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7)화 (135/159)

#7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붉은색 빛이 엄청 많이 보였어. 그런데 이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몸에 그 붉은색 빛이 너무 많이, 새빨갛게 칠한 것처럼 붙어 있어서 무서워서 겁먹었던 거야. 어떤 사람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이 모여 있어서 너무 무서워.”

“붉은색 빛? 그게 뭐야? 난 못 봤어.”

금시초문이다. 청신은 그들에게 죽음의 검은 그림자와, 그 그림자에 이따금 스미는 흉성의 새까만 빛을 봤을 뿐이다. 도유가 말한 붉은색 빛은 본 적이 없었다. 대정령의 계약자는 흉성의 인도자와는 다른 종류의 뭔가를 볼 수 있는 걸까.

청신은 도유가 보는 세계가 궁금해졌다. 나중에라도 도유가 보는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공유하는 마법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잘은 몰라. 그냥 막 보면 무섭고, 거부감이 들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

“혹시 이건 보여?”

“이거?”

청신은 되묻는 도유를 향해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내밀었다. 이윽고 작은 손에 새까만 구체의 형상을 한 흉성의 힘이 모였다. 그 불길한 색에 도유가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걸 보고 청신은 자기가 싫어하는 게 뭔지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손에 모았던 흉성의 힘을 흐트러뜨린 뒤, 청신이 말했다.

“이것도 보이는구나. 신기하다.”

“…막, 불쾌하지 않아?”

“불쾌해? 이거? 이건 내 의무이자 내 힘이야.”

다시금 손에 흉성의 힘을 모아 보였다. 그러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손톱만큼 작은 크기였다. 도유는 꼭 작은 비눗방울이 터지듯 톡 하고 사라지는 그것을 눈을 깜빡이며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보는 게 불쾌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어. 내가 기분 나쁜 것도 있지만, 원장님이나 선생님이나… 다른 애들한테 이런 게 보인다고 말하면 기분 나빠 했거든….”

그래서 도유는 고아원에서도 혼자였다. 도유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도, 친구가 되려는 아이들도 없었다.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유가 말하는 불쾌함에 대해 모르겠다. 보이면 보이는 거고 안 보이면 안 보이는 거지. 남이 보는 걸로 왜 타인인 자신이 기분 나빠야 한단 말인가?

“다행이다.”

제 대답에 안도한 듯 맑은 웃음을 짓는 도유를 보며, 청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또 하나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도유가 청신의 곁에 함께한 뒤 처음으로 ‘기도’의 날과 외부인들을 만나는 시간이 찾아왔다.

도유는 청현 대신에 청신의 곁을 지키며 시중을 들어야 했기에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됐다.

“교주님! 교주님!”

“흉성의 힘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위대한 교주님!”

언제나 듣는 시끄러운 소리. 강당 가득,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4년 넘도록 한 번 바뀌지 않는 구호를 외치고, 흉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신도 중 지위가 있는 이가 청신 대신에 그들에게 설교를 한다. 설교가 끝나고 기나긴 기도가 다시 시작됐다.

그들 중에서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르작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미친 사람처럼 웃는 이들도 있었다. 청신은 무심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제 곁에 서 있는 도유를 보았다.

도유는 두 손을 앞으로 꼭 모아 쥔 채로 떨고 있었다. 베일로 얼굴이 가려진 까닭에 표정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청신은 도유가 겁에 질려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눈길만 주었을 뿐, 도유를 내보내거나 괜찮냐는 물음은 던지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했지만 청신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으며, 이런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이 답답함을 풀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기도가 끝나고 청신이 가만히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자 신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자세를 취했다. 청신은 걸음을 옮겨 강당 밖으로 나갔다.

도유가 비틀거리며 청신의 뒤를 따랐다.

청신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도유는 아무 말도 없이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청신의 옷을 외부인과 만날 때만 입는 접견 전용 교주 옷으로 갈아입혔다.

어린 체구에 맞게 만들어진 교주 옷을 입고 모자까지 쓴 청신은 정말 인형처럼 보였다. 애초에 이 옷은 그렇게 보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무표정한 얼굴까지 더해지니 청신은 그야말로 인형과 다를 바 없었다.

“이쪽.”

아직 길을 다 숙지하지 못했는지 외부인과 만나는 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는 도유에게 청신이 짧게 말했다.

그제야 도유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청신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처럼 타인을 내려다보는 자리가 마련된 방이었다.

청신이 아름답게 꾸며진 의자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도들이 들어와 청신에게 가볍게 귀띔을 했다. 오늘 오는 사람들의 직업이나 재산의 규모 등이 주 내용이었다.

