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1)화 (139/159)

#11

의식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청신의 보호를 위해 24시간 교대로 감시하던 신도들의 수가 늘어났다. 청현 또한 청신의 곁에 더 오래 머물렀다.

다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청신이 그들의 생각보다 뛰어난 마법사였다는 것이다.

청현은 청신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마법의 지식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가 가르쳤던 것 중에는 이동 마법은 없었다.

또한 그는 흉성에 쌓인 역대 인도자들의 기억까지 제 아들이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본인이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의식의 날이 밝아 오기 전, 청신이 도유와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동 마법을 사용해 성운관에 들어온 청신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운관의 복도는 조용했다. 방 안에서 기도 중일 신도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내일 새벽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을 터였다.

아이의 걸음 소리가 정적 가득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청신은 처음부터 목적지를 아는 것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도유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가 가진 특유의 맑은 기운만큼은 어디에 집약되어 있는지 잘 느껴졌기에 그곳을 향해 움직였을 뿐이다.

이내 청신의 걸음이 멈췄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청신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철창 너머 도유가 보였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째서?”

청신은 또다시 물었고,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아이의 손이 철창에 닿았다. 순식간에 바스러지며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던 선이 사라졌다. 청신은 천천히 방 한가운데의 욕조 안에 축 늘어진 도유를 내려다봤다.

“아…….”

창백한 뺨, 사지를 결박당한 채 핏물처럼 진한 갈색의 액체에 담겨져 있는 도유. 푸른 눈을 가리는 붉은 천이 거슬렸다.

청신은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아니야. 아니야. 아이는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도유의 숨결을 확인했다. 희미하고 가느다란 숨이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 동그랗게 뜬 녹색 눈이 크게 흔들렸다. 도유가 죽는다. 숨결이 끊어진다. 영혼이 없는 육신이 된다.

청신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죽는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청신이다. 그 흐름이 있어야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도유의 웃음을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자, 처음으로 견딜 수 없이 죽음이 두려워졌다.

“일어나.”

여전히 대답이 없다. 청신은 손을 뻗었다. 도유의 몸을 욕조에서 꺼내기 위해 바짝 마른 어깨를 잡아 끌어내려고 했다.

욕조 끝에 세워진 기둥에 연결된 족쇄의 사슬이 도유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청신은 제게 마법이 있다는 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 잡아당겼다.

그 손길에 축 처진 도유의 손도 함께 춤춘다. 그 덕분에 수면 위로 드러난 도유의 팔을 본 청신은 흠칫했다.

마지막으로 보기 전에는 없었던 멍 자국. 그는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청신은 그제야 제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바로 마법을 사용하려다가 떨리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이것 또한 도유가 가르쳐 준 것. 도유를 놀래키지 않으려 하게 된 행동이다. 그러나 손이 젖은 데다 떨리고 있어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미끄러질 뿐이다.

“지금 마법, 마법 쓸 거야. 놀라면 안 돼.”

더듬더듬, 처음으로 말하는 아이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유가 듣지 못한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유가 그대로 죽어 버릴까 무서웠다.

마법으로 도유의 몸을 욕조 밖으로 꺼낸 청신은 곧바로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다행히 몸에는 별다른 상처나 멍이 없었지만, 거슬릴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청신의 마법에 의해 도유의 팔에 있던 멍과 사지를 결박했던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고,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청신은 고개를 숙여 도유의 인중에 귀를 가져다 댔다. 당장 지워질 것처럼 흐릿했던 숨소리가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았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상체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도유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이게 뭔가 싶어서 청신은 물이 떨어진 곳인 제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눈물이다. 손으로 더듬거리는 중에도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에 청신은 당황보다 의아해했지만, 도유가 작게 신음하는 걸 듣고는 곧바로 시선을 내렸다.

도유는 앓듯이 신음을 하다가 이내 허억, 하고 숨을 들이켰다. 눈을 가린 천을 풀지 않았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은 청신의 손이 붉은 천에 닿았을 때였다.

“흐끅, 끅…!”

도유가 울면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곁에 있는 청신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겁에 질린 몸짓이다. 흐느낌 사이로 울음과 두려움에 젖은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발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형태가 무너졌지만, 청신은 알아들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놓아주세요.

