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08)화 (108/159)

#108

그렇게 실험을 거듭하던 성희유는 끝내 한때 그의 동료였던 이들에게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특수부에서도 성희유를 갱생 불가의 인간으로 처리했다. 그는 사형장까지 올랐다. 당시에 차기 협회장으로 지지받던 송유원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밧줄에 목이 매여 죽었을 것이다.

그는 사형수에서 공석이었던 특수부 제1팀 팀장이 됐고, 덕분에 동생을 살릴 방법을 더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찾고 찾다가, 끝내 희망을 얻었다.

아직 성과는 없었지만 이론상 동생이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는 것에 성희유는 기쁨을 느꼈다.

“이번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군.”

“…….”

성희유는 묵묵히 화면을 보았다. 각 항목별로 촬영을 하고 면밀하게 살피는 과정. 검사 결과는 모두 같았다.

주홍색 눈이 붉게 침잠한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어린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성희유가 의식을 옮기지 않았을 때의 동생은 정말 인형 같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동생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매일매일 보는 얼굴이었지만 자신의 의식이 들어가 있을 때와,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 있는 동생을 내려다볼 때는 도저히 자신이 움직였던 몸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평소에 성희유는 자신의 몸이 아닌 동생의 몸으로 생활했다. 동생의 육신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동생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감지가 되면 바로 끌어 올려 육신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려는 의도였다.

누군가는 헛된 희망이라 하겠지만 성희유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적성교를 급습하기 전, 성희유가 청신에게 받은 마법 덕분에 지금 이렇게 완벽하게 동생의 몸을 유지하고 있게 된 거니까.

“…준비되면 나오게.”

대답 없는 성희유의 표정을 흘끗 본 노인은 검사실을 나갔다. 노인이 나간 뒤에도 성희유는 동생에게 시선을 못 박은 채, 하염없이 동생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윽고 신음처럼 그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원아.”

여전히 대답은 없다.

“무원아, 형이야.”

영화에서는 이름을 부르면 식물인간도 깨어나던데 현실에는 그런 기적이 없다. 성희유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생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무원아, 원아…. 내 착한 동생.”

제 자식처럼 길렀다. 무원은 성희유의 동생인 동시에 아들이기도 했다. 그는 사고가 났던 그날 이후로 멈춰 버린 동생의 시간을 증명하듯이 여전히 작은 동생을 하염없이 불렀다.

‘이 마법을 줄게. 계속 기다린다면 의식이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어린 청신이 성희유에게 마법을 주면서 했던 말대로 계속 기다리고 있건만 깨어나지 않는다.

이 기다림에 의미가 있는 걸까?

어쩌면 제 동생은 영영 깨어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점점 암담하게 저를 좀먹는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성희유는 눈을 감았다. 지금의 자신이 이런 생각에 함몰되었다간 제 아버지처럼 완전히 미쳐 버릴 걸 알았으니까.

이윽고 성인의 모습이었던 성희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시체처럼 누워 있던 아이의 육신이 눈을 떴다.

성희유는 제 동생의 육신에 완전히 의식이 연결된 것을 거듭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니 노인이 성희유에게 티슈를 내밀었다. 주홍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티슈와 노인을 번갈아 본 성희유가 웃음을 터트렸다.

“안 울었어요. 괜찮아요. 전에는 빨리 나가라더니 이제는 챙겨 주시네요.”

“지금 나이가 들면 감수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지?”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찔리셨군요.”

“쯧! 빨리 옷 갈아입고 나가!”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선생님.”

노인은 민망했는지 티슈를 홱 던지듯 내려놓고 성희유에게 옷까지 가져다줬다.

노인의 친절에 조금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남은 일과가 있었기에 성희유는 얌전히 옷을 갈아입었다.

“그럼 다음 주에 뵙죠.”

“가. 가 버려.”

훽훽 손을 휘젓는 노인에게 방긋 웃어 준 성희유는 수납을 마치고 병원 건물 밖으로 나섰다.

주말의 나른한 오후건만 병원은 소란스럽다. 휠체어를 탄 사람, 택시에서 비틀거리며 내리는 사람, 그리고 구급차까지.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성희유는 내일 출근해서 오전 중에 검토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도유 씨가 더뎌. 청신 씨가 있으니 금방 마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군.’

