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10)화 (110/159)

#110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아팠던 걸 숨겼던 것인지 온갖 상상을 하며 도유는 일단 치료부를 호출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카단의 본부와 떨어진 지사 중 하나. 이곳에 상주하는 치료부 소속은 없지만 호출하면 10분 내로 올 터였다.

그러나 청신의 손이 전화를 걸려던 도유의 손을 막았다.

“비밀로…. 은하 형한테, 전화, 좀…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면서 청신이 제 핸드폰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밀었다. 무심코 받아 조작하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문구를 보고 도유가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지문도 얼굴 인식도 아니고…! 난 네 비밀번호 몰,”

“우리 처음 잔 날….”

“…….”

도유는 묵묵히 손가락을 움직여 비밀번호를 풀고 연락처 목록에서 은하 형이라 저장된 사람을 발견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산은하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그의 곁에 서 있던 도유는 침대에 누운 청신을 내려다보았다.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고통스러워하던 청신이 차라리 기절을 하길 바랐던 것이 무색하게 청신은 끝까지 기절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저 약 기운에 취해서 잠든 것뿐이었다.

“청신이에게 무슨 지병이라도 있는 겁니까.”

도유의 질문에 은하가 짐을 챙기다 말고 도유를 보았다.

19년 전, 환상열석 사건에서 범법자로 의심받았던 은하는 자신을 취조하러 왔던 특수부 제1팀의 제복을 입은 서도유와 그날 이후 직접 대화하는 게 처음이었다.

청신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예외다. 급박한 상황이라 긴말이 필요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은하는 목 아래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키느라 잠시 침묵한 뒤, 청신과 도유를 한 번 번갈아 보고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청신 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산은하 씨를 불러 달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은하는 그것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는 성화의 마도서에 대해 조사를 했고, 청신이 도유가 그것을 회수하러 가기 전에 어떤 수작질을 했는지 짐작했기에 그것에 대해 물은 거였다.

청신이 아픈 이유는 흉성 때문이다.

그는 흉성에 쌓이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추후 대재앙으로 변환되는 그 힘을 덜어 소재앙으로 만들어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왔다. 하지만 근래에 그는 그 횟수를 줄이고 있었다.

그 탓에 흉성의 힘이 덜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청신이 치러야 했다. 은하는 도유의 표정을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이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알고 있었다면 청신이 지금 이렇게 단번에 앓아누운 이유를 알고 다른 이야길 해 주었을 테니까.

청신이 도유와 사귀고, 신혼여행지까지 알아보는 모습에 전부 공유하고 이해한 줄 알았던 은하는 최대한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렇다면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청신 님께서 깨어나면 이 약을 먹여 주십시오.”

은하는 약을 건넨 후 도유가 붙잡기도 전에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도유에게 붙들려 질문 공세를 받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깨어난 청신이 뭐라고 할지 몰랐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청신이 질투심이 굉장히 심한 성격임을 진즉 간파했다. 은하는 제가 충성하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빠르게 집 밖까지 나갔다.

잠든 청신과 단둘이 남겨진 도유는 황당해하며 은하가 떠난 문을 보았다. 그러나 곧 몸을 돌려 침대 곁에 앉았다.

청신의 집. 청신의 방. 도유는 동화책에서 읽었던 숲속에 잠든 공주처럼 미동도 없이 잠든 미인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이미 청신이 아픈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에는 청신의 심장을 휘감고, 혈액처럼 전신에 퍼져 나가는 흑암처럼 새까만 빛의 흐름이 선명하게 보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인간들이 쌓아 올린 부정한 에너지라네. 그리고 이것들이 최종적으로 고이는 곳이 흉성일세.’

청신을 괴롭게 만들고 있는 힘은 성화의 마도서가 있던 방에서 만난 그의 아버지, 이청현이 말했던 그 ‘부정적인 에너지’라는 거였다.

‘나와 내 아들, 흉성의 인도자는 본디 이 흉성이 넘치기 전에 대재앙을 소재앙으로 나누어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내 아들이 자네를 죽이지 않았으니 여전히 그 아인 흉성에게 잡혀 있다는 거겠지.’

추론을 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도유는 손을 뻗어 잠든 청신의 뺨을 조심스럽게 건드려 보았다.

평소에는 도유의 작은 움직임에도 귀신같이 눈을 뜨고 방긋 웃던 녀석이 시체처럼 잔다.

