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5)화 (143/159)

#2

대신에 성희유는 성심성의껏 도유를 가르치고, 해 달라는 건 가급적 다 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단 하나만 빼고.

“으흑, 흐어어엉-!”

울음을 터트리며 도유가 이불에 고개를 푹 박는다. 성희유는 난처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짜냈다.

“도유 씨.”

“싫어, 싫어요-!”

“하지만 씻어야 해요. 당신이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면, 청결을 최우선으로 둬야죠.”

“싫어, 희유 형아. 안 할래요. 안 씻을래요.”

“도유 씨, 희유 형아가 아니라 성희유 팀장님이라고 부르라니까요.”

투다다다! 대답도 없이 도유가 울면서 방을 뛰쳐나간다. 성희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도유가 이 집에 온 지 한 달째. 그 한 달 동안, 도유는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세안은 겁먹은 기색 없이 잘하는 도유다. 그러나 머리에 물을 끼얹으려 하거나, 욕조로 들어가게 하면 들어가기 전부터 울더니 욕조 안에서는 경기를 일으켰다.

보고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성희유가 짐작했던 것보다 도유의 반응이 굉장히, 더 격했다.

그래서 성희유는 처음 한 달은 인내를 끌어모아 목욕 대신 물수건으로 도유의 몸을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 머리를 감을 때는 물을 끼얹지 않아도 되는 샴푸로 머리를 감겨 줬다.

하지만 물수건으로 아무리 몸을 빡빡 닦아 준다 한들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존재했다.

게다가 성희유는 더러운 걸 굉장히 싫어했다. 무원이 씻기 싫다고 울었을 때도 동요하지 않고 동생을 껴안고서 욕조 안에 들어가 씻겼던 성희유가 도유라고 봐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도유를 씻겨야만 했다.

“도유 씨.”

“으엉!”

도유의 몸에 연결해 놓은 마법 실로 아주 손쉽게 도유를 원위치로 다시 데려온 성희유가 상냥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욕조에 들어가는 게 무서운 거죠?”

“으흑, 네….”

“그럼 들어가지 말아요.”

“정말요…?”

“네. 들어가지 않고도 씻는 방법은 존재하잖아요.”

“무, 물을 끼얹는 것도 무섭단 말이에요….”

침울한 토로에 성희유는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끼얹는 게 아니라 휘감는 거니까요.”

“네?”

“음, 간단하게 말해서 공중 세탁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희유 형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해하지 못한 도유가 되묻자 성희유는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마법을 이용해 도유를 허공에 띄운 뒤, 물 마법으로 도유의 몸을 휘감고 헹구는 방식으로 씻겨 버렸다.

다른 마법사는 엄두도 못 낼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하고, 마력 소모가 많아 고난이도에 해당하는 마법이었지만 도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미친 세탁, 아니 씻김의 방식에 울면서 내려 달라고 애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성희유는 냉정하게 끝까지 도유를 씻겼고, 그 씻기는 횟수가 반복되었다. 도유는 씻길 때마다 엉엉 울며 용서를 빌었지만 한두 번이 지나자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나중에는 웃으면서 즐겼다. 종내에는 여유롭게 질문까지 던졌다.

“희유 형아, 이렇게 섬세하게 물을 다루려면 마법식을 어떻게 써야 해요?”

그에 성희유는 지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괜찮아진 것 같으니, 혼자 씻으면 안 될까요? 도유 씨.”

그러나 여전히 도유는 욕조에 들어가서 씻는 것은 두려워했다.

성희유는 방법을 바꿔서 무원에게 해 주었듯이 도유와 함께 욕조로 들어가 주었다. 다행히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이렇게 하면 씻을 때도, 머리를 감기 위해 물을 끼얹을 때도 도유는 떨지 않았다.

특수부 제1팀의 팀장으로 근무하며 많은 일들을 겪었던 성희유는, 적성교에 납치되었던 도유가 그곳에서 욕조와 물과 관련되어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기억이 없음에도 그게 무의식에 남아 자꾸만 이 애를 갉아먹는 것이 조금 안타까워서, 성희유는 도유에게 마냥 모질게 대할 수가 없어졌다.

“희유 형아, 너무 좋아요.”

“도유 씨, 팀장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니까요.”

“네, 팀장님. 헤헤.”

도유는 성희유를 굉장히 따르고 좋아했다. 도유를 돌보기 시작한 뒤 성희유가 카단에 출근하는 대신 재택근무를 하는 일이 잦았기에 서로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많다 보니 더욱 그런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도유의 입장에서는 제게 이렇게 친절하고 관심을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성희유가 처음이었다. 단순히 성인이지만 저보다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일 팀원이 방문한다고요?”

“네. 앞으로 도유 씨와 함께 일하게 될 연백휘라는 이름의 마법사예요.”

“우아…!”

“도유 씨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니까, 무섭지 않을 거예요.”

“이제 어른이 있어도 돼요.”

비장한 목소리로 내뱉은 도유의 말에 성희유가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고 도유를 보았다. 도유는 성희유의 주홍색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언제 비장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성희유의 손을 꼭 잡았다.

“팀장님이 곁에 있으니까 이제 어른이 있어도 무섭지 않아요.”

