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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외전 (4)화 (132/159)

#4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됐어.”

성희유는 떠났다. 청신은 성희유를 따라가지 않고 남은 성무원을 보았다. 무원은 발끝부터 형체가 점차 부스러지는 것처럼 무너져 가고 있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아이는 처음으로 피 눈물이 아닌 눈물을 흘리며 웃는 얼굴을 보인 채 그 자리에서 흐름으로 돌아갔다.

“이해할 수가 없네.”

성무원이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청신이 중얼거렸고, 청현은 웃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 속에서 청신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신도들의 광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아무리 적성교에 있는 신도들에게 무관심한 청신이라지만 알 수밖에 없었다.

“아아, 곧 있으면 흉성의 힘이 이 세계를 뒤덮을 것이다!”

“교주님께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심판하실 날이 머지않았다!”

“교주님께-, 흉성에게 제물을 바쳐야 해!”

그들은 마을의 한가운데에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 제물을 바치기 시작했다. 처음에 올라온 것은 짐승의 피였다. 살아 있는 짐승들을 그곳에서 칼로 죽이며 기도했다. 청신은 그 피가 제 발치에 고이는 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런 짓은 왜 해?”

흉성은 자아가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자연의 흐름이 만들어 낸 것뿐, 그들이 제물을 바친다 한들 부정적인 힘이 더 빠르게 쌓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흉성의 힘을 쌓고 싶다면, 짐승의 죽음이 아닌 인간들의 죽음을 일으켜야 한다.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절망하며 원한을 품은 죽음 또는 죽음에 필적하는 감정을 품은 인간이 수만 명 필요했다. 청신의 곁에 선 청현이 웃으며 아들의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필요하니까. 네가 이해하거라.”

흉성의 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건 오로지 청현과 청신뿐.

그렇기에 신도들은 그 흐름을 보기 위해 저들끼리 상의하고 계속 제단에 제물을 바쳤다.

그 제물은 때로는 짐승에서 과일, 금붙이 따위가 되었는데 비가 내리던 날, 등산을 하다 길을 잃은 한 남자가 마을로 흘러들어 오자 바뀌고 말았다.

“살려, 살려 주세, 요….”

“제물 주제에 감히 교주님을 만져!”

남자가 벌벌 떨며 목숨을 구걸했다. 더러운 손으로 청신의 옷자락을 잡았다는 이유로 남자는 제단 위에서 구타를 당하고, 끝내 신도들의 손에 의해 산 제물로 바쳐졌다.

청신은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남자의 주변에 넘실거리는 흉성의 기운을 물끄러미 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것들은 빠르게 청신의 손으로 스며들었다.

“큿…!”

힘을 흡수하자마자 넘치는 흉성의 힘에 끔찍한 고통이 청신을 갉아먹었다. 평상시였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그동안 흉성의 힘을 원하는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티끌만 한 그 힘이 흉성의 힘을 넘치게 만들었다.

그날 처음으로, 청신은 넘치는 흉성의 힘이 얼마나 제게 큰 고통을 가져오는지 배웠다.

“오오, 교주께서 반응하셨다…!”

“흉성이 응답한 거야! 우리의 기도가 닿은 거다!”

신도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교주를 보며 자신들의 의식이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마을에서 죄를 짓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조난당해 잘못 들어온 외지인들을 붙잡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

청현은 고통스러워하는 청신을 위해 기꺼이 외지의 인간들을 다시 초대했다. 그들에게 흉성의 힘을 나눠 주니 청신은 다시 아프지 않게 됐다. 그러나 청신은 저를 보며 웃는 청현을 보고 생전 처음으로 분노를 느꼈다.

제멋대로 손에 쥐고 쥐락펴락하려는 것이 짜증이 났다. 그렇기에 청신은 청현이 가르쳐 주지 않은 방법으로 흉성의 힘을 조절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청신은 5살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이청현이 한 달 동안 다녀올 곳이 있다며 훌쩍 밖으로 나가더니 데리고 온, 어린 소년이었다. 청신은 청현의 뒤에 몸을 잔뜩 움츠린 소년을 보았다.

청신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 그러나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의 소년은 청신이 처음 보는 색을 지녔다.

관리가 되지 않은 연갈색의 머리카락과 겁에 질린 푸른 눈동자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자, 소년은 더욱 겁먹은 듯했다. 그런 소년을 청현이 달랬다.

“아가. 이 아이가 내 아들이란다.”

청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년의 시선이 머뭇거리며 청신에게 되돌아왔다.

