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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23)화 (123/159)

#123

정령의 결계속에서도 아티팩트는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이미 확인해 뒀기에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치유 아티팩트를 청신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당장 대처를 해야 해요. 지랄 말고 총 내려놔요.”

“도유 형 내놔.”

“이대로 두면 도유 씨가 죽어요.”

“도유 형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굴었으면서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쇼일까.”

“그러게요.”

성희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청신의 말대로 도유가 죽어도 된다고, 감당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목을 벴을 때도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초조함이나 공포 따윈 없었다.

하지만 도유가 제 혀를 깨물어 자해를 하고, 이 나갈 길 없이 사위가 불의 벽으로 감싸인 공간에서 완벽하게 ‘죽음’을 인지하자, 성희유는 깨달았다.

도유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고.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덧없다. 냉정해지자고, 어차피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그러지 못했다.

도유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자 성희유의 머릿속에서는 그간 보아 왔던 서도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고 마른 볼품없는 몸으로 엉엉 울면서 제게 매달렸던 아이.

그런 주제에 팔 힘이 대단해서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첫 임무에 나갈 때는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도유를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도유가 좋아했던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겹겹이 쌓여 층을 이룬 시간이 20년이 되었다.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또 하나의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것을 깨달은 성희유는 스스로가 멍청했다는 걸 깨닫고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도유의 성장을 곁에서 보고 도와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실패하고 말았다.

정말 청신에게 복수를 하고자 했다면 이렇게 인질극을 할 게 아니라 도유를 죽인 뒤에 시작했어야 했다.

흉성의 힘이 걸린다고 해도 도유의 시신을 본 청신이 무너진 상태라면 그는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도유를 죽이지 못하고, 청신이라면 도유를 위해 죽으라면 반드시 죽을 걸 알기에 더 도유를 살린 채 동생의 복수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패착이었다.

“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러질 못했네요.”

그의 말이 진심임을 알아차린 청신은 잠시 성희유를 내려다보다가 총구를 거뒀다.

성희유는 바로 움직였다. 제일 먼저 손수건을 꺼내 목을 벴던 상처부터 지혈한 뒤, 도유의 입을 벌렸다.

너덜거리는 혀와 계속 흘러나오는 피를 본 성희유는 도유의 입을 벌린 상태에서 치유 아티팩트를 발동시킨 뒤 혀 위에 가져다 댔다.

성희유는 입술을 짓씹으며 집요하게 도유의 상태를 살폈다. 피를 삼킬 힘도 없어서 입을 벌린 도유의 몸은 이런 불로 된 감옥 속에서도 점점 차가워졌다.

다행히 치유 아티팩트의 힘이 듣기 시작했는지 느리지만 피가 멎어 가는 게 보였다.

“도유 씨. 정신 차려요. 제 말 들려요? 도유 씨.”

초점 없는 푸른색 눈이 성희유의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한다.

시력이 망가진 터라 제 얼굴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도유가 얼핏 웃는 걸 보자 속이 쓰렸다. 웃는 건 어릴 때와 똑같다. 원통할 정도로.

“지금 이곳을 빠져나갈 거예요. 조금만 더 참아요.”

지금 그들을 감싼 정령의 힘이 도유의 의도가 아니라는 건 도유마저 삼키려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불꽃을 보고 알았다.

“못 나가.”

성희유가 고개를 들었다. 무심코 청신 쪽을 본 성희유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청신의 손에 인형처럼 들려 있는 제 동생의 몸. 그리고 그 작은 아이의 머리에 겨눠진 총구.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만…. 그 아이는 내버려 둬요.”

되돌아올 수 없는 아이라 해도 숨이 붙어 있는 몸이다. 눈앞에서 동생이 죽는 걸 또다시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동생이 또 죽음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 하려던 짓이 고스란히 돌아왔음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올 거면 제게 돌아와야지, 무원이는 이렇게 또다시 생을 잃을 만큼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저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녹색 눈은 자비 따윈 없다. 성희유의 생각을 긍정하듯 청신이 천사처럼 웃으며 말했다.

“너는 못 나가. 너도, 네 동생도. 내게 칼을 겨눴으면 반드시 숨통을 끊었어야지. 어중간하니까 죽는 거야.”

