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모른다면서 왜 해? 너 바보야?”
“어, 어어…. 그럴지도 몰라.”
도유는 순순히 긍정했다.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청신은 불쾌해졌다.
인간이 바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짜증을 내거나 분노하는 건 청신도 이미 신도들을 보고 알았다. 그러나 서도유는 화를 내기는커녕 수긍하는 눈치다.
거슬린다. 뭉그적거리는 것도 짜증이 난다. 청신은 도유를 무시하고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평범한 아이라면 입도 대지 않을 정도로 쓴 차의 맛. 청신은 그걸 뱉는 대신 그냥 삼켰다. 그에게 맛의 즐거움 따윈 의미가 없으니까.
찻잔을 내려놓고 바깥에서 청신을 씻길 준비를 하는 신도들에게 들어오라고 하려던 때, 문득 청신의 시야에 도유가 들어왔다. 도유는 멍하니 쟁반에 놓인 다과를 보고 있었다.
“뭐해?”
“아, 이건 안 먹어?”
“안 먹어.”
“단거 안 좋아해?”
“…….”
청신은 입을 다물고 다과를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냥 내킬 때 한두 입 먹어 본 것이 다였다. 고민하는 기색을 알아본 도유가 다시 물었다.
“모르는 거야?”
“응. 모르겠어.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지 않는 건지.”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유는 눈을 깜빡이다가 다과를 들고 청신에게 내밀었다.
“한 입만 먹어 볼래?”
“싫어.”
“그럼 내가 먹어도 돼?”
“마음대로 해. …그런데 안 들키게 먹어.”
“응? 응.”
감히 교주님이 먹을 것에 더러운 입을 댔다며 노발대발하고 도유를 잡으려 들 신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청신은 자기가 한 말에 착잡해졌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왜 굳이 덧붙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고민해 봤다. 그리고 곧 대답을 얻어 냈다. 대정령의 계약자이기 때문이다. 신도들에게 고작 이딴 일로 죽어 버리면 안 되니까 예방한 것이다.
청신의 허락이 떨어지자 도유는 다과를 들고 한 입씩 신중하게 먹기 시작했다. 이런 걸 먹는데 왜 이렇게 진지한 표정일까.
그러나 곧, 도유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걸 보며 청신은 호기심을 느꼈다. 대체 무슨 맛이기에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짓는 걸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야 많이 봤지만 저런 건 처음이었다.
“한 입 먹어 볼래?”
반쯤 먹었을 때 청신의 시선을 눈치챈 도유가 친절하게 권했다.
“…응.”
얼마나 맛있기에 저러는 걸까 궁금해진 청신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는 우물우물 입 안에 들어온 다과를 씹었다. 그냥 단맛. 초콜릿 맛이 강한 단맛이다. 이게 뭐라고. 입 안이 텁텁하다. 어떻게 이런 걸 먹으면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거지? 하는 의문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 청신을 보고 도유가 작게 웃었다.
“단걸 싫어했구나.”
먹는 걸 멈추고 청신을 관찰하던 도유의 말에, 청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싫어해? 내가?”
“응. 표정이 달라졌어.”
그 말에 청신은 방 한쪽에 있는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도유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청신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거울을 보고 있다. ‘이게’ 맛없는 걸 먹은 표정인가, 하고 생각할 때 도유가 말했다.
“좋아하는 걸 먹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거나 표정이 밝아져.”
“좋아하는 걸 먹으면….”
“방금 네가 차를 마셨을 때, 네 예쁜 눈이 동그래졌었어. 너는 차를 좋아하고, 단건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그래도 이것만 먹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 내일 또 실험해 보자.”
청신은 도유와 도유의 손에 들린 남은 다과를 번갈아 보았다.
“너는 단걸 좋아해.”
“…맞아. 좋아해.”
“왜 좋아해?”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는지 도유는 당황한 듯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도유의 얼굴을 청신은 빤히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연갈색 머리카락. 만지면 부드러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번엔 눈을 보았다. 푸른색. 자꾸만 시선이 갔다.
바다란 건 본 적이 없지만 흉성 덕분에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는 청신은, 도유의 눈이 바다와 하늘을 품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못 먹어서 더 그런 것 같아.”
“왜 못 먹어?”
