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20)화 (120/159)

#120

정령의 힘을 사용하기 전, 도유는 제 손목에 휘감긴 보라색 빛을 보았다. 색은 여전했다. 백휘가 아직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는 안도하며 정령의 힘을 사용했다.

사륵. 눈이 쌓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도유와 성희유의 주변에 냉기가 머물렀다. 도유의 눈이 희미하게 빛을 품은 순간, 성희유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도유는 서둘러 성희유의 몸을 안아 지탱했다.

아이의 육신을 움직이던 마법이 정령의 힘에 의해 끊어진 것이다. 도유는 곧바로 정령의 힘을 거뒀다. 그리고 성희유를 부르려고 입술을 움직이던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한 게 보였다. 거미줄처럼 얇고 가느다란 데다 무수하게 많으며 옅은 빛을 품은 실이 자신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성희유의 몸을 감싼 팔에도, 어깨에도, 다리에도, 심지어 제 얼굴부터 목에도 연결된 듯했다. 도유는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

팀장님, 하고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입을 열기는커녕 혀를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박제되어 버린 것처럼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윽. 뒤에서 뻗어 나온 익숙한, 성인의 손이 도유의 눈을 가렸다.

“이렇게 사용하면 되는 거군요.”

머리 위에서 낮고 잔잔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몸이 아닌 성희유의 진짜 몸이 지닌 목소리였다.

도유는 혼란스러웠다. 성희유가 제게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은 그다음 이어졌다.

“고마워요, 덕분에 사용법을 알았네요. 그럼, 청신 씨가 올 때까지 잠시 자고 있어요, 도유 씨.”

성희유의 입에서 나온 연인의 이름에 의문을 품은 순간, 도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축 늘어지거나 바닥 위로 쓰러지지 않았다.

몸에 연결된 성희유의 인형 실에 붙들려 정신을 잃기 전과 동일한 자세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성희유가 도유의 눈을 가렸던 손을 거뒀다. 그러자 감겼던 눈꺼풀이 서서히 떠졌다.

푸른 눈동자에는 초점이 맺히지 않은 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성희유는 도유의 품에 안겨 있던 제 동생의 몸을 거둬 품에 안았다. 도유의 육신은 그 와중에도 성희유의 뜻대로 움직였다.

맨바닥에 무릎을 꿇은 도유의 손에는 어느덧 진갈색의 작은 병이 들려 있었다.

의식이 없는 도유에게 제 목소리가 닿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성희유는 말했다.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는 건 아니에요. 사물을 구분하기가 어렵게 될 뿐이니까 걱정 말아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유가 약병을 열어 내용물을 제 눈에 쏟아부었다. 부릅뜬 눈에서 약물과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고통스러웠는지 도유의 숨에 고통이 뒤섞였다. 그 모습에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성희유가 속삭였다.

“미안해요.”

*

이 세상은 너무나도 춥다. 호흡을 하는 것조차 고통이다.

생살에 닿는 공기는 몸을 찢는 칼날이며, 폐 속으로 스미는 공기는 불을 삼키는 것과 같다. 입술 사이로 빠져나가는 숨결조차 피를 토하는 고통이다.

눈을 뜨고 사물을 보는 것은 더욱 큰 고통이었다. 눈을 얇은 바늘로 계속해서 쑤시는 것처럼 아프고, 아팠다.

그냥 전부 고통스러웠다. 모든 게.

그런데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유는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눈앞에서 도유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이 인형처럼 아름다운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의 품에는 도유가 엉성하게 만든 곰의 형태도, 강아지의 형태도 아닌 이상한 인형이 안겨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받은 뒤부터 언제나 소중하게 안고 다녔다.

‘요즘은 한 번도 못 봤는데.’

도유는 고통으로 흐려진 의식 속에서 멍하니 생각했다. 평생을 간직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그렇게 아끼고 아꼈던 인형을 그 녀석의 집에서 목격한 기억이 없다. 버렸나. 그럼 좀 아쉽다고 생각하던 때, 아이가 말했다.

