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24)화 (152/159)

#1

외전 5. 사랑받는 것

청신은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영혼조차도 모두 도유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건 적성교에서 도유와 만난 뒤, 20년이란 기나긴 이별의 기간 동안 더 선명해진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도유와 재회하고 약혼까지 한 현재, 더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기에 청신은 언제나 도유에게 애정을 쏟았다.

눈을 뜬 순간부터 줄곧 세심하게 도유의 몸짓, 말 하나하나 눈에 새기고 귀 기울이며 사랑하는 이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하고자 매일매일 노력했다.

그 노력은 항상 도유의 웃음에, ‘청신아’라고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에 보답받으며 청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청신이란 존재도 결국 인간이다. 근래에 도유가 카단의 임무로 다시 바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자연히 사랑과 관심을 구걸하고 싶을 정도로 도유가 부족하게 되었다.

때문에 청신은 부족한 시간을 채우고자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간계를 꾸미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도유 형….”

도유가 만든 크림수프를 한 입 먹은 청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가를 티슈로 막았다.

그 다급한 손길에 도유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청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푸른 눈이 제 안색을 면밀히 살피는 것을 본 청신은 당장 내숭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식탁 위에 도유를 눕힌 채 키스를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전에 한번 그랬다가 밥상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도유에게 혼나고 하루 동안 각방을 써야 했던 경험 탓이었다.

“청신아, 괜찮아? 이번에도 맛없어?”

함께 동거를 시작한 뒤, 둘은 번갈아서 요리를 했다. 특히 요리에 서투른 도유는 한 나라의 요리에 몰두하는 것보다 각 나라의 요리에 주마다 도전하며 자신의 실력에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찾았다. 오늘 만든 크림수프도 그 일환이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요, 조금, 아니… 많이 짜요….”

도유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청신을 위해 만든 크림수프를 한 입 떠먹었다가 ‘읍욱, 쿨럭’ 하고 이상한 기침을 터트렸다.

청신은 민첩하게 티슈와 물컵을 건넸다.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눈짓만 겨우 건넨 도유는 서둘러 입 안의 것을 티슈에 뱉고는 물을 마셨다.

“미안해. 미안해, 청신아. 소금을 뿌렸는데, 내가 덩어리째 넣었나 봐.”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신경 쓰지 않아요.”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도유는 그것마저도 저를 사랑하는 청신이 기꺼이 용서해 줬다고 생각한 기색이 역력했다. 침울한 얼굴로 눈을 내리까는 도유의 모습에 청신은 심장이 아파 왔지만,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속으로 답답함과 죄책감을 삼켜 내야만 했다.

크림수프에 과도하게 들어간 소금은 도유의 실수가 아니었다. 바로 청신이 도유의 관심과 그와 함께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자 하는 마음으로 꾸민 간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청신에게 있어서 도유는 사람은 너무나 유능하고 뛰어난 사람이다. 도유는 매번 요리를 할 때마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혼자 살았을 때는 도대체 왜 안 만들어 먹었나 하고 의아할 정도로, 레시피만 갖춰지면 뭐든 잘 만들었다.

평생을 약속한 상대가 만들어 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청신에게는 도유가 만들어 준 요리보다 애정이 더 고팠다.

그렇기에 청신은, 도유가 잠깐 택배를 받으러 간 사이에 그가 청신 몫으로 내어 준 크림수프에 소금을 부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요리를 실패하게 만들어야 도유가 청신에게 한마디라도 더 건넬 테고, 그것을 시작으로 조금이라도 더 도유에게 애교를 부리고 비비적거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청신아….”

제 실수마저 어여쁘다는 듯 애정을 담뿍 담아 보는 청신의 눈길에 도유는 수줍어하면서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청신은 곁에 선 도유의 허리를 슬쩍 껴안으며 단단하고 평평한 배에 제 뺨을 비비적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 그러니 다음번에는 같이 만들어 봐요. 신경 쓰지 말고요. 응?”

“알았….”

돌연 도유가 말을 멈췄다. 왜 그런가 싶어서 청신이 도유를 올려다보았다. 휙. 청신의 팔에서 몸을 빼낸 도유가 양념들을 모아 놓은 쪽으로 갔다. 그가 소금을 들었다.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살폈다.

