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도유는 서둘러 흐트러지려는 힘을 다잡고 청신을 노려보았다. 청신은 창백하게 질린 도유의 뺨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며 물었다.
“괜찮아요, 도유 형?”
“놔…!”
제 몸을 끌어안은 그를 떨쳐 내려고 했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꿈쩍도 안 한다. 단단한 벽을 밀어 내는 기분이다. 숨통이 조였다. 도유는 손을 뻗어 청신의 팔뚝을 움켜쥐고 힘을 사용했다.
“왜….”
팔이 얼어붙는데도 청신은 도유를 놓지 않았다. 적의가 없는, 애정만 가득한 눈으로 도유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에 도유도 더는 그를 제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툭. 팔뚝을 움켜쥐었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이런 제가 끔찍해요?”
도유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청신은 키스할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어쩌죠. 전 도유 형이 절 끔찍하게 여겨도 절대 안 놓아줄 건데.”
“…미,”
“미친놈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사실이기도 하고요.”
사랑에 푹 빠진 얼굴로 도유의 눈의 움직임도, 눈꺼풀의 떨림조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바라보던 청신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데 도유 형도 미친놈이잖아요.”
이놈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도유가 그를 노려보자, 청신이 입을 맞췄다.
청신이 도유의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도유는 피비린내만 나는 제 입 안을 헤집는 혀에 정신이 아뜩해지는 걸 느꼈다.
부드러웠던 움직임은 점점 거칠어져 갔다. 혀와 혀가 엉켰다. 뿌리째 삼키고 싶다는 듯 도유를 몰아붙이는 청신에 도유의 숨이 거칠어졌다. 힘없이 떨어트렸던 도유의 손은 어느덧 청신의 옷깃을 꽉 붙잡고 있었다.
이윽고 청신이 입술을 뗐다. 그에 눈을 뜨자마자 청신과 마주하게 된 도유는 열감에 젖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가 움찔하고 말았다.
“봐요, 미친놈 맞잖아. 나에 대해 알았는데도, 내게 놀아났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날 사랑하잖아요. 이게 미친놈 아니면 뭐겠어요?”
희열에 찬 웃음을 머금은 청신은 이 순간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 난….”
“숨길 필요 없어요, 도유 형.”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도유의 입술과 입가에 입을 맞추며 청신이 기쁘게 웃었다.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황홀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유 형이 저를 사랑한다는 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사랑에 푹 빠진 눈으로 날 보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눈 위로 입을 맞추는 청신의 입술에 도유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지 않으면 눈째로 그에게 삼켜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청신은 그런 두려움조차 사랑스럽다는 듯이 연신 쪽쪽거리며 입을 맞추고 눈가를 핥았다.
제 얼굴을 담는 눈이 사랑스럽다는 듯 길게 입을 맞추고 호흡을 하는 코도 예쁘다는 듯 콧등에 입을 맞추었다가, 제 목소리를 듣는 귀를 핥고 살며시 깨물기도 했다.
장난을 치는 이의 것이라기엔 짧은 입맞춤조차도 신자가 신에게 하듯 경건하며 무겁고 진중한 무게의 입맞춤이었다.
도유는 그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장 떨어지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무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청신의 목소리가 계속 머릿속에 웅웅 울렸다.
도유 형도 미친놈이잖아요.
아.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미친놈이 아니었다면 청신이 키스했을 때 혀를 잘라 낼 각오로 그를 거부했어야 한다.
청신이 도유를 가지고 농락했다는 것을 고해했으니 그 고해에 맞게 치죄했어야 했다. 이렇게 제게 집착하고, 정신적으로 속박하려 드는 그를 끔찍하게 여겨야 했다.
그러나 도유는 결국 그를 밀어 내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줄곧 바라고 바랐던 애정을 청신이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 또한, 제게 사랑을 갈구하는 동시에 사랑을 아낌없이 쏟는 청신을 분명히 ‘사랑’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를 밀어 낼 수 없었다.
청신이 죽지만 않는다면 도유는 그가 무엇을 해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범법자의 마법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분노하고, 이번에도 그가 저지른 일을 보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이해할 수 없다는 미지의 공포마저 사라졌다.
도유는 그저, 청신이 제 곁에만 있어 준다면 선과 악의 기준마저 바꿀 수 있는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인지하자 스스로에게 소스라쳤다.
“도유 형.”
입술이 떨어지고, 낮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도유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광채를 품은 청신의 녹색 눈은 집요하게 도유를 담고 있었다. 청신의 손이 도유의 한쪽 뺨을 감싸고, 그대로 어루만지듯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도유의 턱을 감싸 쥐어 들어 올렸다.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 그럼 전 영원히 도유 형의 사람이 될 거고, 도유 형은 제 사람이 될 테니까.”
