청신이 난처한 얼굴로 허락을 구했다. 도유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신은 ‘그럼 먹고 있어요.’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주방을 떠났다. 도유는 기묘한 기분에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는 곧 원인을 깨달았다. 거리감 때문이다. 청신이 제게 거리를 두는 행동에 서운함을 느낀 것이었다.

‘바보 같은 생각을.’

스스로를 힐난하며 도유는 숟가락을 다시 들고 수프를 떠먹었다.

아카데미는 진즉 조기 졸업한 청신의 재능과 지식을 원하는 기업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도유에게 ‘결혼 선물로 화수분을 줄 거예요.’라고 수줍게 웃었던 청신은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각 기업과 나라들의 의뢰를 받아 처리하느라 언제나 바빴다.

마법과 관련된 일들은 대개 기밀을 필요로 하는 건 도유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자리를 떴다는 걸 이해했다. 이해만 했다.

‘…아무리 급한 전화라 해도 그동안 내가 곁에 있으면 전화는 안 받았잖아.’

생각을 끊어 내려던 순간 다시금 떠오른 의문에 도유는 겨우 다시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결국 입맛이 떨어진 도유는 제 몫의 그릇을 아예 치워 버렸다. 돌아온 청신이 보면 호들갑을 떨 테고, 자기도 먹지 않겠다고 할 것이 뻔했기에 그냥 증거 인멸을 하는 게 나았다.

“도유 형. 다녀왔어요. 어. 벌써 다 먹었어요?”

“응. 먹을 만큼 먹었어.”

“그래요?”

청신은 도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럼 후식 준비해 줄게요. 앉아요.”

“아니야. 배불러.”

“도유 형…?”

가늘게 떨리는 청신의 음성에, 도유는 제가 너무 바로 쳐 냈다는 걸 인지했다. 그는 청신을 가볍게 껴안아 주고는 어깨를 토닥여 달래 주며 말했다.

“크림을 많이 넣었나 봐. 살짝 느끼해서 다른 걸 더 먹을 생각이 안 들어.”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아프면 나보다 네가 먼저 눈치챘을 거잖아.”

장난스럽게 웃으며 청신의 귓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자 그제야 청신이 안도한 듯 살짝 웃었다.

“맞아요. 그럼 저 식사하는 동안 곁에 있어 주면 안 돼요? 도유 형과 1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요.”

도유는 의심쩍은 눈으로 청신을 보았다.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먼저 식사를 마친 도유가 급한 서류 업무가 있어서 자리를 떠나려 하자, 똑같은 핑계를 댔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의 청신은 식사 뒤 청신이 무척 자연스럽게 도유를 덮치려 들었다. 이번에도 그런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바쁘지도 않은데 청신 혼자 식사하게 둘 생각 따윈 없었던 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청신의 미소에, 어느덧 무겁게 가라앉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홀가분해졌다.

*

무엇이,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도유는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 크림수프를 만들어 먹었던 주말을 결국 하루 종일 청신과 관계를 나누는 것으로 보낸 뒤부터 청신이 유독 바빠졌다는 것?

평일에도 도유와 함께 보내는 사적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올 때마다 청신이 계속 전화를 받았던 것?

아니면 도유가 부족하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 주제에, 이따금 짧은 메시지만 남기고 저녁 늦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걸 추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요즘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냐고, 나 몰래 위험한 일에 손대고 있는 거냐고 끝까지 파 보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조금 다급한 걸음으로 팀장실 앞에 도착한 도유는 평소 같은 긴장감보다는 절박함에 가득 찬 마음을 억누르며 문을 두드렸다. 일정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서 들어오라는 답이 들렸다.

답이 들려오자마자 도유는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이 아니라 소파에 앉은 채 사건 자료들을 펼쳐 놓고 읽고 있던 성희유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도유는 아주 잠깐 멈칫했다.

언제나 도유를 맞이해 주었던 어린아이인 그의 동생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진짜 몸이 보인 까닭도 있었지만, 청신을 죽이기 위해 도유를 이용했을 때가 무심코 떠올라 반사적으로 움츠러들고 말았다.

성희유는 서류에 반쯤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또렷한 주홍색 눈이 도유를 향했다. 그는 도유의 표정을 보고는 손끝으로 맞은편의 자리를 권했다. 도유가 자리에 앉자 성희유가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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