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8)화 (146/159)

#2

은하는 청신의 기분을 이해했으나 그게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폐쇄적으로 인간관계를 좁히고, 종내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 딱 한 사람만 두는 관계의 끝이 안 좋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은하는 청신이 ‘사랑’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대상이 누가 되든 간에 집착이라는 형태로 좋지 않게 끝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사랑받는 남자, 커뮤니케이션도 다르다>, <인기남이 사랑받는 이유> 등, 청신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줄 책들을 은근슬쩍 청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 두었다.

청신도 그것들을 읽고 생각을 바꿨는지, 20살에는 이카루스 아카데미라는 마법 전문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청신은 본인이 예상한 대로 흔히 말하는 스타, 인기인으로 자리 잡았다.

“귀찮네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고,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붙여 보려는 학생들과 달라붙는 이들을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떼어 놓은 청신이 차에 오르자마자 중얼거렸다.

올해 청신의 나이가 25살이다. 7년제 아카데미는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2년이 남았고, 청신의 성적으로는 지금 당장 조기 졸업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이제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겠어요. 그냥 졸업해 버릴래요.”

“이후 계획이 따로 있으십니까?”

현재 청신은 외주를 받아서 돈을 벌어들였지만, 청신이 자신의 기업이나 연구소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굉장히 많았다.

매년 마법을 사용하는 분야나 연예계에서 러브 콜이 들어왔다. 그중에서는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대기업도 제법 있었다.

송유원이 협회장으로 있는 카단에서도 꾸준히 청신에게 연락을 넣었지만, 청신은 카단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가 조기 졸업을 하려는 이유가 정착을 위한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은하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아뇨, 이제 슬슬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려고요.”

25살이 되어서야 흉성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청신은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은하는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청신의 표정을 통해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순간이 곧 도래할 것임을 알아차렸다.

“인적 사항을 알려 주신다면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다음 날, 어제처럼 아카데미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청신을 데리러 간 은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앞 좌석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 버리는 청신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처, 청신 님?! 왜 그러십니까?!”

“아, 아, 어떡해. 어떡해. 너무 예뻐. 아, 정말, 아아….”

미친 사람처럼 예쁘다, 잘생겼다,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럽게 컸냐, 운명인가 보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당장 납치해 버리고 싶다… 등의 말을 중얼거리던 청신이 앞 좌석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었다.

이마가 붉었고 눈가는 눈물에 살며시 젖어 있었다. 청신의 모습이 걱정되어 출발도 못 하고 있던 은하가 말을 붙이려고 했을 때, 청신이 진지하다 못해 하나에 탐닉하는 광인처럼 맑은 눈을 번뜩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역시 도유 형과 저는 천생연분이에요.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일까요? 아, 어떡해. 찌질하고 멋대가리도 없는 그런 갈색 체크 남방에, 얼굴을 절반 가까이 가리는 그런 답답한 네모난 뿔테 안경을 썼는데도 저렇게 잘생기고 예쁠 수가 있지? 아니, 사람이긴 한 걸까요? 어떻게 저렇게 잘생기고 사랑스럽게 클 수가 있지? 동면하는 곰처럼 웅크리고 다니는 모습도, 사람 없다고 냉큼 사탕 까먹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 아, 어떡해. 20년 만에 만났는데 20년 전도 사랑스러웠지만, 그때보다 더 사랑스러워지다니!”

“…….”

청신이 20년 만에 이카루스 아카데미에서 서도유와 재회한, 아니 서도유를 발견한 그날, 처음으로 은하는 청신이 미친놈이라던 주영연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청신의 기행은, 그가 도유에게 졸업 작품을 핑계로 직접 접근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은하 형, 개인 금고가 하나 필요해요.”

도유를 아카데미에서 발견한 날부터 그를 스토킹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꾼 청신이 진지하게 하는 말에, 은하는 업무적인 이유 때문인가 싶어서 물었다.

“금품이나 아티팩트를 보관하실 용도입니까?”

“아뇨, 이걸 보관하려고요.”

바스락. 청신이 내민 것은 사탕 껍질이었다. 은하는 제 눈에 암만 봐도 쓰레기 같은 사탕 껍질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석을 바라보듯 황홀하게 보는 청신을 멍하니 보았다.

“도유 형이 사탕 까먹고 버린 사탕 껍질이에요. 귀엽죠?”

“…….”

“단거 좋아하는 건 여전한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디저트 만드는 연습 열심히 했는데. 어서 만들어 주고 싶네요. 제가 만들어 준 걸 맛있게 먹는 도유 형을 제가 먹는 거예요. 아! 도유 형은 7학년이니까 아카데미 선배네요? 도유 선배라니, 선후배 플레이도 가능하겠어요!”

“…….”

