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청신의 시선이 성희유의 옆에 닿았다. 그의 옆에 선, 그를 꼭 닮은 아이.
지금 성희유의 품에 안긴 아이와 똑같이 생긴 영체가 성희유의 옆에 서 있었다.
“교주님께서는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 준다고 들었습니다. 제 동생이 사고가 난 뒤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깨어나게 해 주세요. 제가 가진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성희유가 절박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청신의 시선은 그가 아니라 어느덧 제 앞까지 걸어온 그의 동생이란 아이의 영체에 닿아 있었다.
-“제가 보여요?”
끄덕. 청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희유의 동생, 성무원이 활짝 웃었다.
-“형아를 도와주세요. 제발요. 저 때문에 희유 형아가 힘들어하고 있어요.”
활짝 웃던 무원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지고, 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오래전에 죽었음에도 제 형이 걱정되어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탓에 쌓이고 쌓인 부정적인 힘이 무원의 혼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을 텐데도, 아이는 제 형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지금까지 힘겹게 버틴 듯했다.
-“희유 형아가 절 포기하게 해 주세요. 형아가 아파해요. 맨날 울고 슬퍼해요. 나 때문에 형아가 고통받고 있단 말이에요.”
무원은 피 눈물을 쏟아 내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속되면 이 아이의 영혼은 흐름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한 채 영영 소멸해 버리고 말 것이다. 청신은 그것을 알아차렸으나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그게 뭐?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성희유를 내보내기 위해 그를 본 순간, 무원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청신의 눈에 띄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다른 이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바치겠습니다. 부디 무원이를 깨어나게 해 주세요. 이 아이는 이렇게 갈 아이가 아닙니다.”
“사람. 얼마나 죽였어?”
청신의 질문에 성희유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절박했던 표정 위에 빠르게 덧씌워진 무표정. 청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내려와 성희유의 앞에 섰다.
교주가 움직이니 곁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하며 술렁이고, 청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이들은 볼 수 없지만 같은 인도자인 청현의 눈에도 보였으리라. 성희유의 발치에 넘실거리는 수많은 죽음의 기운을.
그건 곧 죽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과 달랐다. 그 궤가 달랐다. 쌓이고 쌓인 업보다. 형용할 수 없는 색으로 물든 것. 청신은 이런 걸 처음 보았기에 호기심을 느꼈다.
청신을 가만히 보던 성희유가 대답했다.
“세 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그렇구나.”
청신은 그냥 수긍했다. 하긴, 인간이 자신이 먹는 밥의 낱알을 일일이 세며 밥을 먹진 않으니까.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옆방에 데려가. 생각 좀 해 볼래.”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기 중이던 신도가 황급히 성희유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지금까지 찾아온 이들에게 교주가 질문을 하는 것은 물론, 대답을 보류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신도는 당황한 듯했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했다.
성희유는 나가기 전 청신을 한 번 돌아봤을 뿐, 이내 그들에게 이끌려 나갔다.
“넌 가지 마.”
여전히 울면서 성희유를 따라가려던 무원의 영체를 붙든 청신의 말에, 남아 있던 신도들이 눈을 크게 뜨며 청신을 보다가 ‘오오…. 교주님께서 흉성의 계시를 받으신 것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어린 흉성의 인도자는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경외 어린 눈으로 청신을 보았다.
무원은 청신의 부름에 훌쩍이면서도 멈춰 섰다. 청신은 신도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너희는 나가.”
그렇게 이곳에 남게 된 것은 무원의 영체와 청신, 그리고 청현이었다. 청신이 제 아버지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당신도 나가.”
“교주의 옆을 지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지.”
“좋을 대로 해. 야, 너.”
-“훌쩍, 네?”
무원은 계속 울고 있었다. 드디어 자길 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인지 아니면 쌓이고 쌓여 온 슬픔이 흘러넘친 것인지 계속해서 피 눈물을 쏟았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핏물이 새하얀 바닥을 더럽혔다.
“네 형이 희망에 매달리기를 바란다면 네 형에게 마법을 줄게.”
-“무슨 마법, 훌쩍, 이요? 형아도 마법사예요. 저 때문에 형아가 어지간한 마법은 다 한 것 같은데, 저는 깨어날 수 없어요.”
“그야 네 생은 거기서 끝이니까. 어떤 마법을 써도 못 돌아가.”
-“으어어엉!”
