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97)화 (97/159)

#97

이 위층에 고였던 자연의 마력들이 최종적으로 결합되는 곳이 바로 저 마도서라는 걸 깨달은 도유는 경악했다.

동시에 마도서가 어떻게 비마법사에게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지 깨달았다.

자연계에 흐르는 마력을, 그 흐름째로 끌어들여 와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축적시키는데 무엇이 불가능할까?

“안녕하신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도유는 곧바로 총을 꺼내 바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평범한 총이었지만, 발사와 동시에 정령의 힘을 두르면 어떤 마법도 파훼시킬 수 있었다.

도유는 제가 들어왔던 입구 쪽에 서 있는 이를 보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움직였다.

“이청신? 아니, 아니야. 넌 누구지?”

다시 손에 힘을 주며 도유가 물었다. 입구에 선 장신의 남자는 청신과 너무나 닮았다.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아름다운 얼굴도, 여름의 신록을 품은 녹색 눈동자도, 기분이 좋은 듯 올라가는 입꼬리도 언뜻 보면 똑같이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하나가 달랐다.

‘이청신 쪽이 더 예뻐.’

여성다운 예쁨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청신은 말 그대로 미인이었다. 남성적인 선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뻤다.

도유는 그 단어 외에 청신의 미모에 대해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몰랐다.

“이거 놀랍군. 나도 그 아일 보고 놀랐는데, 자네가 바로 알아볼 줄은 몰랐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도유는 또다시 확신했다.

목소리도 청신이 좀 더 투명하고 맑은 느낌이 강하다. 묵직하면서도 귀에 착착 감기는 미성. 남자의 목소리도 듣기엔 좋았지만, 역시 청신만 못하다.

‘정신계인가.’

그래서 지금 청신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 도유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누군지 말해. 미리 말하지만, 이건 일반 총이 아니야. 당신이 마법사라고 해도 똑같아.”

“하하, 잘 알고 있네. 자네를 아끼는 대정령은 마법과 상극이니 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천적과 같지. 내 그걸 모르겠나.”

대정령. 도유는 오랜만에 들어 보는 호칭에 흠칫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

어느새 바로 앞에 나타난 남자가 도유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도유는 곧바로 정령의 힘을 끌어내 그를 떨쳐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남자가 비어 있던 손으로 푸른 눈을 가렸다.

손을 막을 틈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도유는 정령의 힘을 사용하기 위한 조건까지 알고 있는 남자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총이 떨어지는 소리와 팔을 뒤로 꺾어 쥔 남자가 도유의 몸을 땅에 눌러 그 위에 무게를 싣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뒷머리를 바닥에 눌렀다.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하게.

옴짝달싹할 수 없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다.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남자는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도유를 제압했다.

이대로 죽는다는 두려움에 도유가 최대한 힘을 끌어내려던 때, 머리 위를 누르던 손과 도유의 몸을 눌렀던 무게도 사라졌다. 고개를 들자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난 자네와 싸우기 위해 이곳에 부른 게 아닐세.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불렀을 뿐이야.”

“대화…?”

“그래. 난 자네와 내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뿐이네. 그리고 자네에 대해서도.”

“아들…. ‘아들’이라고? 누가 당신 아들이란 거지?”

도유의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건 둘째 쳐도, 나와 내 아들이 이렇게 붕어빵인데. 짐작이 가지 않나? 청신이 말일세. 우리 작은 아가.”

도유는 남자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자네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건 둘째 쳐도, 나와 내 아들이 이렇게 붕어빵인데. 짐작이 가지 않나? 청신이 말일세. 우리 작은 아가.’

원래라면 첫 번째 말이 더 신경 쓰여야 했을 테지만,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가 정신계 마법을 이용한 환상 따위가 아니라 ‘진짜’ 청신의 아버지라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그는 무례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남자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뜯어보았다.

역시나 다시 봐도 청신이 더 예쁘지만, 어쨌거나 굉장히 닮긴 닮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정말 청신의 아버지라면 세월의 흐름이 느껴져야 하는데 청신과 거의 또래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도유가 남자를 경계하며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남자는 거절당한 손에 무안함을 느낀 기색도 없이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기까지 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자네를 납득시킬 만한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이거 곤란하군. 자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지금의 내가 알아낼 수 없으니 말일세.”

