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16)화 (116/159)

#116

“저건….”

CCTV 화면이었다. 건물 내 휴게소로 보이는 곳. 한 남자가 입술을 짓씹다가 발작하듯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손에 쥔다.

이윽고 남자가 무언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하게 종이를 찢었다. 그 순간 화면이 진동하며 그대로 뚝 끊겼다.

“자세한 건 사건 현장을 지휘 중인 사건 대응팀 팀장과 치유부 제1팀 팀장이 알려 줄 겁니다. 어서 출발하세요.”

성희유의 말에 도유와 백휘는 고개를 숙이고 팀장실을 나갔다.

*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깊이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어 보이는 거대한 싱크홀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일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백휘와 청신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도유는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급차와 소방차, 그리고 경찰부터 카단의 제복을 입은 이들을 비롯해 각 마법 관련 단체에서 싱크홀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모여들어 온갖 소리로 가득했다.

싱크홀이 더 발생할 수 있기에 인근 사람들을 대부분 대피시켰으나, C&V 본사에 근무하는 가족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들도 많았다. 오열하거나 빨리 구해 내라며 협회 사람의 멱살을 쥐는 사람도 있었다.

비행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들이 아래에 내려가서 구조 작업을 위한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보였지만 갈 길이 멀었다.

카단의 마법사들은 모여서 예상했던 것보다 본사 건물이 멀쩡하여 생존자가 많을 거라 희망을 품고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논의를 했다.

평소라면 귀를 쫑긋 세우고 논의 내용을 들었을 도유는 도무지 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야도, 머릿속도 아수라장이다.

싱크홀 아래에서부터 거품처럼 올라오는 붉은 마력의 흐름이 도유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자연의 마력과 뒤섞인 붉은색이 생명을 태우는 불꽃처럼 보일 정도였다.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쉼 없이 의문을 자아내고 있었다.

도유는 자꾸만 청신을 보려는 눈을 애써 앞을 향해 고정시켰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청신이 범법자로서 사람들에게 마법을 주는 이유는 흉성에 넘쳐흐른 부정한 에너지를 덜어 내어 대재앙을 소재앙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그걸 하지 않으면 청신의 몸이 아파진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된 도유는 정말 최선을 다해 청신의 몸에 넘실거리는 부정한 에너지를 정화시켰다.

하지만 그걸론 모자랐던 걸까? 범법자의 마법이 또다시 나타났다. 성희유의 말에 따르면 저 아래 건물 안에 있을 남자가 마법을 받은 건 어제였다.

어제. 도유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청신이 어제 뭘 했는지. 그러나 도유는 알 수 없었다. 호텔에서 나온 뒤에 자신이 집에 들어가고 싶다며 헤어졌으니까. 청신은 아쉬워했지만 순순히 도유를 놓아주었다.

그때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는 생각의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청신의 심장에 가득했던 부정적인 에너지를 정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게 아닌지, 그것부터 생각했어야 했다. 그래서 저 녀석이 어쩔 수 없이….

으득.

어금니를 꽉 깨물자 턱이 아려 왔지만 힘을 풀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청신이 범법자의 일을 다시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

성화의 마도서가 있던 곳에서 만난 그의 아버지와 다시 만난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도유 형.”

바로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이 저절로 그리로 향했다. 청신이었다. 반가면을 쓴 터라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언뜻 웃는 것처럼 보였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도유는 울컥하고 말았다. 이 악몽을 제공한 장본인은 마치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것처럼 홀로 여유로웠다. 당장 따져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끝났어? 어떻게 할 거래?”

“역시 안 듣고 있었네요.”

“그,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집중이 안 됐어.”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설명해 줄게요.”

착각이 아니었다. 청신은 웃고 있었다. 그는 데이트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롭게 도유의 경직된 얼굴을 손끝으로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육체 강화에 특화된 마법사들이 먼저 내려가서 건물 내부에 들어가 생존자를 구출하기로 했어요. 다른 마법사들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땅 속성 마법을 이용해서 건물을 지탱하고요.”

“그렇구나. 알려 줘서 고마워.”

“서도유 씨. 건물 내부 수색 작업 관련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잠깐 와 주세요.”

