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04)화 (104/159)

#104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건 다른 일 때문에 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왜? 같은 의문이 도돌이표처럼 머릿속에 맴돌았다.

포장이 되어 있는데도 달콤한 초콜릿 향이 코에 딱 달라붙는 걸 봐서 가짜도 아니며 진짜다. 손수 사 온 게 분명했다.

성희유가 초콜릿을 고르고 ‘포장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직접 산 게 아니라면 왜 성희유가 이걸 굳이 도유의 책상 위에 올려놨을까.

혹시 시험하는 걸까? 먹는지, 안 먹는지?

‘팀장님은 그렇게 졸렬한 인간이 아니지.’

이건 주는 게 맞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유야.”

“응?”

“신입…. 이름이 이청신 씨 맞지? 이청신 씨가 출근하면 함께 팀장실에 오라고 하셨어.”

백휘의 문득 생각났다는 어조에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도유는 ‘아!’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성희유가 이걸 준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성희유는 앞으로 있을 임무에 도유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을 예감하고 이걸 챙겨 준 거다.

도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유가 미성년자였을 때 성희유가 종종 이렇게 챙겨 줬던 것이 떠오른 동시에, 앞으로 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이청신은 카단이 계속 찾아왔던 범법자다. 범법자를 추격하는 건 주로 특수부가 했으며, 그중에서도 성희유가 전부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범법자에 대한 추적은 ‘소원 나무’라는 사이트에 멈춰 있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범법자를 쫓아 아카데미 잠입 임무까지 맡았던 도유가 범법자와 관련된 임무에 파견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청신이라는 증거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은폐하겠지.’

이청현이 했던 말을 통해 청신이 범법자의 일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 소재앙으로 나누고, 그것이 인간의 손에 의해 이뤄지게 한다.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애초에 청현이 말한 흉성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섬에서 정령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환청이구나.’ 하고 넘겼을 터였다.

청신이 하고 있는 일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건 도유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소재앙으로 나누어 대재앙을 막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인간의 역사가 쌓이며 함께 나타난 인류사의 일부였으니 알았다. 그러나 청신이 행하는 일에는 약자들의 희생이 따른다. 범법자의 마법에 희생된 이들은 대부분이 비마법사였다.

하지만 청신이 무사하고, 그가 자신의 곁에만 있어 준다면 도유는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준비가 되었다.

“도유야?”

“아, 미안해. 알겠어. 말해 줘서 고마워. 휘야.”

잠시 도유의 표정을 살피던 백휘는 이내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다시 자기 PC로 시선을 옮겼다.

도유는 제 죄책감을 자극하는 무거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콜릿 상자로 손을 뻗었다.

곱게 포장된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여니 입맛이 저절로 도는 초콜릿의 영롱한 자태가 드러났다.

“휘야, 너도 먹을래?”

“난 괜찮아.”

부드러운 거절이었다. 백휘가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도유는 더 권하는 대신 제일 맛있어 보이는 것을 들어 입에 넣었다. 캐러멜 조각이 씹히는 초콜릿이었다.

행복하다. 어제도 청신의 집에서 청신이 직접 만들어 준 쿠키와 컵케이크들을 먹었지만, 그것의 단맛과 이 단맛은 전혀 다르다.

초콜릿 덕분에 우울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억누를 수 있게 된 도유는 남은 것은 청신과 먹자고 생각하며 뚜껑을 덮었다.

청신은 단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이건 먹여 주면 먹긴 먹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초콜릿 상자를 한쪽으로 치운 도유는, 상자 밑에 깔려 있던 것을 발견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먹었죠?」

작고 얇은 카드에 쓰인 단 세 글자.

성희유의 필체였다.

*

오전만 아카데미에 머문 뒤, 곧바로 카단으로 출근한 청신은 탈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제 눈을 의심했다.

오늘 아침, 달라붙는 청신을 단호하게 떼어 놓고 카단으로 출근했던 연인이 탈의실에 서 있었던 것이다.

“도유 형!”

청신은 곧바로 도유에게로 뛰듯이 달려들었다. 이곳엔 카메라도 다른 팀원들도 없이 단둘뿐이었으므로 키스부터 끝까지 진도를 뺄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주어진 기회를 놓칠 청신이 아니었다.

“형도 제가 보고 싶었던 거죠? 사랑해요, 형. 키스해 줄게요.”

도유가 대답하기 전에 키스를 하려던 청신은 제 입에 닿은 것에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뒤로 빼서 입술에 닿은 것을 확인하려던 찰나, 사랑스러운 그의 연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먹어.”