서러운 울음이 청신의 귀에 못 박혔다. 신도들이 기도를 올릴 때, 온갖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굴었던 것에 면역되어 있는 귀에도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날카롭게 신경을 긁어 댔다.
“내 말 안 들을 거야?”
-“아니, 흐으윽! 아니요! 들을, 흐욱, 거예요.”
“두 번 말 안 하니까 잘 들어.”
청신은 과거, 유현의 죽음을 알게 된 뒤에 송유원에게 전해 주었던 마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육체가 당장 죽는 걸 막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 이의 의식을 무원의 육신에 옮겨 움직이게 하고, 의식이 조금이라도 떠올랐을 때 그것을 완전히 끌어 올려 육신에 정착시키게 하는 마법에 대해서.
물론 이건 상대방에게 해 주는 허울 좋은 말뿐이었다.
“실제로는 달라.”
-“달라요?”
눈물을 글썽이며 무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청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세운 마법식은 이론상으로는 완벽해.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런데 실제로는 불가능해. 한 인간의 육신에 두 개의 의식이 있을 수 없으니까.”
흉성의 인도자이기에 알았다. 한 육신에 두 개의 의식 즉, 영혼이 두 개여서는 안 된다. 그건 이 세계를 보호하는 섭리 중 하나였다.
“네 육신에 티끌만큼 의식의 조각이 남아 있어도 네 형의 의식에 눌려서 떠오르지 못할 거야. 대신 육신은 계속 유지할 수 있지.”
무원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청신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설명하는 기술 따윈 없기에 못 알아듣는 무원을 가만히 바라볼 뿐 입을 다물었다. 그때 청현이 말했다.
“네 형에게 이 마법을 가르쳐 주면 네 형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이란다. 네 몸에 남은 의식의 조각은 네 형이 네 몸을 움직일 때 억눌려서 그대로 소멸될 테니 말이다.”
-“…제가 마지막 인사를 포기하면, 희유 형아가 오래 살 수 있나요? 지금 제가 죽으면 형아도 죽을 거예요. 형아가 그랬어요. 저 없으면 못 산다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그랬어요.”
겨우 그쳤던 울음은 또다시 터지고 말았다. 무원은 성희유를 알았다.
무원이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처럼 성희유는 무원의 히어로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부모이자 형제이기도 했다.
언제나 웃으면서 ‘무원아.’ 하고 부르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줬던 형은 무원이 사고를 당한 뒤부터 완전히 웃음을 잃었다.
무원은 깨어나지 않는 자신의 육체 옆에서 성희유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성희유는 매일매일 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울지 않았다. 눈물조차 말라붙은 것처럼.
그리고 무원의 복수를 위해 성희유는 사람들을 죽였다.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성희유도 죽었다.
마법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감각을 자신과 연결한 성희유는 무원을 죽게 만든 이들이 서로 난도질하고 죽을 때, 인형으로 되살아나 서로를 해치며 느끼는 고통을 온전히 살아 있는 육신으로 느끼며 자해했다.
무원은 그 현장에 있었다.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증오심에 미쳐 버린 성희유는 무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이는 그날부터 피 눈물을 흘리며 성희유를 도와줄 사람을 기다렸고, 그 기다림이 오늘 이곳까지 이르렀다.
-“형아가 맨날 나 때문에 놀지도 못하고, 흐읍, 맨날 고생만 하고, 맨날 울기만 했는데. 이대로 내 몸이 죽으면 형은 고생만 하다가 날 따라 죽을 거예요. 그런 건 싫어요.”
‘무원아, 네가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한다고 해도 내 눈에는 항상 네가 지금처럼 조그만 아이로 보일 것 같아.’
‘나 지금도 커!’
폴짝폴짝 뛰며 제 성장을 과시하는 무원을 보며 다정하게 웃던 성희유는 더는 없었다.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는 생각했다.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기가 바보같이 죽어 버린 탓에 형이 변하고 말았다고.
무원은 청신에게 애원했다.
-“헛된 희망이라도 좋아요. 희유 형아를 도와주세요. 마지막 인사 안 해도 되니까, 형아가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성희유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새로이 생긴다면 무원을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무원은 청신에게 애원했고, 청신은 이를 받아들였다.
청신은 성희유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에게 송유원에게 전했던 마법과 똑같은 마법을 건네주었다.
같은 마법사이니 저 마법식이 ‘진짜’라는 건 성희유가 알아볼 것이다. 청신의 예상대로 성희유는 마법식을 읽는 것으로 그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를 깨닫고 죽어 있던 눈에 희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