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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만나다
카단의 특수부 제1팀 팀장 성희유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오랫동안 카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흉악한 범죄자가 되어 인형술사의 이명을 얻기 전후로 소속된 부서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어지간한 종류의 임무는 전부 받아 봤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런 임무는 처음이었다.
“아이를 돌보라고요?”
담담한 어조였지만 성희유의 주홍색 눈에 일순 스쳐 지나간 서늘한 기색을 고스란히 본 마법사 하나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유원은 느긋한 손길로 제 몫의 차를 마시며 쿠키까지 씹어 먹은 후, 대답했다.
“네. 아이의 신상은 거기 나온 대로예요, 성희유 팀장.”
툭. 하고 성희유는 송유원이 준 신상 명세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서류에는 한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어린아이가 입기에는 품이 큰 죄수복에 거의 파묻힌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아이의 모습.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은 시체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성희유는 심드렁한 얼굴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답지 않게 슬픔과 절망으로 내려앉은 눈이 이전엔 어떤 희망을 품고 반짝였는지, 성희유는 알지 못했다. 알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아이를 지금 이곳에서 보기 전에 직접 본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
적성교에서 구출됐던 ‘유일한’ 생존자.
다만, 말 그대로 스치듯 보았을 뿐이었다. 성희유는 적성교를 궤멸시키는 임무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때만은 선봉이 아니라 후방에서 지원을 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본 서도유는 정신을 잃은 채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뿐이었다. 그 뒤에는 보지도 못했다. 적성교 임무가 끝나자마자 그는 곧바로 다른 임무에 투입되었으니까.
“이 아이를 제 팀에 넣을 생각인가 보군요. ‘차기 협회장’님.”
“그 방법이 제일 나을 것 같아서요.”
“제일 낫다고요.”
성희유는 자조하듯이 웃었다. 어린아이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은, 깊은 웃음이었다.
그는 서도유의 ‘정보’를 알았다.
적성교에서 유일한 생존자로서 구출된 서도유는 한 달간 치료와 취조를 받다가 다시 원래 있던 고아원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반년도 넘기지 못한 그 짧은 시간, 카단에 다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
누군가 본다면 기구한 운명이라 할지도 모른다. 성희유가 보기에도 그러했다.
이대로 사형당한다고 해도 편히 떠나지 못할 아이를 당장 살리기 위해 특수부 제1팀에, 살아 있는 지옥에 넣는 게 과연 옳은 일인 걸까?
성희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 본인이 아니기에 알 수 없었다. 사람마다 짊어질 수 있는 삶의 무게와 굴곡이 다르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세운 기준점에 서도유를 멋대로 끼워 넣을 수 없었다.
대신, 성희유는 한 가지 확신했다. 서도유를 성희유가 돌보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이다.
“거절하고 싶군요.”
성희유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바빴다. 더럽게 바빴다. 특수부 제1팀의 팀장은 임무도, 현장도 뛰어야 했으며 서류 업무는 물론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의가 쓸데없이 많았다.
업무적인 면이 아니어도, 젊은 임원들이 외형적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성희유를 얕잡아 보거나, 죽이고 싶은 눈길을 보내기도 하여 뒤에서 몰래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들었다. 요약하자면 하루가 부족할 만큼 바빴다.
“최근에 제 소속 팀원 두 명이 임무 중에 사망해서 제 일이 많이 바빠진 건, 차기 협회장님께서도 아시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아이를 맡길 사람이 성희유 팀장밖에 없답니다. 그 아이가 성인을 무서워해서.”
“…….”
송유원의 말에 성희유는 어째서 서도유가 그렇게 쉽게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는지 알아차렸다.
적성교 일이 있은 후 서도유가 퇴원을 했을 당시의 진단 기록에도 그와 비슷한 정황이 적혀 있었다.
서도유는 카단에서 ‘범법자’라 명명한 마법사의 마법을 사용한 것과 관련되어 취조를 당했을 때 성인들에게, 카단의 상층부에 숨은 벌레들에게 겁박당한 게 분명했다.
‘예상은 했지만.’
애초에 12살짜리에게 기회도 없이 사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성희유는 이미 상부의 벌레들이 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뒷배도, 돈도 무엇도 없는 고아 한 명을 희생시켰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송유원이 이렇게 성희유를 따로 불러 내 그 애를 특수부 제1팀에 넣으려고 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했다. 또한 그녀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실제로도 살인자 집단 취급을 받는 특수부 제1팀에 소속된다는 것은 아이의 인생을 나락 끝까지 빠트리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서 숨 붙이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나락에서 기어올라 갈 힘이라도 얻을 수 있다.
성희유가 아는 송유원은 실보다도 얇고 가는 희망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기대하는 것은 언제 끊길지도 모르는 그 가느다란 희망이다.
잠시 시선을 내리깐 성희유의 주홍색 눈이 제 손바닥을 향한다. 손등 위로 떨어지는 시선. 작은 어린아이의, 성장하지 못한 채 영영 과거에 뿌리를 내린 동생의 육신을 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성희유는 말했다.