망설임은 없었다. 청신은 멍청하게 질문을 하는 대신 입을 열어 도유가 입에 들이댄 것을 날름 받아먹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그것의 정체를 안 청신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뻔했지만, 푸른 눈이 빤히 저를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재빨리 표정을 바꿨다. ‘이건 왜요?’ 하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뭔가 느껴져?”

“…? 아니요.”

청신의 대답에 도유는 안도한 듯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청신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몸을 돌린다. 탈의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모습에 영문을 모르는 청신은 당혹스러웠다.

“무슨 일이에요? 물론 도유 형이 초콜릿을 먹여 준 건 기뻐요. 혹시 더 있으면 침대 위에서 먹여 줘요. 도유 형이 준 건 독이어도 먹겠지만, 이런 단거라면 도유 형이랑 같이 먹고 싶거든요.”

“일단 옷 갈아입고 와, 청신아.”

청신은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안도한 기색이 역력한 연인의 얼굴을 보자 도저히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재빨리 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도유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살짝 꽁해졌던 마음이 단번에 풀리는 걸 느끼며 배시시 웃었다.

“갑자기 이상한 짓 해서 미안해. 마음이 급했거든.”

“이상한 짓이라뇨. 형처럼 달콤한 초콜릿을 제게 직접 먹여 준 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진짜 ‘이상한 짓’이 뭔지 알려 줄게요.”

성적인 의도가 다분한 손길로 도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청신이 속삭였다. 그러나 그는 곧 의문에 입매를 굳혔다. 평소라면 그 손을 떨쳐 내며 질색하는 척했을 도유가 웬일로 그의 손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

청신은 도유의 얼굴을 관찰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사랑스러운 연인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걸까?

그의 의문이 깊어지기 전, 다행히 도유는 개인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성희유가 준 초콜릿 상자가 놓여 있었고, 하나 먹고 다른 쪽으로 치우는 과정에서 그 밑에 깔려 있던 카드를 발견했다 한다.

카드에 적힌 메모 때문에 지금까지 불안에 떨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청신은 당장 성희유를 찾아가 그에게 응징을 가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도유가 성희유를 따르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 청신도 도유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를 존중해야 했으니까.

청신은 그 문제의 카드를 보았다. 확실히 몇 번 봤던 성희유의 필체로 ‘먹었죠?’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뒷장도 있어.”

도유의 말에 카드를 뒤집어 보니 역시나 성희유의 필체로 비슷한 말이 적혀 있었다.

「청신 씨와 같이 먹어요.」

“뭘까요? 평범한 초콜릿이던걸요. 약물을 섞은 것도 아니고.”

“약물이나 마법이 걸려 있는 거면 내가 너한테 먹였겠어?”

혼자 다 먹어 치우는 한이 있어도 절대 자신에게는 먹이지 않을 사람이 도유라는 걸 알기에 청신은 또다시 그에게 반하며 조금 수줍게 대답했다.

“도유 형이라면 제게 먹일 리가 없죠.”

청순하게까지 보이는 반응에 도유는 자신이 너무 적나라하게 감정을 드러냈음을 깨닫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혹시라도 내가 뭣 모르고 네게 안 좋은 걸 먹이면 먹지 마.”

“노력해 볼게요.”

“이청신.”

“도유 형이 주는 걸 어떻게 거절해요, 제가.”

어조는 가벼웠지만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안 좋은 건 거절해. 알았지? 난 네게 어떤 해도 끼치고 싶지 않단 말야. 그건 너도 똑같잖아.”

“그야 당연하죠.”

“그러니 거절하란 거야. 특히 전처럼 내가 만든 볶음밥 같은 경우엔…. 하아.”

말하다 보니 자신의 요리 실력이 독극물 수준이라는 걸 시인해 버렸다는 걸 깨달은 도유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에 청신이 웃으며 다독였다.

“볶음밥은 이제 잘하잖아요. 다른 요리는 제게 배워 가면서 천천히 만들어 보면 금방 맛있게 잘 만들 수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도유 형.”

“…그래. 그보다 약속해.”

도유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자, 청신이 물끄러미 그 손을 보았다. 도유가 의아해할 즈음 청신이 입을 열었다.

“응, 약속할게요.”

손가락을 걸고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겨 손끝과 손등에 입을 맞춘 청신이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도유는 아래로 내린 반대편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당장 청신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성희유의 호출이 있었기에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팀장님께 가자. 네가 출근하면 함께 팀장실에 오라고 하셨거든.”

“그래요? 알겠어요.”

이 이상 단둘이 있는 밀실에 머물면 충동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도유가 서둘러 문고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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