청신의 뺨을 쿡쿡 찌르고, 이내 잠든 아이를 쓰다듬듯 어루만지며 도유는 생각에 잠겼다.

‘서현이 일 이후에 범법자의 행적이 뚝 끊겼어.’

범법자의 사건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몇몇 일어난 걸 봤지만 잘 살펴보면 다른 마법사에 의한 것들이었다.

흉성에 쌓인 부정적인 에너지가 과포화 상태라서 청신이 아플 가능성이 높다.

도유는 이청현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고 일련의 사건들을 되풀이해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게 심호흡을 하고 침대 위에 올라갔다. 양 무릎을 침대에 붙이고, 청신의 가슴께까지 덮인 이불을 걷어 냈다. 옷을 갈아입히지는 못한 탓에 구겨진 제복 셔츠가 보였다.

그는 청신이 약 때문에 잠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만약에 대비해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청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슥, 스윽. 나름대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청신이 도유의 옷을 벗길 때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데 차이점을 모르겠다.

도유는 흘끔 청신의 얼굴을 살피고,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전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한 뒤에야 단추를 마저 다 풀었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청신의 탄탄한 상체가 드러난다. 마법사인데도 불구하고 도유처럼 잘 관리된 균형 잡힌 신체다. 그간 큰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는지, 상처 자국 하나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점점, 심장에서 시작된 새까만 에너지에 그의 체내에 흐르는 마력이 불안정하게 뒤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심장이 훤히 드러나도록 한 후, 도유는 벨트에 늘 숨기고 다니는 손가락만 한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청신의 가슴 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손을 펼치고 나이프를 손등에 꽂아 넣으려고 했다.

“…!”

그러나 순간, 시체처럼 자고 있던 청신이 도유의 손목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도유 형.”

언제나 다정하게 도유의 이름을 불렀던 평소 청신의 목소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혹한의 겨울처럼 몸서리쳐지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가 자신을 호명하는 순간 도유는 목덜미에 총구라도 겨눠진 사람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형형하게 번뜩이는 녹색 눈이 도유를 올려다보는 것도 무서웠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도유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으로 변명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그 어떤 변명도 도유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 조용환을 삼키려던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 피로 정화시켰던 것을 떠올리고 청신에게도 실험해 보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제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청신이 범법자라는 사실을 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청신의 시선이 도유의 손에 여전히 들려 있는 나이프를 향한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나이프를 치우려고 했다. 그러나 청신의 가슴 위에 두었던 손을 움직이자마자 붙잡혀 버렸다.

“저 화내는 거 보고 싶어요?”

이미 화내고 있잖아?

목 아래까지 그 말이 차올랐으나 혀를 깨물어 가면서 참았다. 표정이나 바꾸고 물어라, 뻔뻔한 놈. 그렇게 대답할까 하다가 화만 더 자극할 거라는 생각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다행히 정답이었는지 도유의 손목을 움켜쥔 청신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조금. 아주 조금.

“왜 제가 자고 있는 사이에 자해를 하려고 해요?”

“아니야, 절대 그런 게 아니야!”

“아니라고요? 그럼 이건 뭔데요? 분명하게 도유 형이 자기 손 찌르려고 했던 게 보였는데요. 차라리 제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면 말리지 않았을 거예요.”

“무슨 헛소리야? 네 심장을 찌르려고 하면 말려야지. 죽고 싶어?”

바보 같은 헛소리에 제 입장도 잊어버리고 따지자 굳어 있던 청신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스몄다. 그가 말했다.

“도유 형에게 죽는 거면 오히려 기쁜 일이죠.”

“이청신. 너 그딴 말 한 번만 더 하면 화낸다.”

“으음.”

청신이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그는 도유가 침대 밖으로 도망치기 전에 손을 뻗어 도유의 목을 틀어쥐었다.

서서히 목을 조르는 청신의 손길을 도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유는 저를 빤히 보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도 도저히 그 손을 쳐 낼 수 없었다.

자신이 이걸 쳐 낸 순간 청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전의 서도유였다면 목에 손을 댄 순간 손을 잘라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서도유는, 이청신을 사랑하는 서도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점점 목에 가해지는 힘에 숨통이 조여 올 때 청신이 손을 내렸다.

그가 씩 웃었다. 그러고는 도유의 손에서 나이프를 빼앗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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