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2)화 (140/159)

#12

“어…?”

청신은 저도 모르게 멍한 소리를 냈다. 그는 상황을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어째서 제가 단검을 들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이 날 끝을 도유의 목 아래에 대고 있는 걸까. 아니, 이미 그어진 상태다. 치유했던 것이 무색하게, 잔뜩 멍든 몸 위로 자신이 그은 듯 보이는 붉은 피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청신, 아….”

잠긴 도유의 목소리가 청신의 고막을 때렸다. 피가 흐른다. 도유의 몸에서 피가 흐르며 생명이 빠져나간다. 도유가 죽는다.

“마침 적절한 때 깨어났구나.”

“윽-.”

청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러나 청신은 뒤돌아볼 수도, 그에게 대답하지도 못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아아….”

녹색 눈이 크게 흔들렸다. 청신은 자신이 도유를 죽이고 있는 걸 완전히 인지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아이의 목에서 흐르는 소리는 끅끅하고 억눌린 울음소리뿐이다.

제단에 묶인 채 청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도유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언제나 단단하게 도유를 잡아 주었던 청신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괴로워하고 있다. 하고 싶지 않다며 울고 있다.

흉성의 힘으로 청신의 힘을 일부 봉인시키고, 제 아들의 육신을 마법으로 움직이던 청현이 말했다.

“도와주마. 빨리 끝내 주는 것이 도유를 위한 일이니.”

그가 그렇게 속삭이자 단검을 쥔 청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어김없이 도유의 목에 닿았다.

“싫, 어.”

청신이 중얼거렸다. 아이의 작은 손에 힘줄이 돋았다. 청현이 눈을 크게 떴다.

오늘의 의식을 위해 만든 마법으로 한계까지 청신의 힘을 억눌렀던, 청신을 봉인하고 있는 마법이 깨지기 직전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둬라, 청신아! 그게 깨지면 넌 완전히 흉성에서 벗어날 수 없어!”

청현은 아들의 육신을 마법으로 더더욱 억눌렀다.

뚝, 뚜둑.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손에 힘을 주어 움직임을 멈출 때마다 제 안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눈이 시큰거리며 목에 핏대가 섰지만 청신은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도유가 입술을 벙긋거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 만…!”

녹색 눈이 담긴 눈가에서 붉은 핏물이 눈물 대신 흘러나온다. 아이의 코와 입술 사이로, 귀로 핏물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기괴할 정도로 무서운 광경이었으나 도유는 청신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알았다.

그의 푸른 눈은 아이의 몸을 감싼 청현의 마법과 그에 반항하는 청신의 마력을 담아 냈다. 팽팽하게 맞서던 마력이 맞부딪힐 때마다 청신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것도 알았다.

도유는 청신을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사지에 채워진 족쇄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목에 채워진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목걸이 때문에 제게 말을 걸거나 도와주었던 기이한 존재를 불러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도유가 할 수 있는 건 눈만 부릅뜨고 우는 것 외엔 없었다.

“청신아 그만두거라! 내가 널 위해 여기까지 얼마나-.”

“싫어!”

청신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충격에 청현이 멈칫한 사이, 청신은 녹이 잔뜩 슨 철이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틀어 외쳤다.

“평생, 흉성에게 사로잡힌 채 살아도 되니까, 난 얘 안 죽여! 안 죽일 거라고-! 얘는 제물이 아니야! 제물로 삼지 않을 거야!”

청현은 넋이 나갔다. 언제나 무표정했던 얼굴이 슬픔과 두려움에 물들어 도유의 생을 바라고 있었다.

흉성의 인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 같지 않았던, 타인을 이해할 줄 모르며 스스로조차 이해할 줄 몰랐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청현은 알지 못했다.

청신이 제게 도유에 대해 말하며 감정을 논할 때조차 그저 이론을 접한 것과 같은 담담함이라 생각했었으나, 오판이었다.

청현은 난생처음 제 아들이 흉성의 인도자가 아니라 5살짜리 어린아이로 느껴졌다. 그 충격에 그가 넋을 놓은 사이, 엎드려 기도를 올리던 적성교의 모든 신도들에게 혼란이 퍼져 나갔다.

야외의 공터 중심에 만들어진 제단을 둘러싸듯 엎드려 있던 수백 명의 신도들이 청신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주님!”

“지금 제물을 바치지 않겠다는 건가요?”

“뭐? 제물을 바치지 않아? 교주님께서?”

“그럼 우리 소원은?”

“오늘만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 왔는데!”

중심에서 퍼져 나간 술렁임은 청신이 가까스로 단검을 바닥으로 던져 버리자 더더욱 커졌다.

