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03)화 (103/159)

#103

단순한 변이 마법이었다면 청신은 그것을 무시했을 테지만, 거슬리는 마력의 기운이 남아 있어 량에게 빼앗은 종이를 꼼꼼히 살폈고, 알게 되었다.

종이에 그려진 마법진이 발동되면 대상자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꿈을 꾸게 된다.

악질적인 것은 그 악몽이 대상자의 생명력을 이용해 구현된다는 것이고, 생명력이 다할 때까지 결코 깨울 수 없다는 거였다.

지독한 설계였다. 게다가 무작위로 대상자를 지정하는 게 아니었다. 마법식에서는 대놓고 대상자를 서도유로 지정하고 있었다.

마치 량과 단독 임무를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던 것처럼, 체내 마력이 낮은 비마법사를 대상으로 한 마법이었기에 더욱 확실했다.

량은 자신에게 누가 그 마법진을 줬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세뇌 마법의 영향으로 망가진 기억 속에서 자신이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을 더듬더듬 내뱉었고, 마법진에 사용된 방식과 깃들어 있던 마력을 통해 청신은 유량에게 마법을 준 이가 누군지 알아냈다.

“응? 청신아?”

주영연의 개인 연구실. 한창 무료한 표정으로 책을 읽던 영연은, 갑자기 자신의 공간에 나타난 청신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하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와, 네가 내 연구실에 온 건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반가운 친구를 맞이하듯, 기쁨을 숨기지 못한 기색으로 영연이 청신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그 순간 영연의 시야에 붉은 섬광이 스치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툭, 하고 무게 있는 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영연이 고개를 숙여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으음, 역시 네 공격 마법은 못 막겠네. 갑자기 무슨 짓이야?”

영연은 주변에 둘러 둔 방어 마법이 강제로 깨지며 그 과부하로 속에서 피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한 영연의 얼굴을 무심하게 노려보며 청신이 입을 열었다.

“영연아, 내가 말했잖아.”

잘려 나간 팔을 주워 들기 위해 허리를 숙이던 영연이 다시 허리를 폈다. 투두둑, 팔이 떨어져 나간 단면에서 피가 물처럼 떨어지며 점점 그의 발밑으로 웅덩이가 지기 시작했다.

“개처럼 명령받은 것만 하고, 주제넘는 짓 하지 말라고.”

청신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영연에게 던졌다.

새겨진 마법식이 발동되지 않도록 흐름을 헝클어 놓은 탓에 평범한 종이가 된 그것이 영연의 발치 아래로 떨어졌다. 영연이 시선만 내려 마법진을 살피고 씩 웃었다.

“들켰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건만 실패했다는 생각에 영연은 하아,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면 나도 상처받는걸.”

청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 휘몰아치는 불길한 검은빛이 뱀처럼 영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영연은 곧바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성화의 마도서의 회수를 실패했다는 유량의 보고를 듣고, 량이 청신에게 받았을 아티팩트로 유정현 이사의 의식을 정화시키는 걸 보자마자 대비해 뒀던 것을 집어 던졌다.

청신이 사용한 힘이 영연이 집어 던진 나무 상자에 빨려 들어간다. 적성교의 전대 교주, 이청현이 만든 흉성의 파편이 담긴 상자는 청신의 힘을 빨아들였다.

그것을 본 청신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영연은 숨기고 있던 두 번째 방법을 실행했다.

마법사의 개인 연구실은 어떻게 보면 그 마법사의 손바닥 위다. 영연의 뜻에 따라 마력이 넘실거리고, 청신을 사로잡기 위해 날카로운 쐐기가 되어 그를 덮쳤다.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냐?! 이래 봬도 나 네 소꿉친구인데!”

영연의 외침과 동시에 그가 청신에게 한 공격들이 모두 영연에게로 되돌아갔다.

영연은 바닥에 떨어졌던 제 팔이 종잇장처럼 찢기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복구를 아예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복구하려면 좀 오래 걸릴 터였다.

“주영연, 네가 어렸을 때부터 착각하는 게 있는데.”

목소리는 영연의 위에서 들려왔다. 영연은 눈을 깜빡였다. 그는 바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청신이 천재여도, 흉성의 인도자로 선택된 존재라 해도 이 세계에 흐르는 규칙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영연은 그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청신이 자신의 연구실에 찾아올 걸 알고 그를 제압할 준비를 해 놨다.