그 모습에 청신이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을 때, 도유가 몸을 돌려 청신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청신을 향한 푸른 눈이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이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로 냉랭하게 녹색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입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신은 깨달았다. 제 얕은수가 걸리고 말았다고.

“변명. 30초.”

짧은 명령조에 청신은 불쾌해지기는커녕, 쾌감을 닮은 짜릿함을 느꼈다. 30초 내로 변명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아니 청신에게 죽음에 필적하는 뭔가를 하겠다는 뜻이다. 청신이 항변하려던 때 도유가 말을 이었다.

“내가 납득하지 못할 경우 일주일 각방.”

“…!”

상상만 해도 끔찍한 형벌에 청신은 일단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말만 하는 것보다 도유에게 엉겨 붙어서 애교 부리며 변명을 하는 것이, 사랑하는 연인의 화가 빨리 풀리는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건 도유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도유는 단호하다 못해 싸늘한 눈빛으로 턱짓했다. 거기 앉아 있으라고. 안 앉으면 기회고 뭐고 없다고.

“앉아서 대답해. 15초 지났어. 14, 13….”

“제가요, 도유 형, 근래에 형이랑 자주 붙어 있지 못했고 형이 맨날 바쁘다면서 저 밀어 내고 제가 서운하다고 울어도 저 놔두고 일하러 가니까 너무 슬프고 권태기란 게 이런 건가 싶어서, 어떻게든 형과 같이 붙어 있을 건수를 하나라도 만들고 싶어서 같잖은 수작을 부렸어요. 제발, 사랑해요.”

정해진 시간 내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숨도 못 쉬고 말을 맺은 청신의 얼굴이 당장 숨넘어가는 사람처럼 붉게 물들었다. 도유는 어이없는 사유에 황당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신은 도유가 흔들렸다고 판단하고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도유가 제게 손을 내밀어 주길 기다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처음이에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말끔한 대답. 청신은 도유가 아쉬워하는 걸 보고 눈을 깜빡였다. 왜 저렇게 아쉬워하는 걸까, 하고 고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답을 찾아냈다.

“도유 혀엉….”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도유에게 가려던 청신은, 눈을 치뜨는 연인의 모습에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청신은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는 도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귀여울 수가 있을까? 도유는 필시 이전에 만들었던 실패작들의 원인이 청신의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제 실력이 늘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청신이 만든 것들은 언제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반면, 자신은 이런 걸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도유는 내심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청신으로서는 이런 모습마저 어여쁠 뿐이다.

“죄송해요, 도유 형. 그래도 냄비 안에 있는 건 멀쩡해요. 제 몫에만 소금 뿌린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사랑하는 연인이 만드는 내내 눈을 빛내고 웃으며 만들었던 거다. 아무리 같이 있기 위한 수작이라 하더라도 전부 먹지 못하게 만들 리가 없었다.

그러나 도유는 좀처럼 말이 없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앉았다. 이어지는 침묵. 가만히 앉은 채, 도유의 푸른 눈이 청신의 앞에 놓인 크림수프에 고정된 것을 본 청신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청신은 자신이 과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유가 ‘이 정도’는 귀엽게 넘겨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제 외모와 애교에 약한 도유가 이런 반응인 걸 보니 화가 나도 단단히 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오랜 침묵을 깨고 도유가 입을 열었다.

“네가 먹자마자 난처해하는 것보다, 맛있다거나 이번에는 괜찮다고 말해 주길 바랐어. 네가 웃는 걸 보고 싶었으니까.”

“-!”

솔직하게 털어놓은 속내에 청신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저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하찮은 수작질 때문에, 도유가 상처받고 말았다. 그는 제 목을 죄는 죄책감에 어쩔 줄 몰랐다.

“청신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도유가 앉은 자리의 바로 옆에 무릎을 꿇은 청신을 일으키려는 손을, 그는 부드럽게 감싸 쥐며 막았다.

“무릎까지 꿇을 필요 없어. 어서 일어나!”

“제가 무릎을 꿇는 것이 형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감히 도유 형보다 높은 시선에서 용서를 빌 수 없어요. 부디 용서해 주세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도유 형.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않을게요.”

도유의 시선이 어느덧 무릎 위를 조심스럽게 감싼 청신의 손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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