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3)화 (141/159)

#13

“저거 없애 줄 수 있어?”

“해, 해 볼게.”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도유는 손을 모아 쥐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청신은 도유의 푸른 눈에 빛이 일렁이는 걸 보았다. 그 일렁임이 커질수록 도유는 끙끙하는 소리를 냈다.

휘이익!

바람 소리와 함께 한 번 크게 일렁이던 불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바닥 곳곳에 쓰러진 신도들의 몸을 태우는 불꽃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령이, 화가 많이 나서…. 저 사람들은 안 살려 준대….”

도유는 슬픈 얼굴을 했다. 청신은 그게 보기 싫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표정을 지워 내고자 손가락을 튕겼다. 이윽고 그의 손에 곱게 접힌 종이가 나타났다.

청신의 손과 비슷한 크기의 종이다. 도유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이건-.”

쿠구궁!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도유와 청신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을 향했다.

적성교의 입구 쪽이다. 거리가 좀 있었지만, 청신은 방금 전 공기를 훑은 진동에서 마법의 흔적을 느꼈다. 그리고 그게 청현의 것이라는 것도 느꼈다.

아. 엄마가 왔구나.

청현의 마력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마력이다. 청신은 송유원의 힘을 느꼈다. 저곳에 있다. 저기에서 청현과 송유원이 싸우고 있다. 청신은 빠르게 상황을 읽었다.

“저쪽은 신경 쓰지 마.”

“그, 그래도 엄청난 소리가 났어. 청신아, 도망가자. 빨리. 밖에 나가서 도와 달라고 해야 해.”

청신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데리러 왔으니까.”

“어, 어? 데리러 와?”

“응. 그보다, 이거 줄게.”

갑자기? 동그랗게 뜬 도유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청신은 말을 이었다.

“대신에 약속해. 내가 널 데리러 갈 때까지 날 기다려 줘.”

“…날, 데리러 온다니, 무슨 말이야?”

청신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도 원래 이러려고 이것을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흉성의 인도자 역할을 청현으로부터 완전히 빼앗았다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오판이었으며, 이대로 적성교의 교주인 자신과 도유가 엮이면 그에게 어떤 낙인이 찍힐지 알았다.

그렇기에 원래 하려고 했던, 자신의 곁에 있어 달란 말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내가 흉성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넌 불행하고, 비참하고, 끔찍하게 죽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줘.”

“어, 왜…?”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도유가 놀란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신은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송유원의 마력을 느끼고 도유의 손을 끌어 와 그 위에 제 손을 겹쳤다.

맞닿은 손바닥 사이로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과 체온을 음미하듯 잠시 눈을 깜빡이며 침묵을 지키던 청신은 이윽고 손을 뗐다.

“이걸 사용하는 건 간단해. 속으로 소원을 빌면서 반으로 찢어. 하지만 명심해. 이 종이를 찢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죽음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소원을 빌 때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비는 게 제일 좋아.”

처음에는 흉성의 파편을 담은 나무 상자에 마법을 새겨 주려고 했지만, 도유가 나무 상자는 물론 작은 상자만 봐도 두려워하던 것을 보았기에 형태를 이렇게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도유는 제 손에 있는 것과 청신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멍하니 물었다.

“나, 사, 사랑해?”

“응. 사랑해.”

도유가 보이지 않았던 시간 동안 청신은 도유가 말했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들이 제게 해당된다는 걸 확신했다.

지난번에 도유에게 직접적으로 내가 널 사랑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도유는 그게 단순히 청신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게 답이 아니란 걸 알았다.

“난 너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네가 말했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걸 확신해.”

“우, 흡…!”

아. 또 운다. 청신은 도유가 우는 걸 보며 생각했다. 이게 ‘난처하다’는 거겠지.

도유가 울 때는 어떻게 해야 웃게 할 수 있을지, 울음을 멈추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차라리 도유가 울기 전에 청신이 먼저 울어 버리면 안 울까?

고민하던 청신은 도유가 갑자기 저를 와락 끌어안자 생각을 멈췄다. 그러다 문득 본 도유의 목과, 가슴부터 갈라졌던 피부가 흐릿한 자국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상처가 다 나은 것이다. 아이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꼭, 꼬옥, 약속, 흐윽, 해 줘. 나, 나중에, 만나면, 나한테, 흑! 사랑한다고, 다시, 흡! 말해 줘…!”