“저는 애를 볼 줄 몰라요. 음, 정정하죠. 기억이 안 나요.”
성무원. 지금 성희유가 빌린 몸의 진짜 주인인 그의 동생은, 아기 때부터 성희유가 키웠지만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성희유는 이제 더는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사고를 가장해서 무원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과 그 친족들의 아이들까지 모조리 한 건물에 몰아넣어 죽여 버렸을 때만 기억날 뿐이다.
송유원은 한동안 말없이 성희유를 보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동료였던 그녀가 지금 어떤 얼굴로, 어떤 눈빛으로 저를 보고 있을지 짐작했기에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다.
“그 아이에게는 어른의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거니, 잘 판단하리라 믿어요. 바로 특수부의 임무에 투입되는 건 제가 최대한 막아 보죠. 당분간 서도유는 성희유 팀장, 당신에게 맡길게요.”
“…알겠습니다.”
성희유는 제게 거부권이 없다는 걸 알기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송유원은 신상 명세 서류에는 적혀 있지 않은 도유의 정보들, 가령 심리 상태나, 아이가 지닌 아직은 정체를 밝히지 못한 이상한 힘에 대해 이야기해 준 뒤 팀장실을 떠났다.
일주일 뒤, 서도유의 사형이 집행되던 날, 성희유는 사형장에 난입하여 겁에 질려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있던 아이의 손을 잡고 제집으로 왔다.
서도유는 성희유의 집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사형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그래서 성희유는 도유를 마법으로 재워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형 집행일이 가까워질수록 정신적인 압박에 의한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도유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상 몸을 혹사했다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성희유가 성가셔진다. 그래서 마법으로 재워 버린 거였다.
도유는 그렇게 잠들고 꼬박 이 주일간 앓았다. 성희유는 그런 도유의 옆에서 업무를 보며 아이의 간호를 했다.
“으후윽. 흐으윽….”
간간이 업무에 집중하려고 하면, 아파서 의식이 없을 텐데도 흐느껴 울며 신음하는 도유의 소리가 들려왔다.
성희유는 그때마다 업무를 멈추고 도유를 들여다보며 식은땀을 닦아 주고, 무언가를 찾는 듯 손을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손을 잡아 주면 도유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안도한 얼굴로 깊이 잠들었다. 솔직히 귀찮았다. 성가시기도 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웃는 옅은 웃음을 발견한 순간 그런 마음은 눈 녹듯 누그러들고 말았다.
“누구, 야…?”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눈을 뜬 도유는 성희유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성희유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사형장에 발을 디딘 도유의 모습이 어땠는지 제가 제일 잘 알기에 이해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앞으로 카단의 특수부 제1팀에 근무하시게 될 서도유 씨의 상사인 성희유 팀장입니다. ‘성희유 팀장님’이나, ‘팀장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도유 씨.”
도유는 처음엔 어리둥절해했다. 아무리 봐도 자기보다 키가 조금 더 작은 어린아이가 상사라니, 바로 받아들이지 못할 만도 했다.
성희유는 그런 도유에게 제가 실제로는 나이가 꽤 있다는 것과, 마법사이며, 당분간 당신이 지내게 된 이 집의 주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것들을 멍하니 듣던 도유가 한 말은, 성희유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희유 형아…? 나랑 이름이 비슷해요.”
“…….”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도유는 푸른 눈을 반짝이면서까지 기뻐했다. 성희유는 아주 오랜만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 본 ‘희유 형아’라는 호칭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날을 시작으로 성희유는 본격적으로 도유를 돌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돌본다’는 것은 의식주는 물론이고, 앞으로 도유가 특수부 제1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들을 가르치는 것도 포함되었다.
도유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거나 쓸데없이 잔뜩 긴장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만 지나면 스스로 납득을 한 건지, 아니면 외면을 선택한 건지 그런 기색이 전부 사라지고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희유 형아, 이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도유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성희유가 마법의 이론을 설명해 주고, 마법학 개론 등 각 분야의 마법과 관련된 내용들을 가르쳐 주자 홀로 성희유의 서재에 드나들면서 독학까지 해내기 시작했다.
“도유 씨, 형아라고 부르지 말고 팀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헤헤. 가르쳐 주세요.”
몇 번이나 팀장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는데도 실수인 척 희유 형아, 하고 부르는 도유의 심리를 성희유는 알고 있었다.
성희유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불안해하고, 쫓기듯 공부하고, 코피를 쏟아 가며 밤늦게까지 마법 공부를 하고, 지식을 익히는 이유도 알았다.
서도유는, 이 12살짜리 어린애는 성희유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라는 것을.
마치 자기가 이곳을 나가면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엔 그런 도유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성희유는 도유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했다.
특수부 제1팀. 본격적으로 임무에 나가고, 인간의 밑바닥을 목격하게 되고, 생사를 숱하게 넘나들며 지금의 성희유가 건넨 위로가 결국 미래의 도유에게는 기만과 위선으로 다가갈 것을 알기에 그냥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