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05)화 (105/159)

#105

“잠시만요, 도유 형.”

“응? 흡!”

뒤를 돌아보자마자 청신이 도유에게 입을 맞췄다.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에 혀를 밀어 넣는 대신, 밀어 내 보라는 듯 눈웃음을 치며 입술을 빨고 깨물며 도유의 행동을 유도하는 청신의 행동에, 도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은근히 내가 먼저 하는 걸 좋아한단 말야.’

도유는 생각했다. 청신과 이런 행위를 하는 게 익숙해진 뒤, 청신은 은근슬쩍 도유 쪽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유가 흥분한 채, 청신이 저에게 하듯 먼저 거칠게 혀를 넣으면 더 좋아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청신이 흥분하는 것이 육안으로도 훤히 보였기에 알 수 있었다. 도유는 속으로 혀를 차며 청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그를 떨어트렸다.

“싫어요…?”

언제 자신만만했냐는 듯 바로 시무룩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도유가 말했다.

“퇴근하면 해 줄게.”

“지금은 싫어요?”

“팀장님 뵈러 가야 하잖아.”

성희유는 눈치가 빠르다. 게다가 청신이 도유를 사랑하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는 둘이 사귀고 있는 것도 눈치챈 듯했다. 키스하느라 늦었다고 하거나, 흥분한 기색이 그대로 남은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알았어요.”

청신은 도유에게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포개고는 곧바로 떨어졌다.

그에게 있어 도유의 뜻은 신이 계시한 말보다 더 중요했으니까.

*

성희유가 도유의 자리에 놓고 간 초콜릿의 출처는 팀장실에 들어가서 밝혀졌다.

“…유량 씨가 주고 간 겁니까?”

“네. 청신 씨, 전에도 말했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같은 부서 사람을 죽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니 알아 둬요.”

“비밀리에 죽이면 되겠네요. 도유 형, 걱정 마세요. 저 그런 거 잘해요.”

“잘하긴 뭘 잘해? 죽이지 마.”

암살을 잘한다는 게 어디 자랑이란 말인가. 도유는 당장 뒤돌아서 도유의 자리에 있을 초콜릿을 싹 불태워 버릴 기세의 청신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청신아, 일단 진정해. 알았지?”

성희유의 위치에서 보이지 않길 바라며 테이블 아래로 청신의 손등을 토닥였다. 그의 기세가 누그러든 것을 확인한 도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흥미로운 눈으로 저와 청신을 보는 성희유에게 물었다.

“팀장님, 호출하신 이유가 유량 씨 때문입니까?”

“그럴 리가요.”

고작 그딴 용건을 전해줄 정도로 내가 한가해 보이느냐는 눈빛을 피해 도유는 고개를 숙였다. 성희유가 말했다.

“이번에 개인 임무가 내려와서요.”

“…저희 둘에게 말입니까?”

“네. 음, 어떻게 보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단순한 호위 임무거든요.”

성화의 마도서 때보다 위험도가 낮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의문이었다.

단순한 호위 임무라면 특수부 제1팀이 아니라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임원과 관련된 호위 임무는 특수부가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 전부 처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도유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혹시 다른 것이 숨어 있는 것일까? 잠시 머리를 굴려 봤지만 그 호위 대상이 위험한 것에 위협을 받고 있다거나,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이었다면 성희유가 ‘단순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리가 없었다.

수수께끼처럼 생각을 거듭할수록 복잡해진다. 결국 도유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누구를 호위하는 겁니까?”

“퀴즈를 하나 내 볼까요? 도유 씨가 아는 사람의 관계자예요.”

성희유가 기대 어린 얼굴로 방긋 웃었다. 도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곁에 선 청신이 작게 기척을 내는 것을 느끼고 얼결에 청신을 바라보니, 반가면 아래로 입을 일자로 다물고 있는 게 보였다.

“청신 씨는 누군지 눈치채셨나 보군요.”

“저는 거절하고 싶은데요.”

“특수부 제1팀에겐 거절권이 없다는 거 청신 씨가 제일 잘 알고 계시잖아요?”

“…….”

놀리고 있다. 성희유가 청신을 놀리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지금 가면을 벗기면 분명 녹색 눈을 치뜨고 성희유를 노려보고 있을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도유 씨, 눈치채셨어요?”

“…아니오. 모르겠습니다.”

“이런, 본인이 들으면 굉장히 슬퍼하시겠네요. 힌트를 드릴게요. 도유 씨에게 내적 친밀감이 굉장히 높으신 분이죠.”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도유의 표정에 금이 갔다.