“도유 씨, 잊어버린 것 같아서 해 주는 말이지만 저도 엄연한 성인인데요.”

“알아요. 하지만 팀장님이 절 위해서 제 앞에서 지금처럼 있어 주는 걸 아니까, 지금은 그냥 좋아요.”

거짓 없는 말에 성희유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도유가 성희유와 함께 지낸 지 오늘로 두 달째. 이제 송유원이 이 작은 어린아이에게까지 오는 임무를 막는 것에도 한계가 생겼을 터였다.

성희유는 카단 내와 마법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마법 관련 범죄들에 대한 정보들을 줄줄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유가, 특별한 힘과 ‘눈’을 지닌 이 아이가 첫 임무로 맡게 될 일이 특수부 제1팀이 맡는 일 중에서도 그리 좋지 않은 일이 되리란 것도 예감했다.

어쩌면 이 애는 그 첫 임무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의 밑에 들어왔던 신입들이 그러했듯이.

아니, 임무 때문이 아니더라도 본격적으로 카단에 출근을 시작하면 이 웃음은 사라지고 말 것임을 알았다.

어린애라고 하나 결과적으로 패륜을 저지른 아이고, 몇몇 임원들이 제 이득을 위해 도유와 관련된 좋지 않은 소문을 인위적으로 퍼트렸기에 사내에서 도유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다.

“도유 씨.”

“네?”

“타인에게 되도록 마음을 주지 마세요. 제게도 마찬가지고요.”

“어….”

“가능하다면 타인에게 무관심해지세요. 어떤 말을 듣게 된다 한들, 당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되든 간에 속에 품지 말고, 되새기지 말고 흘려보내세요. 그리고 잊어버리세요.”

그래야 산다. 살 수 있다. 성희유는 처음으로 도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제 동생 무원에게 그러했듯이.

그 손길을 받으며 가만히 시선을 맞추는 도유에게 성희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부탁이에요, 도유 씨. 어떤 일을 겪게 되어도, 부디 무너지지 말아 주세요.”

제일 쉬운 말은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성희유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두 달 동안 지켜본 서도유라는 아이는 태생적으로 외로움이 많은 아이였다. 사랑받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면서도 결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대방의 눈에 조금이라도 들고 싶어서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주제에 힘든 걸 티 내기는커녕 오히려 숨기고 언제나 웃어 보였다.

밝은 얼굴, 밝은 웃음. 사랑이 고픈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 얼마나 외로움을 탔는지는 그간 지켜봐 왔던 성희유가 제일 잘 알기에, 그는 그저 만약을 가정해 말해 줄 뿐이었다.

성희유의 말이 끝났지만 도유는 가만히 주홍색 눈을 볼 뿐,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는 말을 곱씹으며 고민하는 듯했다.

딱히 도유의 대답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고, 그저 언젠가 그가 염려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잠시라도 제 말을 떠올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이기에 성희유는 그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도유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뭐든 답할게요.”

“만약에요, 제가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요. 제가 무너질 것 같아도 계속 믿고 싶은, 곁에 있거나 두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럴 때는 어떡해요?”

성희유는 도유가 제 말뜻을 이해해 주었음을 깨닫고, 아이의 뺨을 간질이는 연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주었다.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는….”

쿵!

고막을 파고드는 육중한 소리를 듣는 순간, 성희유는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날카로운 두통에 무심코 이마를 짚으려다가 양손이 자유롭지 않다는 걸 깨닫고 제 손을 보았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 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해당하는 마법사에게 채우는 마력 제어구다.

그는 잠시 멍하니 제 손목에 채워진 것을 내려다봤다. 이걸 왜 차고 있는 걸까? 방금 전까지 도유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에 생각이 미쳐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낯설었으나 슬슬 눈에 익기 시작한 무채색 천장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억이 떠올랐다.

성희유는 도유를 이용해 청신을 죽이려다가 실패했고, 자살하려다가 그마저도 실패했다. 말 그대로 신뢰하던 연백휘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제 행동의 결과가 당신의 죽음이라면 저는 행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고, 이후 성희유는 어디인지도 모를 산장에 감금당했다. 그게 벌써 5개월째였다.

성희유는 그사이 3번의 시도를 했고, 백휘는 그때마다 성희유에게 족쇄와 수갑을 채우거나 가장 심할 때는 구속복을 입히기까지 했다.

그는 무심코 제 옆을 보았다. 텅 빈 자리. 넋을 놓았던 성희유의 주홍색 눈이 일순 크게 흔들렸다. 백휘가 성희유의 곁에 데려다 놓았던 동생이, 성무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불안으로 요동치고, 이윽고 비명을 지르며 동생을 찾으려 할 때 기억이 떠올랐다.

“아아….”

이 주일 전, 무원이 완전히 죽었다는 사실을 성희유는 뒤늦게 떠올려 냈다.

제 손으로 동생의 몸을 마지막으로 씻겨 주었다.

무원이 가장 좋아했던 옷을 입혀 주었고, 자주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손에 쥐여 주고 관을 닫았다. 직접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화장했던 것도 떠올랐다. 그리고 이후, 넋을 놓은 채 지냈던 것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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