청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흐윽! 하고 싶은데, 나, 기억, 못 한단, 말야, 흑…!”

이번엔 얌전히 고개만 끄덕일 수 없었다.

“뭐?”

“정령이, 흑, 대가, 너, 살려 준, 다고. 훌쩍! 그러니까, 또, 또 사랑한다고, 흐욱, 해 줘. 나, 꼭 찾아와. 꼭이야. 꼭…!”

울음소리에 절반쯤 파묻혔지만 청신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대정령이 불타 죽은 주변의 신도들과 똑같이 청신을 죽이려 했으나, 도유가 그를 말렸고 정령이 청신을 살려 주는 대가로 도유의 기억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도유의 반응을 통해, 청신은 그게 저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알았어.”

청신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청신과의 기억들 중, 도유가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슬프고 무서움에 떨었던 날이 더 많았으니 차라리 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리 생각할 수 있었다.

다음에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도유와 만난다면 ‘처음’ 만나게 되는 거니, 다시 관계를 쌓아야 한다는 것도 상관없었다.

도유가 청신에게 해 주었던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을 그대로 한다면 도유가 이렇게 우는 대신 웃을 테니까. 다음에 다시 만나면 도유가 웃는 일이 많도록 해 주리라.

다만 아쉬운 것은 조금 전, 도유에게 줬던 마법이다. 청신은 그것을 ‘다음’을 기약하는 증표로 삼기 위해 도유에게 줬다. 그것을 사용하면 도유에게 청신의 흔적이 새겨지게 되고, 그가 어디에 있든 간에 청신은 그 흔적을 쫓아 도유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도유가 어떤 소원을 빌지 알 수 없었지만, 청신은 혹시라도 제 마법이 도유를 해치게 될 것을 대비해 작은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주문도 넣어 두었다. 만약 도유의 소원이 도유를 해치는 방향으로 뒤틀릴 경우, 그 대가가 오롯이 자신에게 오도록 말이다.

만약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조금 더 도유에게 안전한 형태로 보완하여 하나라도 더 만들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청신에게도, 도유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랑해.”

청신은 도유를 끌어안고 아직은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어려운 말을 했다. 잊어버릴 테지만, 그래도 지금의 도유가 기억해 주길 바라며 반복했다.

“사랑해.”

도유가 청신을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

모처럼 준 선물이 그의 손에서 사정없이 구겨졌지만, 청신은 도유를 마주 끌어안았다.

그렇게 신도의 육신을 태우던 정령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도유가 울다 지쳐 기절할 때까지 그들은 계속 서로를 안고 있었다.

청신은 기절한 도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듯 땅바닥에 도유를 눕혔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이곳과 아직 거리가 있는 곳에서 기척이 여럿 느껴졌지만, 유독 강한 기척 하나가 근처에 있음을 인지하고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지독한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걸음 소리가 청신의 소리에 뒤섞였다. 기억에 있는 특유의 발소리. 땅을 보고 걷던 청신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청신아…? 청신이니?”

4년 만에 보는 송유원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암담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신은 조금 서먹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청신을 발견한 그녀의 눈이 크게 흔들리면서도 희망을 품고 반짝이자 비로소 청신의 기억 속에 있던 송유원이 떠오르며 서먹함이 사라졌다.

청신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송유원이 손에 든 것을 보았다.

마력을 결정화하여 만든 긴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동시에 청현과 제게 나뉘어져 있던 흉성의 시선이 온전히 제게 향하는 걸 느꼈다. 청현이 죽은 것이다. 송유원에 의해서.

상황 파악을 완전히 마친 청신은 송유원이 가장 원하는 말을 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청신아-!”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들의 목소리에 송유원은 체면도 잊고 바로 제 아들에게 달려가 품에 안았다. 그녀의 품에 안겨 청신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낮에 뜬 태양. 푸른 하늘이 보였다.

‘하나도 닮지 않았었네.’

지금 다시 보니 흉성의 힘을 억누를 때까지는 볼 수 없는 도유의 눈 색과 하늘의 색이 전혀 닮지 않았다고, 도유의 눈이 더욱 투명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며, 청신은 송유원의 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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