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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18)화 (118/159)

#118

*

도유에게 백휘의 도주를 알리기 전, 성희유는 임무를 막 끝낸 백휘를 찾아갔다.

종료 보고를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던 백휘는 제가 연락하려던 사람이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걸 보고 드물게 놀란 얼굴을 했다.

더군다나 평소 성희유가 움직이던 아이의 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몸. 백휘는 묘한 불안감이 발치에서부터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떨쳐 내고자, 그는 평소보다 큰 움직임으로 성희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격식 있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손을 들어 백휘의 말을 막은 성희유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곳. 아직 식지 않은 피 웅덩이를 잠시 내려다보던 성희유가 입을 열었다.

“대화를 나누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네요. 잠깐 밖으로 나가죠.”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전에 서포트 팀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현장을 정리하고, 공기 중에 누적된 마법의 흔적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서포트 팀에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을 조작하던 손 위로 성희유의 손이 겹쳐졌다.

백휘가 잠깐 멈칫한 사이, 그의 손이 마치 제 것을 가져가듯 백휘의 핸드폰을 가져갔다. 백휘는 질문을 하는 대신 차분한 얼굴로 성희유를 보았다. 성희유는 그의 핸드폰을 제복의 가슴 주머니에 직접 넣어 주었다.

“제가 가고 나면 그때 연락해 주세요.”

이 만남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길 바라고, 기록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백휘는 성희유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가 바라는 대답을 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따라오세요.”

성희유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소리도 없이 따라 걸으며 백휘는 성희유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가 움직이던 동생의 몸은 지금 본부에 있는 걸까? 평소의 성희유는 단 한시도 자신의 동생의 몸을 멀리 떼어 놓지 않았다. 어떤 임무를 가든 그 몸으로 갔고, 반드시 지켜 냈다.

제 본체로는 어떤 상처를 입어도 적당히 치료하는 주제에, 동생의 몸에 스친 작은 상처, 예를 들자면 종이에 베인 상처라도 생기면 중병을 예방하는 사람처럼 치유 아티팩트를 아끼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본부와의 거리가 하루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자신의 몸으로 직접 찾아왔다. 동생의 몸은 다른 곳에 두고. 단 한 번도 없던 ‘이변’이다.

이런 성희유의 이변이 걱정되는 한편, 백휘는 이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의 얼굴이 떠올리고 저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이 자리에 도유가 있었으면 울먹였겠지.’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 수십 번은 머릿속에서 되뇌어 보면서 성희유의 눈치를 볼 서도유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도유는 어릴 때부터 유독 그랬다. 성희유를 형처럼 따르고 부모처럼 따랐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 조금만 관찰해 보면 성희유를 의지하는 게 눈으로 보였다.

성희유는 선을 긋고 그 선을 지키는 사람이지만 도유를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지 그도 은근히 도유를 챙겨 주고 아껴주는 면이 있었다.

사소한 문제라면 그 아껴 주는 언행이 굉장히 ‘엄격한’ 축에 해당됐다는 것이고 그에 도유는 성희유에게 혼날 거리가 생길 경우 굉장히 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잠시만요.”

성희유가 멈춰 선 곳은 수풀이 드높게 자란 공터였다. 그들이 빠져나왔던 하우스와의 거리가 제법 되었다.

성희유는 작은 크기의 권총을 꺼내 하늘을 겨누고 쐈다. 아티팩트가 발동하며 그들 주변에 유리 같은 표면의 돔 형태의 막이 쳐졌다.

공간을 차단하는 마법이다. 이 정도라면 추후 흔적도 남지 않아 어떤 방법으로든 알아낼 수 없을 터였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이제 이야기해 볼까요.”

“예,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말을 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한없이 충성스러운 백휘를 보며 성희유는 빙긋 웃었다.

아이의 모습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웃음은 어딘가 서늘했지만 백휘는 묵묵히 기다리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백휘 씨가 제 밑에서 일한 지 22년쯤 됐죠.”

“네, 그렇습니다.”

“처음 제 밑에 들어오면서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네, 기억합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흡족한지 성희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진해진다.

백휘는 그 웃음을 마주한 순간 처음으로 성희유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백휘를 몇 번이고 살렸던 예감이 그에게 듣지 말라고 속삭인 것을 알아차렸기에 충동은 거세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만들어진 거대한 석상처럼 서서 성희유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백휘 씨는 저를 위해 죽어 주시겠다고 했죠.”

