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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10)화 (138/159)

#10

청신은 제 몫으로 나온 후식을 한 입 먹고 눈살을 찌푸렸다. 도유가 좋아하는 단맛이다.

가져다주면 웃겠지. 챙겨 둘까 하다가 신도에게 말하면 제 방으로 가져다 놓을 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신도를 부르기 위해 종을 들려던 때 청현이 말했다.

“청신아.”

“응.”

“도유를 좋아하니?”

“좋아해.”

“그럼, 도유를 사랑하니?”

청신은 눈을 깜빡였다. 한참 생각에 빠진 듯 인형만 만지작거리던 청신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걔가 ‘사랑’을 가르쳐 줬지만 난 걔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걔가 말한 사랑은 상대를 귀찮아하지 않는 거래. 나는 걔가 귀찮지 않아.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거라는데 난 걔가 그렇게 말해 달라고 하면 말할 수 있어. 걔가 바라면 이름을 불러 주고 웃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걔가 울면 싫어. 무서워서 떠는 것도 보기 싫어. 웃으면 좋겠어. 걔가 웃으면 눈이 반짝거려. 낮에 반짝이는 별 같아서 그냥 계속 보고 싶어.”

도유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뒤 줄곧 청신은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고민했었다.

“걔가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있는 곳이 그곳이라고 하니까 웃으면서 울었어. 그게 아름답다는 거겠지? 이게 사랑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신과 똑같은 녹색의 눈이 그저 집요할 정도로 청신의 얼굴을 관찰할 뿐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청현이 차를 들어 목을 축였다. 그가 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도유를 죽일 수 있겠니?”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동그란 눈을 깜빡인 청신이 대답했다.

“응, 죽일 수 있어. 칼로 찌르면 죽는 거랬잖아.”

“…….”

청현은 또다시 말이 없었다. 그사이 청신은 하려던 일을 마저 했다.

신도를 불러 후식으로 나온 것을 제 방에 가져다 놓으란 명령이었다. 청신이 이런 요구를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신도는 고개를 숙이며 바로 가져다 놓겠다 하고 나갔다.

다시 둘이 되었다. 청현은 한참 동안 관찰하듯 청신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래, 넌 망설이지 않겠다.”

그렇게 부자의 대화가 끝났다.

방에 가져다 놓은 후식을 확인한 후, 청신은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도유를 불러 먹으라고 했다. 도유는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청신은 빤히 바라봤다.

제물을 바치는 날은 청신이 도유를 죽여야 하는 날로부터 딱 이 주일 전으로 잡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제물을 바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청현은 그날까지 기분 나쁘게도 도유와 청신의 곁에 딱 붙어 그 둘을 관찰했다. 그러곤 한마디만 남기고 항상 참여했던 의식도 참여하지 않은 채 적성교 밖으로 떠났다.

‘만약을 위해 예비를 해 둬야겠다.’

예비는 무슨 예비. 청신은 묻고 싶었지만 대답해 줄 이는 이미 떠났기에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청신은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여느 때처럼 의식용 옷으로 갈아입고 도유와 함께 제단 근처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신도들이 치르는 의식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제단 주변을 돌며 기도를 마친 신도들이 저 멀리서 제물을 가져왔다. 가만히 서 있던 도유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청신은 개처럼 질질 끌려오며 발버둥 치는 제물을 보았다.

“끄읍, 끕! 으읍!!”

올가미에 걸렸다기에 산짐승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었다. 신도들에게 맞은 흔적이 다분한 중년의 남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위대한 교주님과 우리의 구원인 흉성에 이 제물을 바치나이다!”

신도들이 같은 말을 동시에 복창했다. 체격이 좋은 신도가 제단 위에 남자를 던지듯 올리고 사지를 제단의 끄트머리에 묶었다.

발버둥 치며 고개를 마구 저어 대던 제물이 도유와 청신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사이비 교단의 가장 상석에 앉은 이가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청신은 그가 그러든 말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제단 위로 서슬 퍼렇게 빛이 나는 칼을 든 신도가 올라왔다.

이제 저 남자의 배를 갈라 흐르는 피로 제단을 적시고 광란에 찬 기도를 올리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청신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날까 고민했다. 언제나 청신을 붙잡고 있던 청현도 없기에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신도가 칼을 치켜들고, 제물의 배를 가르기 위해 손을 내리던 때였다.

“그만해요! 하지 마세요!!”