처음 상자를 던져 그의 공격을 막은 뒤, 흉성의 힘을 폭주시켜서 청신이 완전히 ‘먹히도록’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영연은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강제로 꺾는 대신 눈을 굴려 아래를 보았다. 이게 뭐지? 그는 제 눈을 의심했다.

바닥에 드리워진 제 그림자 위에 날카로운 것이 솟아 있었다.

마치 바닥에서 솟아오른 뭔가에 꿰뚫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영연의 몸은 멀쩡했다. 어정쩡하게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더욱 기이한 건 바로 제 옆에 서 있을 청신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는 거다.

“너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알지 못해. 은하 형만큼도 모르고.”

다정함을 모방한 목소리와 함께 영연은 머리를 시작으로 제 전신을 가로지르는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그림자에 비친 것처럼 제 몸이 실제로 관통당한 양.

“잘 들어, 주영연. 내가 지금 널 살려 주는 이유는 오직 내 어머니 때문이야.”

영연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져 갔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지, 뜨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새까맣게 변했다. 그의 귓가에 청신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감겼다.

“그래도 후환을 남겨 두고 싶진 않으니까…. 두 번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줄게. 조금 많이 아플 거야. 하지만 죽는 것보단 낫잖아?”

아니지. 이 정도 출혈이면 그냥 죽으려나? 하고 덧붙이며 청신이 웃었다. 영연은 청신을 노려보고 싶었다.

고작 서도유 때문에 송유원이 소꿉친구로 붙여 주었던 자신을, 서도유보다 더 오랜 시간 청신의 곁을 지켰던 자기를 이렇게 괴롭히는 이유가 뭔지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또렷한 의식과 반대로 고통을 이기지 못한 영연의 육신이 허물어졌다. 영연은 고통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 돼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신을 올려다보았다. 청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영연은 깨달았다.

이 녀석은 제게 최소한의 감정조차 없었다. 애정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옆집 개라 해도 10년간 보면 조금이나마 감정이 생기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그러나 영연을 보는 청신의 눈에는 세월의 흐름이 쌓아 올린 일말의 감정조차 없다. 영연은 난생처음으로 청신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지?

“이, 개….”

미처 잇지 못한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은 영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청신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그가 나이프를 손에서 놓았다. 나이프는 떨어지는 대신 보이지 않는 사람이 든 것처럼 허공에 스스로 떠올라 빙글, 돌더니 빠르게 주영연의 하나 남은 손목과 양 발목을 벤 뒤에야 청신의 손으로 돌아갔다.

청신은 10년 넘도록 자신의 ‘소꿉친구’를 자처한 주영연의 힘줄이 제대로 베였는지 확인한 후에야 나이프를 회수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2분. 저녁 식사까지 거진 2시가 남았다.

‘도유 형이 콘 수프 먹고 싶다고 했었지.’

지금쯤 청신의 집에서 반강제로 절대 안정을 취하고 있을 도유가 직접 요청한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와, 함께 곁들일 것들을 고민하며 청신은 영연이 던졌던 상자를 주워 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

*

출근하니 자리에 초콜릿이 있었다.

도유는 이게 뭔가 싶어서 멀거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보았다.

“휘야, 혹시 이거 네가 둔 거야?”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는지 타다닥거리며 타자를 치던 백휘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도유를 향했다가 그의 손끝이 가리킨 방향을 훑는다.

“아니. 내가 아니야.”

“뭐지…?”

백휘가 이따금 사무실에 복귀할 때마다 임무지에서 특산품이나 과자를 몇 번 사다 준 덕분에 그가 범인일 거라 생각했던 도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앉았다.

“팀장님이 놓고 가셨어.”

“팀장님이?”

백휘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도유는 꼬리를 바짝 세운 고양이가 쥐 모양 인형을 톡톡 치듯 고급 초콜릿으로 유명한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상자를 손끝으로 건드리며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독이 들었다거나, 안에 폭발하는 아티팩트가 들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성희유가 이것을 준 이유를 모르겠다. 성화의 마도서와 관련된 임무는 성희유가 자기는 ‘몰라야’ 한다고 했으니 그것 때문에 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체 왜 준 걸까? 혹시나 해서 오늘 날짜를 확인해 봤지만, 밸런타인데이도 아니었고 도유의 생일도 아니었다.

백휘의 책상을 비롯해 다른 팀원들의 책상을 흘끗 보니 다른 사람들에겐 주지 않았다. 오롯이 도유의 책상에만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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