악마의 속삭임이 있다면 청신의 목소리와 똑같지 않을까.
마음을 순식간에 헤집고 뒤흔들어 방향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말 한마디에 얽히게 될 ‘영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한 가지의 감정에 대한 갈급함만 느껴질 뿐이다. 타들어 가는 것처럼 목이 메었다.
결국 도유는 해갈을 선택했다.
“사랑해.”
입 밖으로 내뱉자, 텅 비어 있던 것이 점점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 떠밀리듯 가만히 저를 응시하는 청신을 보며 되새기듯 말했다.
“사랑해, 청신아.”
도유의 말에 청신이 환희에 물든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도유 형이 그렇게 말해 주기를, 계속 기다렸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도유 형.”
*
도유는 그날 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청신에게 사랑한다고 제 마음을 털어놓은 직후, 정신력도 육체도 한계에 다다라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기절했기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뒤에도 입원한 것도 몰랐다.
눈을 뜨자마자 도유가 본 것은 제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청신의 얼굴이었다. 청신은 도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적을 목격한 사람처럼 너무나 밝은 미소를 지었다.
“도유 형. 기다렸어요.”
“여, 큼, 콜록!”
말을 하자마자 기침이 터졌다. 청신이 기침이 멎을 때까지 기다린 뒤 도유의 입술에 물잔을 가져다 댔지만 제대로 삼키지 못하자 마법까지 동원해 방울방울 흘려 보내 주자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
“뭘요. 더 드릴까요?”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거절하자 이런 모습도 예쁘다는 듯이 청신이 방긋방긋 웃으며 도유의 뺨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간질거리는 손길을 견디기가 어려워 도유가 손을 들어 그의 손을 잡아채려던 때였다.
“…?”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한 순간 느껴지는 이물감과 당겨지는 느낌에 도유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를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손목을 감싼 가죽 소재의 수갑을. 수갑에 매달린 얇은 쇠사슬은 침대 기둥에 연결되어 있었다.
“응…?”
무심코 반대쪽도 보았다. 다행히 반대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링거가 연결되어 있어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도유는 눈을 깜빡이며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보다가, 설마 하는 생각에 발목을 보았다.
“……청신아?”
“네, 도유 형.”
“이게 뭘까?”
“뭐가요?”
뭘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청신이 가증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내내 도유의 곁을 밤낮없이 지켰는지 살짝 해쓱한 얼굴에 미모는 여전했기에 아름다워 보였지만, 도유는 그 미모에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손목이랑 발목에 왜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든?”
“아, 그거요. 제가 채웠어요.”
청신이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에 제가 말했잖아요. 한 번만 더 제 앞에서 자해하면 사지를 묶어서 감금해 버리겠다고. 원래는 지난번에 감금하려고 했지만, 그건 용서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준비만 하고 그만뒀었거든요.”
지난번은 또 뭔가 싶어서 기억을 되짚어 보던 도유는 어렵지 않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청신이 흉성의 힘에 쓰러졌을 때 정화해 보겠다고 그의 가슴 위에서 손바닥을 그으려고 했던 때가 분명했다.
기가 차서 눈만 깜빡이며 청신을 보고 있으려니 청신이 차분하게 도유의 목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줬다.
“도유 형, 다시 자요. 지금은 제가 마법으로 통증을 둔화시켜서 안 아프실 건데, 제 예상보다 효과가 짧거든요.”
“어?”
“의식도 없으면서 고통스러워하셨어요. 약은 이 이상 쓰면 위험하다고 해서 못 쓰니까, 일단 다시 자요. 의식 있는 상태로 아픈 것보다 없는 상태로 아픈 게 나을 테니까요.”
“잠, 잠깐. 여기 어디야?”
“병원이에요. 도유 형이 제게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뒤로 나흘 지난 시점이니 걱정 마세요. 결혼 준비는 제가 다 해 뒀으니까, 도유 형은 빨리 낫기만 하면 돼요.”
“병원이라고? 전혀 그래 보이지 않, 아니. 나흘이나 지났다니? 잠깐, 결혼?”
청신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충격의 연속이다. 생각을 제대로 정제하지 못한 채 버벅거리면서 내뱉던 도유는 마지막 단어를 제 입으로 내뱉은 뒤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런 도유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손으로 빗어 주며 청신이 나긋하게 말했다.
“저와 도유 형의 결혼이죠. 그러니 어서 자요, 여보.”
“…….”
누가 네 여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