“콜록, 콜록!”

점점 커져 가는 신도들의 웅성거림을 무시한 채, 청신이 기침을 터트렸다. 그가 입은 새하얀 옷이 기침과 함께 흘러나온 피에 적셔졌다. 청신은 다시 도유 쪽으로 몸을 돌려 울고 있는 도유를 내려다보았다.

그다음 제 손바닥을 그를 향해 쭉 뻗어 보여 주고, 손가락을 튕겼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도유의 사지를 묶은 족쇄가 풀렸다. 도유의 푸른 눈에 서서히 은빛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과 반대로 청신의 녹색 눈은 빛을 잃어 갔다.

도유는 제단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도유가 숨을 삼켰다.

청신이 정신을 잃고 제단 아래로 떨어지려고 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청현이 떨어지는 청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노에 찬 신도들이 떨어지는 청신을 향해 우악스러운 손을 내뻗는 것도 보였다.

“청-.”

[감히.]

청신아, 라고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 도유는 제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곳에 없는, 그러나 언제나 도유와 같은 세계를 보는 존재의 목소리였다. 도유는 이 목소리가 청현이 ‘대정령’이라 불렀던 것의 목소리임을 알았다.

동시에 도유의 주변을 시작으로 거대하고 거친 불꽃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거센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순식간에 퍼져 나가 신도들을 삼켰다.

*

“-아.”

흐느끼는 목소리가 청신의 귓가에 들려왔다.

“청신아, 제발, 제발 일어나 봐….”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당장 끊길 것만 같은 가느다란 호소에 청신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새빨갛게 물든 하늘과 그토록 보고 싶었던 푸른색 눈이다. 아니, 완전히 푸르지는 않았다. 달을 삼킨 것처럼 빛을 품은 눈은 푸른색보다 한결 밝아 보였다.

청신은 저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우는 도유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의 얼굴 너머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태어나서 저렇게 새빨간 하늘은 본 적이 없다. 그는 곧 저것이 하늘이 아니라 불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 벽이 그들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으흡흑, 청신, 끅! 아, 청신아, 흐으윽…! 다행이야.”

차라리 다 울고 나서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숨넘어가도록 울며 도유는 청신을 껴안았다. 처음으로 도유의 품에 안긴 청신은 축축 늘어지는 손을 들어 도유의 팔을 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청신이 묻자 도유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윽고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는 몸, 두려움에 왈칵 질린 얼굴. 청신은 대답하지 못한 채 얼어붙은 도유의 답을 기다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땅 위에도 일렁거리는 불꽃이 보인다. 청신은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타오르는 불꽃 아래로 그들이 입은 옷이 보였다. 몸에 불이 붙은 신도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기괴한 것은 그들의 표정은 고통보다는 환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은 웃으며 불타 죽어 가고 있었다.

“벌, 이라고… 정령이…. 나, 날 해친, 벌이라고….”

청신은 도유의 말을 이해했다. 언제나 신도들의 발밑에 스며들었던 흉성의 힘이 그들의 몸이 타 죽어 갈수록 도망치듯 그림자에서 나와 불 벽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 보였으니까.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 도유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내가 저 사람들을 죽인 거야.”

“아니야.”

“내 힘이야. 정령이, 저 사람들이 날 해치려고 해서, 너, 너도 죽이려고 했단 말이야.”

“그럼 난 왜 멀쩡해?”

“빌었어. 너만은 살려 달라고. 뭐든 할 테니까 너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청신은 미간을 좁혔다. 도유는 계속 울고 있다. 잠시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청현이 보이지 않아 이제 안전해진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 도유는 계속 울었다.

“다 내 잘못이야. 넌 잘못 없어. 내가 다 죽인, 으허어엉…!”

“울지 마.”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청신은 도유의 품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아이는 다시 말했다.

“울지 마.”

여전히 운다.

청신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네가 웃는 걸 못 본 지 오래됐어. 웃는 거 보고 싶어.”

“흐어엉!”

제 말에 또 뭐가 슬펐는지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도유는 울음이 많다. 보지 못한 사이에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청신이 제안했다.

“너 주려고 만든 거 안 줄 거야.”

“훌쩍. 머, 뭐?”

“울지 마. 울면 안 줘.”

도유의 울음소리도 점차 멎기 시작했다. 억지로 울음을 꾹꾹 삼킨다.

청신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반응이 없었다. 청현이 청신에게 걸었던 봉인 마법은 강제로 파훼시켰기에 더는 그 영향을 받지 않건만 마법을 쓸 수 없다니. 잠시 생각하던 청신이 깨달은 듯 불 벽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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