어떤 식으로 도유를 복돋워 주면 개인 호위 임무를 금방 끝낼 수 있을지, 도유가 원하는 방향으로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을 해 줘야 할지 고민하며 성희유가 대기 중이던 차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기사님, 카단 제2 지부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성희유는 목적지를 말한 뒤 신문을 꺼내 들려고 했다. 평소 그의 개인 운전사의 기척이 묘하다는 걸 느끼지 않았더라면 필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질감을 느끼자마자 표정을 굳히고 운전석 쪽을 보았다.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창백한 인상의 남자, 주영연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성희유는 미간을 좁히며 영연을 보았고,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마법사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그리고 그는 죽어 가고 있었기에 기척을 느끼는 게 늦었던 거였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바로 병원에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친절하게 권유하면서도 성희유는 운전석의 개인 기사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행히 기사는 잠들어 있었다. 마법이 아닌 약을 쓴 거다.

“친절은 고마운데, 지금 내가 시간이 없어서. 성희유 씨 맞죠?”

“네, 제가 누군지 알고 온 것 같은데.”

“아~ 다행이다. 허탕이면 울 뻔했어요, 진짜.”

“제대로 된 용건이 아니라면 목을 잘라 버릴 거니까 제대로, 솔직하게 말해 보시겠어요?”

스으윽, 영연은 제 목에 이물감을 느낌과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실이 그의 목에 드리워져 있었다.

영연이 그러거나 말거나, 성희유는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댔다. 영연을 무시하는 태도에 영연은 속에 불길이 치미는 기분이 들었으나 곧 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뭐. 성희유 씨도 이청신한테 마법 받았죠?”

“질문을 하기 전에 당신이 누군지 말해 줬으면 좋겠군요.”

“전 이청신이랑 20년 지기 친구예요. 친구인 기간을 포함해서 적성교에 ‘신자’로 있었을 때까지 따지면 22년쯤 되려나?”

성희유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주홍색 눈이 차갑게 가라앉은 걸 보고 영연은 그가 자신을 카단에 끌고 갈 생각조차 없이 ‘처리’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걸 깨달았다.

영연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가 제게 손도 못 댈 것임을 알기에 씩 웃으며 말했다.

“성희유 씨가 받은 마법이요, 의식 없는 사람 몸에 마법사 의식 옮겨서 생명 유지시키면서 의식 끌어 올리는 마법 맞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성희유의 주홍색 눈이 싸늘하게 번뜩이는 걸 보며 영연이 말을 이었다.

“그거랑 똑같은 마법, 성희유 씨가 근무하는 카단의 협회장도 자기 아들한테 썼던 거 알아요? 근데 그래도 의식을 찾지 못해서 안락사시켰다는 것도 아세요? 못 믿겠다는 눈빛이네요? 그럼 협회장한테 가서 물어봐요. 성희유 씨보다 마법 천재에 ‘수천의 마도서’를 가지고 있는 협회장이 자기 아들 죽인 이유를.”

성희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생각을 가늠할 수 없는 얼굴로 영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연은 목 아래로 가빠 오는 숨을 애써 숨기며 한 손으로 계속 쥐고 있는 아티팩트가 발동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아티팩트는 여전히 발동 중이었다.

정신계 마법을 담은 아티팩트다. 성희유 같은 마법사에게는 통하지 않으리란 건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그러나 자신의 말에 진위성을 조금이나마 더해 주는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많이 봤어요.”

길게 이어질 것만 같았던 침묵을 깨고 성희유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적의도, 경계도, 긍정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직시하고 말하는 사람처럼 담담하고 어조가 평이했다.

“타인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믿고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이죠. 대체로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들이 그런 성향을 보이죠.”

“안 믿어지면 협회장에게 직접 확인해 보시죠. 제가 거짓말을 한 건지, 아님 진실을 말했는지 바로 알게 될 테니까.”

영연의 말에 성희유가 빙긋 웃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을, 굳이 번거로워질 필요가 없죠.”

“제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제가 전부 일일이 설명해 준다 한들 믿으실 수 있겠어요?”

“제가 믿는 건 당신이 아니라 제 마법이에요.”

영연은 성희유가 제게 정신계 마법을 걸려고 한다는 걸 깨닫고 비릿하게 웃었다.

정신계 마법은 그 어떤 상황이든 간에 불법이었으며 영연에게는 정신계 마법이 듣지 않는다. 스스로가 정신계 마법사였기에 그 마법의 파훼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몸이 망가져 비마법사가 된 지금도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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