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
외전 1. 밤의 끝자락
인간이 가장 바라는 건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평화로운 일상이다.
배를 곯지 않으며 가슴을 괴롭게 만드는 생각에 매몰될 필요 없는 완벽한 일상.
하지만 이따금 평화가 아닌 그 반대의 것, 고난과 고통을 바라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족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주어지는 ‘죽음’이다.
이청신은 그들을 위한 살아 있는 어린 신이었다.
청신은 태어나자마자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흉성의 존재의 힘을 빌려, 그가 이 땅에 발생하는 모든 대재앙들을 막을 수 있다는 것과 그 반대의 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신은 흉성의 인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지했다.
인간이 만들어 내고, 느끼는 ‘감정’ 중, 부정적인 감정들은 모두 이 세상의 경계에 존재하는 흉성에 쌓이며 그것이 일정 선을 넘는 순간 청신을 삼키고 대재앙을 발생시킨다.
청신은, 자신은 그것을 다룰 줄 알아야 하며, 인간의 존속을 위해 그것들을 조절해 나가야 하는 의무를 가진 존재다. 그 과정에 다른 인간들의 희생이 있다고 해도 또 다른 인간들이 쌓이고 쌓인 재앙에 전멸하는 걸 막아야 했다. 그게 흉성의 인도자인 이청신의 역할이라는 걸 인지하자, 그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아빠, 청신이는 왜 안 웃어요?”
요람에 누운 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청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유현이 물었다.
유현의 손에는 아가들이 좋아한다는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과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장난감을 흔들어 보고, 이상한 표정도 지어 보고, 동물의 울음소리도 흉내 내 보지만 청신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유현과 청신 곁에서 가만히 책에 몰두하고 있던 아이들의 아버지, 이청현도 유현의 그런 상냥한 마음을 알기에, 부드럽게 웃으며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청신이는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봐요. 건드려도 무시해요.”
콕콕. 빵빵한 볼을 찌르는 손길은 조심스럽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반응 없는 동생의 모습에 유현은 뺨을 부풀렸다.
유현은 청신이 태어나길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처럼 동생 손을 잡고 다니며 맛난 걸 먹여 주고, 예쁜 것만 보여 주고 아껴 줘야지 하고 매일같이 다짐했다. 청신이 태어났다는 이야기에 아이들의 반응이 으레 그렇듯 유현은 정말 기뻐했다.
청신이 갓 태어났을 때는 쪼글쪼글하고 새빨간 게 굉장히 못생겼었는데, 좀 시일이 지나고 집에 오니 뽀송뽀송하고 부드럽고 촉촉하고 둥글둥글한 것이 귀여워졌다.
게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 꼭 구슬처럼 밝은 녹색 눈이 드러나는데, 아버지인 이청현과 똑같아서 유현은 더더욱 청신이 좋았다. 그래서 아껴 주고 싶었다. 좋은 형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건드리고 말을 걸어도 청신은 유현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허공을 본 채 가만히 있거나 눈을 감고 잠만 잔다. 울지도 않는다.
벌써 청신이 태어난 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반응도 없다. 그나마 청신이 반응을 보이는 건 송유원이나 이청현이 청신의 이름을 부를 때뿐이다.
유현은 아껴 주고 싶은 동생이 저를 무시하니 어린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은 듯했다. 청현은 울적해하는 유현의 몸을 안아 들고 작은 등을 토닥였다.
“다음부터는 청신이도 널 좋아해 줄 거야. 유현아, 가서 엄마 좀 도와주겠니?”
“엄마 일한다고 했어요.”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우리 유현이 먹을 과자 굽는다고 들었는데.”
“엄마한테 갈래!”
유현의 관심은 곧바로 과자에 쏠렸다. 청현은 버둥거리는 아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방문 밖까지 데려다준 뒤 문을 닫았다. 닫히는 문 너머로 투다다 소리를 내며 유원을 향해 뛰어가는 유현의 발소리가 났다.
방 안에 남은 건 요람에 누운 청신과 이청현뿐이었다. 청현은 웃음을 거둔 무표정한 얼굴로 청신을 내려다보았다. 청신은 여전히 인형이 잔뜩 매달린 모빌을 올려다볼 뿐이다.
“청신아.”
아이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청현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의 몸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겠지. 어차피 죽을 인간들을 굳이 네가 수고를 하면서까지 살려야 하는지 의문도 들지 않더냐.”