청신은 상대가 누구든 간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들은 꿋꿋이 말해 주고는 물러났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신도의 안내를 받아 외지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상석에 앉은 어린 교주를 보고 조금 놀란 듯했던 그는 곧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적성교의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청신이 고개를 까닥이자 그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친구가 수억의 대출을 받고 도망쳤다. 겨우 찾았더니 그 돈으로 자기 빚을 갚고 새살림을 차려 행복하게 살고 있더라.

자신은 빚 때문에 쫓겨 살기 시작했는데 뻔뻔하게 발뺌한다며, 그 친구를 고통스럽게 죽일 수단을 달라 했다.

남자의 말이 끝나고 청신은 신도에게 손짓했다. 신도가 기다렸다는 듯 작은 나무 상자를 가져오자, 그는 그곳에 흉성의 힘을 흘려 넣었다.

곁에 선 도유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를 듣고 곁눈질을 했지만 역시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매일, 상자를 열고 진심으로 기도를 해. 그럼 당신이 바라는 일이 일어날 거야.”

“감사합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나가고 도유가 머뭇거리며 청신에게 말을 건네려던 때 두 번째 손님이 왔다.

두 번째 손님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구구절절 제 사연을 말하고, 똑같이 나무 상자를 받아 떠났다. 그날은 다섯 명이 청신에게 상자를 받아 갔다.

도유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신이 잠자리에 들기 전, 여느 때처럼 잘 자라고 말했을 뿐 별다른 말도 없었다. 청신은 하얗게 질려 있는 도유의 안색이, 그저 춥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도유 몰래 체온을 따듯하게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을 걸어 방으로 보냈다.

그 뒤부터 청신의 일상은 또다시 반복되었다. 변화가 일어난 건 열 번째로 찾아온 외부인에게 흉성의 힘을 담은 상자를 청신이 건넨 직후였다.

팟!

“저, 저게 감히! 교주님께!!”

청신은 제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나무 상자를 바라보았다. 녹색 눈이 머문 곳은 허공을 어설프게 쥐고 있는 제 손이었다. 도유가 제 손에서 나무 상자를 뺏는 과정에서 손을 친 터라 그다지 아프진 않았지만 의아했다.

“교주님께 손찌검을 하다니!!”

“저 녀석을 죽이자! 죽여! 감히 우리의 신에게!”

분노한 신도들이 도유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때까지도 덜덜 떨고 있던 도유가 흐느끼며 외부인에게 말했다.

“그거 손대지 마요! 이상해요! 이상하다고요!”

청신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도유를 끌어내려던 신도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 가자.”

그렇게 말하고 청신은 도유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신도들은 도유를 노려봤지만 청신이 앞장서서 나가면서도 여전히 도유를 잡고 있으니 손도 대지 못했다. 도유는 베일 아래 우는 소리를 꾹꾹 눌러 참으면서 저보다 작은 청신을 따랐다.

청신이 도유를 데리고 간 곳은 자기 방이 아니라 그 건물의 밖이었다. 교주가 나오자 주변에서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던 이들이 교주님! 하고 황급히 청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청신은 시선이 모이지 않길 바랐기에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을 사용한다는 신호에 도유가 멈칫했다.

원래 마법을 사용할 때는 이런 움직임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한 번 도유의 앞에서 이불을 마법으로 태워 버렸더니 놀라서 뒤로 자빠진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행동 뒤에 마법을 사용하게 되어 버렸다.

황급히 청신의 작은 손을 잡는 도유의 손길이 느껴졌다. 동시에 시야가 바뀌었다. 도유는 훌쩍이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벌레들의 울음소리. 적성교 끝자락에 있는 개울이다. 다들 한참 제 일에 몰두할 시간이라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머리에 쓴 거 벗어.”

도유는 얌전히 청신의 말을 들었다. 얼굴을 가리던 베일을 벗자 울어서 퉁퉁 부은 도유의 눈이 드러났다. 그걸 보니 또 속이 답답해진 청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울어?”

“청신아, 여기 이상해. 사람들이 모두 이상해. 이상하고 무서워.”

말하고 나니 감정이 더 복받쳤는지 도유가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쏟아 내듯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왜 네게 그런 기도를 하는 거야? 왜 네게 그런 소원을 빌어? 너는 여섯 살이잖아. 여섯 살밖에 안 됐는데 너한테 무섭고 슬픈 것만 시켜. 그 사람들한테서 나온 붉은색 빛이 널 자꾸 삼키려고 들어. 네가 왜 그들의 기도를 들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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