총구는 아이의 머리에서 떠나 성희유의 미간 사이를 정확하게 겨눴다. 성희유는 이 와중에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무원이가 먼저 죽는 걸, 죽임을 당하는 걸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마지막으로 무원의 얼굴을 담고자 성희유가 제 동생을 바라본 순간, 청신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울렸다.

“도유, 형…?”

청신은 충격받은 얼굴로 도유를 보았다. 어느덧 성희유에게 몸을 지탱한 도유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탕!

처음엔 청신이 들고 있던 총을, 두 번째로는 청신의 어깨를 맞춘 도유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새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청신을 올려다보았다.

*

도유는 자신과 계약을 맺은 정령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고, 정령의 의지를 분명하게 들었던 것도 딱 한 번뿐이었지만 그간 쌓아 온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정령은 도유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임무 중에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령이 유달리 더 싫어하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도유는 카단에 입사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임무 중에 마법사의 정신계 마법에 당해 도유는 처음으로 자해를 시도했다. 제 손으로 손목을 그은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치명상이라는 걸 간파하고 손쓸 도리가 없던 때였다. 도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께 임무에 투입된 사람들은 도유처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고, 도유의 수중에는 치유 아티팩트도 없었다.

그러나 도유가 곧 다가올 죽음의 공포에 삼켜지는 것보다 먼저 정령의 힘이 폭주했다.

언제나 자연의 요소로 발현되었던 힘은 사방을 휩쓸어 버리는 파도처럼 격렬한 불꽃으로 커다란 결계를 만들며, 그 안에 있던 마법사들을 모조리 무력화시켰다.

동시에 도유의 몸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끌어다 써 보려고 해도 써지지도 않았던 치유의 힘이 발동된 것이다. 속도는 느렸고, 치유의 힘도 약한 듯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엔 충분했다.

처음에는 이런 정령의 반응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배신에 무너져 자신은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절망했을 때도, 양부모님을 모셨던 납골당이 화재로 무너진 뒤 속죄조차 할 수 없단 사실에 두려움에 가득 찼을 때도 정령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기에 도유는 이번에도 정령을 믿고 자해를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도유의 몸을 옭아맸던 성희유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성희유도 더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청신도 여전히 마법을 쓸 수 없다.

도유는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에 들어온 청신을 보았다. 다행히 시력도 조금씩이나마 회복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청신의 표정이 얼핏 보였다.

도유가 맞춘 건 권총이었지만 반동이 일어난 충격으로 손가락이 부러지고, 거기다 어깨에 총까지 맞았는데도 청신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청신의 발치로 뚝뚝 떨어지는 그의 피가 선명하게 보였다. 도유는 차라리 저 피가 제가 흘린 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어도 아파하는 모습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신은 도유가 자기에게 총을 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는지 평소의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버림받은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외롭고 공허한 얼굴로, 그는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째서? 도유 형이, 왜 나를 쏴요?”

털썩. 그가 들고 있던 무원의 육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희유는 곧바로 무원의 몸을 안아 들고, 도유에게 받은 신호대로 그의 뒤쪽에 섰다.

청신은 그런 성희유를 보지 못한 듯했다. 아니, 그의 세계에 순식간에 도유와 자신만 남게 되었다. 배신당한 사람처럼 허망하게 저를 바라보는 청신을 보며 도유가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성희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할 말이 많지만, 밖으로 나가십시오.”

“도유 씨.”

“팀장님 용서한 거 아니지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분명하게 따질 겁니다. 그리고 더 이상, 청신이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이 잘못했다는 건 압니다.”

도유는 잠시 말을 끊었다. 성희유에게 배신당하고 이용까지 당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아프고 혼란스러웠지만 할 말은 분명하게 해야 했다.

“다만 저는, 저 녀석에게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든 그런 일은 용납받지 못하겠지만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만 가십시오. 밖에서 수작질할 생각 마시고요. 이번에는 방심해서 당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서리처럼 자박거리는 음성으로 도유가 경고했다.

그런 도유의 모습을 보며 성희유는 그간의 관계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자처한 것이고, 알고도 선택했으나 자신이 한 각오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이 순간 다시금 자각하자 쓴웃음이 밀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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