과거에 백휘가 했던 말이 성희유의 입을 통해 재현되자 가슴속에 불을 지핀 것처럼 불안감이 싹텄지만 그는 대답했다.

“예. 저는 성희유 씨를 위해 죽을 겁니다.”

‘팀장님’이 아니라 성희유라는 개인을 위한 것임을 다시금 강조하자 성희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날 위해 죽어 주세요. 일주일 뒤, 임무 종료를 하는 날. 카단의 모든 연락을 무시하세요.”

백휘에게 가까이 다가온 성희유가 손을 뻗었다. 그가 손에 쥔 권총의 끝이 백휘의 턱을 살짝 누른 채 그대로 훑듯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 총구가 멈춘 것은 그의 목을 감싼 초커였다.

카단에서 특수부 제1팀을 임무에 투입시킬 때마다 채우는 목줄은, 특정 경로 이탈 시 고통을 가하며 최악에는 목을 날려 버리는 폭발 마법이 걸려 있었다.

카단에 소속된 특수부지만, 사형수인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한 목줄을 총구로 꾹 누르며 성희유가 상냥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리고 당신을 옭아맨 목줄을 끊고 도망쳐 주세요.”

“…!”

차라리 이 자리에서 자살하라는 거였다면 지체 없이 허리춤에 숨긴 나이프로 제 심장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도주는….

“누가, 저를 쫓게 되는 겁니까.”

백휘의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아주 미세한 균열이었지만 성희유는 그걸 알아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도유 씨가 당신을 쫓게 될 겁니다.”

부디 아니기를 바랐던 이름이 들려오자 백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팀원도 아니고 도유다.

도주한 팀원을 사살하는 역할도, 역으로 당하게 되어도 도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 것이다.

아물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곪고 피를 흘리게 될 상처라는 걸 알아차린 백휘는 성희유에게 차라리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싶었다.

그사이 성희유는 권총을 거두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혼란과 슬픔으로 범벅이 된 백휘의 눈을 관찰하듯, 혹은 감상하듯 바라볼 뿐이다.

그에 백휘는 알게 되었다. 자신을 보는 주홍색 눈이 완전히 빛을 잃었다는 것을. 총명함과 희망으로 반짝이던 주홍색 눈은 절망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으나 진심으로 경애하는 이의 눈을 보자 가슴이 조여 왔다.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가 아는 성희유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잔인한 짓을 벌일 이가 아니다. 어지간한 일로는 이렇게 무너져 망가질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백휘는 허리를 숙였다.

“제발 알려 주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언제나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했던 백휘의 목소리는 감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성희유의 시선이 고개를 숙인 머리 위로 쏟아지는 걸 느꼈지만 백휘는 성희유가 입을 열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자신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백휘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알려 준 인간이 성희유였다.

그런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런 백휘의 간절함이 닿기라도 한 것인지, 미동도 없이 백휘를 묵묵히 내려다보던 성희유가 입을 열었다.

“고개 들어요.”

“…….”

“전부 말해 줄 수는 없어요. 당신이 짊어질 게 아니니까.”

온전히 자신만 짊어져야 한다는 어조다. 백휘가 고개를 들자 마주한 건 쓰게 웃는 성희유의 웃음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평소의 백휘가 알던 성희유였다.

“이건 복수예요.”

그렇게만 말하고 성희유는 입을 다물었다. 백휘는 입 안까지 차오른 질문을 삼켜 냈다. 그의 복수는 이미 끝난 게 아니었던가.

카단의 차기 협회장이 될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능했던 성희유가 특수부의 제1팀 팀장이 된 계기가 바로 그 복수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성희유에 대한 증오와 질투로 사고를 위장해 그의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잔인하고 잔혹하게 죽였던 것으로 그는 복수를 끝냈다.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복수’라니. 심지어 그 대상이 서도유였다.

“도유 씨에게 복수하는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도유 씨가 필요할 뿐이죠.”

백휘의 의문을 읽은 것처럼 성희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몸처럼 아끼고,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를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잃게 되는 슬픔과 고통을 그 녀석도 겪어 봐야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질문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성희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성희유의 말에 따르면 그의 말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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