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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27)화 (127/159)

#127

윤원을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던 청신은 도유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하게 웃으며 도유의 시선에 응답했다. 도유는 ‘그만 좀 겁줘.’라는 뜻을 담아 눈을 찡긋거린 후 다시 윤원을 보았다.

그 때문에 눈을 파르르 떨고 눈썹을 찡긋거리며 안면을 움직이는 도유를 보고 청신이 입술을 꽉 깨물며 욕망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재수 없게도 그걸 본 건 제삼자인 윤원이었다. 윤원은 재빨리 도유를 보며 고르고 골라 온 과일 바구니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선배님, 이거 병문안 선물입니다.”

“…편히 앉으십시오.”

“넵! 감사합니다!”

불쌍할 정도로 눈치를 보며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는 윤원은 좀처럼 편히 있지 못했다. 보다 못한 도유가 청신을 돌아보았다.

“청신아, 부탁 좀 해도 될까?”

“네, 도유 형.”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다가온 청신이 빙하도 녹을 정도로 말갛게 웃으며 대답하자 윤원은 보면 안 되는 걸 본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

“병원 1층에 카페 있던데 거기서 내가 마실 음료수랑 이윤원 씨가 마실 것 좀 부탁해.”

“네, 좋아요. ‘이윤원 씨’? 뭐 마실래요?”

구체적인 메뉴를 말하는 순간 네 육체로 그걸 만들어 주겠다는 무언의 뜻을 알아차린 윤원은 덜덜 떨었다.

손가락 튕기는 것 한 번으로 사람을 차 밖으로 이동시켰던 마법사의 심기를 건드리면 이 병실이 있는 12층 창밖으로 이동시켜 버릴 것만 같았기에 윤원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갈증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저, 저, 저는 물로 충분합니다. 여차하면 화장실 물도 괜,”

“지난번에 과일이 들어간 주스를 마셨죠. 과일주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네….”

도유의 말에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인다.

“청신아, 제철 과일 음료가 있으면 그걸로. 이상한 수작 부리면 안 돼. 알겠지?”

“네에.”

늘어지는 대답에 도유가 눈을 치떴다. 이건 분명 이상한 수작은 당장 부리지 않겠으나 윤원이 돌아갈 때 뭔가 한다는 거다.

아니면 음료수에 어떤 짓을 한다거나. 도유는 청신에게 손짓하고, 숙이라는 뜻에서 손을 까닥였다. 순종하는 개처럼 청신은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숙였다.

“얌전히 있으면 네가 바라는 거 하나 해 줄게.”

“네! 다녀올게요, 도유 형.”

당찬 대답에 도유는 만족스러워하며 청신을 내보냈다. 그리고 멍하니 저와 청신을 지켜보던 윤원에게로 몸을 다시 틀었다.

아카데미 잠입 수사가 끝난 지가 언젠데, 여기에 오기 전에 또 청신이 윤원을 협박한 게 아닐까 잠깐 의심이 됐지만 청신의 모습이 사라지니 쪼그라들었던 사람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보고 일단 질문을 삼키기로 했다.

“병문안 오신 것 맞습니까?”

“네…! 지난번에 선배님이 그랬잖아요. 본부에서 만났을 때 마주치면 놀자고. 근데 좀처럼 마주칠 기회가 없어서 수소문해 보니까 입원하셨단 이야길 듣고 찾아왔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니 조금 부끄러웠는지 윤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병문안 와서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란 거 아는데요, 나중에 몸 상태 괜찮아지면 같이 놀러 가요. 그… 당연히 이청신 씨도 같이 말입니다, 네…. 저는 커플 사이에 낀 불순물이 되긴 하겠지만, 네.”

“제 소문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 카단 내에 떠도는 소문이라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제 병문안을 오시는 겁니까? 혹시 청신이에게 협박당했습니까?”

“어, 아뇨? 전혀 아니에요! 말씀드렸잖아요. 도유 선배님 안 보여서 찾고 찾다 보니까 입원하셨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진짜예요!!”

“…죄송합니다. 의도를 의심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믿어지지 않아서요. 소문을 듣고도 제게 직접 오신 분은 처음이라.”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전 정말 제가 본 것만 믿어서 소문 듣고 별생각이 없었는데… 혹시 별생각 해야 하나요?”

“이윤원 씨가 믿는 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도유의 대답에 윤원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헤헤 웃었다.

“나중에 놀러 가는 것,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다지 재밌는 상대가 아니겠지만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이윤원 씨.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도유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자 눈을 깜빡이던 윤원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희유 팀장님께서 실종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수사에 진전이 있습니까?”