청신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도유가 계단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내려갔다. 청신은 놀란 눈으로 도유의 뒷모습을 쫓았다. 남자의 사지를 구속한 단단한 밧줄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풀며 도유가 외쳤다.

“이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사람을 제물로 바치다니 무슨 짓이에요! 이런 건 잘못됐다고요!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아요?!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이상해요!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다고요!”

“저게 감히 신성한 의식을 더럽히다니!”

신도들의 노호에 도유의 몸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신도가 도유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고 드는 모습을 본 순간 청신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행동했다. 작은 손을 허공을 향해 뻗고, 움켜쥐었다.

우드득, 뿌득.

“아, 아아….”

분노에 이성을 잃어 가던 신도들도, 공포에 굳어 움직이지 못했던 도유도 모두 멍하니 제 눈앞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광경에 얼어붙고 말았다.

도유에게 칼을 겨눴던 신도의 몸이 말 그대로 종이처럼 구겨지며, 사람의 내부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 터진 솜 인형처럼 몸 바깥으로 나오는 광경은 누구라도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도유의 얼굴 위로 신도의 피가 튀었다.

쿵! 허공에 떠올랐던 신도의 시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요가 맴돌았다.

“오늘의 제물은 그것으로 대신해.”

청신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교주님!’, ‘교주님께서 선택한 제물이다!’라고 외치며 황급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다른 소리는 금방 지워졌다.

경외가 가득한 신도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제단 아래로 내려가던 청신은 언제나 제 뒤를 뒤따랐던 도유가 따라오지 않는 걸 알아차리고 뒤돌아봤다.

도유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멍하니 청신을 보고 있었다. 청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푸른 눈에 떠오른 감정을 그는 쉽게 알아보았다. 공포, 두려움이었다.

그것이 다른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고 이 자리에 있는 청신을 향한 것임을 느끼자, 그는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불쾌감에 미간을 좁혔다.

이 원인이 도유의 반응 때문임을 알기에 청신은 도유에게 따라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저 눈을 계속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혼자 이곳을 벗어났다.

청신은 도유가 곧장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제 방에 도착해 뒤돌아봤을 때, 도착해서 한참이나 앉아 있어도 돌아오지 않는 도유의 존재에 청신은 난생 처음 느껴 보는 기분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신도들에게 붙잡힌 걸까 생각했지만 기도를 시작한 그들은 다른 것은 전혀 보지 않는다. 눈앞에서 사람이 고통스러워 죽어 가든, 자신의 가족의 시체가 있든 간에 오로지 자신들의 ‘구원’이라는 이름의 멸망을 위해 기도를 올릴 뿐이다.

그는 도유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유는 끝끝내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언제나 청신이 일어나기 전에 차와 다과를 가져다주는 것도 언제 돌아왔는지도 모를 청현이 대신했다.

“걔 어디 갔어?”

“고대해 왔던 그날까지 몸을 정결히 해야 하지 않겠니.”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청신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디에 갔냐고.”

“성운관에 있단다.”

성운관은 신도와 제물들이 의식 전에 정신과 육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청신은 작은 소리로 그래, 하고 중얼거리듯 대답하고는 제 비어 있는 찻잔 옆 다과를 보았다.

평소 다과를 잘 먹지 않던 청신이 도유가 온 뒤로 매번 그릇을 비우자 신도들이 하나둘씩 양을 늘린 다과는 접시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양이 유독 많아 보였다.

도유가 행복해하는 얼굴로 먹을 때면 그 양이 언제나 부족해 보였는데.

“이거, 걔한테 전해 주면 안 돼?”

청현의 시선이 청신의 시선이 닿은 다과로 향한다. 청현은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의식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정해진 것만 먹어야 해.”

여지조차 없는 거절에 청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

도유가 청신의 일상에서 사라진 첫 번째 날이 지나고, 그다음 날이 되자 청신은 무의식적으로 신도들 틈에서 도유를 찾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신도들 틈이 아니어도 도유가 지나갔던 자리, 도유가 서 있던 자리를 지나칠 때면 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잊은 것처럼 시선이 저절로 도유의 행방을 찾아 방황했다.

성운관에 한번 들어가면 의식의 날까지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바보 같은 행동을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청현은 그런 아들의 행동을 알면서도 보지 못한 척했다. 앞으로 다가올 의식의 날, 청신은 도유를 죽여야 했기에 이 이상의 접촉이 무의미하다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청현은 청신이 성운관에 가지 못하도록 신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스스로에게도 무관심한 청신이 도유를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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