“설마, 현영하 이사님은 아니겠,”

“정답입니다. 개인 임무 의뢰는 현영하 이사가 했고, 도유 씨와 청신 씨의 호위 대상은 그의 외동딸입니다.”

발랄한 어조로 긍정하는 성희유의 말에, 도유는 죽은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개인 의뢰를 받은 도유와 청신이 현영하 이사와 만난 시각, 주영연은 눈을 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죽었을 게 분명한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의 연구실에 방치되어 있던 그는 당장 쓰러질 것처럼 파리한 안색이었지만 안광이 번뜩이는 눈만큼은 그 어느 산 자의 것보다 더욱 형형했다.

“이, 청신…. 이청신…!”

잔뜩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영연이 이를 갈았다.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맺혀 흘러나온다.

영연은 이 순간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서도유를 무너지게 하는 것으로 그를 사랑하는 청신을 망가트리려고 했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그에게 제 마법이 들켰을 때도 영연은 청신이 자신에게 큰 해를 끼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신은 영연을 완전히 끊어 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할 때 주로 사용하는 팔을 아예 붙일 수 없게 잘라 버리고, 다른 손과 발의 힘줄을 모조리 끊어 불구로 만들어 놓았다.

이 정도까지는 마법으로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었다. 의식을 되찾음과 동시에 심장이 망가진 것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심장이 망가졌다. 목숨엔 지장이 없도록 아주 섬세하게 손을 대고 간 것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마법사에게 심장은 핵이다. 마력을 순환시키고 응축시키는 중심.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끄으, 끄으윽…!”

영연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쉼 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내가 널 원하는데 왜 넌 날 원하지 않아?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잔인해질 수가 있어? 나와 똑같이, 너도 나를 원해야 하는데 왜 넌 서도유를 봐?

송유원이 청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 영연은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전에도 영연은 청신을 알았다. 적성교의 신도였던 아버지를 따라간 곳에서 영연은 교주라고 불리는, 인형 같던 3살의 청신을 처음 만났다. 영연은 그때부터 자신이 청신의 친구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뒤에 그의 안에는 또렷한 증오가 움텄다.

바닥 위에 엎어진 채로 영연은 넘쳐흐르는 물처럼 제 안을 비집고 나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을 거듭했다.

이청신이 불행해지길 바랐다. 그를 인형으로 삼는 건 이제 상관없다.

그가 망가지면 좋겠다. 영연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유일무이하게 집착하고 사랑하는 서도유를 없애는 것 외엔, 그를 망가트릴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아니지…?”

직접 할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 사실을 깨닫자 분노와 증오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연은 청신이 지금까지 제게 했던 말들, 그리고 자신이 지켜봤던 청신과 관련된 것들을 떠올리고,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수단’으로 사용해 낼 수 있는 걸 찾아내고, 피로 범벅이 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이번에 도유와 청신에게 개인 의뢰를 맡긴 현영하 이사의 딸, 현주아는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라 현영하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성격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의뢰의 상세 내용을 전할 때 현영하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런 말이 진부하다는 건 알지만, 그런 짓을 할 만한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네.’

간만에 보는 현영하는 지친 듯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도유를 담당하고 연구실로 오라며 학사에서 은근히 도유를 쫓아다녔던 교수도, 카단의 냉철한 이사도 아닌 자식을 둔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무겁게 내쉬던 한숨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던지. 나름의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기색이 선명했다.

‘정말…. 도유, 자네처럼 성실하고 똑똑하고 빠릿빠릿하고 이해도 빨라서 자네와 같이 연구실에 데려다 놓으면 참 잘 어울리고 좋겠다 생각했는데….’

…물론, 헛소리 같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솔직한 말을 덧붙여서 도유의 가슴을 내려앉게 만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현영하는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넘겨주었다.

그중에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범행 내역도 기록되어 있었다.

다시 만나자며 현주아에게 접근한 전 남자 친구인 황민욱은 그녀에게 거절당하자 두 달 전부터 스토킹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그녀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어디에 가든 쫓아다니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집에 있을 때는 좋아했던 것들을 사서 문고리에 걸어 놓고 지켜보거나, 그녀와 과제 때문에 대화를 나눴던 남자 동기의 머리를 벽돌로 치려고 들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리고 경고라도 하듯이 그 벽돌을 그녀 집 앞에 던져 놓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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