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99)화 (99/159)

#99

만나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평소의 도유였다면 이런 때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부터 할지 어렵지 않게 끄집어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내면에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거듭해서 지금의 청신과 가까스로 떠올린 12살의 서도유가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대조하며 산산조각 난 기억을 기워 내고 있었다.

‘일단 합류가 먼저야.’

결론을 낸 도유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냈지만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인기척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도서가 사라지면서 그들을 가뒀던 결계가 모두 사라졌으니 이곳은 평범한 폐건물에 불과하지 않던가. 이런 곳에서 마법사가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도유 형!”

청신이 애달픈 목소리로 도유를 덮쳤다. 도유는 재빨리 다리에 힘을 주며 저를 껴안는 청신의 무게에 대비했다.

그러나 청신은 당장 도유를 껴안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면서도 상태를 살피기 위해 빙빙 돌며 뜯어보는 데 열중했다.

도유는 그런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전까지 그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12살의 서도유에게 마법을 주고, 그가 범법자라는 걸 눈치챘음에도 이토록 애달픈 눈으로 저를 보는 청신을 보자 밀려오던 거부감과 분노가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도유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에게 농락당했다는 분노가 아닌 애정에서 비롯된 걱정이었다.

도유는 자신의 감정을 순순히 인정했다. 손을 뻗어 먼저 청신을 끌어안았다. 기뻐하면서 도유를 마주 안으려고 했던 청신이 허리에 두르려던 손을 멈췄다.

“청신아?”

“형 다쳤을까 봐….”

“안 다쳤어. 멀쩡해.”

“그럼 다행인데 이따 돌아가서 면밀하게 살펴보게 해 줘요.”

왠지 ‘면밀하게’라는 단어에 유독 강세를 준 것 같았지만,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한 듯 활짝 웃는 얼굴에 따지지는 못했다.

이윽고 청신이 도유의 얼굴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온전히 제 품에 있는 도유의 존재를 느끼고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싶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입맞춤이라 얌전히 받아들였다.

“도유 형이 갑자기 사라져서 제가 얼마나 걱정하고 놀랐는지 아세요?”

모른다 하면 울 것 같다. 호기심에 모르겠는데, 하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며 도유가 대답했다.

“알지. 나도 널 걱정했어. 나는 결계 밖으로 이동됐던 거라 괜찮았는데, 너와 유량 씨는 결계 안에 남아 있었던 것 맞지?”

“네.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

“그럼 유량 씨는?”

“결계가 풀리자마자 마도서를 찾겠다고 해서 내버려 두고 왔는데요.”

“…….”

이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잠시 고민했다. 청신의 아버지가 마도서를 들고 사라졌으니 이 건물을 수색한다 해도 량은 결코 마도서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도유도 명목상 수색을 하긴 해야 했다. 도유는 생각했다. 건물 내부를 수색하는 와중에 죽은 유량의 시신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죽이지 않았으니 걱정 마세요, 도유 형. 형과 단둘이서 진행하는 임무에서 그 비둘기 이하의 지능을 가진 인간이 죽으면 형이 귀찮아질 걸 알고 있으니까요.”

도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청신이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이번만큼은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결계 밖으로 이동되기 직전에 봤던 청신의 기세가 워낙 흉흉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 도유 형, 형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건지 궁금해요.”

묻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질문이 들어오니 말문이 막혔다. 20년 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청신의 아버지가 살아 있는 듯했고, 네가 범법자라는 걸 알게 됐다는 말을 어떻게 맨정신으로 할 수 있을까.

맨정신이 아니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청신은 도유에게 말했다. 범법자를 찾고 그가 도유에게 마법을 준 이유를 알게 되어 선택할 때까지 곁에 있겠다고.

도유에게는 그 말이 어떤 선택을 내린다 해도 그가 자신을 떠날 생각이라는 예고로 들렸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도유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가 사라진 자신의 일상을 떠올려 보았다. 상상과 동시에 가슴이 조여 왔다.

이렇게 청신을 아끼고 사랑하게 됐는데 어떻게 놓으란 말인가. 이전이었다면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도유는 청신이 주는 애정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별일 아니었어.”

“별일이 아니라고요?”

“응. 그냥 쫓겨났어. 이 층으로. 그래서 헤매고 있는데 네가 나타난 거야.”

청신은 물끄러미 도유를 보았다.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면 의심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유는 의연하게 그의 시선을 받았다.