“아니요, 그거 말고. 당신이 그 녀석의 아버지라는 걸 믿을 수 없단 말입니다.”

의외의 말이었던 걸까. 녹색 눈을 동그랗게 뜨던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쪽이었나? 이런. 이쪽이 더 어려울 줄이야. 얼굴을 보고 믿을 수 없다 말하면 무엇으로 증명을 해야 할까? 아, 그래.”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청신이 마법을 사용할 때 자주 하는 행동이다.

마도서가 있는 곳에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고서 의심은 품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청신처럼 아무런 주문도, 준비도 없이 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도유는 남자의 마법에 대응하기 위해 제 몸에 냉기를 둘렀다. 그러나 곧 남자의 주변에 모여든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음. 내 본체가 죽었나 보군. 이 정도밖에 모이지 않으니…. 그래도 이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나와 나의 아들뿐이니 충분히 증명이 될 거라 생각하네.”

새까만 색.

닿는 순간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 같다 생각한 불길한 검은색의 구체가 남자의 주변에 모여들며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도유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도유의 부모님과, 타인의 삶을 빼앗아 생명을 연장하던 조용환의 육신을 삼켰던 힘. 그리고 섬에서 발견한 상자 안에 있던 힘이었다.

그것을 인지하자 도유는 남자에게서 더 거리를 두었다. 경계가 짙어진 눈빛에 의문을 느낀 듯 남자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러지? 이것 또한 증명이 아닌가?”

“역시 당신은 그 녀석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자네의 눈이라면 이것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데.”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을 대하듯, 남자가 제 주변에 모여든 검은 구체를 쓰다듬는다. 도유는 그것을 보고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저 새까만 것을, 저런 식으로 만질 수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거부감은 더러운 것에 대한 혐오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생에 처음으로 부여받는 감정. 두려움에서 비롯된 거부감이다.

“청신인 마법사입니다. 그런 이상하고 불길한 힘 따윈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애가 이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네.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닙니다. 청신인 다른 마법사들과 똑같습니다.”

남자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도유는 그를 빤히 보며 생각했다.

눈앞의 남자가 그토록 찾았던 범법자가 아닐까 하고.

오로지 범법자의 마법에서만 발견되는 저 불길한 검은 힘이 바로 그 증거였다.

마도서가 있는 방에서 갑자기 나타날 만한 실력도, 도유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것도, 정신계 마법이나 모든 마법에 능통한 것으로 추정되는 범법자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무엇보다 눈앞의 남자는 도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도유는 제가 범법자에게 마법을 받았을 때의 기억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남자가 그에게 마법을 준 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자네. 혹시 지금 몇 살인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도유는 망설였다. 나이를 알려 주는 것으로 생길 수 있는 저주 계열 마법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이 남자가 단숨에 자신을 제압해서 힘의 우위를 보여 준 뒤에 내버려 두고 있는 걸 알았기에 대답했다.

“32살입니다.”

“32살? 32살이라고? 설마 하긴 했지만, 20년이나 지났단 말인가!”

감탄인지 경악인지 모를 어조로 소리를 친 남자가 눈을 번뜩였다.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군! 자네가 살아 있고, 청신이가 이 흉성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멀쩡하다고?”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흉성은 뭡니까? 그리고 제가 살아 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

아까부터 말이 미묘하다는 생각을 하며 듣고 있던 도유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며 단서를 추려 냈다.

‘20년이 지났다’. ‘흉성’.

특히 흉성에 대한 것은 근래에 들어 본 적 있었다.

적성교는 흉성의 힘을, 명확하게는 흉성의 가호를 받는 인도자를 섬기는 사이비교다. 정말 흉성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성교에서 흉성의 인도자로 선출한 이를 교주로 삼아 그를 섬겼다는 기록이 있었다.

‘사살당했다고 했는데.’

카단에 남은 사건 일지에 따르면 교주는 저항하다가 당시에 진압부의 부팀장이었던 카단의 협회장, 송유원에게 사살당했다고 한다.

도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걸 알게 됐다. 저 남자의 말이 모조리 진실이라는 전제하에서.

“당신은 적성교의 교주였습니까? 아니면 그 일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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