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휘야-!”
“도유야.”
추격 명령을 마지막으로 소식만 겨우 들었던 연백휘가 도유를 웃으며 맞이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얼굴이다.
도주 시도를 한 죄로 위험한 개인 임무를 받았다 들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너, 내가 얼마나,”
“미안해. 놀라게 해서.”
백휘를 만나자마자 한 방 갈겨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그대로 실행하려던 찰나, 담백한 사과가 들려오자 도유는 움직임을 멈췄다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노려봤다.
“미안한 거 알면서 왜 그랬어, 왜….”
도유보다 더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이 백휘다. 그렇기에 그가 도주한 이유를 알면서도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서러워서 도유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아무리 강인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도 특수부에, 그것도 1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갈 수 없는 곳이 제1팀이다. 나가는 건 죽음을 의미하니까.
백휘가 자신이 속해 있던 마법사 가문의 사람을 모두 죽였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었다는 걸 도유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백휘가 재판에서 말하지 않았던, 가문의 이들을 죽인 이유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그들과 같은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치죄를 받기 위해 특수부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더 서러웠다.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야.”
도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백휘가 말했다. 도유는 표정을 갈무리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힘주어 말했다.
“꼭 그래야 해.”
“응 약속할게.”
망설임 없는 백휘의 답변에 그제야 도유의 표정이 폈다. 백휘는 손을 내리며 팀장실 쪽을 보았다.
“팀장님께선 내일부터 출근하실 거야.”
“…!”
동요하는 도유의 표정에 백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팀장님이 네게 무슨 짓을 했는지 들었어. 예전처럼 대할 수는 없을 것도 알아. 그러니-.”
“팀장님을 찾은 거야?! 무사하셔?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찾았어?!”
멱살을 쥘 기세로 도유가 다급하게 물었다. 성희유가 죽었을까 봐, 그게 마지막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원망도, 화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도유다. 청신도 못 찾았다 하지, 정보부의 윤원도 모른다 하니 답답해서 그간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모른다.
성희유가 결국 마지막에 도유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처럼, 도유도 그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청신 몰래 도유의 병문안을 왔던 송유원과 대화한 뒤 더더욱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송유원은 병문안을 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청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그가 ‘그런’ 마법을 준 이유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성희유와 비슷한 상황에서, 청신으로부터 똑같은 마법을 받은 송유원은 그 마법이 육신은 유지하되 본래의 의식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청신이 마법을 줬던 이유를 도유에게 알려 주었다.
도유는 그녀의 말을 통해서 그것이 청신이 나름대로 행했던 ‘선행’임을 이해하는 동시에, 송유원이 청신을 용서하고, 아직도 아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찾았다’는 건 어폐가 있다고 생각해, 도유야.”
“어?”
“그날 내가 팀장님을 납치하고 가뒀거든.”
“…어?”
이게 무슨 말인가. 도유는 백휘가 하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을 깜빡였다.
“아니다. 이것도 명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아.”
백휘는 고민하는 얼굴로 눈을 내리깔다가 돌연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무실에는 백휘와 도유뿐이었다. 이윽고 백휘의 주변에 옅은 미풍이 불었다. 도유는 저와 백휘의 주변을 감싼 마력으로 이루어진 얇고 투명한 막을 보고 백휘가 마법을 사용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휘야? 갑자기 마법은 왜 쓰는 거야?”
“보안 레벨이 있어서. 그래도 넌 관계자니까 말해 줘도 된다고 들었으니 말해 줄게. 그날 나는 협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팀장님을 ‘납치’한 게 아니라 ‘보호’했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도유가 입을 벌리자 백휘가 말을 이었다.
“내가 도주하기 전에 협회장님께서 내게 개인 임무를 내리셨어. 성희유 팀장님께서 이상 행동을 할 경우에 지정한 곳으로 그를 납치해서 나아질 때까지 보호하고 보살펴 주라고.”
“…그래서….”
청신이 성희유를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아차렸다.
“팀장님께서 반항이 거칠어서 몇 번 죽을 뻔했지만, 그래도 무사하시니까 걱정 마, 도유야. 이제는 헛된 짓은 하지 않으실 거야.”
백휘의 말에서 도유는 묘한 뉘앙스를 알아차렸다. 도유의 푸른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가 말하는 ‘반항’이나, ‘무사’나, ‘헛된 짓’이 어떤 행위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짐작이 되었기에 더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살하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백휘는 도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 괜찮으실 거야. 동생을 보내 준 뒤에는 조금 힘들어하셨지만, 이제는 정신 차리셨어.”
“…누굴 보냈다고?”