이곳에서는 청신이 가져오라는 건 뭐든 가져온다. 만들라 하면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 온 청신은 도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차 없는 질문에 도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쑥스러운 듯 뺨을 붉히며 대답했다.
“날 더 싫어할까 봐…. 못 먹었어.”
청신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대답이었다. 도유는 들고 있던 걸 내려놓고 푸흐흐 웃었다.
“더 안 먹어?”
“이건 네 거니까. 좋아하는 걸 먹으면 어떤 표정인지 보여 주고 싶어서 네 걸 먹은 거야. 앞으로는 빼앗아 먹지 않을게.”
“나는 단거 싫어해.”
청신의 말에 도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이 순간이, 청신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호불호를 밝힌 것이었지만 청신과 만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도유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먹으면서 너처럼 반짝이지 못해. 그러니까 너 먹어.”
“어… 그래도 돼?”
“너는 좋아하잖아.”
다과를 먹었을 때 푸른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게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보고 싶다. 청신의 사고는 간단했다. 도유는 몇 번 커다랗게 뜬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청신아.”
청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기쁘게 웃는 도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도유는 청신의 곁에 청현처럼 붙어 있기 시작했다. 평소 청현이 들어 주던 수발까지 도유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 수발에는 청신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청신은 열심히 제 몸을 씻기는 도유를 보았다. 도유는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청신의 몸을 씻기고 있었는데, 그 손길이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간지럽고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게다가 청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주제에 팔뚝의 굵기는 청신의 것과 비슷했다. 저런 팔뚝으로는 제 시중을 들기는커녕, 잘못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툭 부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신은 미간을 좁혔다.
문제는 지금이 도유가 청신의 수발을 들게 된 지 일주일째라는 거다. 청신은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유가 이렇게 제 몸을 씻길 때마다, 매일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저절로 짜증이 났다.
거기에 제일 짜증 나는 건 따로 있었다.
“미안해.”
무심코 본 도유의 손목에 시선을 두고 생각에 잠겨 있노라면, 불쑥 내뱉는 도유의 사과였다.
“왜 미안해?”
청신은 제 질문에 돌아올 답변도 알았다. 그런데도 물어보는 건 이번만큼은 다른 이유에서 미안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가 느려서 답답하잖아. 정말 미안해.”
이번에도 똑같은 이유다. 청신은 도유를 보았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도유의 얼굴이 발그레했다.
청신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도유가 손을 멈추고 그 시선에 응답했다. 아니, 응답한 게 아니다. 청신은 알아차렸다. 도유는 청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적성교에서 청신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건 이청현뿐이다. 모든 신도들이 청신의 눈치를 봤고 도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청신은 도유가 보는 눈치가 신도들의 것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차이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일단 도유의 말에 대답했다.
“느려서 답답한 거 맞아.”
“응…. 좀 더 빨라지도록 열심히 할게.”
“빠르지 않아도 돼.”
“어…? 답답하면, 내가 빨리하는 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상관없어. 근데 사과하지 마. 짜증 나.”
“미, 미안…. 아….”
사과하지 말라는 말을 한 박자 늦게 떠올렸는지 도유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밝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난처함과 당황, 그리고 청신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물든다. 그는 제가 읽어 내지 못한 감정을 알아내기 위해 도유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그 전에 도유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가늘게 떨리는 몸을 보았다.
욕조에 잠겨 있던 손을 빼자 물소리가 났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청신은 도유의 양 뺨을 잡아 위로 끌어 올렸다.
눈물이 일렁이는 푸른 눈과 마주하자, 청신은 처음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이는 도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도유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반사적으로 미안하다고 하려다가, 또 청신의 말을 떠올리고 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훤히 보였다. 이윽고 청신의 손에서 벗어나려는지 몸을 뒤로 젖히려는 도유에게 청신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
그 말에 도유의 움직임이 멎었다. 청신은 도유의 얼굴을 관찰했다.
눈만 굴리며 청신을 보았다가, 동공을 가늘게 떨며 시선을 내리깔기도 하는 둥 산만하기 그지없는 모습.
제일 짜증 나는 건 툭 건드리는 순간 눈물을 쏟아 낼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푸른 눈이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야? 왜 우는 거야?”
답답한 건 싫다. 모르는 건 더 싫다. 청신은 여전히 도유를 붙든 채 물었다. 자기가 읽어 내지 못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안 울었어.”
도유가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청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