그제야 청신의 녹색 눈이 청현을 향했다.
청현은 아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저와 너무나 닮은, 인간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아름다운 얼굴로 태어난 다음 대를 이을 흉성의 인도자는 자신의 형제와 부모에게도 굉장히 무관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반응을 보인 것도 그저 지금까지 계속 모르는 척해 왔던 제 전대의 인도자가 갑자기 저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청현과 똑같은 녹색 눈이 의문을 품는다. 이놈이 무슨 생각이지? 하고.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청신의 눈빛은 도저히 아이의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도 그랬기에 청현은 여상하게 손을 뻗어 청신을 안아 들었다.
“이 세상에서 너만큼 너의 기분을 잘 아는 이는 나 말고는 없을 거다. 그러니 약속하마. 내가 널 데리고 준비한 신전에 가기 전까지, 아이답게 행동해 준다면 너를 흉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노라고.”
해방.
청신은 눈을 깜빡였다. 딱히 관심 없었다. 처음으로 자신과 연결된 흉성을 느꼈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청신은 이렇게 무력해지고, 무료해지고,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문득 청신은 보았다. 청현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를.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지만 아이의 눈은 어렵지 않게 그 잔상을 잡아 냈다. 청신은 그 그림자가 유현의 얼굴 위로도 스쳐 지나갔던 걸 보았기에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저것이 흉성에 쌓이는 힘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결론의 낙인과 같은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멀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청현의 다독임에 청신은 그냥 눈만 깜빡였다. 곧, 달콤하고 고소한 쿠키 냄새에 폭 절여진 유현이 입가에 부스러기를 묻히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유현은 매번 그렇듯 당연하게 청신이 누운 요람으로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며 다가왔다.
“청신아, 청신아! 형 왔다!”
“우아-.”
“헉!”
유현이 입을 떡 벌렸다. 눈길도 안 줬던 청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벙긋거리며 똑바로 유현을 보고 손 싸개로 감싼 손을 꼬물거렸기 때문이었다. 언뜻 방긋 웃는 것처럼 보이는 동생의 모습에 유현이 활짝 웃었다.
“내 동생!”
“유현아, 손 씻고 와서 만져야지.”
“아빠, 청신이가 웃어요!”
“그래, 그래.”
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청현은 한동안 흥분한 아이를 달래느라 고생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황급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송유원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그녀는 내심 걱정하고 있던 청신이 유현뿐만 아니라 제게도, 청현에게도 반응을 보이며 방긋방긋 웃기까지 하자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했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은 행복한 일상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행복한 4인 가족의 일상은 청신이 태어난 지 2년 만에 깨졌다.
청신의 생일날, 송유원이 급히 임무에 나가고 유현이 유치원에 갔을 때 청현이 청신을 데리고 잠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지방의 가장 깊은 곳에 형성된 작은 마을의, 오래전부터 청신만을 위해 만든 신전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전부가 흉성을 섬기는 적성교의 신도였다.
그들은 외부로 나가지 않고 대부분 마을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흉성의 인도자를 위해 자처하여 노예가 되었다.
그곳에서 청현은 본격적으로 흉성의 인도자로서 흉성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과 마법을 청신에게 가르쳤다.
청신은 솔직히 귀찮았다. 흉성으로부터 해방을 시켜 준다는 말 따윈 믿지도 않았기에 실망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귀찮은 일이 많을 거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결코 청현을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아, 부디 위대한 힘을 빌려주세요!”
적성교에서 교주의 옷을 입고 앉아 있노라면, 당장 내일 죽을 것 같은 검버섯이 핀 노인부터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청신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힘을 빌려 달라고 애걸했다.
재산을 노리는 아들을 죽이고 싶다.
가족을 죽인 사람을 죽이고 싶다.
자기를 폭행한 놈을 죽이고 싶다.
사기를 친 인간을 죽이고 싶다.
모욕을 준 사람을 비참하게 죽이고 싶다.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을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그런 인간은 살 가치도 없으니 죽여야 한다. 죽인다….
사람들은 고작 2살인 청신의 앞에서 서슴없이 타인을 향한 증오를 드러내며 남을 죽일 힘을 빌려 달라고 했다.
흉성의 힘을 이용하면 그것이 가능했다.
비슷비슷한 사연, 고리타분한 이야기. 증오의 연쇄였다. 청신에게 ‘자비’란 이름의,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타인의 죽음’을 바라는 인간은 너무나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