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12)화 (112/159)

#112

몇 시간 동안 그 과정을 반복하던 성희유가 펜을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더듬어 나아가는 사람처럼 자신이 적은 메모와, 청신이 자신에게 주었던 마법을 공들여 읽고는 내려놓았다.

주영연을 죽여 기억을 뽑아낸 성희유는 그가 자신에게 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았다. 주영연의 말대로 그는 청신과 22년간 알고 지냈다.

적성교에서 처음 만났으며, 적성교가 사라진 뒤에는 그가 적성교 신자라는 걸 몰랐던 송유원이 그를 친구로 붙였다. 그렇기에 그는 청신이 송유원과 자신에게 준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탁. 스탠드의 불을 끈 뒤 성희유는 그 방을 빠져나갔다. 이어 그의 걸음이 향한 곳은 동생의 몸을 재워 놓은 방이었다.

똑똑.

“들어갈게, 무원아.”

응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노크를 하고 이름을 부른다. 문을 열자 침대에 누운 동생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못 박혔다.

성희유는 한동안 문가에 선 채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던 마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청신이 준 마법만이 저와 제 동생의 희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 삼킨 영연의 기억에 휘둘려 갈팡질팡하는 꼴이다.

성희유는 흔들리는 자신의 심중을 깨닫고 최대한 차분하게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그만두었다.

이윽고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협탁에 놓인 책으로 손을 뻗었다.

과거 동생이 좋아해서 매일같이 읽어 달라 했던 동화책. 그것을 무릎 위에 펼쳐 든 성희유는 동생에게 제 목소리가 닿길 바라며 또렷한 어조로 읽기 시작했다.

동화책을 반절 정도 읽었을 즈음, 성희유가 동화책을 내려놓았다. 그것을 읽어 내려가던 목소리도 뚝 멈췄다.

그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시선을 발치로 떨어트린 채 그대로 굳어 버린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그 상태로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화책을 원래 있던 곳에 되돌려놓은 그는 핸드폰을 꺼내 조작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동생의 몸을 안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

평소에는 동생의 몸으로 걸었던 길디긴 복도를 지나 성희유가 도착한 곳은 카단의 최상층, 협회장이 있는 방 앞이었다.

성희유가 문 앞에 멈춰 서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을 직접 열어 준 이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협회장, 송유원이었다.

“…별일이네.”

송유원의 시선이 일순 성희유의 품에 안긴 그의 동생의 몸을 향했다. 그녀는 들어오라는 듯이 문 앞에서 비켜 주었다.

성희유는 고개를 끄덕여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는, 익숙하게 제 동생의 몸을 한쪽 소파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네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것도 놀라운데, 원래의 몸으로 올 줄은 몰랐어.”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성희유가 대답했다. 이 자리에 있는 건 특수부 제1팀 팀장 성희유가 아니라 송유원의 동기인 성희유였다.

훈련소에서 뒹굴고, 성희유가 특수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목숨이 오가는 사건 사고 현장에서 함께 생사를 나눴던 동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희유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인륜과 동시에 마법사의 의무를 저버렸다.

인형술사로서 카단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생포된 뒤부터 그는 단 한 번도 송유원을 사적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특수부 제1팀 팀장으로서 그녀에게 존댓말을 하고 공적으로만 대했다.

송유원은 그랬던 성희유로부터 제게 ‘지금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사적인 연락이 왔을 때부터 줄곧 긴장했다.

그에게 어떤 심경 변화가 생겼다 한들,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른 이유이기를 바랐다. 부디 지금 소파에 내려놓은 동생 때문이 아니길 바랐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 거의 30년 만에 이렇게 대화하는 거잖아?”

송유원의 말에 성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성희유가 동생을 뉜 소파의 바로 옆에 앉는 걸 보고 고개를 돌렸다.

성희유가 제 동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녀 또한 그와 똑같은 고통을 받았기에 그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송유원이 차를 내올 때까지 성희유는 아무 말도 없이 테이블만 노려보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은 송유원은 그제야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네가 좋아하던 차야.”

그녀의 말에 성희유의 시선이 찻잔으로 향했다.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가라앉은 눈에 약간의 생기가 돈 것을 확인한 그녀는 성희유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던 것.”

그가 조금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의 반응을 이해했다. 동생의 몸으로 있을 때는 그렇게 건강 관리며 식단에 신경 쓰는 그는 자신의 진짜 몸에는 소홀했을 것이다.