마침 현장 지휘를 맡은 사건 대응 팀 팀장이 도유를 불렀다. 내부에 투입될 건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을 애써 만들어 내며 청신에게 말했다.

“다녀올게.”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도유는 곧장 문을 돌려 팀장이 손짓하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망치듯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쏙 들어가 버리는 도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청신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이건 곤란한데….”

짧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도유는 한 번도 청신의 눈을 보지 않았다. 아니, 카단 본부에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신은 도유가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호텔에서 몸을 섞는 내내 제 몸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으니 도유로서는 현재 범법자의 마법으로 인해 일어난 이 참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청신도 그가 이해하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그렇기에 의뢰를 받고, 마법을 주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카단이 마법을 받은 의뢰인을 빨리 찾아내서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청신에게 있어서 도유 외에는 전부 자신과 관계없는 인간이기에 그는 담담하게 마지막 실험을 할 뿐이었다.

이번 일로 도유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면 청신은 도유를 잡아 눈을 막고, 힘줄을 끊어 평생 그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새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만약 도유가 도망치지 않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자유를 줄 것이며, 그가 바라는 대로 살 것이다. 만일 청신이 죽길 바란다면 죽어 줄 생각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를 끊임없이 사랑해 줄 사람을 원해. 나도… 날 사랑해 줄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일을 했든 끊임없이 사랑할 테니까… 그러니 나도, 그런 사랑을 받고, 하고 싶어.’

어린 도유가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청신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도유에게 소원을 이루는 마법을 주었었다.

오히려 자신이 준 마법이 도유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지만.

결국 도유는 마법을 사용하고도 자신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서도유는 청신과의 약속을 이행해야 했다.

약속의 이행을 위해, 청신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도유가 평생 알 일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지만 청신에게 있어선 이 아픔 또한 감미로운 사랑의 고통이었다.

살며시 붉어진 뺨으로 청신은 저 천막 안에 들어간 도유를 떠올렸다. 당장 저 안에 들어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에게 키스하는 것으로 그가 제 소유임을 주장하고 싶었다.

그럼 도유는 당황하며 청신을 떨쳐 내려고 할 것이다.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겠지. 제 어깨를 잡아 밀어 내는 손을 잡아채 손끝부터 깨물고 길게 핥고, 잘근잘근 깨물면 어떤 표정을 할지 궁금했다.

상상이 깊어질수록 충동은 더욱 거세어져 갔다. 청신은 제 안에서 밀려오는 충동을 억누르느라 한동안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청신 씨, 이동하셔야 합니다.”

“네. 알았어요.”

때마침 말을 걸어온 카단의 제복을 입은 이의 말에, 청신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

사망자 23명, 부상자 145명, 실종자 1명.

사망자는 기이하게도 중간층에 있던 영업 홍보 팀에 근무하는 팀원들뿐이었다. 그들은 정말 기이한 형태로 죽었다.

싱크홀로 건물이 폭삭 주저앉으며 혀를 깨물고 죽은 직원들도 있었고, 의자 다리에 가슴이 관통당해 죽는 등, 건물의 일부 붕괴에 의한 죽음보다 그 과정에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실종자는 영업 홍보팀에 입사한 지 1년 되어 가는 막내, 즉 CCTV 영상에 나왔던 범법자의 마법을 사용한 남자뿐이었다.

세간에서는 지하 50m나 되는 곳에 건물이 뚝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이 붕괴가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 그 덕분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있되 실질적인 건물 붕괴 등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것들이 전부 C&V 본사 건물을 지을 당시에 온갖 테러를 대비하여 보호 마법과 충격 완화 마법, 자동 부유 마법 등을 철저하게 걸어 둔 덕분이었다.

땅바닥이 꺼지는 충격이 발생한 순간 건물 전체를 감싼 보호 마법과 각 층에 구비되어 있던 방어 계열 마법들이 한순간에 발동되었다. 이것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며, 뜻밖에도 그쪽과 관련된 마법 시장에 호황을 불러왔다.

도유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도유가 구출 작업에 투입됐던 게 바로 한 달 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시간 동안 바쁘고 일이 고되다는 핑계로 청신과 만나는 시간과 연락을 대폭 줄이고 있었다.

도유는 청신과 본부에서 마주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매일매일 꾸준히 싱크홀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머물렀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고집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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