은하는 백번을 생각해 봐도 남이 버린 쓰레기까지 주워다 수집하는 건 좀 과도한 미친 짓 같아서, 조심스럽게 청신을 설득했다. 다행히 청신은 아쉬워하면서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 형 말이 맞네요. 도유 형이 버린 것들은 수집하지 않을게요.”

미인의 얼굴이 슬픔과 아쉬움으로 물든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분실물이나 도유가 가진 물건들과 똑같은 것을 구해 보겠다 하려던 찰나, 청신이 갑자기 눈을 치뜨며 말했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요, 제가 줍는 시점에서 이미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지 않을까요? 쓰레기의 개념은 더는 사용할 수 없는, 필요가 없는 것을 버린 것이잖아요. 하지만 도유 형이 버린 건 제게는 필요한 거니까-.”

“궤변 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쓰레기 맞습니다.”

은하는 웃는 얼굴로 귀를 닫고, 처음으로 청신의 말을 끊었다.

청신은 결국 도유가 버린 쓰레기까지 손대는 짓은 하지 않고, 아카데미 내에서만 스토킹을 했다. 일단은 학생이면 수업을 듣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은하는 차마 그 말까진 하지 못했다.

“아카데미 녀석들이 감히 도유 형을 너드라고 불러요. 그냥 너드도 아니에요. 망상증 너드라고 한다고요. 졸업 작품을 같이 해 줄 사람이 없어서 침울해하는 모습도 납치해서 물고 빨아 주고 싶게 귀여운 도유 형에게 감히…!”

손수건까지 물어뜯을 기세로 씩씩거리며 차에 올라탄 청신이 돌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은하는 놀라지 않았다.

청신이 무척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펜을 들고 열심히 뭔가를 적기 시작한 모습을 보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도유를 발견한 뒤로 청신이 매일같이 도유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걸 눈치챘고, 그 모습이 좀 진짜, 미친놈같이 보여서 좀 두렵기도 했지만 청신은 도유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이전과 똑같았기에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 청신이 오래전부터 사랑받고자 노력했던 사람이 도유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그 둘이 잘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은하의 바람대로, 아카데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어 나간 청신과 도유는 연인이 되었고, 약혼을 했으며, 이윽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은하는 이 과정에서 청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직접 지시한 일도 있었지만 눈치로 짐작한 것도 있었고, 그런 유의 일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인 것도 알았다. 그러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자신의 복수를 이루어 준 청신이 오래도록 갈망했던 사랑을 쟁취했다는 사실이 제 일처럼 기뻤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은하는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청신 님, 진심이십니까?”

부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라며, 잘못 듣지 않았다면 농담이라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며 되물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단호했다.

[“네, 오늘 제 부군이 많이 아파서요.”]

지난번에는 달링이라고 부르더니 이번에는 부군 컨셉인가 보다, 하고 무심코 생각하며 은하는 죽은 눈으로 일정표를 확인했다.

앞으로 세 시간 뒤, 청신에게 기술 협력과 비즈니스적인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 모 기업의 CEO가 직접 찾아올 예정이었다.

청신에게 의뢰를 넣는 이들은 많았지만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작자라 이 CEO와의 미팅을 팽하면 어떤 보복을 가할지 알 수 없었다.

청신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겠지만, 카단의 해외 협력 기업 중 하나기에 도유가 소속된 카단에는 영향이 있을 수도 있었다.

“잠시라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세 달 전부터 잡혔던 미팅입니다. 카단에도 영향이 갈지 모릅니다.”

[“음, 1분이라면 내어 줄 수 있어요.”]

“청신 님….”

그 1분이 미팅을 위한 1분이 아니라, 1분 내로 CEO를 암살하거나 재우거나 기억을 조작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임을 귀신같이 알아차린 은하는 빠르게 다른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메시지를 넣었다.

[“어떻게 할까요?”]

“알겠습니다. 1시간 뒤에 상대측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그때까지 생각이 바뀌시면 연락 꼭 부탁드립니다.”

은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신이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은하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가 통화 중에 급하게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에게서 답장이 왔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서도유-]

그리고 20분 뒤, 청신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기분이 좋지 않은 듯이 툴툴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취소하겠다던 미팅에 참여하겠다는 말이었다.

이후로도 그런 일이 반복되었지만, 청신은 은하가 도유에게 일러바치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혼내는 도유의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고, 그래서 혼나는 것도 나름 기분 좋다며 웃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쉬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청신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을 줄곧 지켰던 은하는 단번에 청신의 말이, 그 밝은 웃음이 꾸며진 게 아닌 진심임을 알았다.

아카데미에서 도유와 만난 뒤부터 청신은 처음으로 삶의 즐거움을 찾은 사람처럼 언제나 행복해했다.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고, 도유의 이야기를 할 때는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밝아 보였다.

그렇기에 은하는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었다.

“청신 님께서 행복해지셔서, 저도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3 완결.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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