“유원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런데 내 질문이 너를 괴롭게 만들 거야.”

“짐작은 하고 있으니 말해 봐. 애초에 네가 언제 그런 걸 신경 썼던가?”

함께 팀으로 일할 때처럼 가벼운 어조로 대답한 유원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남편을 제 손으로 죽인 날부터 줄곧 쓰고 있던 가면이 사라지고 ‘송유원’이라는 한 명의 인간이 그 자리에 있었다.

“네가 네 첫째 아들에게 내가 무원이에게 사용한 마법과 똑같은 마법을 사용했다고 들었어.”

첫째 아들의 언급에 그녀는 일순 표정을 굳혔다. 이윽고 그녀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정보는 다 통제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샜구나.”

아무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정보를 막는다 해도 그때 반쯤은 이성이 나가기 직전이었어서 새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의 긍정과 다를 바 없는 대답에 성희유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내 건넸다.

“이 마법식이 맞는지 봐 줘.”

종이를 받은 송유원의 보라색 눈이 종이 위로 떨어졌다. 성희유가 꾹꾹 눌러 쓴 흔적이 가득한 수식이 가득한 종이. 처음부터 끝까지 훑은 송유원이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맞아. 내가 받았던 마법과 똑같아. 희유야, 너도 그 아이에게서 받았던 거지?”

당시 적성교에 있던 아이, 이청신을 가리키는 말임을 안 성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유원이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성희유가 물었다.

“넌 어째서 네 아들을 포기한 거지? 내가 아는 넌 결코 네 아들을 포기할 사람이 아닌데.”

“…나는….”

송유원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성희유를 향한 연민과 동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또한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과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 그리고 자책감에 파묻혀 눈동자는 본래의 색을 잃었다.

그동안 애써 가슴에 묻고 있던 감정이 오래된 인연과 같은 슬픔을 느낀 동시에 새로 알게 될 진실에 절망하게 될 그를 향한 연민이었다.

“말할 수 없어.”

그녀의 말에 성희유의 표정이 달라졌다.

“말해.”

“…….”

“유원아. 제발.”

성희유가 호소했다. 평소의 송유원은 감정적으로 호소할수록 냉정하고 냉철해지는 성격이다. 하지만 성희유를 향해서는 그 반대였다. 성희유의 호소에 그녀는 무릎 위로 주먹을 쥐었다.

“…미안해.”

그 말에 성희유는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그의 주홍색 눈이 싸늘하게 송유원을 훑었다. 그는 송유원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성희유를 배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하나 남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침묵을 선택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내가 네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뿐이야. 마법의 영역이 더욱 그렇지. 우리는 미지(未知)를 이해하지 못해.”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내 동생에게 수천의 마도서의 힘을 사용해 줘.”

“……희유야.”

“의미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것만큼은 시도하지 못했으니까 해 줬으면 해.”

“알았어.”

송유원이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 희미한 빛이 어리며 빛으로 된 형태를 만들어 냈다.

투명한 물줄기가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청아한 물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 위에 마도서가 나타났다.

아니. 그것을 책이라 해야 할까? 오로지 물과 빛으로 이루어진 형태였다.

송유원이 한 손으로 마도서를 펼치자 정말 책을 펼치는 것처럼 형태가 바뀌었다. 그녀의 시선이 성희유의 동생을 향했다.

이윽고 그녀는 책에 손끝을 올리고, 그대로 물결을 끌어냈다. 그것을 본 순간 성희유는 어째서 ‘수천’의 마도서를 수천이라 명명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끌어낸 것은 생명의 흐름 그 자체였다.

도저히 그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경이로운 힘이 동생의 몸에 조금씩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성희유는 주홍색 눈을 한 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물결이 점점 얇아지고, 이윽고 멎을 때까지 가만히 동생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동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마워, 유원아.”

성희유는 다시 동생을 안아 들었다. 그녀는 슬픔이 역력한 눈으로 성희유를 지켜보았다.

그의 기다림은 그녀의 기다림보다 더 오래되었다.

미쳐 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여전히 희망을 놓지 못했던 성희유가 그녀의 아들이 준 마법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그녀가 뒤늦게 알아 버린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송유원은 하나 남은 아들을 깊이 사랑하고 동료를 아꼈다. 그렇기에 회피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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