백휘는 놀라는 도유에게, 도유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청신이 그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걸 깨닫고는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그날 이후 빠르게 죽어 가기 시작한 성무원의 육신이 결국 완전히 죽고 성희유가 직접 동생의 장례를 치렀다고. 그 뒤에 힘들어했지만 곧 죽음을 인정한 듯이 점차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고는 송유원과 긴 대화를 나눈 뒤 완전히 복귀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했다.
백휘가 먼저 본부에 복귀하기 전, 도유와 만나 사과하고 싶다고도 했다는 말에 도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극히 성희유다웠다. 다만 그를 내일 다시 보게 되면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래, 도유야?”
“내일 뵈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팀장님께서 욕부터 해도 된다고 하셨어. 총부터 쏴도 된다고도 덧붙이셨고.”
기다렸다는 듯이 성희유의 말을 전해 주는 백휘의 담담한 말에, 도유는 제 고민이 싹 사라지는 걸 느끼며 작게 웃음을 터트리곤 대답했다.
“네 말을 들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 알겠다. 고마워, 휘야.”
“뭘.”
더는 전할 말이 없었는지 백휘가 결계를 거뒀다. 도유는 그제야 가방을 내려놓고 반년, 아니 입원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1년이라 해도 되는 시간 동안 비웠던 제 자리에 앉았다.
*
지금까지 도유가 직접 사 본 꽃은 국화꽃밖에 없다.
모두 죽은 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국화꽃이었다. 처음으로 샀던 국화꽃은, 도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세상을 떠난 양부모에게 주기 위해 샀던 거였다. 그 이후부터는 임무 중에 죽은 이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샀다.
국화꽃을 사서 무덤과 그들의 혼이 떠난 곳에 놓아두는 것. 그것이 다였기에, 처음으로 다른 꽃을 사기 위해 꽃집에 방문한 도유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꽃이 있다니. 문가부터 가게 안까지 이어지는 선반 위에 색색의 꽃이 각각 통에 담겨 빈틈없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꽃향기와 함께, 자연에 머무는 마력마저도 이런 공간이 좋은 건지 유난히 다른 곳보다 꽃과 식물 주변에 마력의 밀도가 높아 보였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
안쪽에 있던 꽃집 주인이 도유를 반겼다. 그녀는 빠르게 도유의 모습을 살폈다. 서늘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눈에 띄는 미남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녀는 재빠르게 결론을 냈다. 딱 봐도 이런 곳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꽃을 살펴보는 이유는 너무나 뻔했기에, 그녀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에게 선물하실 걸 찾으시나 봐요.”
“아, 네. 꽃다발을 선물할 겁니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원하시는 꽃이 있으면 말씀해 주셔도 되고, 제가 만들어 드리는 것도 가능하니 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부모님? 연인? 친구?”
그녀의 질문에 서늘하게만 보였던 얼굴이 단번에 색을 바꿨다. 살며시 붉어지는 뺨, 머뭇거리는 입술. 수줍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얼굴색 하나로 사람 인상이 귀엽게 보이다니 마법과 다를 바 없다. 그녀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도유가 괜스레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연인에게 선물할 겁니다. 최대한 예쁘고 크게… 아니, 저 정도 크기로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꽃다발이 너무 커서 청신의 얼굴이 가려지면 안 되니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진 꽃다발을 가리켰다. 도유는 청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의 떨림, 호흡, 표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꽃집 주인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념일이신가요? 그럼 장미를 메인으로 만들어 드릴까 해서요.”
“딱히 기념일은 아닙니다. 그냥, 주고 싶어서 주는 겁니다. 아. 저 꽃은 꼭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도유가 가리킨 꽃은 청신의 녹색 눈을 꼭 닮은 옅은 연둣빛을 가진 꽃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도유를 작은 테이블로 안내해 준 뒤에 꽃다발에 들어갈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 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도유였지만, 적어도 그녀가 선택한 꽃들이 하나같이 예쁘다는 건 알아봤다.
그렇게 완성된 꽃다발을 들고 청신의 집 앞까지 걸어왔을 때 도유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 않았던 짓을 하려니 쑥스러운 것과 별개로 뒤늦게 청신이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청신의 성격상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다고 해도 도유가 주는 것이니 좋아하는 척을 할 걸 알아서 더더욱 걱정되었다. 지금이라도 버리고 올까 하고 고민하며 손에 쥔 꽃다발을 보던 도유는 걱정을 떨쳐 냈다. 싫으면 싫어하는 걸 알게 되는 거니 그것 나름대로 수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결심을 굳힌 도유는 비장한 얼굴로 현관문에 카드 키를 가져다 댔다.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고리를 잡은 채 짧은 심호흡을 하고 문을 완전히 연 도유는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녀오셨어요, 도유 형?”
“너, 너, 너!”
“네, 도유 형.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아니 그건 나도 그런데. 도유는 무심코 대답할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 탁 문을 닫았다.
청신이 예쁘게 생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도유가 등 뒤에 숨긴 것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