“정말요?”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말과 동시에 죄책감이 인정사정없이 가슴을 후벼 팠다.

그간 청신의 말에 대답하기 곤란할 때 얼버무리거나 대답하지 않은 적은 있어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최초로 하는 거짓말이 유독 아팠다.

하지만 청신이 자기를 떠나게 되는 것이나 이 관계가 깨졌을 때 찾아올 고통보다는 가벼운 아픔이라고 생각하니 견딜 수 있었다.

“믿어요. 도유 형이 하는 말은 그 어떤 말이든, 제게 진실이니까.”

청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이윽고 그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도유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입술을 겹쳤다.

푸른 눈이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도유가 순종하듯 눈을 감자, 녹색 눈에 이채가 스며들었다. 그는 쾌락에 가까운 희열을 고스란히 드러낸 눈으로 도유를 빤히 보며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

청신은 도유의 사라져 버린 기억을 되찾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도유가 기억을 찾기를 바랐다. 많은 부분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마지막을 떠올려 주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그는 도유가 마도서를 찾기 위해 폐건물에 들어오기 나흘 전, 성화의 마도서가 봉인된 결계에 침입했다.

도유의 기억을 되찾아 주는 건 청신도 불가능했지만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볼 수는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성화의 마도서는 언뜻 이름만 보기에는 불 속성의 마법에 특화되어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불 마법보다 다른 것에 특화되어 있다. 청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힘을 다룰 줄도 알았다.

‘전도(傳導)’와 ‘재생(再生)’의 힘을 지닌 성화의 마도서를 만든 것은 오래전, 최초로 흉성의 인도자로 선택받은 인간의 결과물이었기에 영혼에 새긴 것처럼 그 방법에 대해 알아낼 수 있었다.

버려진 예배당처럼 꾸며진 공간을 청신이 소리도 없이 걸어간다. 붉디붉은 카펫을 밟던 그의 걸음이 멈춘 건, 제단 위 타오르듯 둥둥 떠 있는 성화의 마도서를 보호하듯 한 남자가 나타났을 때였다.

“역시.”

내내 무표정했던 청신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신물이 난다는 표정으로 제 앞에 나타난 남자를 노려보았다.

“수작질을 해 놨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질척일 줄은 몰랐네요.”

청신의 가차 없는 말에 과거 적성교의 전대 교주였으며, 2살밖에 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적성교로 납치해 교주로 삼았던 청신의 아버지, 이청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네가 이리 훌륭하게 성장한 것을 보니 꽤 시간이 흘렀을 터인데…. 하는 말은 불효막심하구나, 청신아.”

“불효막심?”

성화의 마도서를 보호하는 결계 속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침입한 아들은 그를 꼭 닮았다. 그러나 차분하게 청현을 응시하는 눈빛은 전혀 그를 닮지 않았다. 청신은 웃음조차 없이 청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파편 주제에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파편이라 해도 나는 네 아비가 맞단다, 청신아. 그나저나 버르장머리 없는 것도 정말 어릴 때와 다를 바 없구나.”

이 결계 안에 있는 청현은 송유원의 손에 사살당했던 진짜 이청현이 아니었다.

흉성의 힘을 빌린 마법과 성화의 마도서의 힘이 가진 고유의 힘을 이용해 이곳에 일시적으로 재생시킨 티끌만 한 파편에 불과했다.

그러나 파편이라 해도 청현의 원래의 몸에 있던 기억을 고스란히 받았기에 청현은 제 아들의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현의 파편이 가진 마지막 기억은 청신과 흉성의 연결을 끊기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맨 대정령의 계약자를 죽이기로 한 날로부터 일주일 전의 것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청신은 자신을 졸졸 쫓아다니며 수발을 들어 주던 12살짜리 어린애를 죽인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힘겨워할 성격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아이를 죽였으니 성인이 된 청신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제 눈앞에 있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청현은, 과거의 자신이 예비한 것을 말했다.

“대정령과 계약한 그 아이를 죽인 네가 이 마도서를 원한다는 건, 흉성에 문제가 생겨서 더는 대정령의 증오만으로는 연결을 끊어 낼 수 없게 됐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내가 이 성화의 마도서로… 음?”

점점 썩어 들어가는 청신의 표정보다, 청신을 감싼 익숙한 기운을 본 청현의 파편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청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청신은 짜증 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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