“친구가 되어 주겠니? 네가 원한다면 가족이 될 수도 있겠구나.”

청현의 말에 청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개소리.”

“청신아. 내가 험한 말 하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개소리에는 개소리를 한다고 말해야지. 그건 뭐야?”

“네가 자기소개를 해 보겠니?”

청신에게 친구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자칭 청신의 친구라고 지껄이는 주영연부터가 청신에겐 너무나 귀찮은 존재였으니까.

요즘에는 학교에 들어가서 바쁜지 찾아오지 않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그런데 주영연 같은 인간이 또 늘어나면?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서, 서도유입니다…. 아…! 열두 살입니다.”

자신 없는 목소리. 왜 저렇게 움츠린 걸까. 청신은 서도유가 굉장히 거슬렸다.

이상했다. 단순히 주영연 때문은 아닌 듯했다. 뭐랄까, 다른 느낌이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 끔찍할 정도로 맑고 티 없이 정순한….

“너 대체 뭐야? 짜증 나.”

날 선 청신의 반응에 청현은 웃음을 터트렸고, 노골적인 거부 반응에 도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기껏해야 울거나 울상을 짓거나, 시무룩해할 줄 알았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자 청신은 눈을 깜빡였다.

“왜 그따위로 웃어?”

“…기분 나쁘게 해서 죄송해요. 그, 교주, 님?”

갸웃. 이 호칭으로 불러도 되나, 하는 생각이 고스란히 떠오른 순진무구한 얼굴을 어쩐지 계속 보기가 어려웠다. 청신은 청현을 보며 말했다.

“쟤 치워. 마음에 안 들어.”

청신의 말 한마디가 신의 명령과 같은 곳이 바로 이 적성교의 본부였다.

그 증거로 청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도들이 당장 도유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도유는 다음번 제물을 바칠 때 제단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도유는 청신의 매몰찬 말에 상처받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안 돼. 친하게 지내거라. 그리고 도유야, 청신이에게 반말을 해도 된단다.”

지금까지 청신의 말을 다 들어주었던 청현이 처음으로 청신의 말을 거절했다. 청현은 신도들을 물렸다. 청신과 청현, 그리고 도유가 남게 되자 청현이 말했다.

“이 아이는 대정령의 계약자란다. 그러니 친하게 지내야 해.”

“대정령? 그게 뭔데?”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흉성의 힘을 억누를 수 있는 존재란다.”

“처음 듣는데.”

“처음 말한 거니까. 내가 한 약속 기억하지?”

“저 녀석을 이용해서 해 주겠다는 거야?”

본인이 듣고 있는데도 청현과 청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청현의 목소리가 청신의 ‘머리’에 울려 퍼졌다.

-“대정령은 자신의 계약자를 해한 이의 곁에 계속해서 머물 것이고, 그런 대정령의 기운은 흉성이 인도자를 찾을 수 없도록 흐름을 흐트러뜨리니 인도자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지.”

“…….”

5살이었지만 이미 성인이나 마찬가지인 정신을 지닌 청신은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흉성에게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서도유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신도들이 제물을 바치듯, 청신이 직접 서도유를 죽이는 것으로 대정령의 분노를 사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친하게 지내거라. 알았지? 도유야, 청신이가 수줍음이 많단다. 잘 부탁하마.”

“이름이 청신이에요?”

“맞단다. 이청신이지.”

“이름이 예뻐요.”

“그렇지? 그러니 많이 많이 불러 주거라.”

“네…!”

청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청현은 아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도유에게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설명해 주겠다며 도유를 데리고 응접실을 나갔다. 홀로 남겨진 청신은 도유가 서 있던 자리를 보다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날을 기점으로 도유는 청신의 곁에 있게 되었다.

“청신아, 아, 안녕.”

아침. 기상 시간이 되자마자 방 안으로 들어오는 도유에 청신은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도유는 청신이 깨어 있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해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청신은 들고 온 쟁반을 옆자리에 내려놓는 도유를 보며 물었다.

“이걸 왜 네가 가져와?”

청신이 아침에 마실 차와 정신을 깨울 정도로 달콤한 다과를 가져오는 일은 청현이 해 주던 시중이었다.

“네 친구니까, 내가 해야 한댔어.”

“친구는 이런 걸 해?”

“…모르겠어.”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는 건 도유도, 청신도 마찬가지였다. 도유에게 있어서 친구라는 건 책에서나 나오는 존재고, 청신은 그냥 관심이 없었다. 친구를 사귈 환경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청신은 인간들의 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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