‘나는 인간에게 있어 재앙과 같아.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일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거야. 그러니까 난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아이는 아이답지 않았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어조. 초목이 시든 것처럼 가라앉은, 생기 없는 녹색 눈은 아이를 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도유에겐 이런 아이의 모습이 슬픔에 짓눌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아이는 제게 내밀어진 손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란 얼굴을 했다.

‘후회할 거야.’

손을 잡지 않은 채 아이는 경고했다. 도유는 자기가 뭐라고 말하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인식조차 없었다. 다만 아이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걸 보고 아이가 도유의 말에 동요했다는 건 알았다.

눈물을 쏟을 듯한 눈으로 도유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벙긋거리던 아이는 잠시 몸을 돌렸다. 이윽고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인형까지 곁에 내려 두고 뭔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뭘 하는 건지. 좀 더 아이를 자세히 보고 싶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도유가 아이에게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도유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통증에 도유는 눈을 찌푸리려다가, 눈이 감기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니. 눈이 감기지 않는 동시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윽….”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눈뿐만 아니라 온몸이 아팠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상태와 눈이었다. 눈물 때문인지 시야도 마치 손으로 문지른 것처럼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번진 것처럼 보였다.

“일어났어요?”

곁에서 들려온 성희유의 목소리에 느슨하게 풀어졌던 정신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겨지며, 의식이 끊기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떠올렸다. 도유는 숨을 삼켰다.

“큭, 팀장님….”

이제 말하는 건 할 수 있었지만 나머진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제 몸에 딱 맞춘 관에 끼인 것처럼, 혹은 고장 난 인형에 들어간 것 같은 이질감까지도 느껴졌지만 도유는 제 몸을 빠르게 점검했다.

그러다 자신이 정령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때문에 몸이 이렇게 아팠던 거였다. 목덜미에 소름이 확 끼쳤다.

자신은 정령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통제할 수가 없다. 끊어 내려고 했지만, 눈을 감을 수도 없었으며 기절을 할 방법도 없었다.

자신의 상태와 곁에 있는 성희유의 존재를 통해 도유는 자신의 육신이 완전히 성희유에게 통제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많이 아프죠? 미안해요. 조금만 참아요.”

“어떻, 게….”

“정령의 힘을 말하는 거라면, 도유 씨가 친절하게 알려 줬잖아요. 덕분에 봐요, 잘 쓰고 있어요.”

고개가 저절로 움직였다. 성희유의 뜻에 따라 고개를 들자 새하얀 것이 보였다. 사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눈으로도 정령의 힘이 돔처럼 그들이 있는 곳을 휘감은 것을 알아내기엔 어렵지 않았다.

“제 마법으론 생각보다 세심하게 컨트롤하는 게 까다로워서 초반에 실수 좀 했어요. 그래서 지금 도유 씨가 좀 많이 아플 거예요.”

“왜, 왜….”

바보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희유가 제게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자기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그래서 이러는 걸까? 그럼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기에 성희유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도유가 아는 성희유는 단순히 벌을 내리기 위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정령의 힘에 대해 도유 다음으로 잘 아는 사람이다. 카단에서, 아니 지금의 도유가 가장 믿는 사람이 성희유이기에 그의 밑에서 일할 때 서슴없이 정령의 힘에 대해 말해 줬던 거였다.

결코 이런 걸 예상하고 말한 게 아니었다.

“청신 씨를 불렀어요. 그가 죽을 때까지만 버텨 줘요.”

도유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청신을 이곳에, 도유가 사용 중인 정령의 힘으로 휘감긴 이곳으로 불렀다는 말도 이상했지만 그다음에 이어진 말이 더 이상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만 버텨 달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성희유의 말뜻은 청신을 도유의 힘으로 제압하고 그를 죽여 버리겠다는 말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신이를, 뭐라고요? 청신일-.”

“죽일 거예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였다. 평소의 그의 목소리와 다를 바 없는 어조였으나 그의 입술 사이로 나온 말은 상상도 못 했던 말이었다.

“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살하게 만들 생각이에요. 그 편이 더 괴로울 테니까요.”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왜?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가급적이면 저도 청신 씨가 제게 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 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방향을 바꿔 봤어요. 청신 씨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도유 씨니까, 도유 씨를 이용하면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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