의식을 차릴 때마다 성희유의 행방에 대해 청신에게 물어봤지만, 청신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얼버무리거나 도유가 다시 잠들 때까지 기다렸고, 몸 상태가 좋아졌던 어제와 오늘은 성희유를 언급하려는 순간에 울상까지 지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성희유에 대해 물을 수 있을까? 도유는 어쩌면 청신이 윤원의 병문안을 허락한 것이 나름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윤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웃는 걸 보면서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지금 성희유 팀장에 대한 건 제 권한으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것만 알 수 있어서…. 전 수사 현황도 알 수 없고, 누가 맡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으으음… 일단 아직까진 성희유 팀장이 본부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해요.”

“그렇습니까….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거면요!”

“최근 특수부 제1팀의 인원 변동 내역이 있습니까?”

특수부 제1팀은 여러모로 특수한 상황이라 팀원이 바뀔 경우 본부에서 그 정보를 공유한다. 특히 사망의 경우에는 더더욱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혹시나 사망자 명단에 연백휘의 이름이 있을까 가슴 졸이며 묻자, 윤원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없어요! 이건 확실해요.”

“감사합니다.”

바랐던 대답이 돌아왔다. 백휘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도유는 윤원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청신이 이 일인실에 도유를 감금 아닌 감금을 해 놓은 뒤 차단했던, 바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카단 내의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는 서현의 이야기도 있었다.

도유가 수사가 난항을 겪던 당시에 ‘피해자’를 발견해 데려왔던 터라 윤원이 병문안을 오기 전에 알아보고 왔다며 윤원은 눈을 찡긋거렸다.

사람들의 행복을 빌며, 행복해지는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는 범법자의 마법을 사용한 아이는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 속죄하려는 마음인지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네요.”

사진까지 찍어 온 윤원 덕분에 서현의 모습을 본 도유가 살풋 웃었다. 여전히 마른 손목으로도 품에 한가득 책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 제 팔뚝보다 두꺼운 책을 펼쳐 놓고 필기하는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생기가 있었다.

“마실 거 사 왔어요.”

청신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동 마법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청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윤원이 경기를 일으키든 말든, 느긋하게 도유에게 음료 잔을 건넸다.

“도유 형, 이거요. 딸기랑 바나나 섞은 주스래요.”

“고마워.”

“도유 형이 좋아하는 쿠키도 사 왔어요. 많이 먹어요. ‘이윤원 씨’. 여기요. 레모네이드예요. 레몬이 제철이고 이게 베스트 메뉴라 해서.”

“감, 감사합니다.”

과일주스를 주문했던 건 윤원이었지만 그는 군말 없이 공손히 레모네이드를 받아들였다. 예의상 한번 쭉 빨아 먹자 미친 듯한 신맛에 윤원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도유가 보기 전에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했다. 티 내면 창밖으로 이동시켜 버리겠다는 뜻을 담은 청신의 눈빛을 봐 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던 얘기, 마저 해요. 전 신경 쓰지 말고.”

사람 좋게 웃으며 청신이 도유의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신경 쓰지 않기에는 존재감이 너무나 또렷하고, 쓸모없는 이야길 하는 순간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 역력한 살벌한 눈빛이라 윤원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청신아. 눈.”

옆에도 눈이 달린 걸까. 열심히 주스를 마시고, 쿠키에 손을 뻗던 도유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청신은 재빨리 눈에서 힘을 풀었다.

그 변화를 바로 앞에서 목도한 윤원이 입을 달싹이는 사이, 도유가 폭탄을 던졌다.

“그럼 윤원 씨. 나중에 같이 놀자고 했던 것 말입니다만.”

청신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권유해 주신 대로 청신이도 함께 가도 된다면, 제가 그 전에 양해를 드릴 것이 있습니다. 전 청신이와 사귀고 있기 때문에, 윤원 씨가 불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도유의 말을 들은 순간 윤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거야, 이제는 카단 내에서 알 사람은 다 안다.

정보 출처는 사교성 좋은 특수부 제1팀 팀원 화영이었지만 윤원은 안다. 언제 윤원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냐는 듯, 수줍게 웃으며 도유를 보는 청신이 소문을 낸 진범이라는 걸.

어쨌든 커플 사이에 낀 사람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윤원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네요. 그럼 저 무서운 사람은 빼고 우리끼리 놀아요!’라고 하는 순간 목이 날아갈 게 뻔해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원보다 도유가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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