청신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도유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가 없다. 흉성과의 연결을 끊기 위해서 도유를 죽여야 하니까, 살려 줄 수 없다. 놓아줄 수 없다.

대답이 없자 더욱 공포에 사로잡힌 도유가 흐느끼며 웅크리는데도 청신은 멍하니 제 손을 보았다.

‘네가 도유를 죽일 수 있겠니?’

죽일 수 있다고, 청현의 질문에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그러나 청신은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이 같은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무서워.”

청신의 목소리에 도유의 떨림이 살며시 멎었다.

그것도 알지 못한 채 청신은 난생 처음 제 안을 가득 메우는 감정에 떠밀려 토해 내듯 말했다.

“네가 죽는 게 무서워. 네가 없으면 안 돼. 내 곁에 있어 줘. 죽지 마.”

“처, 청신아…?”

“네가 없으니까 싫어. 네가 웃는 얼굴을 못 봐서 여기가 너무 아파. 네가 내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서, 네가 보이지 않아서 그동안,”

청신은 잠시 말을 멈췄다. 도유가 없던 일주일간 그를 찾으면서 했던 생각,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옭아매던 감정의 이름을 드디어 깨달았기에, 아이는 숨을 들이켰다.

“…무서웠어. 네가 없어서 무섭고, 슬펐어.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 나는 네가 있는 곳에 있고 싶어.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너 안 죽일 거야.”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음성에 도유의 떨림이 완전히 멎었다. 이성을 차린 도유는 제 사지가 자유롭다는 걸 알아차리고,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었다.

철창 안을 밝힌 희미한 불에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고개를 숙였지만 금방 고개를 들어 청신을 눈에 담았다.

청신은 여전히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유를 보고 있었다. 길 잃은 아이처럼 겁에 질려 있던 눈이 도유의 푸른 눈과 마주치자 금방 빛을 되찾는다.

그것을 본 도유가 청신에게 말을 건네려던 때였다.

“그래서는 안 된단다.”

청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온통 도유에게 쏠렸던 청신이 뒤늦게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청신의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손, 그리고 전신을 잘근잘근 짓씹고, 속에서부터 불을 지르는 것처럼 작열하는 고통에 청신이 신음도 흘리지 못한 채 축 늘어졌다.

“청신아, 청신아아! 흡…!”

작은 몸이 제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걸 본 도유는 충격에 잠겨 있을 시간도 없었다.

바닥에 힘없이 늘어진 청신의 몸을 휘감은 흉성의 흉흉한 기운을 보았기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은 청신을 안아 든 청현의 주변에 마력이 넘실거리는 것을 본 순간 도유의 몸도 바닥 위로 쓰러졌다.

청현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도유와 기절하고도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숨을 쌕쌕 내뱉는 청신의 얼굴을 한 번씩 보더니 명령했다.

“다시 준비해.”

“네.”

그의 명령과 동시에 근처에 숨어 있던 신도들이 나와 도유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청신이 제일 먼저 인지한 건 고통이었다. 전신을 휘감은 끔찍한 고통. 그는 이 고통이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흉성의 힘이 넘치다 못해 인도자인 청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어떤 마법도 약도 이 고통을 덜어 낼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아팠다. 그저 아프고, 너무 아파서 이성마저 마비되어 갔다.

“교주님께서 진정한 의식을 치르고 나면, 우리가 염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지고 진정한 구원이 내려올 것이다!”

“위대한 흉성에게 어서 제물을!”

두 번째로 인지한 것은 신도들의 기도 소리다. 그 시끄러운 소리가 너무나 거슬렸다. 그래도 그 덕분에 무겁게만 느껴졌던 청신의 머릿속이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와아아!!”

신도들의 함성에, 그들의 함성 아래의 아주 작은 소리에 청신의 의식은 더욱 명료해졌다.

“청, 신, 아….”

띄엄띄엄 흐르는 익숙한 목소리. 청신은 이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게 누구의 목소리였지? 청현의 목소리가 아니다. 송유원의 목소리도 아니다. 유현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청신아.’

손에 부드럽게 감기는 연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하늘을 닮은 푸른 눈.

서도유의 목소리다. 그 이름을 떠올림과 동시에 청신이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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